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월 걸친 참호전·포격전 러시아 측 승리로 종결

양측 인명피해 수만 명 달한 '미트 그라인더' 비극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 철수하고 러 정규군에 넘겨

푸틴에 상징적 승리…결정적 전환점 될지 미지수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바흐무트(Bakhmut). 서울 강서구 정도의 면적(41.6㎢)에 전쟁 전 인구가 7만 명이었던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방의 소도시가 지난 9개월 동안 세계의 이목을 끌어당겼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전투였다. 각국 언론에서 '고기 분쇄기(meat grinder)'라고 불리며 러시아 측과 우크라이나 측에 수만 명의 인명피해를 냈던 바흐무트 전투가 종료됐다.

 

예브게니 프리고진 바그너 그룹 대표(왼쪽)가 25일 바흐무트 점령을 선언한 뒤 휘하 장병들에게 연설을 하고 있다.  2023.5.25.  UPI 연합뉴스 
예브게니 프리고진 바그너 그룹 대표(왼쪽)가 25일 바흐무트 점령을 선언한 뒤 휘하 장병들에게 연설을 하고 있다.  2023.5.25.  UPI 연합뉴스 

그동안 우크라이나 정규군에 맞서 전투를 수행했던 러시아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은 지난 25일 바흐무트를 러시아 정규군에 넘기고 철수를 시작했다. 개전 이후 가장 오래 전개된 바흐무트 전투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예브게니 프리고진 바그너 그룹 대표는 돈바스 언론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들이 러시아군을 대체해 전투에 투입된 작년 10월 이후 224일간 우크라이나군 5만 명이 숨지고, 5만~7만 명이 다쳤다고 말했다. 바그너그룹 측은 용병과 러시아 죄수 출신 병사 등 2만 명이 숨지고 3만 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서방 언론은 그동안 바그너 그룹의 전사자가 1만~2만 명에 달한다고 보도해왔지만, 정작 우크라이나군의 피해 규모는 전하지 않았다.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과 올렉시 레즈니코프 우크라이나 국방장관 등 고위 관계자들은 러시아 측 피해 상황을 주로 언론에 전해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히로시마를 방문 중이던 21일 "바흐무트에서 러시아군 전사자가 10만 명"이라고 말했다.

프리고진은 바그너 그룹 병력이 가장 많을 때 5만 명 정도였다면서 이 병력으로 8만 2000명에 달하는 적군을 상대해왔다고 말했다. 한나 말리아르 우크라이나 국방부 장관도 22일 대규모 전투가 끝났음을 시인했다. 도네츠크에서 18㎞ 떨어진 솔레다르는 러시아군이 지난 1월 점령했다.

 

우크라이나군 병사들이 지난 3월 5일 바흐무트 인근에서 러시아군의 포격을 피해 참호로 대피하고 있다. 바흐무트 전투는 1차대전 당시를 방불케한 참호전으로 치러져 인명 희생이 많았다. 2023. 3. 5. A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군 병사들이 지난 3월 5일 바흐무트 인근에서 러시아군의 포격을 피해 참호로 대피하고 있다. 바흐무트 전투는 1차대전 당시를 방불케한 참호전으로 치러져 인명 희생이 많았다. 2023. 3. 5. AP 연합뉴스

바흐무트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작년 9월부터다. 러시아군이 동부 하르키우 주와 남부 헤르손 주 주도 헤르손 등 드니프로강 이남으로 철수(우크라이나 측은 탈환이라고 표현)한 뒤 유일하게 전투가 지속된 전장이다. 1차 세계대전 때와 흡사한 참호전과 포격전, 시가전으로 치러졌다. 작년 말 미국이 한국의 155㎜ 포탄 10만 발을 수입해 전략비축량을 채우고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미국산 포탄 10만 발이 주로 소비된 곳이기도 하다. 바흐무트 포격전이 한창일 때였기 때문이다. 미국 군사 전문가들은 그러나 바흐무트의 전략적 가치를 높게 평하지 않고 있다(뉴욕타임스). 도네츠크 공화국 북부의 교통 요지이기는 하지만, 향후 전세에 결정적인 변수가 되기 힘들다는 말이다.

다만, 특별군사작전의 명분의 하나로 돈바스 지방의 해방을 내세웠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바흐무트 승리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서울대 이문영 교수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돈바스 지방의 두 개 공화국 중 루한스크는 100% 점령했지만, 도네츠크는 절반 정도(54%)만 확보하고 있다. 러시아 측 도네츠크·루한스크 공화국은 전쟁 전 돈바스의 37%를 점령했지만, 현재 74%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외대 김규철 교수) 돈바스 외에도 자포리자 주와 헤르손 주 일부를 점령하고 있다.

 

인구 7만 명의 유서 깊은 공업도시였던 바흐무트는 폐허더미로 변했다. 지난 21일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건물이 불타고 있는 장면.  2023.5.21. 로이터 연합뉴스 
인구 7만 명의 유서 깊은 공업도시였던 바흐무트는 폐허더미로 변했다. 지난 21일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건물이 불타고 있는 장면.  2023.5.21. 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는 지난해 9월 부분 동원령을 통해 25만 명의 신규 병력을 확보했지만, 전쟁에 투입하지 않고 있다. 실제 투입 병력은 정규군 15만 명과 도네츠크·루한스크 인민경찰대를 포함해 약 20만 명이다. 반면에 우크라이나는 정규군 20만~30만 명과 동원 병력 70만 명 등 100만 병력을 투입하고 있다. 김규철 교수는 "러시아는 현 점령지에 만족하지만, 우크라이나가 계속 공격하면 제정 러시아 당시 러시아 영토였던 '노보 러시아(Novo Russia)'로 점령지를 확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3월 24일 사단법인 외교광장 세미나) 러시아가 노보 러시아를 확보하면 우크라이나는 내륙국으로 전락한다.

바흐무트는 해바라기밭과 소금, 석회 광산에 둘러싸인 공업 도시였다. 발포 포도주를 저장한 동굴이 많아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격렬한 전투가 끝난 지금은 시가지가 폐 건축잔해물로 그득할 뿐이다. 현재 인구는 4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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