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기 고발된 한동훈‧나경원…제 무덤 판 '자폭 전대'
국힘 대표 누가 되든 전대 뒤 바람 잘 날 없을 듯
한동훈이 쐐기 박은 '공소 취소 청탁'…수습 불가
사과 글 올리더니 다시 "나경원이 개인 차원 부탁"
청탁금지법 위반 등 혐의로 공수처에 중복 고발돼
조국혁신당은 '댓글팀' 의혹 경찰 국수본에 고발
민주, 당 차원 TF 구성…'한동훈 특검법' 공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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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당 사상 초유의 '자폭 전당대회'는 오는 23일 국민의힘 당 대표로 누가 결정되든 결국 깊은 자상과 긴 후유증을 남길 전망이다. 한동훈 후보가 법무부 장관 시절부터 사설 댓글팀(여론조성팀)을 운영했다는 의혹과 함께 나경원 후보로부터 '공소 취소' 청탁을 받았다는 폭로까지 수습 불가 상태로 치달으면서 결국 두 사건 모두 고발 사태를 자초하고 말았다. 게다가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국민의힘 전당대회 다음날인 24일 '한동훈 특검법'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하기로 했다.
야권에서 농반진반 한 후보를 지지한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온 데는 이 같은 '한동훈 리스크'가 큰 몫을 차지해왔다. 한 후보가 실제 당 대표로 선출될 경우 국민의힘은 '김건희 방탄'뿐만 아니라 '한동훈 방탄'에도 당력을 소진해야 할 판이다. 친윤 의원들이 한동훈 체제를 '3일 천하'로 만든다는 소위 '김옥균 프로젝트'가 현실화하거나 윤석열 대통령이 한동훈 특검법을 수용할 경우, 또는 반대로 '한동훈 대표'가 본격적인 '반윤 쿠데타'에 나설 경우엔 양상이 복잡해지겠지만 어느 쪽이든 전당대회 이후 여당 상황은 바람 잘 날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17일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 토론회에서 불거졌던 '공소 취소' 청탁 폭로는 한 후보가 다음 날 바로 꼬리를 내리고 페이스북에 "신중하지 못했던 점 죄송하게 생각한다"는 사과 글을 올리면서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한 후보는 전략‧전술적 판단을 새로 했는지 이후엔 다시금 나경원 후보가 패스트트랙 사건에 관한 공소 취소를 부탁한 게 사실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심지어 한 후보는 18일 밤 KBS가 주관한 5차 방송토론회에서 나 후보가 "마치 제가 사적인 청탁을 한 것처럼 말해서 상당히 놀랐다"며 "패스트트랙 사건 기소가 맞다고 생각하냐?"고 따지자 "그때 그 기소를 한 검찰총장이 대통령"이라며 윤 대통령까지 끌어들인 뒤 "법에 따라 기소된 것이다. 일반 국민들은 그렇게 '개인적인 사건', 본인이 직접 관련된 사건에 대해서 그런 식으로 얘기할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이에 나 후보가 "우리 27명이 기소됐다. 개인적 사건이라는 말에 다시 한번 분노한다"고 흥분하자 "개인적 사건이라고 말한 것은 바로잡겠다"고 한발 물러섰지만 그것도 그때뿐이었다.
19일 SBS가 주관한 마지막 방송토론회에서 한 후보는 작심한 듯 "나경원 후보는 (공소 취소를 부탁할) 당시에 당직도 안 맡았고 '개인 차원'에서 저한테 부탁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나 후보가 "그게 개인 차원인가? 제 것만 빼달라고 했나? 한동훈 후보 똑바로 말하라"고 연신 목소리를 높이며 몰아붙였으나 한 후보는 "네!" "네!" "네!" "네!"라고 4차례 이상 반복해 답한 뒤 "저는 똑바로 말씀드리고 있다"고 확실히 쐐기를 박았다.
한 후보는 경쟁자인 나 후보를 제압한 데 대해 만족했는지 답변 도중 미소까지 지었지만, 이로써 공소 취소 청탁은 사실관계가 더 확고해졌고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에 스스로를 옭아맨 꼴이 됐다. 더불어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과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 김한메 대표는 22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소 취소 부정 청탁과 관련해 한 후보와 나 후보를 청탁금지법 위반 및 직무유기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앞서 이들은 지난 18일 한 후보를 댓글팀 운영 의혹으로 이미 고발한 바 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법무부 장관은 헌법과 관계 법령에 따라 정치적 중립을 수호하면서 국가 법행정을 총괄하고 형사사법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도록 해야 하는 책무가 있다. 아울러 자신에게 들어오는 부정한 청탁이 있다면 청탁금지법에 따라 공직자로서 반드시 신고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며 "피고발인 한동훈은 현직 법무부 장관 자리에서 사건 당사자이자 피고인인 나경원으로부터 자신에 대한 공소를 취소해달라는 부정한 청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청탁금지법 규정을 위반해 신고 의무를 고의적으로 이행하지 않는 등 국가법령 체계 및 사법 정의를 수호해야 하는 직무를 유기했다"고 지적했다.
진보당 김재연 상임대표와 윤종오 원내대표도 이날 한·나 두 후보를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했다. 이들은 고발장에서 "한동훈은 전 법무부 장관이자 집권 여당의 대표였으며, 나경원은 현재 국회의원으로 경찰이나 검찰이 피고발인들에 대한 수사를 공정하고 신속히 진행할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면서 공수처의 엄정 수사를 촉구했다. 윤종오 원내대표는 국회 기자회견에서 "이 사건은 국민의힘이 범죄를 자백한 것"이라며 "나경원 후보는 한동훈 후보 외에도 윤석열 행정부의 다른 핵심 인사들과 검찰 인사들에게 추가적인 청탁을 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의심된다"고 했다.
조국혁신당은 같은 날 한 후보의 장관 시절 댓글팀 운영 의혹과 관련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고발장을 접수했다. 이 자리에는 김선민·황명필 최고위원을 비롯해 김재원·이해민·차규근 의원, 김보협 수석대변인, 서상범 법률위원장 등이 동행했다. 차규근 의원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국민의힘 전당대회 과정에서 밝혀진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의 댓글팀 운용 의혹은 매우 충격적"이라며 국가수사본부의 신속한 압수수색과 철저한 수사를 요구했다.
이어 ▲자신에게 우호적인 여론 형성을 위해 게시글을 작성하거나 콘텐츠를 유포하는 등의 행위를 했다면 이는 일반적인 직무권한에 비춰볼 때 위법 부당한 행위라는 점 ▲현직 공무원까지 동원됐다면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는 점 ▲허위정보를 이용했거나 타인의 계정에 공유했다면 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죄와 정보통신망 침입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 등을 조목조목 짚었다.
이틀 전 개최된 전국당원대회를 통해 당 대표로 재선출된 조국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에서 "국민들 사이에 탄핵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심리적 탄핵' 상태"라며 "그런 국민의 마음, 분노에 주파수를 맞추는 것이 야당 대표로서 제가 할 첫 번째 책무다. 전당대회에서 약속드린 것처럼 '윤석열과 김건희의 강'을 건너기 위해 조국혁신당은 법적·정치적 준비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 일환으로 한동훈 씨를 경찰청에 고발한다"며 "앞으로 사법당국에 국정농단 수사를 촉구하고 민주당 등 야당들과 탄탄한 공조 체제를 도모하겠다"고 밝혔다.
김선민 수석최고위원은 "한동훈 후보는 일부 사실을 폭로했다고 해서 슬그머니 국민 편인 척하지 말라. 한 후보가 좋아하는 고소, 이번에는 저희가 해드리겠다"며 "이미 발의한 한동훈 특검법에 댓글팀 운영 사실까지 모두 법률 위반 여부를 따져볼 생각"이라고 엄포를 놨다. 그는 "대표 선거를 앞두고 아무리 바쁘시더라도 수사 준비 게을리하지 말라"면서 "전당대회는 짧지만 수사는 길다"고 비꼬았다.
민주당은 아직 당 차원에서 고발에까지 나서진 않았지만 한 후보의 댓글팀 운영 실체를 규명할 태스크포스(TF)를 만들기로 했다. 이해식 수석대변인은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민의힘 전당대회 과정에서 자백한 댓글부대 운영이라든가, 공소 취소 청탁에 대해 당 차원의 고발을 검토해나가기로 했다"며 "특히 '한동훈 여론조작'과 관련해 우리 당에서도 TF를 만들어서 대응을 검토하라는 (박찬대) 당 대표 권한대행의 지시가 있었다"고 전했다. 이 대변인은 "여론조작이 민주주의 파괴에 매우 중대한 혐의이기 때문"이라며 "당 차원의 TF팀을 만들어서 보다 정밀하게 조사하고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노종면 원내대변인은 서면브리핑에서 "김건희 문자, 폭력 사태, 댓글팀 의혹 등 추태가 계속되고 있는 국민의힘 전당대회 와중에 공소 취소 청탁이라는 핵폭탄급 폭로가 나왔다"면서 "검찰은 왜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있는가? 굳게 침묵하고 있는 검찰의 태도는 스스로가 정부, 여당의 사유물임을 인정하는 꼴"이라고 질타했다. 이어 "야당 의원이나 김정숙, 김혜경 여사가 공소 취소 청탁을 했어도 이랬을까? 이런 행태 때문에 '정치검찰'이란 소리가 나오는 것"이라며 "검찰은 당장 입장을 밝히고 수사에 나서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