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기사를 노예화하는 과도한 '숙제'와 등급제도
[플랫폼의 노예들 : 대리기사 이야기 ⑪]
로지, '숙제'라는 영업 할당량 부과해 의무콜 강요
숙제 미이행 불이익 피하려 '가짜 대리운전'까지
카카오는 4개 등급제 시행, 차별적 배차 제도 지속
최상위 등급 유지 위해 무리한 노동 강행 일상화
기사와 시민들 안전 위해 숙제, 등급제 폐지해야
한때 대리기사들은 영업 할당량이라고 하는 이른바 ‘숙제’라는 것을 의무적으로 수행해야 했다. “숙제 하셨습니까?”라는 인사말이 새벽시간 수도권 지역 대리기사들이 서로에게 인사처럼 하는 말이었다. 국내 최대 대리운전 배차 프로그램 업체인 로지가 대리기사들에게 매일 '영업 할당량'을 제시하며 이른바 '숙제'를 내는 등 부당 행위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던 적이 있다.
수도권 대리운전 콜을 카카오T 대리와 양분하고 있는 로지 측은 지난 2016년 7월부터 대리운전 기사들에게 '숙제'라고 불리는 의무 콜을 강요해 왔다. 평일(월~목요일) 피크타임인 밤 10시부터 새벽 1시에 4만 원 이상이 나오는 거리를 운행하거나 콜 두 개를 수행해야만 새벽 1시 이후에 '우선 배차'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던 것이다. 금요일에는 기준이 더 높아져 5만 원 이상 혹은 콜 세 개를 수행해야만 했다. 2016년 5월부터 시장에 진출한 카카오T 대리와 경쟁을 위해 도입한 제도였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대리운전 기사들에게는 불이익이 이어지기도 했다. 8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대리 기사들은 업체가 낸 숙제를 위해 자신이 직접 돈을 내고 가짜 대리운전까지 부르기도 한 경험을 갖고 있다. 로지가 정한 콜 수행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원치 않는 목적지의 콜과 터무니없는 가격의 콜을 억지로 수행하고, 이 기회마저 얻지 못한 기사들은 운행하지도 않은 가상 콜을 올려 수수료를 내면서까지 목표를 채우기도 했다는 것이다. '우선 배차'를 받지 못하면 배차를 제한받는 것과 같은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숙제를 하지 않은 기사가 콜이 발생한 지역에 가장 가까이에 있어도, 그보다 멀리 있는 숙제를 한 기사에게 '우선 배차'가 되는 식이다.
업체가 숙제를 내는 이유는 '콜 점유율'을 방어하기 위함이다. 카카오, 티맵대리 등 대리운전 업체 간 경쟁이 심해지면서, 기사들이 피크 시간에 숙제를 처리하는 동안 카카오 대리 등 다른 업체와 일할 수 없게 단속하는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현재 대리운전 시장의 규모는 연간 3조 원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그중 약 60퍼센트 정도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플랫폼 사업자는 로지소프트를 실질적으로 인수한 T맵대리와 카카오모빌리티 2파전 양상이다.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경쟁사보다 얼마나 많은 콜을 점유해 시장을 좌우할 힘을 가지는가이다. 시장 점유율이 곧 이윤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플랫폼 사업자는 대리기사가 자신의 콜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우선 수행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일명 ‘똥콜’(오지 콜 또는 저가 콜)을 고르지 않고 운전했다가 오지에서 고생을 하거나 저가콜 몇 개 타다가 하루 수익을 망쳐 본 경험이 있는 대리기사들에게 생계를 위해 최선의 콜을 선택하는 것을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대리운전 노동자들이 처한 저임금, 불안정한 조건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2016년 카카오모빌리티가 시장에 진입했을 때, 로지소프트는 자신의 콜을 우선하지 않는 기사들에게 불이익을 줘 경쟁사의 콜 수행을 차단하려다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받기도 했다. 카카오T대리의 경우 운전면허증 등록하고 보험 승인이 나면 대부분의 콜을 무료보험으로 언제든지 일을 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에 반해 로지는 보험료를 납부하고 관리비를 내야하며 프로그램 사용료까지 지불해야 한다. 로지를 이용하는 대리기사가 카카오T 대리로 이동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던 셈이다. 한편 SK그룹에서 운영하고 있는 T맵대리는 로지를 인수하면서 숙제 제도를 폐지하기에 이른다. 대리기사와 노조의 지속적이고 강력한 반발에 결국 항복하게 된 것이다.
카카오T 대리라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카카오는 2019년에 월 2만 2000원을 내면 ‘프로 단독배정권’ 2장을 지급하는 ‘프로 서비스’라는 제도를 도입해 왔다. 지금은 없어지고 다른 제도로 전환되었지만 나도 약 7개월 정도 이용한 경험을 갖고 있다. 프로 서비스는 대리기사가 월 2만 2000원을 내고 해당 서비스에 가입하면 매일 ‘프로 단독배정권’ 2개를 지급하고 제휴사 콜을 우선 배정해 주는 방식이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2016년 대리운전 연결서비스를 시작하면서 기사들에게 수수료 20% 부과 외에 추가 비용을 부담시키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그들은 약속을 어기고 배차권을 판매한 것이다. 프로 서비스 미가입 기사는 격오지 콜, 저가콜 등 이른바 ‘똥콜’만 배정되기 때문에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배차권을 팔아 수익을 내는 것은 불공정한 방식이라는 지적 때문에 이 제도는 폐지되었지만, 여전히 등급제라고 불리는 우선 배차권은 남아 있어 동료 기사들을 적으로 만들어 무한 경쟁시키는 것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카카오는 콜 실적을 점수화해서 그린, 블루, 레드, 퍼플이라는 등급을 부여해 단독 콜 등을 배정한다.
매주 월요일 오전 8시부터 다음 주 월요일 오전 8시까지를 기준으로 콜 수행 경력이 0콜이면 그린기사가 된다. 그린기사는 실시간 콜 수요 지도를 볼 수 없고 주변의 대리기사 숫자를 알 수 없으며 주변 동료 기사와의 소통을 막아버린다. 역시 같은 시간대를 기준으로 1콜 이상이면 블루기사라는 등급을 부여한다. 블루기사는 그린기사에게 막혀있는 혜택을 풀어주는 방식이다. 레드기사는 1주일간 목표 점수 1000점을 달성해야 한다. 퍼플기사는 1500점을 달성하면 해당 등급을 얻게 된다. 피크 타임에는 한 콜당 100점을 부여하며 기타 시간에는 10점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퍼플기사 1500점 달성을 위해서는 약 4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 등급제는 사실상 경쟁업체인 로지콜을 수행하지 못하게 막는 방식으로 활용되는 셈이다. 또한 이는 사실상 숙제 제도의 연장선으로 봐야 한다.
나는 카카오대리라는 어플 하나만 사용한다. 굳이 몇 개씩 사용하면서 2중 3중으로 비용을 지불하고 싶지 않거니와 어플을 더 많이 사용할수록 더 심하게 노예화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N잡러인 상황에서 15~20일 정도만 대리운전 노동을 수행할 수 있는 상황을 고려한 선택이기도 하다. 그러나 카카오에서 규정한 퍼플기사를 유지하기 위해 무리한 노동을 수행할 때가 있다. 퍼플기사는 다른 등급의 기사보다 콜을 우선 배정한다. 고단가의 콜을 수행하는데 훨씬 유리하다. 또한 오지를 탈출할 때도 도움이 된다. 상황이 이러하니 퍼플기사라는 등급 자체가 대리기사를 옭아매는 족쇄가 되며 기사들은 자신도 모르게 등급의 노예가 되어간다.
대체로 대리기사들이 콜 수요가 상대적으로 적은 일요일 또는 월요일을 휴식일로 생각하며 하루 정도의 여유를 갖지만 점수가 부족하여 등급 유지가 어려울 때는 일요일에도 무리하게 일을 하게 된다. 카카오 측은 보통 10시부터 오전 2시까지를 피크타임으로 정한다. 그 시간에 1콜을 수행하면 100점을 부여하기 때문에 점수가 모자랄 때는 과속 등의 위험을 무릅쓰기도 한다. 이 4시간의 피크타임에도 수행할 수 있는 콜은 3~4콜 정도이다. 운행시간은 기본이며 대기시간과 이동시간을 고려하고 주차시간까지 감안하면, 예를 들어 20분 주행거리에 소요되는 다른 부수적인 시간 포함 1시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피크 타임에는 콜 수행 횟수에 따라 ‘단독배정권’ 또는 ‘프로 단독배정권’이라는 것을 부여한다. 한 시간에 1매씩을 사용할 수 있다. 레드기사와 퍼플기사를 유지하면 ‘맞춤콜’이라는 것을 이용하게 한다. 선호하는 지역을 맞춰 놓으면 우선 배정해주는 방식이다. 선호지역의 고가 콜과 함께 다른 등급의 기사에 비해 우선 배차되기 때문에 배정권도 중요하지만 ‘맞춤콜’을 받기 위한 등급 유지에 목숨을 걸다시피 하는 이유이다.
이러한 숙제 제도와 등급 제도가 대리기사만의 극한 노동을 유도하는 것은 아니다. 대리기사가 등급 달성과 유지를 위해 노동시간 연장과 함께 과로사의 위험을 자초한다면 고객이나 길 위의 제3자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고객의 안전과 교통질서 유지 차원에서도 반드시 이렇게 부당한 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 모두에게 동등하고 동일한 방식으로 배차해야만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