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입맛대로 막 주기도 했던 외국인 독립유공 훈장

서훈 대상과 시기 부적절, 등급 기준도 제각각

김구·안중근 제쳐두고 외국인 먼저 훈장 수여

이승만·이시영, 정부 수립 이후 첫 '셀프 서훈'

5년 전까진 쑹메이링만이 여성 1등급 수훈자

2024-08-03     이희용 문화비평가 언론인

 

이희용 문화비평가·언론인

오는 8월 15일은 제79주년 광복절이다.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의 희생과 헌신 덕에 빼앗긴 국권을 되찾은 날이다. 피와 눈물로 얼룩진 독립운동에는 외국인도 함께했다. 우리와 손잡고 항일투쟁을 벌인 중국인은 물론이고, 순수한 정의감과 인도주의 정신으로 우리를 도운 서양인도 있고, 동족에게 배신자 소리를 들어가며 일제의 식민정책에 항거한 일본인도 있었다.

자국 독립유공자에 관심 없었던 이승만

대한민국은 정부 수립 이래 독립유공자들에게 건국공로훈장(1967년 건국훈장으로 개칭)을 수여해 이들의 공적을 기리고 후손을 예우하고 있다. 올해 3월까지 국가보훈부에 등록된 독립유공자는 모두 1만8018명. 이 가운데 외국인은 76명(0.42%)이다. 이는 서재필과 같이 나중에 외국 국적을 얻었거나 김알렉산드라처럼 외국에서 태어난 동포 2세는 제외한 숫자다.

 

건국훈장 1등급 대한민국장. 정장, 부장, 금장, 약장으로 구성돼 있다. [국가보훈부 제공]

국적별로는 독립운동의 무대이기도 한 중국이 34명으로 가장 많고 다음은 미국(22명), 영국·캐나다(각 6명), 호주(3명), 아일랜드·일본(각 2명), 프랑스(1명) 순이다. 훈격별로는 1등급 대한민국장 5명, 2등급 대통령장 11명, 3등급 독립장 35명, 4등급 애국장 4명, 5등급 애족장 14명이고 7명이 건국포장을 받았다.

이를 두고 학계나 보훈단체 등에서는 서훈자가 미국에 편중됐다거나 훈장의 등급이 적절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내국인 독립유공자를 놓고도 비슷한 비판이 나오긴 하지만 외국인의 경우 훨씬 더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정부 수립 직후 충분한 연구나 공정한 심사 없이 서둘러 훈장을 수여한 데다 이후로도 정권의 입맛에 맞게 자의적으로 서훈이 이뤄진 탓이다.

이승만은 독립운동 경력을 내세워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에 뽑혔으면서도 오히려 친일반민족행위자 척결을 방해하는가 하면 독립유공자 서훈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1949년 4월 27일 대통령령 제82호로 건국공로훈장령을 제정 공포한 뒤 그해 광복절에 자신과 이시영 부통령 두 명에게만 1등 건국공로훈장(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셀프 수여'했다.

 

헐버트에게 수여된 건국공로훈장증

미국서 이승만 돕기만 해도 독립유공자

이승만이 두 번째로 1950년 삼일절에 훈장을 수여한 대상은 외국인이었다. 대한매일신보를 발행한 영국인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968년 대통령장으로 격상)과 고종의 비밀특사 역할을 한 호머 헐버트 등 미국인 11명에게 건국공로훈장 태극장(현 건국훈장 독립장)을 전달했다. 미국인 수훈자 명단에는 최초의 의료선교사 호레이스 뉴튼 알렌과 3·1운동 상황을 미국에 알리고 학생들을 숨겨주다가 구속된 평양 숭실학교 교사 일라이 밀러 모우리도 있다.

나머지는 이름이 비교적 생소하다. 모두 미국에서 이승만을 도운 인물이다. 모리스 윌리엄, 제이 제롬 윌리엄스, 존 W. 스태거즈, 찰스 에드워드 러셀, 폴 프레드릭 더글러스, 프레드 A. 돌프, 허버트 아돌프스 밀러, 프레더릭 브라운 해리스는 이승만과 함께 한미협회를 만들고 미국 정·관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승인을 촉구한 공로 등으로 훈장을 받았다. 해리스는 영국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 미국으로 이주했는데, 국가보훈부 포상 현황에는 영국인으로 분류돼 있다.

이승만이 수많은 항일투사를 제쳐두고 외국인들에게만 훈장을 준 것은 아무리 자신의 지론이 '외교 독립론'이라 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또 미국 망명 시절 자신의 외교 활동이나 잡지 발행 등을 도운 인사들에게 무더기로 훈장을 안겨준 것도 이해충돌의 소지가 짙다.

 

연세대의 모태를 만든 세 선교사. 왼쪽부터 구세학당 설립자 언더우드, 광혜원(제중원) 초대 원장 알렌, 제중원의학당 초대 교장 에이비슨. 

이권 개입, 친일파 변신 알렌도 수훈

1904년 고종 황제로부터 태극대수장을 받은 알렌은 대한제국과 대한민국 훈장을 모두 받은 유일한 외국인이다. 그가 이승만에게서 받은 건국훈장은 논란의 소지가 매우 크다. 제중원 초대 원장으로서 근대 의술을 소개하고 조선 주재 미국 공사 등을 맡아 초기 한미 외교에 큰 역할을 하긴 했지만, 독립운동에 기여한 공적은 미미하기 때문이다. 독립유공자 공훈록에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나자 다른 구미 외교관들과 함께 미우라 고로 일본 공사를 찾아가 강력히 해명을 요구한 것과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미국이 일본 편을 들지 말도록 건의한 것을 들고 있을 뿐이다.

그는 미국 외교관이라는 지위와 조선 왕실의 신임을 바탕으로 운산금광 채굴권, 경인철도 부설권을 따낸 뒤 팔아넘기고 전기·전차·수도사업 등의 이권에도 개입해 거액을 챙겼다. 러일전쟁 이후로는 친러파에서 친일파로 표변해 일제에 협력했다.

이승만은 1952년에도 연희전문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며 3·1운동을 돕고 1935년 미국으로 돌아간 뒤 기독교인친한회 등에서 활동한 캐나다인 올리버 R. 에이비슨에게 독립장, 이듬해에는 광복군 창설을 돕고 카이로회담에서 한국 독립안을 통과시키는 데 힘쓴 중화민국 총통 장제스(蔣介石)에게 대한민국장을 수여했다. 외국인으로 1등급 건국훈장을 받은 것은 장제스가 처음이다.

 

1등급 건국훈장을 받은 장제스 중화민국 총통과 부인 쑹메이링

1등급 외국인 서훈자 5명은 모두 중국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수훈자는 33명으로 0.18%에 지나지 않는다. 이 가운데 외국인은 5명으로 모두 중국인이다. 중국은 독립전쟁의 무대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자리 잡은 지역이어서 독립유공자 수도 가장 많고 훈격도 높다.

임시정부 수립을 적극적으로 후원한 쑨원(孫文), 임정에 거액을 쾌척한 장제스 부인 쑹메이링(宋美齡). 1910년대부터 신규식 등 독립운동가들을 도와 임정의 기반을 만든 천치메이(陳其美), 조소앙 등과 항일투쟁을 벌이고 독립군 간부 양성에 앞장선 천치메이의 조카 천궈푸(陳果夫)가 장제스와 함께 1등급 수훈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1966년 서훈된 쑹메이링은 1962년 독립장을 받은 유관순이 2019년 1등급으로 격상되기 전까지는 내외국인을 통틀어 유일한 여성 대한민국장 수훈자였다.

대통령장 수훈자 11명 가운데서도 영국인 베델을 제외한 10명 모두 중국인이다. 조선의용대를 후원한 천청(陳誠)과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과 영국 처칠 총리에게 한국의 독립을 요청한 쑨커(孫科) 등 군인과 정치가가 대부분이지만 천주교 난징(南京)교구장 시절에 광복군을 지원한 위빈(于斌) 추기경도 포함돼 있다.

3등급 이하 중국인 수훈자 중에서도 국민당 소속 정치가나 군인이 가장 많다. 임시정부를 지지하고 광복군을 도운 공로를 인정받았다. 구국일보 주필과 YMCA 편집인을 지내며 항일투쟁을 고무한 황줴(黃覺), 광복군 비밀공작원으로 활약한 대학생 쑤징허(蘇景和)도 기억할 만하다. 두쥔후이(杜君慧)와 리수전(李淑珍)은 각각 임정 간부 김성숙과 조성환의 부인으로 남편과 함께 항일운동에 나섰다.

 

박근혜의 이승만 띄우기가 만든 훈장들

미국인 조지 매큔과 윌리엄 린튼은 3·1운동 상황을 해외에 알리고 신사참배를 반대한 선교사이자 교육자다. 린튼은 국민의힘 최고위원인 인요한 국회의원의 할아버지이기도 하다. 조지 애시모어 피치는 중국에서 김구의 피신을 돕고 난징대학살을 폭로했다.

박근혜 정권은 2015년 미네르바 루이즈 구타펠, 셀던 파머 스펜서, 스티븐 A. 벡, 제임스 헨리 로버츠 크롬웰, 조지 윌리엄 노리스, 찰스 스폴딩 토머스, 플로이드 윌리엄 톰킨스, 해리 찰스 파이팅 등 8명에게 훈장을 추서했다. 서재필이 만든 한국친우회와 이승만이 조직한 한미협회에서 활동하며 미국에 친한(親韓) 여론을 형성하는 데 힘쓴 인물들이다. 박근혜는 이들과 함께 이승만의 독립운동을 도운 재미동포들을 대거 서훈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며 이승만 띄우기에 나선 정책의 일환이었다.

독립운동가로 우리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김구, 안중근, 김좌진, 안창호, 손병희, 유관순, 윤봉길, 이봉창, 한용운 등은 박정희가 5·16 군사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잡은 뒤인 1962년 3월 1일에야 훈장을 받을 수 있었다. 박정희는 만주국군 장교였다는 친일 콤플렉스를 씻기 위해 독립유공자 서훈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영국 ‘데일리 메일’ 특파원 매켄지가 1907년 경기도 양평에서 찍은 의병 사진. TV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등장해 널리 알려졌다.

영국 기자, 캐나다 장교, 아일랜드 무기 운반책도

영국인 수훈자는 베델과 해리스를 비롯해 중국에서 임정의 무기와 자금 운반을 맡았던 조지 루이스 쇼, 의병의 활약상을 소개한 '데일리메일' 기자 프레더릭 매켄지, 고종의 밀서를 주중 영국공사에게 전하고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알린 더글러스 스토리, 반전 사상을 주입했다는 이유로 투옥된 제주 서귀포 홍로성당의 아우스팅 스위니 신부다.

조지 쇼의 아버지는 아일랜드계 영국인이고 스위니는 아일랜드 태생이다. 아일랜드는 1921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그러나 국가보훈부 공훈록에는 이들의 국적이 영국으로 기재돼 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의 국적이 일본으로 적힌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캐나다인으로는 3·1운동의 34번째 민족대표로 불린 프랭크 스코필드, 학교와 교회를 세우고 3·1운동 때 부상자를 치료한 로버트 그리어슨, 북간도 룽징(龍井)에서 독립운동을 도운 스탠리 마틴과 아치볼드 바커, 미얀마에서 영국군과 광복군의 통역과 연락 업무를 하다가 전사한 장교 롤랜드 베이컨이 에이비슨과 함께 유공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2018년 12월 22일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왼쪽)이 영국 스폴딩에 살고 있는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의 손녀(수전 제인 블랙) 집을 방문해 현관에 제1호 독립유공자 명패를 부착하고 있다. [국가보훈부 제공]

후세 변호사에 일본인 최초 건국훈장

아일랜드인 독립유공자 패트릭 도슨과 토머스 라이언은 1933년 제주도로 파송된 천주교 사제다. 각각 제주성당과 서귀포성당을 중심으로 항일의식을 고취하다가 옥고를 치렀다. 프랑스의 루이 매랭은 파리에서 일본의 국제법 위반을 비판하고 독립운동 후원단체를 조직했다.

호주인 여성 3명은 2022년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다. 부산 일신여학교 교장 마거릿 데이비스, 교사 데이지 호킹, 기숙사 사감 이사벨라 멘지스는 3·1운동이 일어나자 학생들과 태극기를 만들어 만세 시위에 나섰다가 고초를 겪었다.

일본인 변호사 후세 다쓰지는 간토대지진 때 벌어진 재일동포 학살을 고발하고 일제의 군국주의에 맞서다가 옥고를 치렀다. 2·8 독립선언 주동자, 의열단원 김시현 등을 변호하고 일제에 땅을 빼앗긴 한국 농민들을 도운 공로로 2004년 일본인 최초로 건국훈장(애족장)을 받았다.

후세가 변호한 인물 가운데는 천황 암살을 기도한 혐의로 수감돼 사형 선고를 받은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도 있다. 후세의 도움으로 박열과 옥중 결혼한 가네코는 무기징역으로 감형됐으나 1926년 감옥에서 자결해 남편 고향인 경북 문경에 묻혔다. 2018년 애국장이 추서됐다.

 

지난 5월 7일 파리의 주프랑스 한국대사관에서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이 프랑스인 독립유공자 루이 마랭에게 추서된 건국훈장 애국장을 루이 도미니시 해외과학아카데미 회장에게 전달하고 있다. 마랭은 후손이 없어 그가 생전에 활동했던 단체가 대신 받았다. [국가보훈부 제공]

외국인 독립운동 재평가, 서훈 조정해야

김동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장은 "1960년 이전에 부실한 심사를 통해 이뤄진 외국인 서훈을 재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환 고려학술문화재단 이사장은 지난 4월 24일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서 열린 '독립유공자 공적 재평가 학술회의'에서 훈장 등급 승격이 필요한 외국인으로 베델과 헐버트를 꼽았다.

지난해 3월 구성된 독립운동 훈격 국민공감위원회는 올해 1월 국가보훈부에 독립유공자 공적을 재평가할 것을 권고했다. 현행 법령이나 전례로 볼 때 훈장 등급을 높이거나 서훈을 취소할 수는 있어도 낮추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형편이다.

2009년 정부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는 1006명에 이른다. 일신의 영달을 좇아 민족을 배신한 부역자들을 생각하면 불이익과 고초를 감수하면서도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쓴 외국인 독립유공자들의 노고가 더욱 고맙고 소중하다. 이들의 이름과 공적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외국인 독립운동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이를 토대로 독립유공자 재평가와 서훈 조정이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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