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처럼 방랑하는 대리기사의 퇴근길 애환
[플랫폼의 노예들 : 대리기사 이야기 ③]
비에 젖고 추위에 떠는 새벽 시간의 우여곡절
고객 사정으로 콜 취소하면 적당한 보상 필요
낯선 행선지 곤욕…본의 아니게 동료 '배신'도
사측 셔틀버스와 대리기사용 어플은 양면성
택시 카풀, 2인 1조 활동 등 '상부상조' 자구책
대중교통 끊긴 사각시간 처량한 귀갓길 반복
'노회찬 6411번' 같은 노선버스‧심야버스 간절
장마철 비를 피하고 한겨울 북풍한설을 피할 수 있는 곳. 그 쉽고 단순한 명제가 대리기사에게는 정말 어려운 숙제인 듯하다.
비 오는 밤 새벽 세 시 어느 외진 곳에 도착해 비를 피할 곳을 찾던 중 상가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갑작스레 맞이한 장마철 소나기였기에 우산을 챙기지 못해 비에 젖은 처량함이 쉰내와 더해져 걸인의 행색처럼 보였을 것이다. 마침 순찰을 돌던 건물 상가 경비소장은 나를 노숙자 취급하며 밖으로 몰아냈다.
한겨울에도 비슷한 일은 계속된다. 늦은 새벽 외진 곳에 도착하면 도대체 추위를 피할 곳이 없다. 모든 상가는 문이 꽁꽁 닫혀 있고 아직 새벽 첫차가 다니려면 1시간 정도를 기다려야 하는데 추위를 피할 곳은 보이지 않는다. 그 시간에는 대리기사를 찾는 취객도 없다. 지금도 전국의 주요 도시 일부에 이동노동자 쉼터가 존재하지만 그 숫자는 턱없이 부족하다. 주요 도로 버스 정류장에 비바람과 한파를 피할 수 있는 이동노동자 쉼터가 너무 아쉽다.
며칠 전에는 갑작스럽게 쏟아진 비를 피하기 위해 횡단보도 사거리의 그늘막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금세 그칠 것이라 생각했던 비는 30분이 지나도 그치지 않았다. 이때 대리기사를 애타게 찾는 콜이 요동쳤다. 잠시의 망설임 끝에 수락 버튼을 누르고 고객이 있는 출발지로 이동하기 위해 우선 편의점에 들렀다. 우산을 사고 다시 고객에게 향하던 중, 근처에 도착했을 무렵 고객은 갑자기 콜을 취소해버렸다. 이렇게 황당하고 난감할 수 있을까. 게다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던 비는 언제 내렸냐는 듯 그쳐버렸다. 결국 그날은 혹 같은 우산을 밤새 들고 다녀야 했다.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은 고객의 사정으로 콜을 취소한 경우에도 적당한 보상을 요구하고 있으나 플랫폼 운용사는 요지부동이다.
지난 21일은 하지였고 금요일이었다. 역대 하지 중 가장 더운 날이라고도 했다. 그날 구파발에서 장흥유원지로 가는 대리운전을 하게 되었다. 출발시간이 새벽 2시 가까운데, 초행길이라 불안하긴 했으나 그래도 유원지라는 안도감이 있었다. 분명히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대리 수요가 존재할 거라는 믿음이었다. 여름날 주말의 유원지는 어딜 가든 북적이게 마련이며 장흥유원지도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자기 위로를 하며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러나 난생처음 가본 장흥유원지는 마치 유령의 도시처럼 충격이었다. 상가의 불빛은 모두 꺼져 있었고 취객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몇 개의 호텔마저도 그나마 지도에만 존재하듯 암흑에 휩싸인 모습은 장흥유원지 전체를 상징하는 듯했다.
고객을 내려주고 담배 한 개비 피워 물며 우선 한숨부터 쉬기로 했다. 모르거나 낯선 곳은 도심이 아니면 가지 않기로 했던 스스로의 다짐이 무너진 것에 대한 한탄이었고, 이곳까지 나를 끌고 온 손님에 대한 원망이었다. 그리고 주위에 대리기사를 찾았다. 근처에 앉아 15분여를 기다리니 나처럼 누군가를 내려주고 그곳을 탈출해야 할 걱정에 답답함을 토로하는 동료 대리기사를 만나게 되었다. 함께 택시를 타고 이동하자고 했다. 2시가 넘으면 할증 비율도 줄어드니 그때 택시를 잡기로 합의했다. 그 기사님은 나에게 음료까지 사주면서 친절을 베풀었다. 마침 또 한 명의 대리기사가 도착했다. 셋이서 일산 방향으로 가는 택시를 잡아서 타고 그곳을 탈출하기로 했다. 이런 방식으로 대리기사는 낯선 공간을 탈출하기도 한다.
그런데 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대리 수요가 발생했다. 성북구 돈암동으로 가는 경로였다. 나는 그 콜을 잡고야 말았다. 괜찮다며 얼른 고객 있는 곳으로 가라는 대리기사의 마음 씀씀이에 내가 뒤통수를 가격한 꼴이었다. 함께 탈출하기로 한 동료 대리기사를 배신하고 나 홀로 그곳을 빠져나가는 찝찝함이 나를 짓눌렀다. 택시를 타고 고객이 있는 곳으로 향했지만 미안함은 가시지 않았다. 음료까지 제공한 동료기사를 배신하는 쓰라린 느낌 같은 것이었다. 그날은 결국 돈암동에서 첫차를 타고 귀가했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되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말로 성경은 많은 이들의 아픔을 위로하거나 동기부여의 구실로 삼기도 한다. 심지어 이 글귀는 자본주의의 속성과 결합하여 인간의 탐욕을 자극한다. 그러나 대리기사의 하루 일과에서 그 시작은 미약하고 끝은 더 없이 처량하다. 바로 귀갓길 때문에 나타나는 필연적인 모습이다.
대리기사에게 피크타임은 밤 9시 무렵부터 새벽 2시 정도까지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간 이후에는 대리운전 수요가 현저히 떨어진다. 이미 대중교통마저 끊긴 상황이라 다음 행선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물론 두 시 이후에도 간간이 수요가 있기는 하다. 그래서 어떤 대리기사는 대중교통의 시작 시간까지 움직이지 않고 상가의 불빛이 꺼지지 않는 곳에서 끝까지 콜을 기다리기도 한다. 그러나 대체로 두세 시 이후엔 다음 대리운전 행선지로 이동하거나 귀가를 선택한다.
운행을 종료한 지점이 다시 콜을 잡기 괜찮은 곳이라면 거기서 새로운 콜을 기다리며 운행을 계속하다가 새벽에 대중교통 첫차를 타고 귀가한다. 또한 대리운전 회사가 운영하는 셔틀버스를 이용하기도 한다. '호출버스'라는 대리기사 전용 셔틀버스 앱에서 노선을 확인할 수 있다. 요금은 3000~4000원 정도로 심야나 새벽 시간대에 소형 버스들이 돌아다니면 거의 십중팔구 대리기사 셔틀버스라고 보면 된다. 그러나 이 호출버스의 경우에도 행선지와 경유지는 주로 유흥업소 가득한 번화가 상권 중심으로 운행한다. 예를 들면 합정역에서 출발하여 부천 상동으로 이동하는 형태다. 결국 더 많은 콜을 수행하게 만드는 다분히 자본주의적인 방편일 뿐, 직접 귀갓길을 도와준다고 할 수는 없다.
대리기사끼리 택시 카풀을 하기도 한다. 셔틀버스가 운행하지 않는 곳에는 주변의 대리기사와 함께 이동한다. 카카오 대리기사용 어플에서 '함께 가기' 기능을 이용한다. 보통 3인 정도의 대리기사가 방향을 맞춰 이동한다. 이 어플을 이용하면 주변의 대리기사 숫자까지 알 수 있다. 상당히 유용한 기능인 것만은 분명하다. 대리기사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용도도 있지만 플랫폼의 돈벌이를 위해 만든 기능인 것만은 분명하다.
2인 1조로 활동하는 기사도 있다. A 기사가 고객의 차를 대리운전하면 B 기사는 대리운전 후 목적지에 도착한 A 기사를 픽업하고 다음에는 다시 반대로 하는 방식이다. 부부가 함께 대리운전을 하는 경우엔 보통 남편이 대리기사 업무를 수행하고 아내는 남편의 뒤를 쫓는다. 2인 1조는 자신들의 승용차로 이동하기에 기동성이 보장되고 수익도 좋고 집에 가는 길 걱정 없는 방법이다.
서울의 경우엔 심야버스가 있어서 귀갓길이나 대리기사들의 이동이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서울에서 대리운전을 할 땐 나도 종종 심야버스를 이용하여 이동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구가 이미 300만을 넘긴 인천에는 심야버스가 존재하지 않는다. 자정부터 오전 5시까지 대리기사는 대중교통 없는 사각지대의 시간에 하염없는 걸음을 반복해야 한다.
고 노회찬 의원이 6411번 버스를 연설 주제로 다루기도 했는데, 지하철 운행이 시작되기 이전인 새벽 시간대에 청소 및 경비 노동자들이 강남의 빌딩으로 출근하기 위해 이용하는 대표적인 노선이었기 때문이다. 인천 계양구에서 부평과 부천을 거쳐 신도림, 여의도까지 가는 노선버스 88번은 오전 3시 50분부터 운행을 시작한다. 해당 지역 거주 대리기사들이 주로 이용하기 때문에 '대리기사들의 셔틀버스'라고 불린다.
대리기사들의 이동과 귀가를 위해 이런 노선버스나 심야버스가 좀 더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미 전국의 대리운전 노동자가 30만 명에 육박한 상황이다. 이 중 65% 정도가 수도권에서 대리운전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대리기사에게도 최소한의 '퇴근 이동권'을 보장해줘야 한다.
[편집자 주] 시인이자 수필가인 이득신 작가는 제17회 한국문학세상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돼 등단했다. 아들을 입양하면서 입양 문제에 천착하게 돼 한국입양홍보회 인천지역 대표 및 운영위원을 역임했다. 삼성그룹 공채 출신으로 삼성생명과 삼성SDS에서 부장으로 근무하다 글쓰기에 전념하려 사표를 냈다. 대기업 간부 출신이 퇴사 뒤 생계를 위해 하청 건설노동자로 일하며 느꼈던 희로애락과 노동의 의미에 대한 성찰을 담은 작품 <살아남은 자의 도시>로 2019년 제27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서울의소리에서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하며 밤에는 대리기사로 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