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428억, 줄 생각도 받을 생각도 없었다

모순·허점 투성이의 유동규 '428억 약정'진술

뇌물죄 기본 요건인 '의사 합치' '구체적 표현'

지분 반반, "김만배 결정"→“우리가 먼저 제안"

2020년 이전에는 나오지도 않았던 '유동규 몫'

2023-06-14     고일석 에디터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정진상 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의 뇌물수수 혐의 관련 1심 속행 공판에 증인 신문을 위해 출석하고 있다. 2023.6.13. 연합뉴스

13일 열린 서울중앙지법 23부(조병구 부장판사) 정진상 전 민주당 대표실 정무실장에 대한 공판에서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증인으로 불러 '428억 약정'에 대해 집중적으로 심리했다. 유 전 본부장은 시종 “대장동 사업 초기부터 25~30% 지분을 약속받았고, 이에 대해 상시적으로 정진상 실장, 김용 부원장에게 보고했다"고 주장했지만, 그의 진술은 총체적으로 모순과 허점 투성이였다. 

뇌물죄의 기본 요건, '의사 합치'와 '구체적 표현'

항상 그랬듯이 이날도 유 전 본부장의 진술은 수시로 뒤바뀌고 앞뒤 맞지 않는 상황이 연출됐다. 얼마를 주기로 했는지, 김만배 씨 지분의 '절반'을 주기로 한 시점이 언제인지에 대한 유 전 본부장의 진술은 시시각각 달라졌다. 

변호인(이하 '변') 2022년 11월 14일과 15일의 검찰 신문조서를 제시합니다. 11월 14일에는 김만배가 자기 지분 중 절반을 증인에게 주겠다고 말한 시점이 2014년 6~7월 경이라고 했다가, 다음 날인 11월 15일 조사에서는 2014년 11~12월 1000억을 주기로 했다고 진술해서, 시점과 액수에 대해 다르게 진술했습니다. 달라진 이유는 뭐죠?

유동규(이하 '유') 기억 오류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6~7월에는 정진상과 만나서 구체적인 얘기가 오간 것은 아니고, 그래서 제가 말했다시피…(이하 생략)

2022년 11월 14일과 2022년 11월 15일 단 하루 차이인데, 하룻만에 어떻게 진술이 변경될 수 있냐는 말이에요. 

글쎄요. 근데 지금 현재 법정에서 증언하는 내용은 제 기억입니다. 정확한.

검사(이하 '검') 이의까지는 아니지만, 변호인들께서 진술의 취지를 오해하고 계신 것 같은데…

재판장(이하 '재') 저도 이 부분 좀 확인을 해야겠습니다. 김만배 측으로부터 지분을 받기로 했는지, 돈을 받기로 했는지에 대해 여러 진술과 증거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혼재되어 있고, 시점이 안 맞아떨어지다보니 당연히 진술의 일관성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2014년 6~7월 김만배가 지분 절반 주겠다고한 것과 11~12월 경 1000억 원 주겠다고 한 건 진술 내용이 다릅니다. 어떻게 같은 내용에 대해 어제 진술과 오늘 진술이 바뀌는 걸로 조사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보시면, 2014년 6~7월 김만배가 절반 주겠다는 것과 그 다음에 11월 15일자는 수익이 4~5000억 원 되는데 여기서 25% 하면 1000억 정도 된다는 취지라서 진술이 다르다고 말하는 건 납득이…

아까 30% 얘기도 나오고 해서 다양한 부분이 있고, 사실은 결국은 뇌물 약속과 연결되는 부분인데, 법리적으로 약속이 어느 정도 의사 합치나 구체적 의사표현이 있어야 인정된다고 보는 것과 연결될 것 같아서 이 부분 정리하고 가면 어떨까 싶습니다. 

재판장은 이 대목에서 뇌물죄에 있어서는 '의사 합치'와 '구체적인 의사표현'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유 전 본부장의 진술은 시점과 지불 형태가 불분명해 돈을 주겠다는 측과 받으려는 측의 의사가 일치하고 그에 대한 구체적인 의사표현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검찰은 “지분 25%가 곧 1000억 원이라는 얘기"라며 유 전 본부장을 거들었지만, 유 전 본부장이 얘기하는 2014년 6~7월이나 11~12월에는 김만배의 지분이 확정되지도 않았고, 사업의 수익규모가 얼마가 될지 전망하거나 예측할 수 없었던 시기였다. 지분이든 현금이든 그 규모를 특정하는 것이 불가능할 때였다는 것이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은 13일 공판에서 428억에 대한 진술 외에도 수시로 오락가락하는 진술을 이어갔다. 

 

지분 반반, "김만배 결정"→“우리가 먼저 제안"

2022년 11월 14일과 15일 조사에서 “2014년 6~7월 김만배 지분의 절반", “2014년 11~12월 1000억원"이라고 진술했던 유 전 본부장은 약 2주 뒤인 11월 27일 조사에서는 “2015년 2월 나와 정진상, 김용의 지분이 약 30%, 김만배가 10몇%라고 김만배가 얘기해줬다. 김만배가 남욱, 정영학, 저를 불러 각자 지분을 설명해줬고, 이를 토대로 나는 정진상과 김용에게 설명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다가 다른 질문이 이어진 뒤 결국은 “시기는 정확하게 기억하지 않는다"고 또 말을 바꿨다. 이 대목에서는 '약정 시기'와는 별도로 '김만배 지분을 반씩 나누자는 것을 누가 제안했냐'가 또 다른 쟁점으로 떠올랐다.

2022년 10월 27일 피신조서에서 “김만배가 자기가 돈이 많이 들어간다며 자기 지분 50%를 반반으로 나누자고 얘기했고, 나도 정진상, 김용에게 이를 전달했습니다. 김만배가 주도적으로 정했고 정진상, 김용에게 변경된 지분에 대해 말해주면 '응' 하고 특별한 반응이 없었습니다"라고 진술했죠?

네.

김만배가 50%를 반반으로 나누자고 얘기한 일시 장소가 어떻게 되고 증인은 뭐라고 했나요?

저건 사실 좀 차이가 있습니다. 김만배가 계속 자기 지분 작다는 불만을 토로해서, 그래서 우리가 반반 정도 가는 걸로 하자, 이렇게 해서 정진상의 승낙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먼저 제안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시기가 언제인가요?

정확히 기억 안 납니다. 

이 부분에서 유 전 본부장은 2022년 10월 27일 검찰 조사에서는 “김만배가 주도적으로 지분을 정했다"고 진술했다가 이날 법정에서는 “사실과 차이가 있다"며 “정진상의 승낙을 얻어 우리가 먼저 제안했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그러면서 '약정 시기'에 대해서도 바로 앞에 했던 말을 뒤집고 "모르겠다"고 물러섰다.  

유동규 ,'소송 후 돈 전달' 재촉도 확인도 않아

이후 변호인은 '약정 규모'가 당초 700억에서 600억을 거쳐 428억으로 확정되는 과정과 '전달 방법'에 있어서 '남욱이 김만배를 대상으로 소송을 하고, 화해로 결정되면 유동규에게 전달하는 방법'으로 결정되는 과정을 짚었다. 유 전 본부장은 그것을 “김만배에게서 남욱에게로 옮기는 것"으로 표현했다. 

이처럼 계산한 내역을 정진상에게 얘기했나요?

과정이 잘 납득되지 않아서 설명하기 어려웠지만, 이것저것 뺀 다음에 700억에서 400 얼마 하기로 했는데 일단 받아들이고 두고 보자고 정진상에게 얘기했습니다. 

돈을 받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요?

특별히 노력한 것은 없습니다. 남욱에게 옮기자고 요청했고, 그 과정에서 2021년 10월까지 흘러갔고, 저는 그때 구속됐습니다. 

남욱은 김만배에게 소송 제기 안 한 것 같은데요?

김만배가 거절했다고 들었습니다. 

남욱이 소송 제기 안 했는데 정진상에게 얘기했나요?

남욱이 알아서 받는다고 했고, 저도 그러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남욱 변호사가 소송을 통해 김만배로부터 돈을 받아 전달받기로 해놓고도 전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는데도, 유 전 본부장은 확인도 독촉도 하지 않고 내버려뒀다는 얘기다. 유 전 본부장이 남욱 변호사로부터 3억 원을 받아내려고 할 때, 그리고 정치자금 명목으로 남욱에게 8억6700만 원을 받아낼 때 하루가 멀다 하고 재촉을 하고 독촉을 하며 달달 볶아댔던 것에 비춰보면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또한 유 전 본부장은 지분이 30%에서 24.5%로 줄어드는 과정을 얘기하면서 “김만배가 줘야 받는 돈이어서 지분에 대해 강하게 얘기할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줘야 받는 돈', 즉 '안 주면 어쩔 수 없는 돈'이라는 말은 구두든 문서든 '약정'이 존재하는 관계에서는 나올 수 없는 표현이다. 애초에 받을 뜻이 없었다는 것으로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정영학 녹취록 2021년 4월 2일자. '소송 통한 자금 전달 방안'에 대한 유동규 전 본부장의 진술이 맞다면 김만배 씨와 남욱 변호사가 '소송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실행에 옮겨야 할 시점에, 김만배 씨는 남욱 변호사에게 온갖 험악한 소리를 퍼부으며 적대적으로 대하고 있었다. 녹취 출처 : 뉴스타파

2020년 이전에는 나오지도 않았던 '유동규 몫'

김만배 씨와 남욱 변호사도 말만 무성했을 뿐 김만배 씨나 남욱 변호사나 둘 다 실제로 이 돈을 유 전 본부장에게 전달하려고 한 흔적이 전혀 없다. 수천 페이지 달하는 정영학 녹취록을 다 뒤져봐도 김만배 씨는 정영학 회계사를 상대로 428억을 전달하는 방법에 대해 장황하게 이리저리 얘기를 하면서도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데 있어서는 '시도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김만배 씨는 유 전 본부장에게 '남욱 소송 통한 전달 방법'에 대해 얘기해놓고도 정작 정영학 회계사와 남욱 변호사에게는 “그런다고 남욱이 유동규에게 돈을 주겠냐", “그렇게 해도 유동규가 돈을 가져가겠냐"며 '소송 방안'이 '유동규에게 전달하는 방안'으로서는 허언에 불과하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강조해왔다. 

특히 '428억 약정'이 사실이라면 남욱 변호사와의 협조를 통해 유 전 본부장에게 돈을 전달해야 할 김만배 씨는 정작 남욱 변호사와의 대화에서는 이루 말로 할 수 없이 험악한 소리를 하며 남욱 변호사와 뭐든 함께 할 뜻이 전혀 없다는 뜻을 강력하게 내비쳤다. 애초에 유 전 본부장에게 돈을 줄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김만배 씨는 지난 5월 21일 김용 전 부원장의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700억 혹은 428억 약정설'에 대해 "처음에는 2020년 9~10월 경 정영학과 남욱에게 얘기한 것이고, 그 뒤에 유동규에게 구체적으로 금액을 얘기한 적은 없고 천화동인 1호가 네 것이라고 좀 얘기해줘라, 그 다음에 형(김만배) 것 반, 네 것 반이라고 얘기해달라고 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2020년 9~10월 경 처음 얘기했다"는 김만배 씨의 말 대로 '정영학 녹취록'에는 '유동규 몫'은 2020년 10월 31일 '노래방 녹취록' 이전까지는 전혀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또한 '노래방 녹취록' 이전이든 이후든 '유동규 몫'과 관련해 이재명, 김용, 정진상의 이름이나 이들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조차 찾을 수 없다. 

이처럼 '428억 약정'은 당초 의혹이 불거졌을 때 김만배 씨가 말했던 '허언'과 유 전 본부장의 '농담' 수준 이상이었다는 것이 전혀 입증되지 않고 있다. 유 전 본부장이 말을 많이 하면 할수록 '대장동 428억'은 애초에 줄 생각도, 받을 생각도 없는 돈이었을 정황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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