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노동자는 건폭이 돼 죽을 수 없었다
[에디터의 눈] 노동자 양회동 씨의 분신 전후 이야기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건설 노동자는 건폭이 돼 죽을 수 없었다.
8일 오후 그는 건폭이 아니라는 듯 웃는 얼굴로 조문객을 맞았다. 영정 사진은 쌍둥이 남매가 선물할 어버이날 카네이션 대신 흰 국화를 받았다. 육개장과 떠들썩함이 없었다. 유족 없는 상가는 리본을 단 동료들이 말없이 지켰다. 리본이 대신 말했다. ‘노조탄압 분쇄, 열사정신 계승’.
죽음 전날 그가 떠올린 단어는 ‘사치’였나보다. 비싼 외식을 바라는 남매와 사치라고 반대하는 아내에게 소고기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다음날 구속영장 실질 심사를 앞둔 남편의 마음을 헤아려 아내가 동의했다. “더 먹어, 더 먹어.” 식당에서 식구들에게 거듭 말했다.
사치는 여기까지. ‘1000원 샵’에 들러 노트와 펜을 샀다. 가족은 수사 당국에 제출할 해명서를 쓰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집에 아이들 노트가 있는데 굳이 상점을 들렀을까? 유서를 아이들 노트에 쓸 수 없었을 거라고 추측한다.
당일 아침 동료이며 세 살 위 형인 형틀팀장에게는 ‘사치’를 맡겼다. 본인 소유 당구 큐대를 팔아달라고 했다. 형틀팀장은 “왜 죽으러 가는 사람처럼 말하느냐”고 했다. 큐대는 중고로 30만 원쯤 할 것이다.
철근팀장인 그와 형틀팀장은 2021년 봄부터 1년간 함께 일했다. 원룸형 숙박시설을 짓는 현장이었다. 당구 동호회도 같이 했다. 10분에 1500원 하는 당구로 그와 형틀팀장은 사치를 부렸다. 형틀팀장은 “그가 아끼는 뭔가를 정리하고 싶었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
철근팀은 철근을 운반하고 서로 결속해 고정한다. 콘크리트를 붓기 전에 철근으로 틀을 만들면 형틀팀이 와서 틀을 설치한 뒤 콘크리트를 붓는다. 현장에서 두 팀은 볼트와 너트 같은 사이다. 그는 일용직 철근공으로 10년 가까이 일했다. 굵은 손 뼈마디와 인대가 간신히 붙어있는 어깨가 훈장이었다. 의사는 어깨 수술을 권했다. 중간 굵기인 16mm 철근 하나만 둘러메도 12.5kg이다. 170cm가 조금 넘는 키에 70kg이 안 되는 몸으로 버텨야 했다. 7시에 작업을 시작하려면 새벽 5시 집을 나와 현장에서 아침을 먹었다.
당일 아침 그는 버스에 올라 팀원 20여 명과 인사를 나눴다. 집에서 아이와 아내를 안아 준 것처럼 팀원들을 안아줬다. 이날은 원주에서 건설노조원들의 집회가 있었다. 팀원들은 영장 심사를 받는 팀장을 불안한 눈으로 떠나보냈다.
불꽃을 마주하기 전 그는 법원에 함께 온 동료에게 말했다. “곁에 있어서 좋았다. 나중에 막걸리 한잔하자.”
“민노총 강원건설지부 간부 A씨(51)는 1일 오전 9시35분께 춘천법원 강릉지원 앞에서 몸에 휘발성 물질을 뿌리고 분신해 전신화상을 입고 강릉 아산 병원으로 이송됐다.” (뉴시스 )
“학교 다닐 때 공부를 못해 농고 졸업했습니다. 바르게 살려고 노력했지만 그러지 못했나 봅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남의 눈에 피눈물 나게 하면 본인은 돌에 맞아 죽는다 했습니다. 하지만 먹고 살려고 노동조합에 가입했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아야 합니다. 억울하고 창피합니다.” (야당 대표들에 보낸 유서)
그의 혐의는 폭력행위처벌법상 공동 공갈과 업무방해. 형틀팀장은 그가 억울할 것이라고 했다. 현장 소장을 찾아가 커피를 타주며 노조원들을 잘 부탁한다고 읍소했다는 것. 그게 공갈이 되느냐고 했다. 현장 사무소 방문 때도 2~3명 소수만 들어갔다. 단체로 몰려가면 현장 소장이 위협감을 느낄 수 있다며 배려했다. “공용 카드도 안 쓰는 친구였어요. 차도 건설노조 공용차 대신 본인 차를 몰고 속초, 고성, 양양을 매일 다녔어요. 책임감이 강했죠.” 그는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이었다. 1지대는 원주 횡성 영월, 2지대는 춘천 홍천 화천, 3지대는 양양 속초 고성 등을 포함한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그를 위해 강원도 건설업체 관계자들이 처벌불원서를 써줬다. 업체 관계자들은 “협박이나 강요가 없었다”고 했다. 강릉지원은 “증거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없다”며 그를 포함해 3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경찰 수사의 압박은 거셌다. 형틀팀장도 지난달 광역수사대에서 조사를 받았다. 그와 형틀팀장이 근무하던 현장의 소장은 “참고인인 나도 4시간 반이나 조사받았다. 뭐라도 말하라고 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건설노조원들은 “강원도에서는 수사 성과가 안 나온다”는 소문을 듣고 불안에 떨었다.
건폭이라지만 그의 몸엔 문신이 없다. 회칼 대신 망치와 펜치를 손에 들었다. 힘이 센 쪽은 정권이다. 거대 스피커를 가진 그들의 한마디가 신문 글이 되고, 방송 멘트가 된다.
“건폭이 완전히 근절될 때까지 엄정 단속하라(2월 22일자 조선일보).”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의 말은 수사 지침이 된다. “무법지대에 있는 조폭들이 노조라는 탈을 쓰고 설치는 것들을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없다.” 검사 출신 장관의 발언은 경찰의 금과옥조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지난해 말부터 건설노조를 대상으로 이뤄진 사무실과 조합원 압수수색은 각각 13회와 40여 명이다. 950여 명이 수사선상에 올랐다. 노동부가 ‘건폭 단속 효과’를 발표했다. “현 정부 출범 후 1년간 근로손실일수는 27만 5356일로, 지난 정부 첫해 같은 기간보다 74% 줄었다.”
그에게 무죄추정 원칙은 없었다. 건폭으로 찍혀서 일자리가 사라졌다. “물차 사서 생선을 납품할까요”라고 형틀팀장에게 말했다. 지난달에는 보험회사에서 800만 원을 대출받았다.
그는 수사 받는 게 수치스러워 아이들에게 숨겼다. 하지만 아이는 아빠의 죽음에 대해 아는 눈치다. “우리 아빠 교통사고 아니지”라고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빠는 명예를 찾기 위해 불꽃을 택했다. 검사 정권의 뜨거운 낙인에 맞서 스스로 뜨거워졌다. 그리고 이름을 찾았다. 건폭이 아니라 건설 노동자 양회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