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오염수 백화(百禍)사전] ②핵종은 모두 OO종?
핵종=인공방사성 핵종…원자력발전·핵실험으로 생성
후쿠시마 오염수 포함 추정 핵종 개수는 모두 1천 개
후쿠시마 원전 핵물질 오염수에는 인체에 치명적일 수 있는 온갖 핵물질이 포함돼 있다. 어떤 물질은 생물학적 유전자 손상까지 가져온다. 백가지 화를 불러올 백화(百禍) 물질이 아닐 수 없다. 오염수 문제에 관한 한 ‘모르는게 약’일 수 없다. ‘아는 게 힘’이다. <민들레>가 오염수와 관련된 정보와 지식을 하나하나 짚어본다. 알아야 대처할 힘이 나온다. [편집자주]
후쿠시마 원전 핵물질 오염수 관련 기사에는 핵종이라는 말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핵종(核種)은 원자핵을 이루는 양성자 수 Z, 중성자 수 N 및 그 에너지 상태로 구분되는 원자 또는 원자핵의 종류’를 말한다.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 운영 원자력 지식·정보 사이트)
방사성 핵종은 또 뭘까. 방사능을 가지는 동위원소를 말한다. 그래서 방사성 동위원소라고도 한다. 예를 들어보자. 자연에 존재하는 원자번호 19의 칼륨에는 3종류가 있다. 원자량 39의 K-39, 원자량 40의 K-40, 원자량 41의 K-41이다. 이 가운데 K-39와 K-41은 ‘안정 핵종’이라고 부른다. 방사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K-40은 방사능을 가지고 있어 ‘방사성 핵종’이라고 부른다.
‘방사성 핵종’은 어떻게 생성되느냐에 따라 ‘자연방사성 핵종’과 ‘인공방사성 핵종’으로 나눈다. ‘자연방사성 핵종’은 자연 상태에서 존재한다. ‘인공방사성 핵종’은 원자력발전이나 핵실험의 부산물로 만들어진다. 바로 이 ‘인공방사성 핵종’이 문제다.
후쿠시마 오염수에는 ‘인공방사성 핵종’이 잔뜩 포함돼 있다. 이중 일본 정부가 측정해온 방사성 핵종은 64종이다. 환경단체 등은 64종 말고도 다른 방사능 핵종이 있다고 주장한다. 오염수에 포함돼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핵종 개수는 1000여 개에 이른다. 그런데 일본은 지난 2월 측정 핵종을 64개에서 30개로 절반 가까이 줄였다. 어떻게 된 일일까.
국무조정실·원자력안전위원회·과학기술정보통신부·해양수산부·식품의약품안전처가 당시 배포한 보도자료에 단서가 있다. 보도자료에는 “이날(2월 22일)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NRA)가 지난해 11월과 올해 2월 도쿄전력이 제출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방출 시설 설계·운용 관련 실시계획 수정 심사서(안)’를 인가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보도자료의 핵종 관련 부분을 더 보자. “도쿄전력이 측정 대상 방사성 핵종을 기존 64개에서 30개로 재선정한 것에 대해, 핵종 선정 방식의 타당성을 확인하고 그에 근거한 방사선 영향평가 결과 오염수 해양방출이 사람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충분히 작다는 것을 확인….” 일본은 64개에서 30개로 줄인 이유에 대해 ‘반감기가 짧은 방사성 핵종을 측정 대상에서 제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정부는 이 설명을 받아들인 셈이다.
이에 대해 환경운동연합 시민방사능감시센터 최경숙 활동가는 “후쿠시마 오염수에는 지금까지 측정해온 64종 이외에도 수많은 방사성 핵종이 있는데, 일본이 이런 방사성 물질이 얼마나 되는지도 밝히지 않은 채 부실한 조사를 바탕으로 측정 항목수를 줄였다”며 “우리 정부가 일본이 제공한 신뢰하기 힘든 자료를 그대로 받아들여 어떤 외교적 노력도 전혀 하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태평양도서국포럼(PIF) 과학자 패널의 페렌츠 달노키베레스 미국 미들베리국제대학원 교수도 “수명이 긴 동위원소만 모니터링하면 문제가 있는 데도 모든 것을 정상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면서 “그렇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창문’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라고 걱정했다.
일본은 30개에 대해서는 철저히 측정·검사할까. ‘글쎄올시다’다.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은 지난달 10일 “도쿄전력홀딩스에서 지난해 12월에 발표한 핵종 재선정 보충설명자료를 분석한 결과 단 7개 핵종만 선정해 측정·검사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힌 바 있다.
이재정 의원은 “도쿄전력은 이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에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1000개 핵종 중 970개를 평가대상에서 배제했음에도, 이마저도 측정·평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이유로 7종으로 줄여서 측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배제된 핵종 중에는 반감기와 내부피폭 문제 등의 문제가 심각한 것들도 포함돼 있다. 아메리슘-241(반감기 432만 7000년), 테크네튬-99(반감기 21만년), 플루토늄-239(반감기 2만 4100년)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2008년 10월 당시 교육과학기술부가 작성한 ‘방사능 핵종정보’를 보면 니켈-63, 프로메튬-147, 플루토늄-239 등에 대해 흡입 또는 섭취에 따른 내부피폭의 위험이 높다고 경고하고 있다. 플루토늄은 잘 알려진 인공방사성 핵종이다. 1945년 8월 9일 미국이 나가사키에 투하한 ‘팻 맨’(Fat Man)이 바로 플루토늄을 이용한 최초의 원자폭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