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한 중국, 공명당 대표 방중 거부…총리 회담도 무망

28~30일 예정 야마구치 대표 방중 "때가 아니다"

주중 일본대사관과 일본으로 중국인들 전화공세

일 대사관 "일본어 큰 소리로 말하지 마라" 당부

일 수산물 수출업자들에게 커지는 ‘중국 리스크’

2023-08-27     한승동 에디터
24일 중국 베이징 수산물 시장에서 상인이 해산물을 손질하고 있다. 이날 중국 정부는 일본의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일본 정부 명칭 '처리수') 방류를 강하게 비판하며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2023.08.25. 로이터 연합뉴스

일본의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 투기 강행에 일본산 수산물 수입 전면금지라는 강수로 맞대응을 하고 나선 중국이 28일부터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던 일본 연립여당인 공명당의 야마구치 쓰나오 대표의 방중까지 거부하며 대일 강경자세를 한층 더 강화하고 있다.

“적절한 타이밍 아니다”며 방중 거부

26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중국은 28~30일 일정으로 예정돼 있던 야마구치 대표의 중국방문에 대해 26일 오후에 “당면한 중일관계 상황에 비춰볼 때 적절한 타이밍이 아니다”는 의향을 일본쪽에 전달했다. 이에따라 공명당은 야마구치 대표의 중국방문을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야마구치 대표의 방중이 예정대로 이뤄졌다면 이는 2019년 8월 이후 4년만의 일로, 2009년 대표 취임 이후 7회째의 방중이 될 것이었다. 기시다 정부는 야마구치 대표에게 총리 친서를 맡겨 시진핑 주석에게 직접 전달하게 함으로써 핵오염수 해양 투기로 껄끄러워진 중일관계를 호전시킬 기회를 만들려고 했으나, 중국이 일본정부의 그런 의도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핵오염수 해양 투기에 대한 강경자세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냈다. 이에따라 중일관계는 적어도 당분간 예상 이상으로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일본정부는 9월 초순에 인도네시아에서 열릴 동남아국가연합(ASEAN) 관련 정상회의에 맞춰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리창 중국총리가 회담을 하는 쪽으로 일정을 조정하고 있었으나, 이마저도 무산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총리관저의 한 간부는 야마구치 공명당 대표의 방중을 사실상 거부한 중국의 자세로 볼 때 “중일 정상(총리)회담 전망이 어려워졌다”고 보고 “의연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명당은 중국 쪽으로부터 야마구치 대표의 방중을 연기하자는 의향과 함께 “공명당이 오랫동안 우호 교류를 계속해 온 것을 중시하고 있고, 이번의 방중을 위한 전향적인 노력도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설명이 있었다며, 방중 시기를 재조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일본의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일본 정부 명칭 '처리수') 해양 방류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25일(현지시간) 태평양 섬나라 피지 수도 수바에서 현수막과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일본은 전날 오후부터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기 시작했다. 2023.08.25. AFP 연합뉴스

중국공산당이 해양 투기 중시, 중일관계 전망 불투명

중국이 이처럼 야마구치 대표의 방중 연기 의향을 전달한 것은 중국정부뿐만 아니라 중국공산당 지도부가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 투기를 강행한 일본정부의 대응을 중요한 문제로 삼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일본 공명당과의 관계를 중시해 온 중국은 9월 이후의 중일간 정상외교를 염두에 두고 야마구치 대표의 방중을 일본의 태도를 탐색하는 기회로 삼아 왔다. 따라서 야마구치 대표의 이번 방중 연기는 핵오염수 해양 투기 문제를 비롯한 양국간 현안 해결이나 향후 관계 재구축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후지타 나오타카 아사히신문 편집위원은 일본의 최근 방위비 배증 및 한미와의 제휴 강화를 통한 중국 견제가 중국을 일본과의 대화를 강화하는 쪽으로 이끌 것이라는 일본 내의 시각은 너무 낙관적이라며, 이는 양국간 국력의 차이를 간과한 것으로, 중국의 일본산 전면금수 조치를 “상정 외”의 강경자세라며 일본이 당혹해 하고 있는 사이에 중국과의 의사소통 통로가 좁아져 양국관계 악화가 심각해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일본 정부 명칭 '처리수')의 해양 방류 이틀 차인 25일 도쿄 총리실 앞에서 시민들이 반대 시위를 펼치고 있다. 일본은 지난 24일 오염수의 해양 방류를 개시했다. 2023.08.25. 로이터 연합뉴스

중국인들 주중 일본대사관에 전화 공세

한편 일본에서는 핵오염수 해양 투기 이후 이에 대한 중국 쪽의 반응에 크게 신경쓰고 있고, 미디어들도 연일 이 문제를 크게 다루고 있다.

아사히는 26일 해양 투기 강행 직후부터 중국인들이 주중 일본대사관이나 일본쪽으로 전화를 걸어 따지고 항의하는 사례들이 크게 늘고 있다며, 주중 일본대사관이 이날 중국의 SNS <웨이보>에 그런 전화들이 “범죄행위”라는 글을 투고해 중국정부가 법률에 따라 이를 엄정 대처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전했다.

중국 SNS에는 중국인으로 보이는 젊은이가 “해양 방출 이유를 묻겠다”며 무작위로 일본에 전화를 거는 동영상도 유포되고 있다.

“일본어로 크게 얘기하지 마라”

주중 일본대사관은 해양 투기가 시작된 24일 이후 일본인에 대한 예기치 못한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중국 체류 자국민들에게 “불필요하게 일본어를 큰 소리로 얘기하지 마라”는 등의 주의환기 조치를 취했다.

대사관 관계자들에 따르면 24일 이후 일본 대사관이나 일본 가게, 일본인을 ‘괴롭히는 전화’가 늘고 있고, 예정돼 있던 음악 이벤트도 안전상의 이유로 중지됐다.

일본으로 걸려 오는 ‘86’표시의 중국전화들

일본 후쿠시마 현 경찰에 따르면 24일부터 26일에 걸쳐 현 내의 음식점 등 여러 업체들에 중국 국가번호 ‘86’이 표시된 전화들이 많이 걸려 오고 있다. 이에 따라 경찰은 ‘국제전화 수신 일괄 거부 설정’ 등의 조치를 취해 줄 것으로 호소하고 있다. 도쿄 에도가와구 종합문화센터에도 24일부터 ‘86’ 표시의 전화들이 다수 걸려와 전화연결을 어렵게 만들면서 업무에 지장을 받고 있다고 에도가와 구청이 경찰에 보고했다.

 

25일 일본 도쿄 총리 관저 앞에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일본 정부 명칭 '처리수') 방류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피켓을 들고 있다. 일본은 지난 24일 오염수의 해양 방류를 개시했다. 2023.08.25. 로이터 연합뉴스

일본 수산물 수출업자들에 커지는 ‘중국 리스크’

일본 수산물 취급업자들도 중일간의 이런 ‘정치풍향’ 때문에 비즈니스 기회를 잃는 ‘중국 리스크’에 직면하고 있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중국에서는 일본의 핵오염수 해양 투기 전까지 일본요리점, 횟집 등이 잇따라 개점하는 가운데 일본음식 붐이 일고 있었으나 해양 투기가 이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이 높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지난해 중국에 467억 엔어치가 팔린 일본산 가리비를 취급하는 도매업자는 해양 투기 이후 “중국 SNS 검색어에 ‘처리수’(핵오염수)가 톱 자리에 오를 정도로 주목받고 있다”면서 해양 투기 이전에 이미 수십 곳의 중국 거래처에서 거래 중단을 통보해 왔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큰 피해를 보고 있는 일본 수출업자들은 일본정부의 배상/보상이 일본 어민들만 대상으로 하고 있고 자신들에게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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