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침체 임계점 선착순 1위는 자영업자·2030
자영업자 비중 처음으로 20% 밑으로
작년 폐업 91만…코로나 때보다 많아
2030 “휴대전화 요금 낼 돈도 없어”
‘서민 급전’ 카드 대출도 역대 최대
취약 자영업자 연체 2분기째 10%대
정부 지원은 시늉만…현장 체감 못해
내수 침체 기간이 길어지며 취약계층이 처한 상황이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가장 약한 고리는 대출을 받아 장사를 시작했으나 인건비는커녕 공공요금도 감당하기 힘든 자영업자들과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청년들이다. 2년간 이어진 고물가·고금리로 이자를 갚지 못하는 자영업자가 크게 늘며 취약 차주의 연체율은 위험 수위까지 높아졌다. 2030’ 청년들은 수입이 확 출어 휴대전화 요금 내기도 버거운 실정이다. ‘서민 급전’으로 이용되는 카드대출도 2003년 카드 사태 때만큼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자영업자 비중 처음으로 20% 밑으로 떨어져
경영난으로 문을 닫는 자영업자가 급증하며 전체 취업자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눈에
띄게 줄고 있다. 30일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들어 8월까지 월평균 자영업자는 563만 6000명으로 전체 취업자 2854만 4000명의 19.7%에 그쳤다. 자영업자 비중이 20% 아래로 떨어진 건 1963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다. 1960년대 40%에 육박했던 자영업자 비중은 계속 감소했고 1989년 20%대로 떨어졌다. 그 이후에도 자영업자 비중은 꾸준히 감소했다.
주요국 대비 우리나라는 자영업자는 여전히 많은 편이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서 자영업자 비중은 10%대다. 자영업자가 줄어드는 것은 산업구조를 고도화한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현상일 수 있다. 그러나 자영업자에서 임금근로자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비중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빚과 적자를 감당하지 못해 파산한 탓에 자영업자가 감소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임금근로자로 전환하지 못하고 빚더미에 오른 상태로 실업자가 된 자영업자들은 심각한 사회 문제를 야기한다. 이들이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인 악성 가계부채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취약 자영업자 연체율 2분기 연속 10%대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금융안정 상황’ 보고서를 보면 자영업자 연체율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제때 돈을 갚지 못하는 취약 자영업자 연체율은 올해 2분기 말 10.15%에 달하며 2분기 연속 10%대를 기록 중이다. 비교적 낮은 금리의 은행권 대출 연체율이 줄고 금리가 높은 비금융권 연체율이 상승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장사를 할수록 손해를 보다 보니 취약 자영업자 대출은 121조 9000억 원으로 1년 새 12조 8000억 원이나 증가했다. 그 결과 취약 차주 대출 비중도 10.5%에서 11.5%로 높아졌다.
지난해 폐업한 자영업자는 91만 명이 넘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도 80만 명 안팎이었는데 10만 명 가까이 급증한 것이다. 상환해야 할 대출과 이자는 눈덩이처럼 커졌는데 불황이 길어지며 빚을 감당하지 못하는 자영업자가 늘고 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정성호 의원에 따르면 폐업자의 절반(49.6%·44만 8000명)은 ‘사업 부진’을 원인으로 꼽았다. 내수 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면 올해 문을 닫는 자영업자가 100만 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청년들 구직 포기…휴대전화 요금도 못내
내수 침체의 또 다른 약한 고리는 청년층이다. 기업 실적이 나빠지면 양질의 일자리가 크게 줄었다. 더욱이 대다수 기업은 신입 사원을 뽑는 대신 경력 직원만 채용하고 있다. 이러니 청년 취업 문은 더 좁아질 수밖에 없다. 경력을 쌓으려면 어디엔가는 취업해야 하는데 마땅한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 구직 활동을 포기하고 그냥 쉬는 청년들이 늘어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8월 말 기준 15~29세 청년 중 일이나 구직 활동을 하지 않고 쉬고 있다는 답변이 한 달 새 1만 7000명이 늘었다. 작년 같은 달과 비교하면 5만 6000명이 증가했다. 원하는 일자리를 찾지 못하다 보니 수입도 급감할 수밖에 없다. 청년층의 이런 실정을 보여주는 통계가 나왔다. 휴대전화 요금 연체율이다.
30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박충권 국민의힘 의원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받은 국내 통신사업자 무선 통신 요금 연체 현황 자료를 보면 지난 7월 말 기준 20대의 휴대전화 요금 연체 건수는 3만 9839건, 연체액은 58억 2800만원에 달했다. 건수와 액수 모두 모든 연령대에서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30대는 연체 건수가 3만 9047건, 연체액이 54억 3400만 원으로 20대 뒤를 이었다. 20대와 30대를 합치면 연체 건수가 7만 8886건, 연체액은 112억 6200만 원에 이른다. 휴대전화 요금을 낼 돈이 없을 만큼 빈곤해진 청년이 그만큼 늘었다는 것을 뜻한다.
카드 사태 때만큼 늘어난 ‘서민 급전’ 카드대출
급증하는 카드대출과 현금서비스도 내수 침체로 인한 취약계층의 실상을 잘 보여준다. 금융감독원의 ‘국내 카드대출 및 연체 현황’에 따르면 8월 기준 전업 카드사 8곳의 카드대출 금액은 총 44조 6650억 원, 건수로는 1170만 9000건이었다. 금융감독원이 통계를 발표한 2003년 이후 최대 규모다. 카드대출은 서민들이 급전이 필요할 때 주로 이용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은행권에서 돈을 빌릴 수 없을 때 높은 금리를 감수하고 카드대출이나 현금서비스를 받는다.
문제는 카드대출도 받기 힘든 처지로 몰리는 이들이 앞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카드대출 연체율이 급등하고 있어서다. 8월 말 기준 1개월 이상 빚을 갚지 못한 카드대출 연체율은 3.1%에 달했다. 카드대출 연체율은 2021년 말 1.9%, 2022년 말 2.2%, 지난해 말 2.4%로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연체 금액도 2021년 7180억 원(20만건), 2022년 8600억 원(24만 9000건), 지난해 9830억 원(26만 5000건)을 기록했다. 증가세는 올해 들어 더 빨라져 8월 말 1조 3720억 원(31만 2000건)으로 급증했다. 연체 규모가 2003년과 2004년 카드 사태 때를 빼고 가장 높은 수준이다.
현장에서 실감할 수 없는 정부의 맹탕 대책
이처럼 서민과 취약계층이 벼랑 끝에 몰려 있는데도 정부는 실효적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말로는 민생이 중요하다, 서민 경제를 살려야 한다면서도 ‘부자 감세’처럼 '진심'을 가지고 확실한 정책을 실행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25조 원 맞춤형 지원과 대출 상환 기간 연장, 전기요금과 배달비 지원, 저금리 대출로 전환 등 여러 지원책을 거론하고 있으나 현장에서는 실감하지 못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청년 정책도 마찬가지다. 정부와 여당은 청년 지원 예산을 늘리고 취업 지원 서비스를 확대하겠다 등 말잔치뿐이다. 원하는 일자리를 찾다가 지쳐서 그냥 쉬는 청년들, 당장 휴대전화 요금을 낼 돈 없는 2030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대책만 나열하고 있다.
자영업자와 청년들이 절박한 상황에 몰린 만큼 타성에서 벗어난 좀 더 과감한 대책이 시급하다. 정부 예산을 더 적극적으로 풀어 자영업자의 재기를 돕고, 청년에게 원하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창의적 정책을 발굴해야 한다. 세수 부족을 핑계로 재정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은 이들에 대한 정부의 직무 유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