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폭주열차, 미국민들은 멈춰 세울 수 있을까?

미국은 물론 세계의 위기를 불러온 '독불장군'

미 시민사회, 반트럼프 운동 깃발…민주당은 어정쩡

원조 냉전 정당이라는 흑역사에 발목 잡혀

민주당의 환골탈태는 미국 바로서기의 첫걸음

2025-04-10     김평호 미국 톺아보기
김평호 저술가·전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우연의 일치일까. 지난 4일, 촛불행동을 중심으로 한국민들이 전개한 2년여의 뜨겁고 장엄한 투쟁이 수구기득권 세력의 대변자 윤석열 탄핵으로 정점을 찍는 즈음에 미국에서도 반트럼프 투쟁이 본격화 되고 있다.

미국판 촛불행동-시민사회가 주도하는 ‘트럼프, 이제 그만!(Hands Off!)’

먼저 두 장의 사진을 보자. 왼쪽은 지난달 20일, 무소속 샌더스 상원의원이 주도하는 ‘금권정치 타파(Fight oligarchy)’ 애리조나 투산 집회 모습, 오른쪽은 지난주 토요일, 미국 전역 1200여 곳에서 열린 반트럼프 집회·시위 현장 모음 중 일부다.

 

금권정치 타파 집회가 바로 반트럼프 투쟁이다. 지난 2월 첫 집회를 시작으로 현재 전국을 순회하는 중이다. 트럼프가 보통 사람의 대변자냐, 초갑부들의 대변자냐를 유권자들에게 직접 묻고 답하는 형식의 집회다. (트럼프 내각 25명 중 절반 이상의 장관급 인사는 상위 0.0001%에 속하는 초대형 부자다.) 내년 중간선거를 겨냥, 주로 공화당 의원 지역구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다. ‘손 떼라—트럼프, 이제 그만!(Hands Off!)’을 제목으로 내건 반트럼프 운동은 160여 개가 넘는 시민사회단체가 통합 조직했다. 그간 산발적으로 이뤄지던 집회가 연대투쟁의 성격으로 한 단계 올라선 것. 이날 수백에서 수천, 많게는 만 명 넘는 시민이 참여한 전국 곳곳의 집회에서 시민들은 ‘사회보장 축소 반대’, ‘공공기관 강제 해고, 인원 감축 반대’, ‘민주주의 회복’ 등의 구호를 열창했다.

트럼프라는 폭주 기관차

이어 두 장의 보도사진을 보자. 우크라이나 종전, 대러시아 외교, 무역-관세 전쟁 같은 큰 뉴스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그러나 트럼프 통치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건을 담은 것이다.

 

왼쪽은 트럼프 취임 당일의 사면 조치로 풀려난, 2021년 1월 6일 미 의회 점거 폭동 가담자 소식(AP 1월 24일). 오른쪽은 트럼프의 명령으로 3월 29일 추방돼, 엘살바도르의 테러범 수용소에 갇힌 베네수엘라 이민자들 소식(로이터 4월 1일). 왼쪽 사진의 기사는 ‘트럼프의 사면 조처는 극단적 정치폭력을 합법화한 것’이라는 제목을, 오른쪽 사진의 기사는 ‘트럼프, 베네수엘라 이민자 238명 강제추방, 망명 심사 중인 사람까지도’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1.6 의회 폭동 사태는, 부정선거라며 트럼프가 선동하고 거기에 백인우월주의 조직이 가담한 쿠데타다. 1500여 명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트럼프는 이들에 대해 취임 당일 전원 사면령을 내렸다. 22년 형을 선고받았던 백인우월주의 조직 프라우드 보이스의 리더는 석방 소감에서 이제 ‘응징의 시간’이 왔다고 기염(?)을 토했다. 한편, 불법 이민자 근절 및 추방은 트럼프가 지난 선거 때 내세운 주요 공약 중 하나다. 테러범도 아닌 사람을 조직폭력배로 몰아, 심지어 법원의 금지명령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조국도 아닌 타국에, 그것도 악명 높은 테러범 수용소에 집어넣는 행태.

법의 이름으로 법을 조롱하고, 불법이라며 인권을 짓밟는 행패다. 이게 트럼프 정권이 벌이는 국내적 행패라면,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무역전쟁을 벌이고, 이란과 중국에 전쟁을 협박하는가 하면, 이스라엘에는 가자 대학살을 용인해주고, 미군은 대대적 예멘 공습에 나서고 있다. 이는 정권이 벌이는 국제적 행패다.

트럼프는 폭주 기관차다. 미국 자신은 물론 세계가 위태롭다. 누가 이를 제어해야 할까? 최일선의 책임자는 당연히 미국의 야당, 민주당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트럼프가 자행하는 행정명령 통치 앞에서 수동적이고 무기력하기만 하다. 그의 뉴스 의제 설정 및 여론 장악 능력, 또 소수당이라는 한계—하원(220-213), 상원(45-53)—도 있지만, 당의 정치적 역량 미비가 더 큰 문제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오히려 국가정보국장 사상검증에 앞장 선 민주당

그를 보여주는 사진 한 장을 보자. 지난 1월 30일, 트럼프가 지명한 T. 개버드 국가정보국장 상원 인준 청문회와 당시 관련 뉴스 검색화면을 합한 것이다.

 

개버드는 트럼프 각료로 발탁된 인물 중 각별한 주목을 받았다. 본래 민주당 하원의원(하와이주, 사진 왼쪽)이었으나, 당과 정부 대외정책의 이중성과 거짓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트럼프 지지로 돌아섰다. 기존의 정치인 누구도 꺼리는 딥스테이트—미국 외교·안보 마피아의 다른 이름—에 대한 비판이었다.

청문회가 열렸다. 그런데 관련 뉴스가 보여주듯 그 자리의 주인공은 개버드가 아니라 스노든이었다(사진 오른쪽). ‘그는 역적(traitor)인가, 아닌가?’ 의원들은 집요하게 물었다.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심지어 진보성향 의원도 다르지 않았다. 스노든은 전직 CIA 컴퓨터 보안요원으로 미국 정부가 전 국민 대상의 무차별 감시(예: 도청)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는 기밀을 폭로한 ‘공익 제보자’다. 폭로 후 러시아로 망명한 스노우든을 두고, 의원들은 반미-반역분자라고 몰아붙였다. 개버드는 흔들리지 않았다. “기밀 유지법을 어긴 건 맞지만, 그의 행위는 반역에 해당하지 않는다.” 사실 법무부에서조차 그를 반역(treason) 혐의로 기소하지 않았다. 의원들은 또 후보자를 친러시아 분자로도 몰아붙였다. 개버드는, “나토 확장에 대한 러시아의 안보 우려는 당연하다(legitimate). 바이든 정부가 이에 진지하게 귀 기울였다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여기에 의원들이 시비를 건 것. 후보자는 이번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민주당의 행태는 청문의 형식을 빈 매카시즘적 사상검증이다. 이런 점에선 오히려, 우크라이나 종전, 러시아 관계 회복 등을 내세우는 트럼프가 돋보인다. 강경 자유주의라는 민주당의 호전적 대외정책 노선은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거기에 민주당이 품고 있는 반공-반러시아(루소포비아) DNA가 있고, 시작은 전후 냉전체제의 성립 초기부터다.

NSC 68 — 네오콘 민주당의 기원

다음 사진은 그 사실을 보여준다. 1950년 4월 발간한 기밀문서(1975년 기밀해제) ’국가안보위원회 보고서 68(NSC 68)’ 중 일부다(사진은 보고서 표지와 9쪽 부분). 강경 냉전체제의 기본 설계도로 악명을 떨쳤다.

 

총 69쪽 길이의 보고서는, 당시의 지정학적 상황을 분석하고, 전후 세계질서에 관한 미국의 판단과 대응방안 등을 담고 있다. NSC는 2차 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을 축으로 하는 양극체제가 만들어졌고, 소련은 자신의 절대적 권위체제를 세계 각국에 강요하면서 갈등을 확산·증폭시키는 중이라고 분석했다. 그리고 이러한 소련에 맞서, 1. 경제력과 군사력을 강화, 자유 세계를 수호하고, 2. 그에 걸맞은 정치경제 체제를 구축하며, 3. 소련 내부의 변화를 끌어낼 정책을 수립·실천할 것을 강조했다. 요약하면, 내부 정치공작까지를 포함한 대소련 강경 대결책이다. 트루먼 민주당 정부가 그린 우리에게도 익숙한 냉전체제의 밑그림이다.

좀 더 부연하면, 당시 전후 세계질서 수립 논의에서 당과 정부 내에 외교파(현실파)와 강경파(군사파) 간의 논란과 이견이 있었다는 것, 흔히 냉전의 설계자로 G. 케넌을 들지만, 실제 주역은 국무부 장관 D. 애치슨이고 케넌은 외교파—과도한 단순화이지만 그렇다고 틀린 건 아닌 분류—라는 것, 저 유명한 케넌의 봉쇄전략은 소련의 팽창주의적 행보는 안보적 우려의 발로라는 점을 인정하고, 강 대 강 군사력으로 맞서자는 게 아니라,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자유 세계에 속하(려)는 국가들을 키우면 그것이 자연스러운 봉쇄 효과로 나타난다는 것, 그러나 결국 외교파는 강경파에 밀려났고, 케넌은 자신의 아이디어가 오남용되는 현실에 깊이 곤혹스러워했고 심지어 후회하기도 했다는 것 등등. 이는 냉전체제가 만들어진 배경의 균형적 파악을 위해 반드시 기억해야 할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이다.

트럼프 제압할 의제 만들어내지 못하는 민주당의 속살

미국의 패권적 우위를 목표로 민주당이 확립한 강경대결의 미-소 냉전체제는 공화당에도 그대로 이어졌고, 지금도 계속되는 미국 거대전략의 기본 틀이다. 또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깊게 염려한 군산복합체, 즉 딥스테이트가 만들어진 배경이기도 하다. 민주당은 이렇게 자신을 전쟁파—이 용어가 과격하다면, 강경파—정당(war party)으로 자리매김했다. 당은 도미노 이론으로 베트남 전쟁을 정당화했고, 70년대 들어서는 네오콘이 싹트고 성장하는 터전이 됐으며, 바이든은 21세기 네오콘의 최신판이었다. 한편 이들 네오콘이 80년대부터 공화당도 접수, 양당을 넘나들며 선과 악의 대결 논리를 재생산, 미국발 영구전쟁의 위기를 지속시키는 건 다 아는 이야기다. 지금의 트럼프 정부도 네오콘에 포획돼 있음은 물론이다.

글머리에도 썼듯, 시민사회가 주도하는 미국 내의 반트럼프 운동이 본격화하고 있다. 그런데 민주당과 지도부는 여기에—적어도 지금까지는—의미 있게 결합하지 못하고 있다. 샌더스 의원의 전국 순회집회에도 한 달이 넘어서야 비로소 두 명의 민주당 의원이 합류했을 정도다. 또 ‘손 떼라 트럼프 운동’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꾸려낸 것이다. 이들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우리를 위해 싸워야 할 정치인들이 손 놓고 있으니 우리가 나서 직접 싸울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민주당이 제대로 싸우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트럼프를 제압할 의제와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금권정치라는 현실, 복지제도 문제, 공공기관과 정부 개혁, 이민정책, 외교·안보 노선 등, 트럼프가 내세우는 정책의제에서 민주당 책임도 적지 않다. 워싱턴이 부자 정치인들의 무대라는 것, 정부 개혁의 필요성, 불법 이민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한다. 민주당이 파고들 틈이 많지 않다. 복지제도도 신자유주의 물결에 속절없이 우경화한 클린턴 방안 이상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반전운동을 반유대주의로 몰아붙이면서 경찰을 동원, 학문(대학)과 언론(표현의 자유)을 억압한 건 바이든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관세-무역전쟁 문제도 미국 제조업과 경제를 살린다는 트럼프의 명분 앞에 이렇다 할 대안을 내지 못할 뿐 아니라, 바이든 정부도 이미 써먹었다.

민주당이 새길로 나가려면

이같은 민주당의 현실, 즉 대안 미비의 정당으로 주저앉은 근저에는 앞서 이야기한 냉전 DNA가 놓여있다. 전후 80여 년의 시간이 흘렀고 이미 낡은 교리지만, 여전히 똬리를 틀고 있는 냉전 이데올로기—네오콘-신보수주의는 이름만 다를 뿐 같은 것—는 민주당을 옥죄는 차꼬의 하나다. 반신반의하겠지만, 국가보안법이 그만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한국 사회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있는 상황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당이 이를 떨어내고, 새로운 국가 비전을 제시, 시민의 반트럼프 투쟁과 결합하지 못하는 한, 당의 존재감은 희미해지고, 트럼프의 폭주는 계속될 것이다. 다행(?)이라면 폭주 기관차는 탈선이든, 충돌이든, 장벽에 의해서든, 결국 멈출 수밖에 없다는 것. 그때까지 미국의 방황이 계속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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