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사퇴론 일축…친명계 폭발 "독재 부역자들 응징"
이 대표 입장문 "당 모든 역량 하나로" 단합 호소
체포안 가결 최악 후폭풍…'심리적 분당' 치달아
지도부 나서 "같은 당 의원들이 대표 팔아먹어"
"암적인 존재" "차도살인" "피가 거꾸로 솟는다"
친명계 불붙은 분노에 비명계 일부 움츠리기도
이상민‧이원욱‧김종민 등은 "지도부 총사퇴" 반격
헌정사 최초의 야당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이후 더불어민주당이 '심리적 분당' 상태로 치닫고 있다.
이재명 대표가 당내 소수파 의원들에 의해 기어이 비수를 맞고 구속 위기에 처하게 되자 다수파인 이른바 친명계는 비명계를 향해 그간 자제해왔던 노기를 폭발시키며 시퍼렇게 날이 선 표현으로 적의를 분출하고 있다. 이에 질세라 비명계 핵심 의원들도 "우리가 아니라 당신들이 해당 행위자"라는 주장을 펼치며 이 대표의 사퇴를 요구함은 물론 지도부 총사퇴까지 거론해 친명계를 더욱 자극하는 형국이다. 이 대표가 직접 입장문을 내고 수습에 나섰지만 이번 가결 사태로 갈등의 골이 결정적으로 깊어져 총선을 앞두고 과연 봉합이 가능할지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체포동의안 가결 이튿날인 22일 오전 국회 본청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는 당 지도부가 나서 비명계를 집중 성토하는 이례적인 광경이 계속됐다. 이재명 대표를 대신해 회의를 주재한 정청래 최고위원은 "제 나라 국민이 제 나라를 팔아먹었듯이, 같은 당 국회의원들이 자기 당 대표를 팔아먹었다. 적과의 동침"이라며 "윤석열 검찰독재정권의 정적 제거, 야당 탄압의 공작에 놀아난 것은 용납할 수 없는 해당 행위다.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어 "압도적 지지로 뽑힌 이재명 대표를 부정하고 악의 소굴로 밀어 넣은 비열한 배신 행위가 벌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벌어지는 볼썽사나운 구태정치가 재현된 것"이라며 "끊임없이 이재명 대표를 흔들겠지만, 저희 이재명 지도부는 끝까지 흔들림 없이 이재명 대표 곁을 지키겠다. 누구 좋으라고, 이재명 대표의 사퇴는 없다. 이재명 대표 체제로 강서구청장 승리하고, 총선 승리를 위해 일로매진할 것"이라고 했다.
나아가 "어제 가결표를 찍은 사람들도 이재명 대표 단식장에 찾아와 옆에 와서 사진도 찍었을 것이고 '단식을 중단하십시오'라는 말도 했을 것"이라며 "결국 생각해 보니 그런 분들은 '단식 중단하고 감옥에 가십시오'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그런 가증스러운 과거 며칠 동안의 장면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참으로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비정한 짓을 저질렀다"고 혐오에 가까운 심경을 표출했다.
박찬대 최고위원도 "앞에서 날아오는 총탄보다 뒤통수에 꽂히는 돌멩이가 더 마음을 찢어지게 한다. 검찰독재정권의 정치 탄압에 똘똘 뭉쳐 싸워도 모자랄 판에 어떻게 동지의 등에 칼을 꽂을 수 있는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면서 "역사가 두렵지 않은 것인지, 당원과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의리조차 없는 것인지,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하고 희희낙락했던 자들의 최후를 벌써 잊어버린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일갈했다. 박 최고위원은 "배신과 협잡의 구태 정치에 수많은 당원과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모든 행위에는 그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라며 " 익명의 그늘에 숨는다고 그 책임이 사라지지 않는다.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져야 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역사상 최초로 야당 대표 체포동의안이 가결됐다. 검찰독재 윤석열 정권의 의도에, 그리고 국힘당의 의도에 우리 당의 의원들이 올라탔다"면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2선 후퇴를 요구하는 내용도 같이 들어있다는 것을 듣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이재명 대표를 탄핵한 것이라고 하는 말까지 있었다"고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그는 "저희들은 흔들림 없이 빠르게 수습하고 윤석열 정권 폭정에 맞서 싸워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경태 최고위원은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을 지난 2004년 3월 12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에 비유했다. 장 최고위원은 "국민과 당원께 죄송하다. 20여 년 전 노무현 탄핵소추안을 70%의 국민이 반대한다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가결했었다. 이는 국민의 의견을 무시한 국회의 결정에는 국민의 심판이 뒤따른다는 역사를 남겼다"면서 "국민은 두 번 당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잃어본 사람들에게는 절대 다시는 잃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와 결속이 있다"고 말했다.
서은숙 최고위원은 "이재명 대표는 그동안 정말 많이 인내했다. 포악하고 무도한 검사독재정권과 투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당내 투쟁이 본격화되면 국민들께 실망을 드릴까 봐 참고 참고 인내했다"며 "136명 가량의 정상적인 민주당 의원님들도 답답했을 것이다. 성실하게 의정활동하고 애당심을 가지고 당을 위해 노력했지만 언론은 그런 의원들의 활동에 큰 관심이 없었다"고 개탄했다. 이어 "반면 당과 당대표를 비판하고 분열적 발언을 하는 의원들의 이름과 발언은 크게 각광받았다"면서 "그동안 실력으로 평가받아 언론 방송에서 주목받은 적이 없던 의원들이 윤석열 정권하에서 당과 당대표를 비난하면 대서특필됐다. 신나서 떠드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 "일제 식민지 시절에 동포를 탄압한 친일파들이 권력의 사랑을 받았듯이 윤석열 검사독재시절에는 자기 당과 동지를 모욕하고 공격하는 분들이 언론 방송 특수를 누리고 있다. 그동안 인내하고 참은 것을 헤아리기는커녕 30명 가량의 의원들이 민주당에 폭탄을 던졌다"며 "30명의 소수가 136명 다수의 뜻을 꺾을 수 있었던 것은 30명의 소수가 윤석열 검사독재와 정치적으로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신자, 독재부역자들이 암적 존재인 것"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서 최고위원은 "말로는 '당을 위하여'라고 외치지만 그 포장지를 벗기면 자기 잇속 챙기기만 가득 차 있다. 민주당 의총과 민주당 중앙위원 결의대회에서 결의한 것과 정반대로 투표한 것은 해당 행위"라면서 "내부의 적부터 조치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지도부 외에 다른 친명계 의원들도 가세했다. 친명계 좌장인 정성호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자기 정치생명 이어가려고 검찰에 당대표를 팔아먹는 저열하고 비루한 배신과 협잡이 일어났다"며 "마지막까지 거래를 하려 하고, 조건을 달고 하더니 결국은 등에 칼을 꽂는 짓을 했다. 동지가 아니다. 이런 해당 행위자들을 용서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위 어금니와 잇몸이 심하게 아파 치료를 받고 있는데 너무 화가 나 술 몇 잔 마셨다"면서 "야만적 전체주의가 발호하려고 하니까 비겁한 기회주의자들이 함께 들고 일어나고 있다. 반드시 엄중하게 심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5선 중진 안민석 의원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어제 상황은 가결파의 '차도살인'이었다. 남의 칼을 빌려서 사람을 죽이는 것, 국민의힘을 빌려서 대표를 제거하겠다는 차도살인의 본질을 띠고 있다"며 "해당 행위를 넘어서 정치적으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격분했다.
이 밖에 수석 사무부총장인 김병기 의원은 페이스북에 "역사는 오늘을 민주당 의원들이 개가 된 날로 기록할 것"이라며 "이 대표의 자리를 찬탈하고자 검찰과 야합해 검찰 독재에 면죄부를 준 민주당 의원들에 경의를 표한다"고 비꼬았고, 전용기 의원은 "피가 거꾸로 솟는다. 생각보다 더 큰 싸움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이수진(비례대표) 의원은 "너무 분하고 처참하다. 온몸이 찢기고 갈리는 마음"이라며 "기어이 윤석열 정권이 쳐놓은 덫에 이 대표를 내던져야 했느냐"는 글을 올렸고, 강득구 의원은 "저는 그래도 동료 의원들을 믿었다. 망연자실"이라고 썼다.
이렇게 격앙된 분위기가 고조되자 비교적 온건한 비명계 의원들은 대체로 움츠러든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발언 수위를 낮추는가 하면 자신은 체포동의안에 반대했다고 억울함을 나타내기도 했다. 송갑석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 아예 나오지 않았고, 이병훈·조오섭 의원은 페이스북에 "의원총회에서 여러 의원들 앞에 나서 입장을 밝힌대로 체포동의안 부결에 표를 던졌다" "무기명 투표라는 국회법 취지보다 당원들의 의문에 답하는 것이 도리라 여겨 말씀드린다"는 글을 각각 올렸다.
비명계로 분류되는 고민정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의에서 "저는 부결표를 던졌다. 사람이 사경을 헤매는데 노무현처럼, 조국처럼 놓치고 싶지 않았다"며 "그러나 제가 이런 말을 한들 제 말을 믿어주겠느냐"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아울러 "저는 체포동의안의 당론 지정을 반대했다. 표 단속이 불가능한 사안을 당론으로 지정한다고 한들 가결을 찍을 의원들 마음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지도부가 부결로 의견을 모으고 의원들에게 공개적으로, 비공개적으로 계속해서 설득해 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초강성 발언으로 일관해온 반명계 의원들은 달랐다. 이상민 의원은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가결 선택에 후회가 없냐"는 진행자 질문에 "제 입장은 이미 공언을 다 했다. 후회가 없다"고 확언했다. 이 의원은 가결파 색출 움직임에 "그거야말로 당에 해로운 해당 행위"라며 "색출이 두려운 게 아니라 색출하는 행태가 몰상식하고 반민주적인 것"이라고 반격했다. 26일로 예정된 이재명 대표의 구속영장 심사를 두고는 "구속영장이 발부될 경우 대표직은 그만둬야 할 것"이라며 "옥중에서 뭐를 하겠다는 것은 제가 볼 땐 진짜 강짜다. 무슨 독립운동하다가 교도소 간 것도 아닌데, 비리 의혹 때문에 구속됐다고 하면 나중에 무고함이 밝혀진다 하더라도 리더십이 보장될 수 있나"라고 힐난했다.
이원욱 의원은 YTN 라디오 '뉴스킹' 인터뷰에서 "책임질 사람이 아닌 박광온 원내대표가 책임을 옴팡 뒤집어쓰게 된 것에 대해서 굉장히 우려스럽고 당혹스럽다"며 "지금 책임져야 될 사람은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기존의 지도부, 최고위원들이다. 총사퇴가 맞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진행자가 "그러면 이재명 대표도 당 대표를 내려놔야 하는 거냐"고 묻자 "그렇게 생각한다"고 단언했다. 그는 심지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국회 본회의에서 이 대표 체포동의안에 대한 설명을 하며 피의사실 공표를 했다는 민주당 다수 의원들의 반발에 대해 "그거는 전혀 근거 없는 얘기"라며 "법무부 장관으로서 체포영장에 대한 취지를 설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한 장관을 옹호했다.
김종민 의원도 SBS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서 진행자가 "최고위를 비롯한 지도부 전원이 사퇴해야 된다고 보느냐"는 물음에 "지도부가 새로운 통합적인 비대위, 혁신형 비대위로 가자는 결론을 내려지 못한다면 정치 경험이 많은 중진 의원들이 협의체라도 만들 필요가 있다"며 "뭐 배신이다, 출당시키겠다, 쫓아내겠다 이런 식의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게 되면 국민들이 보기에 민주당에 대한 신뢰만 점점 깎인다. 현재 있는 공식 지도부 말고 또 다른 실질적인 중진 의원들과 함께 고민을 모색해 봤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이낙연 전 대표는 이날 오후 전남 장성군 장성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21세기 장성아카데미 강연 직후 취재진이 입장을 묻자 "여러 가지를 생각해 봐야 될 때인 것 같다"고 특유의 모호한 화법을 구사했다. 이 발언이 전해지자 이 대표 지지층과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왕수박" "한결같이 엄중하다" "생각이란 걸 하지 마라" 등의 격한 반응이 봇물을 이뤘다.
이렇게 당 안팎이 들끓는 가운데 이 대표는 체포동의안 가결 이후 첫 입장문을 내고 울분을 표시하는 대신 혼란을 수습하는 데 중점을 뒀다. 이 대표는 이날 오후 2시쯤 발표한 입장문에서 "우리 역사는 늘 진퇴를 반복했다. 4‧19혁명으로 독재정권을 타도하자 군사쿠데타가 발발했고, 6월 항쟁으로 국민주권을 쟁취하자 군부야합세력이 얼굴을 바꿔 복귀했다"며 "이제 촛불로 국정농단세력을 몰아내자 검찰 카르텔이 그 틈을 비집고 권력을 차지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검사독재정권의 폭주와 퇴행을 막고 민생과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 윤석열 정권의 폭정에 맞서 싸울 정치집단은 민주당"이라며 "민주당이 무너지면 검찰독재의 폭압은 더 거세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의 부족함은 민주당의 주인이 되어 채우고 질책하고 고쳐달라. 이재명을 넘어 민주당과 민주주의를, 국민과 나라를 지켜달라"며 "검사독재정권의 민주주의와 민생, 평화 파괴를 막을 수 있도록 민주당에 힘을 모아달라. 당의 모든 역량을 하나로 모을 수 있다면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더 개혁적인 민주당, 더 유능한 민주당, 더 민주적인 민주당이 될 수 있도록 사력을 다하겠다"며 "국민을 믿고 굽힘 없이 정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민주당이 윤석열 정권에 맞서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임을 상기시키며 의원들과 지지자들에게 단합을 간곡히 호소한 것으로 해석된다. "당의 모든 역량을 하나로 모을 수 있다면"이라는 대목에서 그 심중이 여실히 드러난다. 아울러 비명계 측이 요구하는 것처럼 대표직에서 사퇴할 뜻이 전혀 없다는 점도 확실히 못박은 것으로 풀이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으로 타오르는 친명계의 분노의 불길이나, 총선에서의 생존 투쟁에 사활을 걸고 있는 비명계의 아우성이 당장 사그러들기는 어려워 보인다. 확전으로 갈지 휴전을 택할지는 26일 이재명 대표 구속영장심사의 결과가 1차적인 관문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