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와 바이든의 ‘탈중국’은 왜 실패했나
말잔치로 끝난 미국의 대중국 디커플링
실상과 부합하지 않는 미국의 ‘탈중국’
<이코노미스트> “갈수록 더 분명해져”
중간재 공급 늘린 중국 우회수출 확대 전략
한국의 대중국 수출이 줄어든 데도 영향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중국제 수입품에 대해 최고 25%의 ‘관세 폭탄’을 투하한 이래 중국의 대미 수출액은 크게 줄어드는 듯 보였다. 예컨대 2021년 3월에 끝난 미국 회계연도상의 중국제 수입액은 4720억 달러로, 2018년 7월 관세 폭탄 투하 이전의 5390억 달러보다 670억 달러나 줄었다. 트럼프와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달라보이는 조 바이든 대통령도 이 대규모 대중국 무역적자에 대해서만큼은 거의 한목소리를 냈다.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을 미국에 대한 위험이자 위협으로 간주하면서 거기에서 조속히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점에서 두 사람 간의 차이는 없다.
실상과 부합하지 않는 미국의 ‘탈중국’
그리하여 트럼프 정권부터 시작된 관세 폭탄 효과는, 비록 선전한 것만큼의 성공은 거두지 못했을지 몰라도, 적어도 공개된 통계수치상으로는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실제상황(실질)과 부합할까?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7일 기사(“트럼프와 바이든은 어떻게 중국과의 관계를 끊는 데 실패했나”)에서 이것이 말잔치일 뿐 실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썼다. 두 나라가 (통계적) 속임수로 진실을 가리고 있지만 실제 양국의 경제관계는 다양한 우회경로를 통해 굳건하게 유지되고 있으며, 최근의 일부 공급망 변화는 오히려 양국 경제관계를 더욱 밀착시키는 쪽으로 작동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이 문제에 관해 지난해부터 비슷한 주장을 해 왔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많은 증거들이 자신들의 연구와 주장을 강화해 주고 있다고 했다.
공개된 통계수치에 포함되지 않는 대중국 적자
트럼프 정권 이래 미국 관리들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리쇼어링’(reshoring, 해외에 나간 자국 기업들을 보조금 지급, 세금 감면 등의 혜택을 앞세워 다시 자국내로 불러들이는 것)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 우방국이나 동맹 또는 같은 편끼리 배타적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을 부르짖었고, 중국과의 ‘디커플링’(decoupling, 비동조화, 분리)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자 다시 디리스킹(derisking, 위험 줄이기)을 꺼내들며 ‘탈중국’ 제스처에 집착했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또다시 가장 유력한 후보자로 떠오르고 있는 트럼프는 자신이 다시 대통령이 된다면 중국산 제품에 (바이든 정권보다 더 강력한) 막대한 관세 부과를 하겠다고 공언했다. 대선에서 트럼프와 호각지세인 바이든이 (트럼프보다) 관세를 낮추겠다고 하면 치명타가 될 수 있는 상황인 만큼, 적어도 앞으로도 상당기간 미국 정계에서 ‘중국 죽이기’ 내지 ‘탈중국’ 레토릭(수사)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미중 간 무역에는 틱톡과 같은 중국 출시 앱 사용과 중국인들의 미국 영화 사랑과 같은 서비스 무역도 포함되지만 이는 그 흐름을 정확하게 추적하기 어렵다면서, 경제학자들이 관심을 갖고, 미디어들이 머릿기사로 뽑고, 정치인들이 인용하기 좋아하는 통계수치들은 세관원들이 정확하게 측정해서 공개하는 상품 교역에 주로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했다. 이런 상품 교역 수치들의 변화에 트럼프와 바이든은 고무돼 자신들의 치적으로 선전하겠지만, 대중국 무역적자에는 세관에 직접적으로 포착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미중 간의 무역통계치 격차 이유
지난해 멕시코는 중국을 제치고 미국의 최대 수입국이 됐다. 미국 쪽 통계에 따르면 2017년 이후 미국의 수입 중에서 중국제 수입 비중은 3분의 1이 감소한 약 14%를 기록했다. 이런 감소는 상당 부분 2018년 트럼프의 ‘관세 폭탄’ 이후에 발생했다. 시진핑 체제의 노골적인 대만 ‘통일’ 야망이 부추기는 아시아 공급망 붕괴 우려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하지만 미디어 머리면에 곧잘 등장하는 그런 류의 통계수치들이 미중 간 전체 교역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미국 쪽 통계에 따르면 2018년의 트럼프 관세 폭탄 이전에는 미국이 중국 쪽 통계보다 더 많은 물품을 수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은 반대로 중국제 수입이 크게 줄었다는 통계치를 미국은 내놓고 있다. 중국은 2020~2023년 사이에 대미국 수출이 300억 달러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반면에 미국은 중국제 수입이 1000억 달러 감소했다고 밝혔다. 중국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의 중국제 수입 비중은 감소하긴 했으나 미국이 주장하는 것보다는 감소폭이 훨씬 작았다. 관세 폭탄화 디커플링 디리스킹에도 불구하고 미중 교역과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 규모는 별로 줄지 않았다는 얘기다.
양쪽 통계 간의 이런 격차는 무엇 때문에 발생할까? 자문회사인 앱솔류트 스트레티지 리서치의 애덤 울프는 이런 차이는 미국 수입업체가 관세적용 품목에서 중국산 구매 금액을 과소보고할 인센티브가 존재하는 사실을 반영한다고 말했다. 실제 수입액보다 적게 보고하는 것이 수익을 높이는 데 유리한 사정이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은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을 실제보다 20~25% 정도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울프는 추산한다. 이에 반해 중국정부는 자국 수출업자들에 대한 세금을 인하해 자국 수출기업들이 자국산 수출액을 실제보다 낮게 보고해서 수익을 높이려는 유인 요소를 줄였다.
미국 기업투자에서 중국 비중 독일 일본 능가
발표된 디커플링 효과를 의심할 만한 이유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데이터들도 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이 발표하는 입출력표(input-output tables)는 한 국가의 경제활동에서 다른 국가들의 경제활동까지 추적할 수 있는 자료를 담고 있다. <이코노미스트>가 이를 통해 35개 산업 부문을 조사한 결과, 큰 비중은 아니지만 2017년에 중국 민간부문이 미국 기업투자의 평균 0.41%만큼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독일의 0.38%, 일본의 0.24% 기여도를 능가하는 수치다. 2022년까지 중국 비중은 1.06%로 2배 이상 증가했는데, 이 역시 독일 일본보다 더 큰 증가폭이다.
이런 흐름의 이면에 무엇이 작동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기는 어려우나, 예컨대 청정 에너지 인프라를 구축하려는 미국 쪽 의도가 중국제 전기장비 수입에 더 주목하게 되면서 미국 기업의 대중국 투자가 늘어났을 수 있다. 미국의 서비스 부문 기업들도 중국의 지적재산권 수입 비중을 늘려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정확한 이유야 어떠하든 이런 추세가 세상에 알려져 있는 미중 간 디커플링이나 디리스킹과는 부합하지 않는다는 건 분명하다.
글로벌 공급망 참여에 적극적인 중국
중국 지도부 역시 글로벌 공급망에서 자국의 역할을 포기할 의사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강화하려 애쓰고 있다. 지난해 12월 중국의 경제협의회인 중앙경제공작회의는 (완제품 제조에 들어가는) 중간재 무역 확대를 우선 순위에 놓았다. 이에따라 국영은행들은 신용대출을 기존 부동산에서 제조업 쪽으로 전환하고 있어서 중국의 과잉수출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예컨대 최대 배터리 제조회사인 CATL(Contemporary Amperex Technology)과 같은 거물을 포함해서 유기발광 다이오드 디스플레이 생산업체인 BOE 테크놀로지 그룹, 태양광 패널용 부품 제조업체인 LONGI 그린에너지 테크놀로지가 이런 전략 전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동남아에 중간재 공급 늘려 우회수출 확대하는 전략
그 결과 2019년 이후 중국의 중간재 수출은 32% 증가한 반면, 완제품 등 다른 품목들의 수출은 2%밖에 늘지 않은 것으로 추산된다. 중국제 중간재 수출 급증은 미국 정부가 선호하는 교역 파트너인 인도와 베트남 같은 국가를 통한 우회수출이 주도하고 있다. 미국의 인도 베트남과의 교역은 2017년 미국 상품 수입액의 4.1%를 차지했으나 지금은 6.4%로 증가했다. 이는 인도 베트남의 대미국 수출이 중국산 중간재로 만든 완제품의 조립, 포장 허브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걸 의미한다.
중국의 이런 대미 우회 수출은 통계상 중국 것이 아니라 인도 베트남 것으로 잡힐 것이다.
인도 우회 전략
이런 변화는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인도의 경우 정부의 보조금 도입 이후 휴대전화 수출이 급증했다. 라훌 차우한 등 경제학자들 3명은 최근 논문에서 그 때문에 배터리, 디스플레이, 반도체 등의 휴대폰 부품 수입도 급증했다고 지적했다. 이는 인도가 스마트폰 강국이 됐다기보다는 그 교역의 중개자에 더 가까운 존재라는 걸 보여 준다.
베트남 우회 전략
베트남과 미국 간의 무역액도 급증하고 있는데, 이 역시 베트남제 수출품 생산은 여전히 중국 공급망과 깊이 엮여 있다. 부품(중간재)의 상당 부분이 베트남 자체 생산이 아니라 중국산이라는 얘기다. 미국 상무부가 지적하듯이, 베트남의 대미 수출은 심하게 말하면 본질적으로 중국 제품이 거쳐가는 경유지인 셈이다. 베트남의 대미 수출과 중국 중간재 수입의 상관관계는 트럼프의 관세 폭탄 부과 이전보다 훨씬 더 높아졌다. 이는 점차 제조업이 강세를 띠어가고 있는 동남아 전체가 중국의 생산과 미국의 수요를 이어주는 통로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최근 한국의 대중국 중간재 수출 감소도 이와 밀접한 연관이 있을 것이다. 중국이 과거 한국의 전략을 채택해 그것을 대체하려 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멕시코 우회 전략
멕시코의 경우는 좀 더 복잡하다. 북미자유무역협정(NFTA) 표준은 북미 지역에서의 생산을 중시한다. 호황을 누리고 있는 멕시코산 자동차의 대미 수출산업의 경우 중국이 자국산 차량과 부품을 대랑으로 수출한 적이 없기 때문에, 멕시코의 대미 자동차 수출 활황이 미중 간의 디커플링에 따른 중국산의 수출 감소 덕이라고 보긴 어렵다. 2018년 미국의 자동차 및 부품 수입에서 중국산은 6%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멕시코의 중국 산업용품 수입은 급증해 2019년 이후 약 40%나 늘었다. 미국 뒷마당인 멕시코에서도 중국과의 디커플링은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탈중국은 말잔치일 뿐”
따라서 분명한 것은, 미국 경제에서 중국 공급망은 예전보다 눈에 덜 띄기는 하지만 여전히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11월 대선에서 이기기만 하면 중국산 제품에 막대한 관세를 또 부과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은 일부 기업들의 탈중국을 부추길 게 분명하고, 시진핑의 대만 통합 위협도 그런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 결과 완제품을 생산하는 일부 국가들이 산업생산 역량을 더욱 키워 중국에 도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이 이제까지의 정책들을 극적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당분간 큰 변화는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는 게 <이코노미스트>의 진단이다. 많은 국가들이 중국의 투자와 중간재를 받아 완제품을 미국으로 수출하는 구조에 점점 더 만족해하고 있다. 중국의 거대한 규모와 제조분야의 전문성이 제공하는 경제적 효율성이 이런 추세를 유지하게 해 줄 강력한 힘이다. 따라서 “디커플링은 강력한 레토릭(수사)일 순 있지만, 바로 그것 자체(실제와 부합하는 것)는 아니다.”
그렇다면 한국정부는?
여기서 또 되풀이되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한국은, 또는 한국정부는 어떻게 하고 있나?
우회경로까지 포함하면 미중 간의 교역은 2018년의 트럼프 ‘관세 폭탄’ 이후에도 실질적으로 줄어들지 않았으며, 탈중국이니 디커플링, 디리스킹 또는 프렌드쇼어링, 리쇼어링 등 정치권의 화려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실익 추구에 매진하고 있는 현실이 드러나고 있다. “일본 반도체 르네상스”를 외치며 대만 반도체 제조업체 TSMC와 합작으로 구마모토에 10조 엔을 투입해 공장들을 짓고 있는 일본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뒤 맨 먼저 만난 외국 원수가 스가 요시히데 당시 일본 총리였고, 그것이 중국의 휘협을 줄이기 위해 동아시아의 반도체 공급망을 일본을 중심으로 다시 짜려던 미국정부의 의도에 따른 것이었음을 시사하는 얘기들도 나오고 있다.(<아사히신문> 2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