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기사는 노동자인가, 자영업자인가

[ 플랫폼의 노예들 : 대리기사 이야기 ⑯ ]

고객이 부르는 대리기사 호칭에도 다양한 시각

온라인 일감받아 오프라인 노무 제공 특고노동자

과거에는 종업원, 플랫폼 세상에선 자영업자?

거래와 흥정의 자유없는 대리기사는 노동자일뿐

노동자도 아니고 자영업자도 아닌 사람들의 비애

2024-10-06     이득신 작가
이득신 작가

내가 고객을 부르는 호칭은 단 하나다. 그저 ‘고객님’이다. 나는 처음 대리기사를 시작한 2년 전부터 지금까지 그 호칭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예외를 적용하고 싶은 경우도 없다. 나에게 그저 고객은 고객일 뿐 그들이 하는 일이나 사회적 지위 따위는 별 관심도 없고 갖고 싶지도 않다. 호칭은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가미해 더 높여 부른다고 하지만 나는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고객을 그저 ‘고객님’이라고 부른다. 그들의 안전한 귀가때문에 그저 짧은 시간 함께 해야 할 고객일 뿐이다.

고객들은 나에게 ‘사장님’이라는 호칭을 주로 사용한다. 어떤 이는 선생님이라고도 부른다. 나에게 그렇게 불러준다고 한들 호칭대로 나의 사회적 계급이 오르거나 경제적 위상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세상의 모든 현상들이 ‘인플레이션’화 하면서 호칭마저도 그런 현상이 찾아왔다. 동네 구멍가게 사장님부터 대기업 사장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장님이 존재한다. 하지만 정작 나는 사장님도 선생님도 아닌 그저 대리기사일 뿐이다. 누군가가 날 부르는 호칭에 민감하게 반응한 적도 없지만 가끔은 ‘기사님이라고 불러주세요’ 라는 호칭 정정을 요청할 때도 있다. 나는 그게 편하기 때문이다. 나는 사장도 아니고 선생도 아닌 그저 대리기사이다. 내가 자영업자 호칭 ‘사장님’이 아닌 노동자 호칭 ‘기사님’을 더 좋아하는 이유이다.

한때, 철가방이라고 불리며 직업적 하대의 상징이자 심지어 코미디의 소재로 쓰였던 배달노동자는 엄연히 음식점 종업원의 신분이었다. 그들은 식당 주인의 감독과 통제에 따라 일을 진행했으며 정해진 급여를 받고 일을 했다. 어느 순간 등장한 ‘배달의 민족’ 등의 플랫폼으로 인해 그들의 신분이 플랫폼 노동자의 신분으로 전환이 이루어진다. 플랫폼을 통해 관리와 규제 그리고 소득마저 결정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대리기사 또한 지금처럼 플랫폼 노동자의 신분이라기보다 오히려 대리운전 회사에 소속된 직원이었다. 플랫폼이 나오기 전에는 특정한 지역을 주로 다니면서 회사는 셔틀버스를 운행하여 대리기사의 이동을 돕는 방식으로 일을 지원했다. 다만 소득을 결정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었다. 지금은 카카오 같은 앱이 발달하면서 대리기사도 역시 플랫폼 노동자의 형식으로 신분의 변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플랫폼 기업으로부터 일감을 배분받고 관리받는 배달노동자. 연합뉴스

배달노동자나 대리기사는 온라인을 통해 얻은 일감을 오프라인의 특정 장소에서 수행한다. 고객이 카카오T나 티맵, 또는 전화를 통해 대리기사를 호출하면 대리기사가 사용하는 어플에 등록되어 콜수락 버튼과 함께 언제나 쉽게 만날 수 있다. 부르면 곧바로 달려가 20~30분 정도의 운전 업무를 제공하고 사라지다 보니 대리기사라는 존재는 알고 있으되 그들의 삶이나 신분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이들은 많지 않다. 사실 플랫폼 노동자들은 고객이 알건 모르건 어느 사이 회색지대에 놓여 있다.

이들이 수행하는 노동 자체는 내용상 온라인 플랫폼의 등장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식당 이름이 쓰인 철가방을 든 배달부와 플랫폼 기업의 이름이 쓰인 배달통을 가진 라이더는 고객이 주문한 음식을 원하는 장소에 직접 배달한다는 점에서 똑같은 일을 한다. 방식의 차이는 있지만 업무 수행 과정에서 통제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도 동일하다. 라이더는 식당 주인의 직접적 지시와 통제를 받지는 않지만 수락률과 평점 등을 통해 플랫폼 기업에게 평가받고 그에 따라 일감 배분에 불이익을 받기도 한다. 가격 결정은 물론 가격 협상도 할 수 없다. 대리기사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과거 플랫폼이 존재하지 않을 땐, 대리운전회사에서 주는 일감을 고객에게 제공해주는 즉, 고객이 원하는 장소로 안전하게 모셔다 주는 역할을 수행했다. 현재의 대리기사도 역시 플랫폼에게 평가받고 그에 따라 일감을 배분받는 신분이다. 일하는 방식과 내용이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으며 다만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사용자가 등장한 것뿐이다. 하지만 대리기사나 라이더와 같은 플랫폼 노동자의 다수는 공식적으로 노동자가 아니라 자영업자 취급을 받는다.

적당히 부패하고 적당히 깨끗한 정치인들을 보며 양극단의 진영놀음에 대한 환멸이 커지는 세상처럼, 그래서 정치혐오를 조장하는 세력들로부터 ‘그 놈이 그 놈이다’라는 세뇌에 무기력하게 빠져드는 것만큼 위험한 것이 바로 플랫폼 노동자는 자영업자일수도 있다는 그릇된 명제다. 회색지대에 있는 플랫폼 노동자를 노동자로 볼 것인지 아니면 자영업자로 볼 것인지는 그 자체로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실질적으로 노동자의 성격을 강하게 띠는 플랫폼 노동자가 자영업자로 잘못 분류됨에 따라 노동자에게 응당 주어진 기본적 권리와 사회적 보호에서 배제된다는 데 있다.

 

노조법 개정투쟁에 나선 민주노총 조합원들.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대리기사는 본인이 일하고 싶은 시간에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자영업자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정의이다. 대리기사는 일하는 시간과 업무의 양을 본인이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노동자는 생산 수단을 소유하지 못하고, 노동을 판매하여 그 대가인 임금만으로 생활하는 사람이다. 즉, 독자적인 생산 활동 수단을 갖지 못하고, 사용자에게 종속적 관계로 고용되어 임금을 받는 사람이 노동자이다. 따라서 대리기사도 생산수단 즉, 플랫폼이나 대리운전 회사를 소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항상 노동자인 것이다. 또한 종속적 관계로 고용되어 소득을 확보한다. 정기적인 급여생활자처럼 받는 월급의 방식과 형태가 다를 뿐, 운전이라는 노동을 제공하여 소득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대리기사는 노동자이다.

또한 대리기사는 운전 노동력을 제공하지만 그 노동력에 상응하는 댓가, 즉 대리운전 비용을 결정할 단 1%의 권한도 갖고 있지 않다. 또한 자영업자는 거래와 흥정을 자유롭게 할 수 있으나 대리기사는 ‘거래와 흥정’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은 채 플랫폼에 등록된 노무를 그때그때 선택하여 고객에게 제공할 뿐이다. 플랫폼 측과 고객이 합의하에 올린 운행시간 운행거리 운임 등을 대리기사는 수행만 할 뿐 운임에 대해 결정할 권한, 즉 거래와 흥정은 대리기사의 몫이 아니다. 따라서 대리기사는 자영업자가 아닌 노동자다.

 

카카오대리기사용 어플에서 대리기사 요청 수요를 가늠할 수 있는 대리수요지도. 이득신작가

플랫폼이 제공하는 온라인 공간은 한편에서 보면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시장의 역할을 수행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보면 알고리즘을 관리함으로써 명령을 하달하는 기업과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플랫폼이 기업으로서의 성격이 더 강한 만큼 플랫폼에서 일거리를 부여받아 고객에게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이니만큼 당연히 대리기사는 노동자이다. 플랫폼이 단순한 시장의 기능뿐만 아니라 기업의 사용자 기능이 훨씬 강하다는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은 민주노총 서비스 연맹에 소속되어 있으며 형식으로는 고용노동부에 노조설립이 신고 된 즉, 노동자의 신분이다. 즉 대리운전기사 자체가 노동자성을 인정받은 노동자라는 이야기다. 또한 카카오모빌리티도 불성실한 교섭에 질타는 받고 있으되 대리기사를 노동자로 인정하고 있기에 노조 측과 각종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엄연한 사용자의 신분이기도 하다. 대리기사들은 억울하다. 분명히 노동자처럼 업체의 관리 하에 일하고 그 대가로 수수료란 이름의 임금을 받고 있지만 법적으로는 노동자가 아니기에 각종 사회적, 법적 보호에서 제외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이 발달하고 고용관계가 복잡해지면서 전통적인 방식의 정규직 고용관계 대신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이 나타나고 있으며 그중 하나가 특수고용이다. 어쩌면 이러한 현상은 역사적인 흐름인지도 모른다. 세계적으로 일의 형태가 너무 다양해지고 있으며 앞으로 전통적인 고용관계로 되돌아갈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도 있다. 그러나 고용관계 여부, 즉 노동자인지 자영업자인지를 떠나 국가는 모든 구성원에게 열심히 일한 대가로 최소한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와 이유 없이 혹사당하지 않도록 보장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는 대리기사를 비롯한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게 너무 가혹한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얼마 전 내가 만난 대리기사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나는 노동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영업자도 아니다. 나는 가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고 느낀다.” 대리기사가 느끼는 절망과 상실을 우리 사회가 어루만져줄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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