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 왕이면 대리기사는 그저 노예인가?

[ 플랫폼의 노예들 : 대리기사 이야기 ⑬ ]

손님이 왕, 고객 갑질의 정당화 수단 아냐

대리기사에도 진상고객 차단기능 있어야

고객 요청 콜 하루 2회 취소시 밥줄 끊어

시간은 돈, 고객의 대리 취소시 제재 필요

2024-09-15     이득신 작가

 

이득신 작가

‘손님은 왕이다’라는 말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통용되는 오랜 격언이다. 이 말은 프랑스 파리의 한 호텔에서 시작된다. 요즘은 리츠 칼튼 호텔이라고 알려진 호텔 리츠의 창업주 세자르 리츠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한때 호텔 지배인으로 일하면서 웨일스의 왕세자인 에드워드 7세를 만난다. 그곳에서 왕실의 서비스를 대하며 충격과 감동을 받는다. 이후 리츠 호텔을 설립하여 왕실서비스를 호텔에 접목하면서 엄청난 성공을 이루게 된다. 세자르 리츠가 운영하던 호텔에는 실제로 왕족 및 귀족들이 주로 이용했다. 세자르 리츠의 호텔에 오는 손님이 말 그대로 진짜 왕이었던 셈이다. ‘손님은 왕이다’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세자르 리츠가 단순하게 손님이 진짜 왕과 귀족이었다고 이 말을 한 것은 아니다. 리츠 호텔은 당대 유럽 최고의 호텔로 여러 왕족과 귀족도 두루 이용했지만 리츠 호텔의 핵심은 그 곳에 간다면 누구나 왕처럼 대접받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세자르 리츠는 대접받고자 하는 손님의 욕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모든 손님이 귀족 의전에 필적하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매뉴얼을 확립했다.

당대 유럽은 신분제가 해체되어 가는 분위기였으며 귀족은 서서히 특권을 잃고 있었고 신흥 자본가나 전문직, 상인 등 평민들에게 신분 상승의 욕구가 커지는 상황이었다. 세자르 리츠는 특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귀족층의 욕구와 귀족이 되고자 하는 신흥 상류층의 욕구를 동시에 절묘하게 찌른 것이다. 그 결과 리츠 호텔은 유럽의 왕족과 귀족의 범주 안에서만 노는 호텔이 아니라 전 유럽에 명성을 떨치는 호텔이 되었고 이후 전 세계에 걸친 최고급 호텔 그룹 리츠 칼튼의 모태가 된다.

‘손님이 왕’이라는 말은 고도의 자본주의 체제를 거치면서 변질에 변질을 거듭했다. 이 말은 서비스 제공자에게 고객을 대하는 자세, 이를 테면 친절 같은 것을 강조한 것이지, 고객의 갑질을 정당화 시키는 수단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모든 추태와 진상과 갑질이 비용 지불자의 지갑에서 나온다. 그런 과정에서 ‘돈이면 뭐든 용서 된다’라는 인식이 당연시되고 서비스 공급자의 가슴에 큰 흉터를 남기게 된다.

장마와 폭염이 교대로 찾아온 어느 주말, 고객의 호출에 황급히 달려간 곳은 상가의 지하주차장이었다. 독일산 외제차의 주인인 그는, 내가 도착했을 때 이미 조수석에 앉아 신발과 양말을 모두 벗고 차량의 대쉬보드 위에 두 다리를 올려놓은 뒤 누군가와 한참 통화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차량의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시각보다 후각이 더 빠르게 반응했다. 날씨와 뒤섞인 퀴퀴한 냄새는 차량 내부를 완전히 장악하는 중이었다. 운행을 시작했지만 차마 ‘창문을 열어도 될까요?’라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고객의 통화가 계속되는 동안 내가 제어하지 못하는 생리적인 재채기가 연거푸 쏟아졌다. 순간 고객은 통화를 중단하며 ‘입을 막고 (재채기)하라’는 반응을 내놓으며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자신이 지불하는 대리비용에는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는 말로 그의 발언이 시작되었다. 한동안 고객의 ‘손님은 왕이다’라는 연설을 들어야 했다. 내가 갑작스럽게 재채기를 한 건, 차량 내부에서 진동하는 그의 꼬랑내 나는 냄새 때문이라는 것을 그는 인식하지 못하는 듯 했다.

운행을 종료하고 그 고객은 나를 차단했는데, 그 사유가 대리기사의 위생관리 부족이었다. 고객이 나를 차단한 첫 사례였다. 사전에 마스크를 제대로 챙기지 못한 나의 불찰도 있었다. 그러나 나의 재채기는 차량내부의 냄새와 그의 벗은 신발과 양말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고객은 모르는 척 했다. 게다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그는 이쑤시개로 치아의 곳곳을 찔러대며 쩝쩝소리를 반복했다. 독일산 고가의 외제차가 차주의 품격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어플에서 고객은 대리기사를 차단할 수 있는 기능이 존재해도 대리기사는 고객을 차단할 기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 사건이기도 했다.

 

고객은 운행종료와 함께 대리기사를 평가하고 카카오 모빌리티는 이를 점수화 하여 대리기사에게 전달한다. 카카오대리 기사용 어플 갈무리. 이득신 작가

이런 일도 있었다. 오전 2시가 조금 넘은 시간, 안양의 어느 번화가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도착했다. 식당과 상가들마다 불이 꺼져있는 것으로 봤을 때 그곳에서 콜을 잡기는 쉽지 않을 듯 했다. 주변의 대리기사도 채 10명이 되지 않았다. 그때 부천으로 가는 콜이 울렸다. 수락을 누르려는 순간 이미 다른 대리기사가 잡은 듯 했다. 배정완료 된 콜이라는 메시지가 내 아쉬운 한숨을 끌어냈다. 그런데 잠시 후 같은 장소에서 목적지가 동일한 콜이 또 다시 울렸다. 이번에도 나의 순발력이 다른 대리기사보다 늦음을 한탄해야만 했다. 안양의 번화가로 이동하는 방법을 찾고 있을 때, 조금 전 그 콜이 또 울렸다. 그리고 나선 이내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같은 사람이 반복적으로 울리는 게 혹시 카카오 대리 어플이 오작동하는 게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무언가 오기가 발동한 나는 기어이 그 콜을 잡고야 말았다. 그리고 다시 취소가 될 줄 알았으나, 나는 그 콜의 최종 승자가 되어 고객이 있는 출발지에 도착했다.

아침부터 아내와 크게 부부싸움을 했던 고객이 집에 가기를 망설이며 대리 운전 요청과 취소를 반복했다고 웃으며 실토했다. 그는 카카오를 통해 대리기사를 불렀다가 취소하는 실험을 해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열 번을 취소하는 동안 시간은 얼마나 걸릴지, 자신은 혹시 대리 요청에 차단되지는 않는지, 귀가하기 싫은 사춘기 어른에게 술기운이 가져다 준 황당한 장난이었다. 대리기사에게 30분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그는 알지 못했다. 그저 고객은 항상 옳다는 무지의 신념과 알콜성 장난기가 결합하여 우물 속을 헤엄치는 개구리에게 던져지는 돌맹이의 횡포를 저지른 것이다.

그의 이런 행위로 이미 그 지역 반경 1.5km 공간에 대리운전 수요지도가 ‘고객의 대리운전 요청이 많다’는 의미로 빨갛게 물들었다. 대리운전 수요지도에 취소는 반영하지 않고 대리 요청만 반영하게 되니 순식간에 10여 콜이 생겨나면서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그로 인해 어떤 대리기사는 다른 콜을 놓쳤을 것이며 다른 대리기사는 빨갛게 물든 수요 지도를 보며 그곳으로 달려왔을 것이다.

이런 식의 반복된 취소에도 불구하고 고객에게는 어떠한 제재나 불이익을 가하지 않는다. 한명의 고객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라는 것에 이해는 하지만 그렇다고 동의를 하고 싶지는 않다. 고객이 취소하는 경우는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막상 대리기사를 부르고 난후 술 한 잔이 더 생각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헤어짐이 아쉬워 더 많은 대화를 위해 대리 콜을 취소하는 경우도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어떻게 봐야 하나. 대리기사를 2~3군데에 요청을 한다. 그리고는 가장 먼저 도착하는 대리기사에게 운행을 맡긴다. 그렇게 되면 그 후 두 번째 또는 세 번째 도착하는 대리기사는 소중한 시간을 날려버리는 것이다. 다른 대리 콜을 잡을 수도 있었는데, 고객의 이기적인 욕심으로 시간과 돈이 함께 사라지는 셈이다. 대리기사에게 ‘시간은 돈이다’라는 격언은 단지 시간의 소중함을 말하는 상징성에 그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시간 그 자체가 돈이라는 사실을 고객들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플랫폼 운영사는 고객의 반복적인 취소콜에 대해서도 취소수수료 등을 물게 하여 반드시 제재를 가해야 한다. 그래야 이중으로 대리기사를 부르는 폐단을 막을 수 있다.

그런데, 만일 대리기사가 콜을 취소하면 어떻게 될까. 대리기사는 하루 2회의 콜을 취소하면 어플 이용을 막아버리는 것으로 30분간의 페널티가 발생한다. 30분 동안 밥줄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30분 후 어플을 다시 이용한다고 해도 그날은 더 이상 콜을 기대하기 어렵다. 더 이상 콜을 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대리기사에게는 한 없이 불이익을 가하게 된다.

 

카카오모빌리티는 대리기사가 고갹요청콜을 2회 취소시 어플을 막는다는 경고메세지 갈무리. 이득신 작가

그런데 대리기사는 왜 콜을 취소하는 것일까. 고객이 대리운전을 요청하면, 대리기사는 출발지, 목적지, 경유지, 고객과 대리기사의 거리, 운행시간, 운행비용을 한눈으로 확인하고 콜 수락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이걸 천천히 보고 있으면 이미 다른 기사가 수락버튼을 눌러 가져가게 된다. 그러니 1초 이내, 특히 대리기사가 운집해 있는 지역의 경우에는 0.5초 이내 이 모든 것을 확인하고 수락해야만 한다. 그래서 보통 대리기사들은 운임비용 정도만을 확인하고 수락버튼을 누른다. 막상 수락을 하고 나면 목적지가 너무 오지이거나 출발지 고객과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취소를 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러한 이유로 하루 2회 이상의 취소 시 그날의 일당을 앗아가 버리는 것은 매우 부당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손님은 손님일 뿐 왕이 아니다. 봉건왕조시대가 사라져 가는 시절에 평민들도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작은 취지에서 출발한 이 격언은 어느새 고객의 갑질과 진상을 합리화시켜버리는 말로 변질되었다. 더욱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에게는 고객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온갖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고객도 대리기사도 모두가 동등하다. 비용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이용한다는 것이 소비자의 갑질을 용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보름달이 둥실둥실 떠오르는 추석이다. 추석에도 역시 둥근달을 바라보며 대한민국을 운전해야 하는 대리기사와 함께하는 모든 고객에게 행운이 가득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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