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의 요새'에서 러시아로 기울어

니제르산 우라늄 최대 수입처는 EU

프리고진의 바그너 그룹, 현지서 맹활약

아프리카 붕괴 원인이자 징후 '지하드'

유럽 제국주의 침탈 '죄악의 그늘'

니제르 쿠데타를 주도한 군부 세력의 지지자들이 30일(현지시각) 수도 니아메에서 "프랑스를 타도하라, 푸틴 만세"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니제르 군부는 지난 26일 모하메드 바줌 대통령을 억류하고 쿠데타를 선언했다. 2023.07.31. AP 연합뉴스
니제르 쿠데타를 주도한 군부 세력의 지지자들이 30일(현지시각) 수도 니아메에서 "프랑스를 타도하라, 푸틴 만세"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니제르 군부는 지난 26일 모하메드 바줌 대통령을 억류하고 쿠데타를 선언했다. 2023.07.31. AP 연합뉴스

서부 아프리카 내륙국가 니제르에서 지난 7월 26일 대통령 경호부대가 쿠데타를 일으켜 모하메드 바줌 대통령을 구속하고 헌법을 정지시킨 뒤 옛 종주국인 프랑스를 비롯한 서방국 체류자들의 니제르 탈출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서방의 요새” 니제르마저 친러시아로

1890년대 초부터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다가 1960년을 전후해서 독립한 서부 아프리카 내륙국가들 다수가 최근에 쿠데타 등으로 군부가 집권하면서 모두 친러시아 쪽으로 방향을 바꾼 가운데 거의 유일한 친서방정권으로 “서방의 요새”라 불렸던 니제르마저 결국 러시아 쪽으로 기울면서 그 파장이 클 것이라는 관측들이 나오고 있다. 니제르 쿠데타는 이 지역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전체, 그리고 우라늄을 비롯한 자원 수입 및 유럽행 대량 이민 문제로 얽힌 유럽 정세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니제르는 유럽으로 가는 아프리카 이주민들이 지중해로 가는 주요 통로다.

우크라이나에서 활약한 민간군사회사 바그너 그룹이 이들 친러시아 군부정권들에도 깊숙이 관여하고 있어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유럽과 러시아의 전쟁이 아프리카에까지 확장되는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 국기 흔들며 프랑스대사관 방화

7월 30일 러시아 국기를 흔드는 쿠데타 지지자들이 수도 니아메의 프랑스 대사관에 불을 질렀고, 1일부터 프랑스가 항공기로 현지의 자국민을 대피시키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와 독일, 미국, 일본인 체류자도 탈출길에 나섰으나 니제르의 항공로가 폐쇄돼 프랑스 외무부가 항공기를 급파하는 등 피난작전을 결행했다.

이 지역 15개국으로 구성된 서아프리카국경제공동체(ECOWAS)는 7월 30일 남쪽 이웃 나이지리아에서 긴급 정상회의를 열고 니제르 군부에 대한 경제제재를 발표했다. 그리고 니제르에 특사를 파견하는 한편 1주일 안(8월 6일까지)에 헌정을 복구하고 바줌 대통령을 석방하라고 요구하면서, 불응하면 무력행사도 불사하겠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니제르의 서쪽 이웃 부르키나파소와 말리는 31일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을 통해 “니제르에 대한 군사개입은 부르키나파소와 말리에 대한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며 강하게 맞대응을 했다. 이 두 나라도 원래 ECOWAS의 일원이었으나 2020~2022년에 이들 나라에 쿠데타로 친러 군사정권이 들어선 뒤 회원국 자격 정치처분을 받았고, 바그너 그룹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니제르 군부가 26일(현지시각) 수도 니아메에서 국영TV를 통해 성명 발표를 하고 있다. 성명에서 이들은 모하메드 바줌 대통령이 축출됐다고 주장하며 국가 기관 봉쇄와 국경 폐쇄를 발표했다. [니제르 국영방송 ORTN 제공 영상 캡처] 2023.07.27. AP 연합뉴스
니제르 군부가 26일(현지시각) 수도 니아메에서 국영TV를 통해 성명 발표를 하고 있다. 성명에서 이들은 모하메드 바줌 대통령이 축출됐다고 주장하며 국가 기관 봉쇄와 국경 폐쇄를 발표했다. [니제르 국영방송 ORTN 제공 영상 캡처] 2023.07.27. AP 연합뉴스

니제르 우라늄 최대 수입처 EU

니제르가 계속 반프랑스 친러시아 입장을 고수할 경우 원자력발전소 연료인 우라늄의 서방세계 공급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니제르는 천연 우라늄의 주요 산지로 유럽연합의 우라늄 조달을 맡고 있는 유라톰에 따르면, 2021년의 경우 EU의 우라늄 전체수입 중의 약 24%를 니제르산이 차지했다. 최대 공급국이다. 1970년대에는 니제르 수출액의 70%를 우라늄이 차지했다. 일본도 2011년 3월 도쿄전력의 후쿠시마 제1원전이 수소폭발을 일으키기 전까지는 니제르에서 우라늄을 수입했는데, 지금은 프랑스와 중국 등이 수입한다. 프랑스 원자력업체 오라노가 현지의 우라늄 광산을 운영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뒤 러시아산 우라늄 핵연료 수입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된 유럽연합으로서는 니제르의 정세 불안정이 장기화할 경우 핵연료 공급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니제르 군부 쿠데타 지지자들이 27일(현지시각) 수도 니아메에 위치한 집권당 본부에 불을 지르고 시위하고 있다. 전날 니제르 군부는 모하메드 바줌 대통령을 축출했다고 주장하며 쿠데타를 선언했다. 2023.07.28. AP 연합뉴스
니제르 군부 쿠데타 지지자들이 27일(현지시각) 수도 니아메에 위치한 집권당 본부에 불을 지르고 시위하고 있다. 전날 니제르 군부는 모하메드 바줌 대통령을 축출했다고 주장하며 쿠데타를 선언했다. 2023.07.28. AP 연합뉴스

프리고진의 바그너 그룹 맹활약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던 이들 나라에서는 옛 종주국에 대한 피로감, 거부감이 강하고 유엔에 대한 반발도 크다. 거기에 러시아가 끼어들었고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이끄는 바그너 그룹이 현지 대행자로 활약하고 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등에 따르면, 바그너 그룹은 최근 리비아와 수단,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말리 등 정치 정세가 불안정한 아프리카 국가들에 전투원을 파견해 현지 정부군 등을 지원하면서 러시아의 존재감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반정부세력과 내전을 벌이고 있는 중앙아프리카의 경우 2016년에 옛 종주국 프랑스가 주둔 군사력의 대부분을 철수한 뒤 러시아에 급속히 접근했다. 중앙아프리카는 2018년부터 러시아의 전직 군인들을 ‘군사고문’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거기에 바그너 그룹 전투원들도 포함됐다.

금, 우라늄, 다이아몬드

CSIS는 러시아가 군사지원을 대가로 “금, 우라늄, 다이아몬드에 대한 이권을 챙겼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비영리조직(NPO) ‘센트리’가 지난 6월 27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금과 다이아몬드 등의 광산에는 바그너 그룹 회사가 참여하고 있으며 그 이익은 바그너 그룹 간부와 러시아 정부 쪽으로 흘러간다. 2021년 말에는 바그너 그룹 산하 민간군사회사에서 2600명의 군사고문을 파견했다.

이로 인한 심각한 인권침해 사례들도 보고되고 있다. 미국 비정부기구(NGO) ‘무력분쟁발생지: 사건데이터 프로젝트’(ACLED)가 지난해 8월에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20년 12월 이후 중앙아프리카에서 바그너 그룹이 관여한 민간인 대상 사건은 180건에 이른다. 센트리 보고서에는 바그너가 중앙아프리카에서 사용한 슬로건 ‘구제(驅除)’ ‘토벌’ 등에서 ‘구제’는 여성과 어린이까지 포함해 공격대상 지역 주민 모두를 몰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투원들의 강간에 대한 증언들도 있었다.(<아사히신문> 7월 3일)

 

26일(현지시각) 서아프리카 니제르 수도 니아메에 모하메드 바줌 대통령 지지자들이 모여 있다. 이날 니제르 군부는 대통령 경호원들이 바줌 대통령과 가족들을 억류하는 사건이 일어난 직후 바줌 대통령이 축출됐다고 주장했다. 2023.07.27. AFP 연합뉴스
26일(현지시각) 서아프리카 니제르 수도 니아메에 모하메드 바줌 대통령 지지자들이 모여 있다. 이날 니제르 군부는 대통령 경호원들이 바줌 대통령과 가족들을 억류하는 사건이 일어난 직후 바줌 대통령이 축출됐다고 주장했다. 2023.07.27. AFP 연합뉴스

아프리카 사회경제 붕괴의 원인이자 그 징후 ‘지하드’

이번 쿠데타는 경제난이나 정치적 탄압 등에 대한 반발로 빈발했던 예전의 경우와는 달리 정치적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상황에서 일어났다. 쿠데타 주동세력인 대통령 경호대장 압두라하만 치아니 등의 군부세력은 치안정세 악화에 대한 불만을 그 이유로 들었다.

북쪽에 알제리, 리비아, 남쪽에 나이지리아와 국경을 접하는 니제르는 북부지역에 알카에다계, 남부지역엔 보코하람계 이슬람 조직이 자리잡고 서로 대립하면서 정부 주요시설과 서방 기업들을 대상으로 테러를 감행하는 ‘지하드(성전)’를 벌여왔으나 최근에는 지역 마을들까지 휘말릴 정도로 치안상태가 악화됐다.

여기에 국토의 4분의 3이 사하라 사막에 속한 이 나라에 가뭄으로 인한 식량부족과 물가 폭등, 빈곤 심화 등의 경제문제까지 겹쳤다. 우라늄 가격이 올랐지만 일반주민 생활과는 무관한 왜곡된 경제구조가 사태를 악화시켰다.

 

압델-파타우 무사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 정치·평화·안보 담당 집행위원(왼쪽)이 2일(현지시각) 나이지리아 수도 아부자에서 ECOWAS 긴급 국방장관 회의를 마친 후 서아프리카 국방장관들과 니제르 쿠데타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서아프리카 15개국 연합체인 ECOWAS는 지난달 30일 니제르에 군대를 동원할 수 있다고 압박했지만 이날 무사 위원은 군사개입은 '최후의 수단'이라고 말했다. 2023.08.03. AFP 연합뉴스
압델-파타우 무사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 정치·평화·안보 담당 집행위원(왼쪽)이 2일(현지시각) 나이지리아 수도 아부자에서 ECOWAS 긴급 국방장관 회의를 마친 후 서아프리카 국방장관들과 니제르 쿠데타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서아프리카 15개국 연합체인 ECOWAS는 지난달 30일 니제르에 군대를 동원할 수 있다고 압박했지만 이날 무사 위원은 군사개입은 '최후의 수단'이라고 말했다. 2023.08.03. AFP 연합뉴스

유럽 제국주의 죄악의 그늘

지하드는 이런 상황에서 더욱 거세져 지난 6월까지 1년 동안 2만 2000명 이상의 이 지역 아프리카인들이 지하드와 연관된 폭력으로 희생됐다. 이는 그 전해보다 50%나 늘어난 것이고, 2014년 이라크에서 이슬람국가(Islamic State)의 세력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의 희생자 수의 2배나 된다. <이코노미스트>는 1일 기사에서 “지하드(Jihadism)는 사회적 경제적 붕괴의 원인이자 그 징후”라고 썼다.

유럽 제국주의의 아프리카 침탈과 식민지배 죄악의 그늘에서 아프리카인들이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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