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중대재해법 외면할 때 하청 노동자 또 죽었다
옛 대우조선해양서 하청노동자 2명 잇따라 숨져
거제 삼성중공업서도 60대 하청 노동자 추락사
'죽음의 외주화' 한국 사회에 여전하지만…
대통령은 중대재해법 확대시행 유예 주창
영세기업 혼란 겪고 줄도산할 것처럼 공포 조장
이젠 노동자 안전 문제까지 선거에 이용하나…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일터는 안전한가. 이달 들어 노동자들이 잇따라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고 있다.
26일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따르면 지난 12일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 거제 옥포조선소 선박 방향타 제작 공장에서 선박 블록의 표면을 갈아내는 그라인딩 작업을 하던 하청 노동자 A(27) 씨가 폭발 사고로 숨졌다.
거제에 있는 삼성중공업 조선소에서는 지난 18일 하청 노동자 B(61) 씨가 용접 작업을 하기 위해 선박 내부 계단을 이용하던 중 아래로 굴러떨어져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24일에는 한화오션 옥포조선소에서 선체에 붙은 이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잠수 작업을 하던 협력업체 소속 C(31)씨가 의식을 잃은 채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같은 사업장에서 12일 새 청년 노동자 2명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특히 C 씨의 경우, 실제 작업자 명단과 서류상 작업자 명단이 달랐고, 2인1조 작업이 아닌 1인 작업을 하고 있었으며, 연락체계나 무선통신기도 없었던 것으로 노조는 파악하고 있다. 작업 전 보조 산소탱크 착용 여부도 점검하지 않았다.
금속노조는 이번에 연이어 발생한 사고들이 정부와 사측의 부실한 안전보건 시스템 관리에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금속노조는 "또 다른 중대재해를 막기 위해서는 사업장 전면 작업 중지 후 안전보건시스템 전반에 대해 점검한 후에 작업을 재개할 것을 고용노동부 통영지청과 사측에 요구했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금속노조와 민주노총 경남지역 본부, 중대재해없는 세상만들기 경남본부는 이날 오전 고용노동부 통영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한화오션 내 임시 협력사가 증가하고 있다"며 "작업 허가 및 점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어 또 다른 유형의 중대재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고용노동부 통영지청은 동일 작업 운운하기 전에 한화오션에 대해 전면 작업 중지하고, 전 사업장 안전보건시스템을 포함한 특별 근로 감독을 당장 실시하라"며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중대재해에 대해 한화오션 실질적 경영책임자를 구속 수사하라"고 촉구했다.
고용노동부는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를 조사 중이다.
중대재해 후퇴 목소리 내는 대통령
이처럼 새해부터 중대재해로 노동자들이 잇따라 생때같은 목숨을 잃었지만, 대통령과 정부·여당은 중대재해처벌법 '후퇴'에만 올인하는 모습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이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 시행되는 데 대해 "야당의 무책임한 행위에 강력한 유감을 표명한다"면서 또다시 중대재해법 '후퇴' 목소리를 냈다.
정부·여당도 사용자 입장에서 줄곧 평행선 같은 주장을 이어오고 있다. 중대재해법 확대 시행이 사업자 처벌을 늘려 사업장 폐쇄와 고용 악화를 가져올 것처럼 공포를 조장하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25일 "50인 미만 사업장에 모레(27일)부터 대기업과 동일한 기준으로 중대재해법을 그대로 적용하면 소상공인과 고용된 서민들에게 결과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라고 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생존을 위협받는 영세기업들에 필요한 지원 조치도 다각적으로 강구해야 한다"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기업인들에게 즉각적인 영향을 줄 것처럼 브리핑했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보수언론과 경제지들은 △중대재해법 27일부터 확대…"문 닫아야 하나" 영세사업장 '대혼란'(세계일보) △법사위도 못 오른 중대재해처벌법 유예…"중기 줄폐업 우려"(서울신문) △"식당·카페도 중대법 처벌? 나라가 가게 접으라고 조장"(매일경제) 등 자극적인 기사를 통해 공포를 조장하고 있다.
그러나 중대재해법은 규제 내용이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과 비슷하고, 정부·여당·재계 우려와 달리 실제 처벌도 미미하다. 지난해 12월 기준 중대재해법으로 1심 법원 판단이 내려진 11건 중 1건을 제외하고 모두 집행유예를 받았다.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 것이다.
법 시행 이후 안전보건관리 체계 강화 효과도 확인된다. 고용부가 조사한 '2023년 9월말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발생현황(잠정)'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누적 사고사망자는 459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519명보다 무려 19%가 줄었다.
윤 대통령은 "중대재해법 시행에 따른 산업 현장의 혼란과 부작용을 최소화하라"며, 마치 중대재해법 50인 미만 확대 시행에 대해 사업장들이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아 대혼란이 올 것처럼 말하지만 이 역시 근거가 없다.
지난해 3월 고용노동부 발주로 한국안전학회가 50인 미만 1442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중대재해법과 관련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법상 의무를 이미 갖췄거나 준비 중'이라는 응답이 82%에 달했다.
이같은 조사 결과 있음에도, 대통령부터 정부·여당까지 나서서 중대재해법으로 영세기업들이 줄도산할 것처럼 과도한 '공포 마케팅'을 하는 것은 총선을 앞두고 야당에 불리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차원으로 해석된다. 선거 개입 일환이라 볼 수 있다.
오히려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시행이 이미 예상됐음에도 사전에 취약 분야를 파악해 재정지원이나 교육, 기술지도 등을 하지 않은 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박해철 노동 대변인은 이날 서면 브리핑을 내고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중대재해법 시행을 미루는 동안, 또 한명의 노동자가 노동현장에서 중대재해에 희생됐다"며 "31살 한창의 나이에 매일 구슬땀을 흘리며 미래를 꿈꿨을 고인을 생각하면 비통한 심정을 감출 수가 없다"고 말했다.
박 대변인은 "지금 노동현장은 노동자와 중대재해의 거리, 그리고 삶과 죽음의 경계가 동전의 옆면처럼 가깝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중대재해처벌법을 유예하자고 한다"며 "산업 현장의 안전을 위한 아무런 대책도 없이 유예만 외치는 것은 노동자의 안전을 포기하겠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연일 이어지는 노동자들의 죽음은 중대재해처벌법 확대시행 유예를 주장하는 정부의 책임"이라며 "윤 대통령은 더 이상 경영계의 주장만을 되풀이해 현장 혼란을 부추기지 말고 50인 미만 사업장에 중대재해법이 제대로 시행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이라"고 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윤 대통령이 중대재해법 확대 시행을 두고 야당을 비판한 데 대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가지고 노사 편 가르기, 국민 편 가르기를 한 망언"이라고 비판하며 "50인 미만 사업장의 중대재해 예방과 안전보건 관리 체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모든 행정력을 집중하라"고 촉구했다.
의원들은 "중대재해대책추진단을 출범시키겠다며 호들갑을 떠는 고용노동부의 브리핑은 지난 2년간 아무 대책도 없이 손 놓고 있었다는 것을 자인한 것"이라며 "강력하고 실효성 있는 안전보건 지원 대책을 시행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과 재해 예방에 필요한 지원 대책과 예산에 아낌없는 지지와 지원을 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