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띄우기 기금으로 전락한 외평기금

내년 총선까지 부동산 폭락 막기 위해

외평기금 끌어다 세수 펑크 채우려해

건전재정 외치며 부자감세? 사기술

2023-09-11     주영 경제칼럼니스트
주영 경제칼럼니스트

역대급 세수 펑크가 났다. 올해 7월까지 나라살림이 이미 43조 원 이상 구멍이 난 것이다. 이 추세면 올해 세수 부족분이 최소 50~60조 원 정도 될 것으로 추산된다. 우선 들어오는 수입이 왕창 줄어들었다. 그런데 써야 할 돈은 정해져 있다. 그렇다면 빚을 내야 한다. 적자국채를 발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으로 구멍 난 세수 부족분을 채우겠다고 한다.

 

국채 발행 대신 외평기금으로 세수 부족 채우려는 꼼수

정부도 일반 가정에서 자녀 결혼자금, 대학 등록금, 주택 마련 등 꼭 필요한 자금은 따로 빼서 관리하는 것처럼 약 67개의 각종 기금을 별도 관리한다. 각종 기금의 돈이 남거나 모자랄 때 적절하게 조정할 수 있는 기금이 바로 ‘공적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이다.

외평기금에서 돈을 빼서 공자기금으로 보내고, 공자기금에서 다시 돈을 빼서 세수 부족분을 메우겠다는 것이다. ‘외평기금 → 공자기금 →일반회계’의 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구멍 난 세수를 메우겠다는 것인데 이 돈이 무려 19~20조 원에 이른다. 도대체 왜 이렇게 하는 것일까?

많은 언론이 이를 가리켜 기막힌 묘수라고 칭찬을 하는데 정말 기가 찰 노릇이다. 이런 역대급 꼼수에도 칭찬을 해대는 언론 기사에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났다. 꼼수도 이런 꼼수가 없다. 사실상 분식회계에 가까운 꼼수다. 게다가 꼼수의 의도가 매우 불량하고 사악하기 그지없다.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다.

첫째, 적어도 내년 총선까지는 부동산 시장 폭락만은 막아보겠다는 의도가 아닌지 매우 의심스럽다. 가계부채가 커지고 시중금리가 왜곡되고 나중에 혹독한 대가를 치를지라도 내년 총선은 반드시 여당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겠다는 위험한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는지 모른다.

 

공자기금 규모 추이. 자료=기획재정부, 한국재정정보원

총선 승리를 위해 부동산 떠받치려는 의도 아닌가

채권시장에서는 통상 경험적으로 국고채 10조 원이 새롭게 발행되면 국고채(10년물) 금리가 약 7~10bp 상승한다고 보고 있다. 즉 20조 원에 이르는 대규모 적자국채가 발행되면 국채금리가 상승하고, 국채금리가 상승하면 시중금리를 큰 폭으로 끌어 올리고, 시중금리가 큰 폭으로 올라가면 대출이자가 크게 증가해 취약해져 있는 부동산 시장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 부동산 시장이 주저앉으면 내년 총선은 여당 국민의힘에 매우 불리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든 이를 막아보겠다는 것이다. 만약 이런 의도가 사실이라면 당장 수술이 필요한 위중한 환자에게 통증만 없애는 마약을 처방하며 병을 크게 키우고 있는 꼴이다.

이미 정부여당의 부동산 정책에서 그런 의도가 노골적으로 엿보인다. 소득에 상관없이 9억 원 이하의 주택에 5억 원까지 빌려주는 ‘특례보금자리론’이 이미 30조 원이 넘어섰다. ‘깡통전세’나 ‘역전세’가 발생해도 집주인은 집을 팔 필요가 없다. 정부가 부동산 규제의 마지막 보루인 DSR(총부채원리금 상환비율) 규제까지 풀어주면서 돈을 빌려준다. 최근에는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상품까지 내놓았다. 만기가 워낙 길어 사실상 DSR 규제를 피할 수 있는 상품이다. 그 외 부동산 관련 각종 세제, 대출 등 거의 모든 규제를 풀었다.

그러다 보니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려도 오히려 가계대출과 통화량(M2 광의의 통화)이 크게 증가하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주택담보대출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고 통화량도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던 2021년 8월 이후 불과 2년 만에 300조 원이 넘게 증가했다. 인플레이션이 우리 경제를 덮치고 있는데 정부는 사실상 금리 인하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다. 거꾸로도 이런 거꾸로가 없다. 말로는 집값 하향 안정을 이야기하지만 사실상 집값 떠받치기에 올인 하는듯한 모습이다. 이 모든 것이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국세수입 전망

‘건전 재정’ 외치면서 감세 정책 펴는 사기술

둘째, 정부는 입만 열면 건전 재정을 외쳤다. 세수 펑크가 나면 적자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그런데 적자국채를 발행하는 순간, 건전 재정은 사기였다는 것을 정부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다. GDP대비 국가채무비율도 상승할 수밖에 없다. 자기 부정이다. 그건 못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랫돌 빼서 윗돌을 괴는 이런 꼼수가 나오는 것이다.

건전 재정을 외치면서 감세 정책을 펴는 것 자체가 사실상 사기에 가깝다.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다. 이번 세수 펑크도 감세 정책 영향이 컸다. 꼼수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감세 정책을 철회하고 제대로 된 세입 확충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참고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주요 선진국들 대부분 세금을 올리면서 긴축 정책을 펴고 있다. 그게 정상적인 정부의 모습이다.

꼼수의 그 끝은 잔인할 정도로 참담할 수 있다. 시중금리가 올라야 할 때는 올라야 한다. 그래야 과도한 자산 버블이나 좀비 기업들이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구조조정 되면서 건강한 경제구조가 만들어진다. 미루면 미룰수록 성장은 무너지고 치러야 할 대가만 커질 뿐이다.

또한 외평기금은 부동산 시장을 위한 기금이 아니다.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조성된 기금이다. 외평기금으로 세수 부족을 메우겠다는 것은 시장에 원화 가치 하락을 용인하는듯한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 결과적으로 원화 가치 하락을 더욱 부추기는 일이다. 이미 2년 연속 대규모 무역적자가 확정적이다. 외환보유고는 갈수록 줄어든다. 최근 달러-원 환율은 1330원을 훌쩍 넘어섰다. 우리 경제 관련 거의 모든 지표가 최악으로 달려가고 있다.

다른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꼼수를 버리고 정수를 택하면 된다. 그럼에도 총선 따위를 생각해서 꼼수만 부린다면 가계부채 위기가 하늘 끝을 찌르고, 심각한 경기 불황이 닥쳐 여기저기 공장들이 문을 닫고, 실업자가 쏟아지는 최악의 상황에서 우리만 금리를 올려야 하는 지옥 같은 처지에 내몰릴 수도 있다. 그런 날이 오지 않길 바라지만 그런 날이 온다면 그 책임은 오롯이 먹고사는 문제는 관심도 없고 이념만 중요하게 여긴 현 정부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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