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사들의 명예회복, '민족민주유공자법' 제정하라

[시민활동가를 만나다] 한현우 추진위 상황실장

유공자법제정추진위는 5년 째 국회 앞 천막농성

90년 참교육 투쟁으로 시작, 유가협 실무진 참여

뒷전이었던 민주유공자법, 이제 제정 서둘러야

열사 정신 계승은 구호가 아닌 법제화가 중요해

사망자 136명, 상이자 829명의 명예회복 절실

2025-06-29     이득신 작가

지난 6월 15일 민족민주열사 범국민 추모제가 거행되었다. 1990년에 시작한 행사였으니 행사의 나이도 어느덧 30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다. 그 시절을 죽음으로 살아낸 열사들의 정신이 결국 6월 항쟁으로 이어져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열어 꽃을 피우게 했다.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군사독재 시절 죽음으로 저항한 열사들에게 빚진 자들이다. 이번 추모제는 이재명 정부의 탄생으로 검찰 독재시절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새 정부를 향한 기대감과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는 서로가 달랐지만, 6개월간의 내란 정국을 벗어난 홀가분함은 모두에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민주주의의 한파를 마감했다는 뿌듯함보다 내란의 냉기가 여전히 도사리고 있는 불안감도 느껴졌다. 윤석열 정권 3년이라는 시간은 차라리 악몽이었다. 그 악몽을 헤치고 12.3 계엄령을 막아낸 것도 내란을 종식시키고자 하는 힘의 원천도 결국 국민이었다. 4.19와 5.18을 거치며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염원을 간직한 민주정신이 이 시대의 내란을 막아낸 것이다.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촉구하는 단식농성 돌입에 앞서 기자회견의 사회를 보는 한현우 실장

우리는 늘 열사 정신을 기려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 정신을 계승하는 건 그 치열했던 5월의 광주와 6월의 최루탄 연기 가득한 거리의 기억이 전부일 만큼 소홀해지고 있다. 근근이 행사만으로 열사정신 계승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이승만 독재를 몰아낸 몇몇 4.19의 인물들은 투항한 지 이미 오래다.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제도는 따라오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그 정신을 법과 제도로 이어가야 한다는 주장이 유가협을 중심으로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다. 이미 연로하신 유가협 회원들을 대신해 한현우 실장은 여의도 국회 앞에서 5년째 천막농성을 이어가며 민주유공자법 제정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현재 그는 김철수추모사업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김철수 열사는 참교육의 열기가 뜨거웠던 1990년 전남의 보성고 재학중 참교육실현을 외치며 분신 항거했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한현우 실장도 지역에서 참교육을 외치며 운동에 참여했고 김철수 열사의 사망사실에 분노하면서 시민운동에 뛰어들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독재 정당과 손을 잡은 김영삼 시절에는 기대하기 어려웠지만 김대중 정부 초기만 하더라도 민주유공자법 제정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시간문제의 분위기였다. 그러나 유공자법의 제도화는 매번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열사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법제화는 언제나 뒷전이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법안을 구체화하는 논의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2020년 9월 1차로 해당 법안이 우원식 의원에 의해 발의되었으나 계류 중이다가 밀려났고, 2차로 2021년 다시 재발의되기도 했다. 이때 설훈의원 주도로 법안이 발의되었으나 셀프유공자법이라는 보수언론의 공격을 벗어나지 못했다. 민주당 의원 68명, 친 민주당 출신 의원까지 합하여 총 73명이 공동 발의했지만, 2021년 3월 30일 결국 철회되고 말았다. 이후 2022년 7월 20일 재추진에 들어갔다. 3차 추진이었다. 우상호 의원은 국힘당이 수정안을 제안하면 해당 합의안으로 합의 표결할 것도 제안했다. 당시 전순옥 의원은 “아직도 민주유공자 가족들이 천막에서 투쟁하고 있다”면서 법안 처리 통과를 호소하기도 했다. 2024년 5월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으나 윤석열 정권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한현우 실장이 '20년을 기다렸다. 민주유공자법 제정하라'라는 피켓을 들고 국회앞 1인시위를 하고 있다.

민주화 운동, 특히 오늘날 직선제 헌법 체제는 운동권 세력만이 이루어낸 것이 아닌 국민 모두가 합심해 이루어 낸 것인데 일부 인사들만 혜택을 보는 것이라는 비판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이 더욱 거센 것도 사실이다. 과거 박정희 독재 반대에 매몰되어 있던 민주화운동은 전태일 열사의 분신 항거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독재반대와 노동운동이라는 양대 축이 형성된 것이다. 이후 광주민주화운동을 거치며 80년대는 광주의 진상규명이 학생운동의 주된 과업이기도 했다. 광주 정신이 민주화 운동 확산의 계기가 된 것이다. 박종철 열사와 이한열 열사의 희생은 전두환 군사독재를 몰아낸 직접적인 사건이었다. 당시 두 열사의 죽음에 분노한 학생과 시민들이 대거 거리로 뛰쳐나와 독재타도와 호헌철폐를 외치게 된 것이다. 이들 열사들이 없었다면 국민들의 분노가 집결할 수 있는 동력이 부족했던 부분도 있었다. 열사들의 죽음이 전국민적인 항거인 민주화 운동의 확산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후 군사독재가 물러나고 민주정부가 수립되면서 광주가 뿌린 피의 헌신은 제도적 보상단계를 거치게 되었지만, 광주의 진상규명을 외치며 의문사 당하고 죽음으로 항거한 이들은 아직도 우리의 구호에만 머물러 있다.

1986년 8월 12일 전태일기념사업회 창립총회에서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유가협)를 발족하고 초대 회장에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선출되었다. 설립 취지는 유가족협의회가 필요 없는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에 두었다. 창립선언문에서는 "사랑하는 자식, 남편, 형제를 잃고 창자를 끊는 듯한 슬픔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던 우리 유가족들은 지금 이 모든 아픔을 딛고 고인들이 썼던 민주의 가시관을 받아쓰는 경건한 마음으로 (중략) 고인들이 하나뿐인 생명을 바쳐가면서까지 목말라 외치던 바를 살아 있는 가족들이 함께 실천해 나가는 것만이 그들의 원혼을 위무해줄 수 있는 길"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유족들의 눈물은 마르지 않았고 열사들의 한을 풀기위해 헌신했던 전태일, 이한열의 어머니도 박종철의 아버지도 지금은 모두 고인이 되었다.

 

6.15 범국민추모제에 모셔진 열사들의 영정

희생과 헌신은 삶과 죽음을 담보한다. 죽은 자들은 산자를 구하기 위해 생명을 던졌다. 그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제도적 법적 명예회복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들이 이타적인 죽음을 선택할 때 그 두려움과 고민, 번뇌가 어떠했을까. 그 숱한 고뇌의 시간 끝에 내린 결론이 죽음이었고 그들의 죽음이 우리를 살린 것이다. 한현우 실장은 ‘그들이 죽어서 우리는 살고 있는데 우리는 그들의 죽음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민주유공자법은 ‘민주유공자와 그 유족·가족에 대한 교육지원, 취업지원, 의료지원, 대부, 양로지원, 양육지원 및 그 밖의 지원을 실시한다’고 명시되어 있으며 ‘국가와 지자체는 각종 기념·추모 사업을 실시하고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시설물이나 교양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한다’고 되어 있다. 유가협 측은 136명의 열사와 829명의 상이자를 포함하여 모두 965명을 그 대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 대상자는 1999년 김대중 정부 당시 420일간의 농성을 통해 이룩한 성과이며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법」이 만들어진 이후 확인된 숫자이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희생되거나 피해를 입은 관련자와 그 유족의 명예를 회복하고 생활 안정 및 복지 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법률이었다. 그러나 이 법은 열사와 상이자들의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명예회복과는 거리가 있다. 그래서 민주유공자법 제정이 절실한 것이다. 구속자와 행불자 등은 법 제정 이후 논의를 거쳐 추가하더라도 최소한 이 분들만큼은 하루 빨리 명예회복이 필요하다.

내란 종식이라는 시대적 사명을 안고 역대 네 번째 민주정부가 출범했다. 새로운 민주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과거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에게 감회는 남다르다. 김대중부터 이재명까지 네 번의 민주정부는 모두 독재에 저항한 희생으로 이뤄진 정부이다. 그 값으로 우리는 민주주의를 누리며 살고 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이제는 민주유공자법을 제정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는 열사들과 자신을 내던졌던 이들의 죽음과 헌신으로 만들어진 피의 대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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