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 없는 국민의힘…이재명 단식장 옆 '먹방 행사'
수산물 판촉행사 열고 시식회 한다며
"와서 고등어와 전복 드시기 바랍니다"
태영호는 "막말 박영순 제명하라" 소란
만류하는 척은커녕 모욕과 조롱 일삼아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극우 성향 사이트 '일간 베스트'(일베)와 극우 단체 '자유청년연합' 회원 등 100여 명은 2014년 9월 6일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의 단식농성장 앞에서 치킨, 피자, 햄버거, 핫도그, 맥주 등을 시켜먹고 '인증샷'을 찍는 등 이른바 '폭식 투쟁'을 해 국민의 공분을 샀다.
이와 같은 반인륜적 행위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에게도 그대로 벌어졌다. 지난해 12월 14일 신자유연대 대표인 김상진 씨는 "선택적 시체팔이"라고 방송에서 막말을 해 유가족을 2차 가해 했으며, 같은 달 19일에는 이 단체 소속으로 추정되는 한 여성의 막말로 유가족이 기절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지난 7월 25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선고가 있었던 헌법재판소 앞에서는 극우 유튜버가 이태원 유가족을 향해 "야! 이태원은 북한 소행이다! 북한 소행!" "이 좋은 날에 뭐하냐"고 조롱을 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유가족 2명 이상이 실신했고 1명이 부상해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부의 건설노조 탄압에 항거해 분신한 고 양회동 열사의 장례 기간에도 극우단체의 방해는 이뤄졌다. 양 열사의 장례식 첫날인 지난 6월 17일, 한 극우 단체 소속 남성은 대형 확성기를 들고 추도식에 참석한 유가족, 시민들에게 욕설을 했다.
지난 3·1절에는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수요시위에 휴대형 일장기를 든 극우 반민족 단체가 난입해 '정의연 해체' '윤미향 구속' 따위의 구호를 외치며 집회를 방해했다. 이들은 집회에 참가한 이용수 할머니를 향해 "가짜 위안부 피해자"라고 막말했다.
이런 행동이 손가락질을 받는 이유를 굳이 설명할 필요 없다. 인간의 도리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법이나 규정으로 정하지 않아도 인간이라면 마땅히 보여야 할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인간적 도리도 없는 '먹방 예고'
정치에 있어서의 도리 역시, 일반적인 의미의 도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 행위도 우리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법으로 명문화하지 않아도 되는, 즉 인간이라면 마땅히 해야 하는 도리 안에서 이뤄지는 하나의 행위에 불과하다.
지난 7일 국민의힘 안병길 의원(부산 서구동구)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단식 농성장 100m 옆에서 국민의힘 주최로 수산물 판촉 행사를 열고 시식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9일째 단식 중인 이 대표를 향해 "우리 고등어와 전복을 드시기 바란다. 민망해할 것도 없다"면서 "이것이 명분없는 단식을 끝내는 방법"이라고 조롱조로 글을 썼다.
곡기를 끊는 단식 행위는 생명 유지 활동에 대한 중단 선언이다. 그래서 단식 투쟁은 죽음을 각오하는 결사 투쟁이며, 인간에게 생명은 단 하나이기 때문에 죽음을 각오한 단식 투쟁은 다른 방법으로는 풀 수 없어 최후에 선택한 수단이기도하다.
여당 의원으로서 이 대표가 내세운 명분을 동의하는지 하지 않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당적을 떠나 죽기를 각오한 동료 정치인의 단식농성장 인근에서 수산물 시식을 열고 시식까지 권장하는 언사는,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을 저버린 행위임은 물론, 극한 상황에 놓인 인간에 대한 조롱이자 모멸이다.
흔히들 누군가에게 존경받기 위해서는 남도 존경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금배지를 단 정치인이라고 이러한 기본적인 이치가 다르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안 의원 자신이 죽기를 각오하고 단식에 나서는데, 민주당 의원들이 근처에서 우리 농산물을 판매하며 "우리 쌀밥과 김치를 드시기 바란다. 민망해 할 것 없다"고 하면 국민의힘이 환영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정치적 도리도 없는 '생떼 항의'
정치적 도리는 또 어떠한가.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은 지난 7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민주당 박영순 의원이 자신에게 "쓰레기"라고 원색적인 비난을 한 것에 대해 국회 본청 앞 천막을 찾아가 이 대표에게 항의했다.
천막에 있던 민주당 의원들이 단식 중인 상황을 고려해 원내대표에게 말을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는 막무가내였다. 민주당 의원들이 그를 밖으로 안내하는 과정에서 태 의원이 거절해 단식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태 의원은 농성장 밖에서 기자들에게 "계속 찾아올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태 의원의 억울함은 알 만하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박 의원은 그에게 "북한에서 온 쓰레기"라고 했다고 한다. 다만 막말 한번 들은 일로 야당 대표의 단식까지 훼방하는 게 정치인으로서 도리에 맞는지 의문이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조차 "제가 대표였다면 이유 불문하고 이 대표가 단식하는 동안에는 저렇게 시비조로 가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견을 제시할 게 있으면 상대방 원내대표를 통해 공식적으로 항의하고 협상할 문제인데 단식하고 있는 사람한테 가서 제명 요청을 하는 것은 핀트가 안 맞다"고 했다.
또한 태 의원 자신이 막말을 이유로 그럴 자격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태 의원은 지난 4월 쓰레기(Junk), 돈(Money), 섹스(Sex)의 앞글자를 따 민주당을 'JMS 민주당'이라고 해 파문을 일으켰다. 또 지난 2월 13일 4·3 평화공원을 찾아 "4·3 사건은 명백히 김일성씨 일가에 의해 자행된 만행"이라고 해 국민적 공분을 샀다.
그러나 태 의원은 자신의 막말로 인해 최고위원직에서 자진 사퇴를 하면서도, 막말로 상처 입었을 국민이나 제주도민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자진 사퇴 당시 발표한 기자회견문 전문에는 다음과 같이 사죄 표현이 두 번 적혀 있다.
"저의 논란으로 당과 대통령실에 누가 된 점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다시 한번 당과 대통령실에 누가 된 점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국민은 사죄 대상에 없었다.
단식 외면하는 정부·여당…정치의 실종
아울러 안 의원의 '먹방 예고', 태 의원의 '단식 방해' 외에도 야당 대표의 단식을 둘러싼 집권 여당 의원들의 행동은 대한민국 국회에 정치라는 게 존재하는지 의심스럽게 한다. 여당 지도부나 정부 고위관계자에게도 기존의 정치 문법은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윤건영 민주당 의원(KBS <최경영의 최강시사>, 9월 8일) 야당 대표가 단식을 하면 정부여당 입장에서는 와서 들어야죠. 그게 기본이지 않습니까? 상식이고. 예를 들어서 2019년 황교안 대표가 단식을 할 때 5일 만에 이낙연 총리가 현장에 가서 얘기를 나눴어요. 한덕수 총리를 비롯해서 지금 많은 내각에 있는 사람들이 이재명 대표 단식장을 하루에 몇 번씩 지나갑니다. 국회 본회의가 있으니까요. 들여다보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어요.
황교안 대표의 단식뿐만 아니라 지난 2016년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를 촉구하면서 7일째 단식을 이어갈 당시에도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찾아가 단식 중단을 요청하며 대화를 시도했다. 2018년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드루킹 특검을 이유로 단식을 할 때 역시, 단식 8일차에 우원식 원내대표가 단식 중단을 요청했다.
그러나 9일째 단식 중인 이 대표에게 정부·여당 관계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를 찾아온 유일한 여당 의원이 자신에게 막말을 했다고 항의하러 찾아온 태 의원이라는 것은 한국 정치를 한없이 초라하게 만든다.
▷김두관 민주당 의원(YTN <뉴스킹 박지훈입니다>, 9월 8일) 과거 같으면 벌써 대통령 정무수석이 다녀가거나 대통령 비서실장이 다녀가는 게 보통 상례인데 이재명 대표를 향한 대통령의 인식이 한순간에 바뀌기는 어렵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도 한덕수 총리에게 건의 말씀을 드리고 다른 의원님들도 그렇게 했는데 제가 이렇게 할 때는 상당히 좀 "한번 검토해 보겠다" 이렇게 답변을 했었거든요. 대정부 질문 첫날에. 그런데 지금 (총리가) 이틀째 사흘째 답변을 하시는 걸 보니까 아주 강한 톤으로 의원들의 질의에 반박도 하시고 어떻게 보면 좀 싸움을 거는 것처럼 보여서 약간 입장이 선회한 것 같더라고요.
결국 정부·여당이 카운터파트인 야당과 대화할 생각이 없다는 의미다. 정치의 실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