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의 이상한 사업구조 개편…결국 ‘총수 배 불리기’
총수 지분 많은 계열사에 알짜 자회사 붙이기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의 100% 자회사로
총수 일가 돈 한 푼 안 들이고 재무구조 개선
해당 기업 소액 주주들 눈 뜨고 코 베이는 셈
이해충돌시 지배주주 의결권 제한 법안 시급
두산그룹이 추진하는 사업구조 개편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소액주주 이익을 무시하고 지배주주인 총수 일가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코리아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의 진짜 원인이 재벌기업 구조라는 사실을 또 한 번 보여주는 사례가 되고 있다.
적자회사에 알짜 회사 넘기는 사업구조 개편
두산은 최근 사업구조를 클린에너지, 스마트머신, 첨단소재 등 3대 부문으로 재편한다고 공시했다. 명분을 거창하게 내걸었으나 실제 내용을 보면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과 친인척 등 총수 일가가 알짜 계열사인 두산밥캣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고 적자회사인 두산로보틱스의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게 목적이다. 두산 측은 현금 흐름이 좋은 두산밥캣을 활용해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강변한다. 하지만 지배주주 지분이 많은 두산로보틱스에 수혜가 집중되고 두산밥캣과 두산에너빌리티 소액주주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방식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두산의 사업구조 재편은 3단계로 추진된다. 두산에너빌리티를 인적 분할로 사업회사(존속법인)와 신설 투자법인으로 쪼갠다. 인적 분할은 회사를 분리한 뒤 신설법인의 주식을 기존 회사 주주들이 지분율대로 나눠 갖는 방식을 말한다. 두산에너빌리티 신설법인은 비상장사로 두산밥캣 지분과 두산에너빌리티의 채무 일부를 넘겨받는다. 다음 단계는 이렇게 쪼갠 신설법인을 두산로보틱스에 넘기는 식으로 합병하는 것이다. 이때 두산로보틱스는 두산에너빌리티 자회사였던 두산밥캣과 포괄적 주식교환을 통해 지분을 100% 소유한다. 아래 그림은 두산이 추진하는 사업구조 개편과 이에 따른 각 계열사의 지분 변화를 보여준다.
알짜 회사에 대한 총수 일가 지배력 높이기
여기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두산밥캣에 대해 지주사인 ㈜두산의 지배력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반면 두산로보틱스 지분은 68%에서 42%로 줄어든다. 사업 전망이 불투명한 계열사 지분을 넘겨주고 알짜 회사 지배력을 키우는 사업구조 개편인 셈이다. ㈜두산은 총수 일가의 지분이 절대적이다. 연합인포맥스에 따르면 박정원 회장이 7.64%, 이외 친인척은 보통주 지분 총 36.91%를 보유 중이다.
현재 ㈜두산은 두산에너빌리티의 지분 30%를 보유하고 있고 두산에너빌리티가 두산밥캣 지분을 46% 갖고 있다. 두산밥캣에 대한 ㈜두산의 간접지분이 13.8%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사업구조가 개편되면 두산밥캣을 100% 소유한 두산로보틱스를 통해 간접지분은 42%로 높아진다. 계열사 분할합병과 포괄적 주식교환이라는 ‘마법’이 총수 일가 배를 불리는 것이다.
앉아서 코 베이는 알짜 계열사 소액 주주들
지배주주와 반대로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밥캣 소액주주는 '앉아서 코가 베이는' 피해를 본다. NICE신용평가에 따르면 두산에너빌리티는 2022년과 2023년 각각 921억 원과 753억 원의 배당 매출을 두산밥캣을 통해 올렸다. 두산밥캣의 이익 창출 능력을 고려할 때 앞으로 배당 수입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두산에너빌리티 입장에서 사업구조 개편은 막대한 배당 수익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또 2조 2000억 원에 달하는 두산밥캣 지분을 투자자산으로 보유하고 있다. 이를 담보로 한 자금 조달 여력도 컸다. 두산밥캣 지분은 재무 융통성과 재무 대응력을 보강하는 방파제 역할을 했다. 신설법인을 통해 두산로보틱스에 두산밥캣 지분을 넘기게 되면 이런 장점이 사라진다.
두산밥캣 소액주주들도 불만일 수밖에 없다. 주식교환 비율이 두산로보틱스에 지나치게 유리하게 결정됐기 때문이다.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의 주식교환 비율은 1대 0.63이다. 두산로보틱스는 2022년과 지난해 매출이 각각 450억 원과 530억 원, 영업손실이 각각 132억과 192억 원을 기록했다. 로봇산업이 유망하다고 하지만 아직은 적자 기업이다. 반면 두산밥캣은 지난해 매출이 10조 원에 육박했고 영업이익도 1조 3000억 원이 넘었다. 두산그룹의 캐시카우(돈줄) 역할을 하는 계열사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두 회사의 주식교환 비율이 적정한지는 따져봐야 한다. 두산로보틱스는 과대평가하고 두산밥캣은 과소평가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결국 두산그룹이 공시한 사업구조 개편은 핵심 계열사인 두산에너빌리티와 캐시카우인 두산밥캣을 동원해 적자회사인 두산로보틱스를 살리는 동시에 알짜 회사에 대한 총수 일가의 지배력을 높이려는 꼼수로 볼 수 있다.
포괄적 주식교환이 아닌 정상적 주식 매각이 바람직
경제개혁연대는 17일 논평에서 두산의 사업구조 재편이 회사와 주주의 이익을 위해 좋은 선택이 아니라는 사실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두산에너빌리티의 분할합병 비율과 포괄적 주식교환 비율의 적정성도 문제지만 이사회가 선택한 지배권 이전 방식도 적절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밥캣 일반 주주에게 가장 유리한 지배권 이전 방식은 가격 협상을 통해 두산밥캣 지분을 두산로보틱스에 직접 매각하는 것이다. 즉 두산밥캣 이사회는 주식교환이 아닌 공개매수를 통해 두산밥캣 잔여 지분을 매입할 것을 요구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해야 두산에너빌리티는 두산밥캣 지분을 시장가격에 프리미엄을 붙여 팔 수 있고, 두산밥캣 일반 주주도 시장가격보다 높은 공개매수가격에 주식을 매각할 수 있다.
그런데도 두 회사 이사회가 포괄적 주식교환 방식을 택한 것은 회사와 주주에게 무엇이 최선인지 고민하기보다는 그룹에서 (지배주주 뜻대로) 하달한 내용을 그대로 수용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고 경제개혁연대는 비판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윤석열 정부에서 추진 중인 자본시장 선진화 방안의 경우 일반 주주의 권리보호가 그 핵심으로, 그동안 쪼개기 상장대책, 내부자거래 사전공시제도,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행위자 처벌 강화, 의무 공개매수 제도 등이 거론됐으나 이번 사례에 대한 효과적인 규율이 가능할지 확신하기 어렵다”며 “이는 지배주주와 일반 주주의 이해충돌이 발생하는 주요 안건에서 지배주주의 행위를 근본적으로 바꿀만한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소액주주와 이해충돌시 대주주 의결권 제한 필요
지배주주인 총수 일가만을 위한 쪼개기 합병과 주식교환 등은 과거에도 수없이 반복됐던 꼼수다. 지난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1대 0.35의 비율로 합병한 것도 그렇고, 2022년 상장법인인 동원산업과 비상장법인인 동원엔터프라이즈의 합병도 똑같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SK와 현대차 등 다른 그룹도 얼마든지 유사한 시도를 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일명 ‘두산밥캣 방지법’인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조만간 발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핵심 내용은 합병비율을 산정할 때 주가만이 아니라 수익 등 실질적인 기업 가치를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취지가 비슷한 법안들이 과거에도 여러 차례 발의됐으나 흐지부지됐다.
하지만 두산밥캣 방지법만으로는 부족하다. 경제개혁연대는 합병과 분할합병, 포괄적 주식교환 등 지배주주와 일반 주주 간 이해충돌의 소지가 있는 주요 안건에서 지배주주의 의결권행사를 제한하는 '소액주주 과반결의제'를 제안했다. 이 법은 해당 의사결정이 지배주주가 아닌 전체 주주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되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주요 안건의 경우 회사 경영진과 지배주주가 다른 일반 주주들을 설득할 유인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주주 친화적인 제도이기도 하다.
경제개혁연대는 “최대 주주의 의결권행사를 그의 특수관계인 등과 합산하여 3% 이내로 제한하는 방안을 (정부에) 제안했는데 만일 이 제도가 도입되었다면 지금과 같은 방식의 두산 사업구조 개편은 애초에 추진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를 명기한 상법 개정도 시급한 과제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고려하도록 한다면 두산의 사업구조 재편 과정에서 해당 회사 이사회가 보여준 무책임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