[박태주 칼럼]기후운동, 저항에서 정치로

각 정당의 마지못한, 그만큼 허술한 기후공약

정당 선택 통한 기후운동의 정치세력화 고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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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주 60+기후행동 운영위원
박태주 60+기후행동 운영위원

흔히 기후가 아니라 정치를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정치를 바꿔야 기후를 바꿀 수 있다는 말이다. 기득권 체제에 녹아있는 기후 체제를 바꾸려면 권력관계를 바꿔야 하고 그걸 바꾸는 게 정치이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선거는 권력을 둘러싼 제도와 사람을 한꺼번에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점에서 기후정치로서도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방앗간이 아니다. 깊어가는 기후위기 앞에서 기후운동이 4·10 총선을 맞아 기후정치 원년을 선언하고 나선 이유다.

정당의 공약에 기후 의제를 삽입하거나 ‘기후정치인’을 국회로 보내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기후정치가 지향하는 바는 이보다 넓다. 본래 정치화(politicization)란, 특정 이슈를 사회적 갈등으로 점화해 정치적 해법을 모색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정치학회 회장을 역임했던 샤츠슈나이더의 말을 빌면 기후정치는 기후 이슈를 둘러싼 ‘갈등의 사회화’를 지향한다고 할 수도 있다.

기후운동, 저항에서 정치로

애당초 쉽지 않으리라는 전망이었다. 정책이나 미래 비전이 자리할 공간은커녕 서로가 상대방을 퇴출해야 할 ‘적’으로 규정짓는 전쟁판 아닌가. ‘한 줌도 안되는’ 기후운동이 얼음처럼 단단한 기득권 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을까. 위성정당을 둘러싼 기형적 선거제도에다 ‘심판론’과 ‘역심판론’이 맞부딪치는 진영대결의 국면에서 기후 의제란 생뚱맞은 명함일 수도 있다. 이기는 것이 정의를 세우는 빠른 길이라면 기후정치는 판을 깨는 아웃라이어가 되지는 않을까. 하지만 정치의 현장에서 기후 의제를 흘려보내기엔 기후 상황이 워낙 절박하다.

남풍이 불듯 조금씩 기후정치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나뭇잎 정도나 흔들 미풍. 선거가 대중 참여의 공간을 송곳 구멍처럼 열면서 그 비좁은 공간, 돌 틈 사이로 꽃다지가 조그만 노란 꽃대를 올리듯, 기후정치가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26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노년층 인권위원회 기후 진정 후속 기자간담회’ 참석자들이 "나는 기후 유권자입니다"라는 글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최재천 이화여대 대학원 에코과학부 석좌교수(앞줄 오른쪽), 그리고 한상훈 상임대표(중앙)를 비롯한 60+기후행동 대표단 및 운영위원들이 참석했다. 2024.3.26. 기후솔루션 제공
​26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노년층 인권위원회 기후 진정 후속 기자간담회’ 참석자들이 "나는 기후 유권자입니다"라는 글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최재천 이화여대 대학원 에코과학부 석좌교수(앞줄 오른쪽), 그리고 한상훈 상임대표(중앙)를 비롯한 60+기후행동 대표단 및 운영위원들이 참석했다. 2024.3.26. 기후솔루션 제공

시민단체가 주도하는 아래로부터의 행동이, 정책이 실종된 선거 지형에 균열을 내고 있다는 것은 이번 기후정치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기후유권자가 1/3에 이른다는 조사결과가 발표되고(기후정치바람), 각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기후위기 대응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기후정치라며 기후정치 원년을 선언했다(기후정치시민물결). 기후단체의 연대체인 기후위기비상행동은 ‘기후씨앗 1.5%’의 조직화를 내걸며 기후운동의 정치세력화에 나섰고 기후정의동맹은 체제전환을 위한 기후정의운동에 나섰다.

청년들이, 노인들이, 노동자들이, 그리고 종교인들이 각각의 자리에서 기후정치를 선언했다. 지역에서는 지역의 기후 쟁점을 중심으로 정치화가 이뤄지고 있다. 가덕도 신공항 반대, 원전 수명연장 반대, 새만금 갯벌 지키기, 케이블카 반대 등이 그것이었다. 조금씩 기후정치의 공간이 열리고 있다.

기후정치와 관련된 다양한 언어들이 호명되고 사회적으로 통용된다는 사실도 기후정치의 존재를 말해주는 지표다. 기후총선, 기후국회, 기후시민, 기후유권자, 기후정치원년, 기후정치 세력화 등 ‘기후’를 돌림자로 하는 언어들이 그것이다. 언어의 사회적 출현은 새로운 담론의 출현을 말한다. 기후운동이 저항에서 정치로, 항의에서 정책으로 나섰다고 할 수 있다.

 

삼척석탄화력반대투쟁위원회 등 환경단체 관계자들이 20일 오후 삼척시청 앞에서 제22대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하는 각 후보에게 기후공약과 탈석탄, 탄소중립을 통한 기후위기 극복 방안에 대한 정책을 수립해 시민에게 제시할 것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4.3.20. 연합뉴스
삼척석탄화력반대투쟁위원회 등 환경단체 관계자들이 20일 오후 삼척시청 앞에서 제22대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하는 각 후보에게 기후공약과 탈석탄, 탄소중립을 통한 기후위기 극복 방안에 대한 정책을 수립해 시민에게 제시할 것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4.3.20. 연합뉴스

각 정당의 마지못한, 그만큼 허술한 기후공약

언론이 먼저 반응했다. 이어 정당들이 기후공약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류 정당들은 왜 그간 기후위기를 외면했는지, 지난 대선에서의 약속은 어디로 갔는지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그들의 반응은 더디고 공약에는 구멍이 뚫려 있다. 기후에 대한 진심이 느껴진다기보다는 아래로부터의 압박에 마지못해 반응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으레 하는 말 수준을 넘지 못한다.

원전에 대한 말은 쏙 뺀 채 연평균 5조 원(!)의 예산으로 RE100과 탄소중립형 산업전환, 에너지 고속도로 건설, 농림축산업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의 공약이다. 이에 반해 국민의힘은 RE100은 언급도 않은 채 ‘원전·재생에너지를 균형적으로 확충’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이게 자신들이 말하는 ‘기후위기 대응, 함께하는 녹색생활’ 공약이 될 수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어느 당도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최소한 토건 개발이라도 자제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전국 철도 및 주요 고속도로 지하화’는 국힘의 공약이고 ‘철도, GTX, 도시철도 도심구간의 예외 없는 지하화’는 더불어민주당의 공약이다.

그나마 녹색정의당이 첫 번째 공약으로 탄소중립경제로 전환하겠다며 온실가스 감축과 정의로운 전환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포괄적이고 담대한 계획에 비해 정책 간 연계나 주요 이행방안도 빠져있고 정치적 효능감이 떨어진다. 들어갈 돈은 천문학적인데 재원 조달방안은 “법·제도 개선, 일반회계 등으로 조달”하겠다는 일반론에 그치고 있다(중앙선거관리위원회). 탄소세를 도입하겠다는 공약 정도가 눈에 띈다.

 

3월 26일 서울 광화문에서 '60+기후행동' 회원들이 '기후약자를 위한 기후정치 촉구 기자회견'을 열기에 앞서 구호를 외치고 함깨 노래를 부르고 있다. 2024.3.26.  60+기후행동 제공  
3월 26일 서울 광화문에서 '60+기후행동' 회원들이 '기후약자를 위한 기후정치 촉구 기자회견'을 열기에 앞서 구호를 외치고 함깨 노래를 부르고 있다. 2024.3.26.  60+기후행동 제공  

지지 정당 선택을 통한 기후운동의 정치세력화 고민해야

결과적으로 기후정치의 성과는 옹색할 것이다. 절망스럽기도 하겠지만 기후정치가 새로운 지평을 여는 출발점으로 받아들여야 할 듯하다. 두 가지만 질문하면 이렇다. 먼저 기후단체는 아래로부터의 동원을 바탕으로 정당에 대해 정책을 제안하고 정책협조를 모색한다.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방식을 택하지는 않았다. 다시 말해 시민들에게 기후투표를 하라고 독려하지만 막상 어느 후보, 어느 정당에 투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다. 이는 흔히 노동자의 정치세력화가 지지 정당을 특정해 정책협약을 맺고 조합원을 동원하는 것과는 대비된다(이번 선거에선 달랐다). 선거 정치는 궁극적으로 정당을 향한다. 기후정치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시민들이 대안을 갖고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길을 보여주는 것이 기후운동이 추구하는 정치세력화가 될 수 있다.

시민단체가 특정 정당과 연계하는 것이 논란이 될 수도,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기후‘정치’를 한다면서 정당을 배제하고 외면하는 일은 ‘절반의 기후정치’에 지나지 않는다. 정당정치랄까 제도정치와 거리를 두는 것이 깨끗한 손이라고 믿는다면 이는 ‘반정치의 정치’에 그칠 수 있다. “기후단체가 특정 정당을 선택해 지지할 수는 없을까”라는 것이 내가 묻는 첫 번째 질문이다. ‘정치화한 기후운동’에 대한 비판은 물론 기후운동 내부에서도 다양한 이념적 갈등이나 노선대립이 드러나겠지만 그게 반드시 회피할 일은 아닐 것이다.

두 번째 질문은 “체제전환이라는 큰 그림을 그릴 수는 없을까”이다. 기후위기는 지금부터 2050년 혹은 그 후에도 인간의 사회적 삶과 경제적 생활, 그리고 지구의 생태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기후위기는 혼자 오지 않는다. 인구감소와 지정학적 갈등, 정치적 양극화와 민주주의의 위기, 불평등과 장기침체 등 다른 위기 요인과 겹치면서 다중위기(polycrisis)로 발전한다.

선거 거듭될수록 체제전환 큰 그림도 가능해질까?

가령 이런 식이다. 출산율은 한번 하락하면 다시 상승하기 어렵다. 인구 성장세가 둔화하면 경제 성장세도 둔화한다. 기후위기 역시 성장세를 둔화시킨다. 그리하여 앨런 말라흐(2024)는 “인구든 경제든 성장은 끝났다”라고 단언한다.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선다고 해서 인구감소나 기후위기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성장이 둔화하면서 오히려 경기침체가 길어지고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하는가 하면 증대된 사회 갈등은 신파시즘이나 포퓰리즘의 확산을 낳아 민주주의의 위기로 전화할 수 있다. ‘암울한 예언자’ 누리엘 루비니의 말대로 우리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재난의 합류 지점에 직면해 있다”. 그렇다면 기후위기 대응에 그칠 일이 아니라 앞날을 내다보며 체제 전반에 걸친 그림을 그릴 때다(체제전환이 반드시 자본주의 체제의 전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본주의의 체질 개선도 중요한 변혁전략의 하나다).

가장 강력한 글로벌 대응이 이뤄지더라도 지구가 기후위기를 피해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나라가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달성할 수 있을지는 회의론이 우세하다. 기후위기가 정치적 해법을 절실히 요구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2026년 지방선거, 2027년 대선을 맞으면서 기후정치의 바람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우리가 계속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진다면 우리는 결국 정답을 찾게 될 것이다.”(앨런 말라흐, 2024, 『축소되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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