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 , 돈으로 자국내 핵오염수 투기 반대 무마

수백억엔 기금 만들어 피해주민들 보상 설득

경산성 금전보상책 이후 ‘절대반대’ 수그러져

기시다 후쿠시마 방문 뒤 각의에서 시기 결정

주민과의 대화 통해 오염수 강물 투기 포기한

미국 스리마일 원전사고 처리방식과 대조적

2023-08-20     한승동 에디터
18일 일본 도쿄 총리 관저 앞에서 시민들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방류 준비를 마친 일본 정부가 개시 시점을 고심하는 가운데, 이날 개최된 한미일 정상회의 이후에 방류 개시 날짜가 정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2023.08.18. 로이터 연합뉴스

기시다 후미오 일본총리가 22일 쯤 각의를 열어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 투기 시기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19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는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담에 참석한 뒤 21일 도쿄전력의 후쿠시마 제1원전을 찾아가 현장상황을 확인하고 전국어업협동조합연합회(전어련) 관계자들을 만난 뒤 22일 각료회의를 열어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출 시기를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시다 총리의 이런 행보는 18일(현지시각)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에 관해 한미 정상들에게 설명해 이해를 얻은 뒤 밟게 될 것으로 예상돼 온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 투기 수순이 그대로 실행에 옮겨질 것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기시다 총리는 워싱턴에서 기자들에게 귀국 뒤 21일 “도쿄전력의 최고위 간부가 폐로(원전 폐기)와 부흥에 강한 각오를 가지고 (일을) 추진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내 생각도 직접 얘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인 방출 시기에 대해서는 “안전성 확보, 풍평(소문) 대책 등의 상황을 정부 전체 차원에서 확인해서 판단해 갈 것”이라며 “현시점에서 예단을 갖고 코멘트하는 건 삼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아사히>는 복수의 정부 관계자들의 말을 빌어 “총리는 21일에 전어련 쪽과 면회하고, 22일에 관계 각료회의를 열어 방출시기를 결정하는 방향으로 조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12일 서울 시내에서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 투기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는 한국 시민들. 2023.08.12. 로이터 연합뉴스

일본정부 해양 투기 해법 핵심 ‘돈 뿌리기’ 완료단계

기시다 총리의 이같은 행보는 실은 요식절차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중요한 것은 후쿠시마 핵오염수의 해양 투기에 여전히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후쿠시마 인근 지역 어민을 비롯한 일본 수산업계의 반발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그 동안 경제산업성 등이 주도면밀하게 진행해 온 작업이 마침내 완료단계에 이르렀음을 말해준다는 관측들이 나오고 있다. 어민 등 수산업계 무마작업의 핵심은 ‘돈 뿌리기’다.

지난 11일 <아사히> 보도에 따르면, 일본정부는 어업 종사자들에 대한 지원책으로 후쿠시마와 인근 현 어업 종사자들을 염두에 둔 300억 엔(약 2800억 원) 기금을 마련해 어선 연료비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지난해에는 추가경정예산에서 전국 어업 종사자들을 위한 500억 엔(약 4600억 원) 기금도 책정했다.

이때부터 핵오염수 해양 투기에 “단호 반대”였던 전어련의 자세가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올해 1월 13일 일본정부가 각료회의에서 핵오염수 방출 시기를 올해 봄부터 여름 무렵으로 잡았을 때 전어련은 담화를 통해 “해양 방출에 반대하는 것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고 했으나 ‘반대’라는 말 앞에 늘 붙이던 ‘단호’니 ‘절대’니 하는 말을 뺐다. 지난 6월의 전어련 총회에서 통과시킨 특별결의에도 ‘단호’라는 말이 빠진 ‘반대’만 명기됐다. 그러면서 “기금 창설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는 말을 덧붙였다.

 

도쿄전력 후쿠시마 사고원전에서 7㎞ 떨어진 나미에 쪽에서 바라다 본 사고원전과 주변 모습 2023.02.28. 로이터 연합뉴스

피해 어민들 보상으로 회유하는 장치

각종 기금들은 예컨대 후쿠시마 등 일본의 태평양 연안 해역에서 잡힌 수산물에 대한 소비가 후쿠시마 원전사고 뒤 급속히 줄면서 현지 어민들의 조업일수 단축과 생산 감소 등에 따른 손실을 보상 내지 배상해 주기 위한 장치다. 뿐만 아니라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 투기로 약간의 회복 기미를 보이던 수산물 소비가 다시 얼어붙게 될 경우, 그리고 무엇보다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사실상의 전면 수입금지 조치를 취한 중국의 대응에 따른 피해까지도 정부 돈으로 메워 주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교육과 설득 작업 병행, 내용보다는 형식

돈과 함께 각종 교육 및 설명회들이 줄기차게 열렸는데, 이 역시 경제산업성이 주도했다. 2020년 4월부터 핵오염수 문제에 관한 ‘관계자 의견을 경청하는 장’이라는 모임이 후쿠시마뿐 아니라 일본 전국의 어업, 농업, 식품, 유통, 여관업 등의 ‘관련단체’와 지자체장들을 대상으로 7차례 열렸다. 매번 1개 단체가 10분 정도 ‘의견’을 얘기하고, 경제산업성과 부흥청 등 정부기관이 5분 정도 질문하는 모임이었는데, 질문은 거의 없었다. 무반응이었다. 그냥 듣기만 했다. “해양 방출을 빨리 진행하려는 정부가 관계자들에게 뭐든 얘기하게 만든 ‘통과의례’였다"고 전어련의 사카모토 마사노부 회장은 말했다. 일본정부에겐 의견의 내용이 아니라 단지 절차를 밟았다는 형식이 중요했다.

그 모임이 시작된 지 반년 뒤인 2021년 4월에 스가 요시히데 당시 내각은 “2년 뒤 해양 방출” 결정을 내렸다. 경청하는 모임은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교육과 설득 작업은 전국의 고교 등 교육기관과 지역기관, 주민단체들을 대상으로도 진행됐다.

원래 일본정부는 2015년 8월에 후쿠시마 현 어업협동조합연합회(현어련)에 대해 “관계자의 이해 없이는 처리수의 어떤 처분도 하지 않겠다”는 것을 문서로 약속했다. 그래놓고 오염수 저장 탱크 부지가 모자란다는 걸 이유로 핵오염수 해양 투기 계획을 강행하면서 필요한 요식절차 밟기에 나섰다.

 

후쿠시마 사고원전에서 55킬로미터 떨어진 후쿠시마 현 신지마치의 쓰리시하마항 배에 실려 있는 그물에 걸린 물고기와 게들. 2023.03.01. 로이터 연합뉴스

‘과학적으로 안전 입증’ 정부 주장 일본인들도 불신

사카모토 회장이 사는 곳은 사고원전인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200㎞나 떨어져 있는 쵸시라는 곳인데도 그곳에서 30년 이상 펜션을 운영해온 사람의 장부에는 원전사고 직후 관광객이나 낛시꾼들이 사라졌고, 사고 뒤 4년이 지났는데도 매상은 여전히 제로에 가까운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곳 여관과 호텔 4곳이 문을 닫았다. 일본정부 주장과 달리 일본 국민들도 다수가 과학적으로 안전함이 입증됐다는 정부 언설과 매스컴 보도를 그다지 믿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사카모토 회장은 “처리수가 과학적으로는 안전하다고 해도 일반인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다. 12년 전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2011년 3월 11일 대지진과 함께 시작된 후쿠시마 원전폭발 사건 때와 같은 피해가 12년이 지난 2023년의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 투기로 또 다시 발생하지 않기만을 바라지만, 아무 문제가 없다는 정부 쪽 얘기는 별로 믿지 않는 분위기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전어련도 최근까지 일본정부가 내세우는 ‘ALPS로 처리한 오염수’ 즉 ‘처리수’라는 말을 거부하고 ‘오염수’라는 말을 썼다. 2020년 6월 23일 총회에서 발표한 특별결의에도 “전국 어업 종사자, 국민의 이해를 얻을 수 없는 오염수의 해양 방출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명기했다.

‘돈 뿌리기’로 바뀌는 분위기

그런데 돈이 뿌려지면서 분위기가 변하고 있는 것이다.

돈 뿌리기를 시작할 때 정부 관계자는 이렇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어련과는 대책, 즉 돈으로 타협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했다.”(<아사히> 8월 11일)

지난 7월 14일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산업상을 만난 뒤 사카모토 회장은 왜 ‘단호 반대’를 표명하지 않았느냐는 기자 질문에 “말 장난을 하자는 게 아니다. 반대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7월 18일 후쿠시마 북쪽에 있는 소마후타바 어업협동조합은 정부와의 의견교환 장에서 ‘단호 반대’를 표명했다. 그곳 곤노 도시미쓰 조합장은 전어련이 ‘단호’라는 말을 빼버린 것에 대해 “생각은 많지만 말을 삼가겠다”고 했다.

전어련 이사로 미야기 현 어업협동조합 데라사와 아키히코 조합장은 표현방법을 두고 전어련 내에서도 협의를 했다면서 “사고피해를 당한 지역과 전국 사이에는 온도차가 있다”고 말했다. “원전폐기가 끝날 때가지 30년, 40년간 후쿠시마와 미야기의 어업 종사자들은 근거없는 풍평(소문) 피해를 계속 입을 우려가 있다. 표현이야 어찌됐든 반대하는데는 변함이 없으나, ‘단호 반대’라며 우리가 떠들면 풍평을 부채질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고도 했다. 

실은 풍평이 근거없는 것인지 여부도 지금은 아무도 모른다. 일본정부는 시종여일 “처리수는 과학적으로 안전”하며 “국제적 안전기준에 부합”한다며 “아무런 피해도 없다”고 주장하지만,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 투기는 ‘과학적 문제’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제’이기도 하다.

 

핵오염수 저장 탱크들이 들어차 있는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 모습. 2023.01.19. AP 연합뉴스

‘과학’만 앞세우는 ‘비과학’적인 일본정부

8년 전인 2015년에 “관계자들의 이해를 얻지 못하는 한 절대 방출하지 않겠다”는 사회적 약속을 한 일본정부가 이제와서 그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내버리고 조만간 해양 투기를 감행할 태세다. 그로 인한 일본 국민의 피해와 불안을 일본정부는 돈으로 무마할 작정이다. 하지만 피해자는 일본에만 있는 게 아니다.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금지한 중국, 그리고 수산물에 대한 불안과 소비 위축이 시작되면서 경제적 정신적 피해가 커져 가고 있는 한국 등 이웃나라들과 태평양 도서국들, 그리고 태평양 등 광범위한 해양생태계로 연결돼 있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일본정부는 이들에 대해 관심도 책임감도 없어 보인다. 오직 ‘과학’만 앞세우며, 알기만 하면 아무 문제 없다는 식의 지극히 ‘비과학적’인 자세만 고수하고 있다.

 

지난 18일 일본시민들이 도쿄의 기시다 총리 관저 앞에서 "원전 오염수 독을 바다에 흘려보내지 마라" 등이  내용을 적은 피킷을 들고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 투기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23.08.18. 신화 연합뉴스

일본과는 달랐던 미국 스리마일 원전사고 처리

1979년에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스리마일 섬에 있던 원자력발전소 2호기에서 노심이 녹는 사고가 일어났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원전사고였다. 마지막 순간에 원인이 밝혀지면서 폭발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원자로 노심이 녹아내리면서 방출된 트리튬(삼중수소) 등이 포함된 오염수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가 후쿠시마 핵오염수 처리에서처럼 큰 문제가 됐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와 원전사업자 쪽은 처음엔 스리마일 섬을 휘감고 흘러가는 서스퀘해나 강에 흘려보낼 방침이었다. 하지만 사고원전에서 26㎞ 하류에 있는 랭커스터 시와 지역 환경보호단체들이 NRC와 사업자를 제소했다. “음용수로 강물을 사용하고 있었다. 주민들의 불안이 컸다”고 1980년부터 10년간 랭커스터 시장을 지낸 아서 모리스는 말했다.

그 뒤 화해가 성립돼 처리방법 결정은 미뤄졌고, NRC는 법률에 따라 지역주민과의 대화를 위한 ‘조언(助言) 위원회’를 설치했다. 2대째 위원회 의장을 맡았던 모리스는 “주민들의 신뢰를 얻기 위한 이례적인 조치였다”고 했다. 그만큼 중대한 사고였다고도 할 수 있다.

위원회는 주변 자치체 수장들과 지역주민, 과학자 등 12명으로 “공평하고 균형있게” 구성됐으며, 무보수였다. 파손된 연료 제거와 오염수 처리방법 등을 논의했고 100명이 넘는 청중들이 모여들어 그 과정을 지켜보기도 했다. 언론에도 공개됐다. 논의시간은 주민들이 참여하기 쉽도록 오후 7시부터 열렸다. 질의응답이 이어지고 3시간을 훌쩍 넘긴 날들도 있었다. 위원회는 1993년까지 13년간 78회나 열렸다. 모리스는 “불안해 하던 주민들에게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 주었다”고 평가했다.

위원회는 오염수를 강에 투기하는 데에 반대하기로 결정했다. 위원회에 처리방식을 결정할 권한은 없었으나 NRC와 사업자 쪽은 위원회의 판단을 무시할 수 없었다. 사업자는 최종적으로 증기방출 방식을 택했고 1990년대 말부터 2년 반에 걸쳐 약 9000의 오염수를 대기로 방출했다.(<아사히> 2023년 7월 2일)

1986년 4월 26일에 일어난 옛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사고 처리도 일본식 자연계 투기방식이 아니라 콘크리트로 녹은 노심의 방사능 물질 지하침투를 막고 전체를 봉인하는 방식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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