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환원 내세워 기업 세금 깎아주기

총수 전횡 막을 지배구조 개선은 뒷전

배당소득세 감면도 대주주가 더 혜택

“지배주주·이사회 책임 강화가 핵심”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한 정책도 결국 부자 감세인가.”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9일 열린 ‘자본시장 선진화 간담회’에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을 내놨다. 요지는 자사주 소각과 배당 확대 등으로 주가를 부양한 기업에 대해 법인세를 감면하고, 배당소득세 부담을 덜어 주는 방식으로 저평가된 한국 주식을 띄우겠다는 것이다. ‘주주환원’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웠으나 실제 내용을 보면 대기업과 대주주에게 혜택이 집중되는 또 다른 부자 감세 정책이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자본시장 선진화 관련 업계 간담회에 참석해 정부가 마련한 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4.3.19 연합뉴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자본시장 선진화 관련 업계 간담회에 참석해 정부가 마련한 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4.3.19 연합뉴스

최 장관은 “더 많은 기업이 배당과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 확대에 참여토록 유도하기 위해 주주환원 증가액의 일정 부분에 대해 법인세 부담을 완화할 것”이라고 했다. 자사주를 소각하거나 배당을 늘리는 기업에 대해 일정 범위 이내에서 법인세 감면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다. 자사주 소각은 기업이 주가 하락을 막거나 주가 부양을 위해 자사가 보유한 주식을 없애는 것을 말한다. 유통 주식 수가 줄기 때문에 자사 주 소각 소식이 들리면 통상 주가가 오른다. 배당과 더불어 대표적인 주주환원 정책으로 꼽힌다.

윤석열 대통령이 연초부터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주문하고 정부가 이를 위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정책을 추진하자 행동주의 펀드를 중심으로 상장사에 대한 배당과 자사 주 소각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하지만 기업으로선 배당과 자사 주 소각을 무작정 늘릴 수만은 없다. 신사업 진출을 비롯해 연구개발(R&D)과 시설 투자 등에 사용할 자금이 소진되기 때문이다. 배당과 자사 주 소각을 과도하게 요구하면 성장을 저해해 오히려 기업 가치가 하락할 수도 있다. 정부가 세제 혜택까지 제공하며 독려할 사안은 아니라는 뜻이다.

최 장관은 배당소득을 얻는 주주에 대한 세제 혜택도 언급했다. 그는 “배당 확대에 따라 주주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더 돌아갈 수 있도록 배당 확대 기업 주주에 대해 높은 배당소득세 부담을 경감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기획재정부는 “세액공제, 소득공제, 분리과세 방식을 모두 열어두고 시뮬레이션을 통해 가장 효과적인 방안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중 가장 유력한 방안으로 거론되는 것은 분리과세다. 현재 배당소득은 2000만 원 이상이면 금융소득종합과세에 합산해 과세한다. 높은 누진세율이 적용되기 때문에 세금 부담이 커진다. 배당소득세를 분리해 별도세율로 부과하면 세금을 덜 낼 수 있다. 많은 주식을 보유할수록 세금 부담이 경감된다.

법인세를 깎아주는 것이나 배당소득세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은 모두 주주환원 확대를 명분으로 또 다른 ‘부자 감세’ 정책을 펼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배당과 자사 주 소각은 기업이 스스로 판단할 사안이다. 세금 정책을 통해 정부가 독려한다는 이유로 배당을 늘리고 더 많은 자사 주를 소각할 기업은 많지 않을 것이다. 신사업 투자가 많은 기업은 정부가 아무리 지원해도 배당을 늘릴 수 없다. 주가 부양을 위한 자사 주 소각도 마찬가지다. 투자에 써야 할 기업 유보금을 주식 수를 줄이는 데 투입하지는 않을 것이다.

분리 관세를 통한 배당소득세 경감도 결국 많은 주식을 보유한 지배주주와 주식 부자들이 더 많은 혜택을 보게 된다. 배당소득이 적은 대다수 투자자는 체감하지 못할 수 있다. 더 가진 부자들을 위해 세금을 사용하게 되는 셈이다. 이는 그렇지 않아도 약해진 세수 기반을 정부 스스로 허무는 일이다. 지난해 법인세와 부동산 관련 세금이 덜 걷히면서 56조 원 이상의 세수 펑크가 났다. 이러니 윤석열 정부의 경제 정책을 두고 ‘기승전 부자 감세’라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닌가.

 

  주요국 주가순자산비율(PBR)  비교. 연합뉴스
  주요국 주가순자산비율(PBR)  비교. 연합뉴스

많은 전문가와 외신이 지적하는 것처럼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핵심 방안은 총수 일가 등 지배주주의 전횡을 사전에 차단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소액주주 권리를 보호하고 이사회와 대주주의 배임과 사익편취 등을 막을 기업지배구조 개선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상법 등 관련 제도를 바꿔야 한다.

그래야 대주주가 상속·증여세를 덜 내려고 일부러 주가를 떨어뜨리는 횡포를 막을 수 있다. 또 대주주의 잘못된 경영 판단을 견제할 수 있다. 경영권 승계를 위해 총수 일가 비상장 기업에 일감을 몰아주는 사익편취 행위를 감시할 수 있다. 사외이사 선임 등 이사회 구성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높일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시장이 원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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