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세·주식양도세 완화”…최상목의 ‘부자 감세 시즌2’
국회 인사청문회서 “감세·건전 재정” 고수
“임시투자세액공제 연장”…여야 합의 무시
수십조 세수 결손에도 "부자 세금 깎겠다"
취약계층과 R&D 예산 삭감 기조도 그대로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에 제출한 답변서와 인사청문회 발언을 통해 부자 감세와 건전 재정 기조를 바꾸지 않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무분별한 감세로 올해와 내년 세수가 각각 50조~60조 원 줄고 반드시 투입해야 할 필수 예산을 삭감한 탓에 취약계층이 생존 위기에 몰리는 등 사회안전망이 흔들리는 데도 기존 경제 정책을 고수하겠다는 것이다.
최 후보자의 부자 감세 본능은 법인세와 주식양도세, 임시투자세액공제에 대한 답변에 그대로 담겼다. 법인세 인하 필요성에 대한 그의 답은 이렇다. “법인세는 국제적으로 경쟁하는 세목으로 글로벌 스탠더드를 고려해야 한다. 법인세 인하는 세계 시장에서 기업 경쟁력과 국제적 법인세 수준 등을 고려해 판단할 필요가 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법인세 최고세율을 현재 25%에서 22%로 인하하는 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법인세율을 너무 낮추면 세수 부족이 발생하고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증세 추세에 반한다는 이유로 야당이 반대하며 과세표준 구간별로 1%포인트씩 내리는 수준에서 국회 문턱을 넘었다.
최 후보자는 한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다는 점을 들어 추가 인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각종 공제 등을 고려한 실효세율이 얼마나 높은지는 따져봐야 한다. 다만 나라마다 제도와 기준이 달라 객관적인 자료를 도출하기 쉽지 않다. 확실한 사실은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은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적극적인 증세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점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억만장자는 세금을 더 내야 한다”며 고소득자와 법인세 인상을 언급했다. 미국 AP 통신은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 부자 증세와 사회안전망 강화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럽 국가들도 갈수록 심각해지는 세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증세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횡재세다. 유럽의 상당수 국가는 에너지와 금융 등 대외 환경 변화로 초과 이익이 발생한 기업에 횡재세를 부과하고 있다. 유럽은 이미 기업과 고소득층에 많은 세금을 부과하고 있어 전반적으로 세금을 올리기보다 횡재세 같은 핀셋 증세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우리와 경제 규모가 크거나 비슷한 국가들이 증세에 나서고 있는데 최 후보자는 낡은 레코드판을 돌리는 것처럼 감세 타령만 하고 있다.
임시투자세액공제는 기업의 설비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당해 연도 투자 금액의 일부를 이듬해 법인세에서 깎아주는 제도다. 1982년 처음 도입된 이후 폐지와 부활을 거듭하다가 2011년 종료됐다. 윤석열 정부는 경기침체 영향으로 위축되는 기업투자를 끌어올린다는 명분으로 지난해 1년 한시로 이 제도를 재도입했다. 기업의 설비투자에 대해 세액공제율을 기존보다 2~6%포인트 높이는 게 골자인데 올해 말 종료될 예정이다.
최 후보자는 임시투자세액공제를 연장하겠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올해 투자 실적과 내년 투자 전망 등 여러 가지 경제 상황을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면서 "내년에도 임시투자세액공제 제도의 연장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이에 따라 내년 1월 발표되는 ‘2024년 경제 정책 방향’에 이런 내용이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제도 연장을 위해서는 관련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이 필요하다.
대한상공회의소 등 재계는 임시투자세액공제 연장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다. 기업이 신규 설비투자 결정을 하는데 1년 이상이 걸려 정책효과를 보려면 몇 년 더 연장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임시투자세액공제 기간을 무한정 늘려주면 결국 법인세를 상시로 깎아주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기업투자 촉진과 연관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 투자를 촉진하는 효과는 불명확하고 임시투자세액공제로 생기는 세수 결손 부작용이 더 크다는 것이다.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유사한 제도를 도입했다가 폐지한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최 후보자는 또 대주주 주식양도세 완화를 시사하는 발언을 했는데 이는 그동안 신중론을 펼치던 기획재정부의 기조를 바꾼 것일 뿐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과 코드를 맞추려는 의도까지 엿보인다. 그는 “일반 근로소득세 같은 경우에는 과세형평이나 이런 게 중요한데 이 부분(대주주 주식 양도소득세)은 자산과 국가 간 자본 이동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게 있다”며 “대내외 경제 여건을 고려해 종합적으로 결정할 문제”라고 밝혔다.
현재 주식 양도소득세는 연말 기준 종목당 상장주식을 10억 원 이상 보유하면 대주주로 분류해 과세한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이를 30억 원 또는 50억 원으로 상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주주 요건을 완화하면 주식양도세를 피하려는 매물이 연말에 쏟아져 주가를 떨어뜨리는 현상을 막을 수 있다는 게 주식양도세 폐지론자들의 논리다. 그러나 투자자들이 이런 흐름을 잘 알고 있어 사실상 피해가 없고 연초 주가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주식 부자들이 연말에 팔았다가 연초에 다시 사는 과정에서 손실을 보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만 할 뿐이다.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원칙에 따라 그동안 주식양도세 과세 대상을 꾸준히 확대한 흐름과도 맞지 않는다. 더욱이 여당과 야당은 지난해 12월 5000만 원 이상의 금융투자소득을 올린 투자자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금융투자소득세를 2년 유예하기로 합의하며 그때까지 주식 양도소득세는 현행대로 유지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그런데도 대주주 주식양도세 완화를 고집하는 것은 부자 감세를 떠나 1년 전 약속을 파기하는 것이다.
최 후보자는 건전 재정 기조 유지 등 다른 사안에 대해서도 기존 정책을 고수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감세정책을 펼치면 세수가 부족할 게 뻔한데도 재정건전성을 운운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수십조 원 규모의 세수 부족 사태가 예상된다. 결국 세출을 줄이는 방식으로 건전 재정을 유지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서민과 취약계층에 직격탄을 날릴 수 있다. 사회안전망을 위해 꼭 써야 할 복지 예산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내년도 과학계의 연구개발(R&D) 예산을 대폭 삭감한 정책도 세수 부족 여파로 볼 수 있다. 고소득자와 기업 세금을 깎아주면서 국민 삶을 팍팍하게 만들고 국가 미래를 위한 R&D 예산까지 감액하는 경제 정책은 정상이 아니다. 기업과 고소득자 세금을 깎아주면 투자가 늘어나고 경제가 활기를 띨 것이라는 ‘낙수 효과’는 허상일 뿐이라는 건 국제통화기금(IMF) 등 여러 국제기구의 조사 결과에서도 확인된 사실이다. 이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최 후보자의 구시대적 인식과 태도가 ‘부자 감세 시즌2’를 예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