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직후, 용역 착수 50일 만에 노선 55% 변경 뚝딱

윤 당선 전후 6개월에 노선변경의 비밀

대선공약은 예타안, 인수위 때 타당성 조사 업체 선정

조사기간 1년짜리 50일만에 종점 변경 결론

경기도 뺀 관계기관 협의서 양평군은 강상면 안 제시

2023-07-13     박승철 기자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2021년 5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서울-양평 고속도로 건설사업 예비타당성조사 보고서'에 종점이 양서면으로 표시돼 있다. 예타 통과 국토부 보도자료 캡처

‘서울~양평 고속도로 게이트’가 불거진 이후 관심은 종점 변경 과정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씨의 의사가 반영된 것인지에 집중된다. 이에 따라 지난해 대통령선거 전후 6개월간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과 관련된 의사 결정 과정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단 ‘서울~양평 고속도로 조기 착공’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음이 명확하다. 2022년 1월 12일 경기도 공약을 발표하면서 ‘송파~양평 고속도로 조기 착공’이 공식적으로 포함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고속도로의 종점은 예비타당성조사(예타)에서 정해진 대로 양서면 증동리로 확정되는 분위기였다.

이는 김선교 전 의원이 ‘양평 시민의 소리’에 전달한 대통령 선거 공약에도 드러난다. 양평 시민의 소리는 2022년 2월 18일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을 소개하는 특집 기사에서 “기존 예타를 통과한 서울~양평IC에서 홍천IC까지 추가한 고속도로를 건설할 것”이라는 내용을 포함했다. 최재관 더불어민주당 여주·양평 지역위원장은 “양평 시민의 소리에 따르면 당시 이 내용은 김선교 전 의원 보좌관이 기자에게 전달해 준 것으로 김 전 의원이 반드시 포함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이 내용을 보면 당시까지 김 전 의원도 예타를 통과한 원안대로 착공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양평 고속국도 타당성 조사(평가) 용역 과업 지시서’는 2022년 1월 공고된다. 이는 문재인 정부 시절로 아직 3월 대선 결과를 예단하기 어려운 시점이었다. 이때는 용역 공고만 난 것으로, 아직 동해종합기술공사와 경동엔지니어링이 용역 수행 업체로 선정되지 않았다. 예타를 통과한 사업을 본격 추진하기 위해 용역 공고를 낸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과업 지시서에서 전체 과업 수행 기간은 360일이며, 기초자료 조사/분석은 착수일로부터 3개월, 노선 선정 및 기술 검토는 착수일로부터 4개월, 교통수요 예측은 착수일로부터 6개월, 편익/ 비용 산정은 착수일로부터 8개월, 경제성 분석(경제적, 재무적)은 착수일로부터 9개월, 민자유치 가능성 검토와 예비타당성 결과 비교는 착수일로부터 10개월, 성과품 작성은 착수일로부터 12개월 이내에 하게 돼 있다는 점이다.

2022년 3월 9일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한 이후 3월 18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공식 출범했다. 이로부터 11일 뒤인 3월 29일 동해종합기술공사와 경동엔지니어링이 용역업체로 선정돼 조사에 착수한다. 여기서부터 용역 조사 작업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360일로 예정된 조사였는데 불과 50일 만에 노선 변경이 마무리된다. 그리고 노선의 약 55%가 변경된 뒤 종점은 강상면으로 변경됐다.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3일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용역 조사착수 시점이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전이지만 대통령직 인수위의 입김이 센 시기”라면서 “국토부 국토정책관으로 있다가 대통령직 인수위로 갔다가 이후 용산 대통령실로 간 인사의 영향력이 발휘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이 특정하지 않았으나 이 인물은 백원국 국토교통부 2차관으로 추정된다.

김 의원에 따르면 여권에서는 누가 최초로 고속도로 종점을 바꾸자고 제안했는지에 대해 계속 말이 바뀌었다. 김 의원은 “처음에는 양평군민의 말을 듣고 바꿨다고 하다가 말이 바뀌어서 양평군청 공무원이 요구했다고 했다”면서 “그런데 또다시 말이 바뀌어 민간 건설회사가 요청했다고 했다”고 말했다.

 

13일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서울-양평 고속도로 대안 노선 종점 인근에서 이상화 동해종합기술공사 부사장이 관련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2023.7.13. 연합뉴스

이에 대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2일 고속도로 종점 변경에 대한 국정조사를 요구하면서 “인수위 1호 과제가 대통령 처가 특혜 몰아주기였나”라고 비판했다. 누군가가 업체 선정과 용역보고서 작성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했을 수 있다는 의구심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이상화 동해종합기술공사 부사장은 13일 국토부 출입 기자단 현장 브리핑에서 “강상면 종점 안이 적합하다는 국토부 의견은 없었고 그런 의견을 받을 필요도 없었다”면서 “우리는 기술적으로 검토한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용역업체 선정과 보고서 작성 과정에 대한 진실 공방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지난해 5월 종점을 변경한 용역보고서가 나오고 원희룡 장관이 보고받고 나서 7월 18일 1차 관계기관 협의가 진행됐다. 여기에는 양평군, 국토부 등 12개 기관, 지자체가 참여했다. 신장식 변호사는 12일 ‘신장식의 뉴스 하이킥’에서 “이때만 해도 예타가 나온 대로 양서면 종점 안으로 논의했다”고 말했다.

7월 18일 열린 1차 관계기관 협의에는 경기도의 참여가 배제됐다. 그리고 올해 1월 열린 2차 관계기관 협의에는 경기도가 공식 참여했다. 국토부는 “예타 노선(원안)에 경기도지사가 관리하는 노선이 없어 협의 대상 기관에 경기도를 포함하지 않았다”면서 “대안 노선에서는 경기도지사가 관리하는 국지도 88호선과 연결돼 2차 협의에 경기도를 포함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2차 협의 시 발송된 공문에도 사업 구간을 경기도 하남시 감일동에서 양평군 양서면으로 명기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공문에 첨부된 ‘위치도’에만 강상면으로 연결된 노선도가 등장한다. 그러고 나서 국토부는 “경기도는 국토부의 대안 노선에 반대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7월 18일 경기도를 배제한 채 양평군으로 보낸 1차 관계기관 협의 요청에 양평군은 8일 만인 7월 26일 회신했다. 당시 양평군은 일부 노선을 조정하고 종점 양서면 유지 안(1안), 강상면 병산리 부근을 종점으로 하는 안(2안), 강하면을 종점으로 하고 88호선 국지도에 연결하는 안(3안) 등을 제시했다. 이전에는 종점 변경에 대한 의견이 전혀 없다가 갑자기 등장한 것이다.

대선 공약부터 인수위 시절 용역업체 선정, 용역보고서 조기 완성 및 보고, 경기도를 배제한 채 1차 관계기관 협의에서 양평군이 기존에 없던 강상면 종점안 제시. 이 모든 일이 윤석열 대통령 당선 전후 6개월간 일어난 일이다. 경기도를 배제한 채 기존 예타 안을 뒤로 하고 용역업체와 양평군이 강상면 종점 안을 제시한 숨 가쁜 과정이 이 기간에 일어났다. 과연 이 과정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일가의 영향력이 전혀 미치지 않은 것인가. 앞으로 전개될 국정조사와 여야 간 공방의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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