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관 청문회 '지옥문' 되나…'방송장악위원장' 거센 반대
8월 중순 인사청문회…야당이 보이콧? 가짜뉴스
이재명 "정권이 홍위병 집합소…이동관 화룡점정"
전·현직 언론인 단체 15곳 "모든 수단 써 반대투쟁"
아들 학폭 때 하나고 이사장에 청탁 전화 드러나
"시험 본 뒤에 전학 갈 수 있도록 미뤄달라" 부탁
임시사무실 출근 안 하고 잠행…기자들 피하는 듯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를 절대 용인할 수 없다는 언론계와 야권의 저항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전·현직 언론인 단체 15곳이 긴급 공동 기자회견을 개최하는가 하면,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해 이 후보자의 실상을 국민 앞에 낱낱이 폭로하겠다고 벼르는 중이다. 이들은 모두 윤석열 대통령이 이제라도 이 후보자 지명을 철회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촉구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으레 그렇듯 비판 여론이 거세도 딴청만 피우며 입을 다물고 있고, 특히 이 후보자는 지명 이후 다시 '잠수'를 탄 채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민주언론시민연합, 방송기자연합회, 새언론포럼, 언론개혁시민연대, 자유언론실천재단, 전국언론노동조합,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한국기자협회,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한국방송촬영인협회,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영상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 등은 31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동관 방통위원장 후보 지명에 대한 현업 언론인들과 시민단체들의 입장'을 발표했다.
이들은 "군부독재 시절에나 횡행하던 방식의 언론탄압을 통해 헌정질서를 무너뜨린 장본인이 바로 이동관"이라며 "정순신 낙마 사건으로 국민적 질타를 받았던 윤석열 정권이 그보다 더한 악질적 폭력과 갑질로 점철된 이동관을 끝까지 밀고 가겠다는 것은 결국 국민과 싸워서라도 언론, 방송을 손아귀에 넣겠다는 독재 선언에 다름 아니다"라고 규정했다.
아울러 "특히 방송통신 분야에서는 극단적 편향성을 띤 극우 유튜브와 종편에 출연한 것 말고는 아무런 정책 전문성을 찾을 수 없는 문외한"이라며 "우리 현업 언론인들과 시민사회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혐오와 편향, 통제와 폭력으로 점철된 윤석열 정권의 언론탄압에 맞설 것"이라고 선언했다.
야당도 들끓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이날 국회 본청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통령이 끝내 원조 방송장악 기술자, 이동관 특보를 방통위원장으로 지명했다. 통일부 장관에는 김정은 타도, 시진핑 제거를 주장하는 김영호 교수를 임명 강행했다"면서 "현재도 내각에는 대통령 부부 심기 경호에만 열중하며 궤변으로 국민을 우롱하는 인사들이 가득하다"고 말했다. 이어 "여기에 방송장악위원장 이동관 특보까지 더해지면, 윤석열 정권은 홍위병 집합소라는 오명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며 "인사 참사의 화룡점정이나 마찬가지인 이동관 특보 지명을 철회하고 국민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박광온 원내대표는 "이동관 후보자는 과감한 규제 혁신으로 글로벌 미디어 산업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언론을 비즈니스로만 보면 언론의 자유와 독립과 같은 본질적 가치는 훼손된다"면서 "YTN 민영화, KBS2 민영화, 그리고 MBC 민영화와 같은 주요 방송사들에 대한 민영화 시도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걱정이 벌써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은숙 최고위원은 "이동관 씨의 결격사유는 차고 넘친다. 자신이 저지른 언론방송 탄압 사례, 아들 학폭 사건 개입, 배우자 인사 청탁 의혹 등 다 소개하기 힘들 정도"라며 "지금까지의 의혹만으로도 1년 내내 인사청문회를 해도 모자랄 판이다. 이동관 씨는 인사청문 대상이 아닌 수사 대상"이라고 말했다.
이동관 후보자는 지난 2012년 5월 무렵 아들의 학교폭력 사건이 하나고등학교 교직원 회의에서 거론되고 이후 전학을 갈 상황에 놓이자 당시 하나고 김승유 이사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아들이 시험을 본 뒤에 전학을 갈 수 있도록 미뤄달라"고 부탁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YTN 보도에 따르면 김 전 이사장은 "새로 전학 간 데서 시험을 치면 불리하니까 '시험은 여기서 치고 가게 해 주십시오' 하는 얘기가 있었다"고 당시 통화 내용을 전했다. 하나고는 일반고와 교육 과정이 달라서 전학을 가자마자 새 학교에서 시험을 보면 내신에서 불리해지니까 전학을 늦춰 달라고 학교 이사장에게 요청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국회 소통관 브리핑에서 "이동관 방통위원장 후보가 학교폭력 가해자 아들을 위해 구체적 청탁을 한 정황이 드러났다.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전화했다'던 해명은 예상한 대로 새빨간 거짓말이었다"며 "하나고가 학폭 사건을 인지하고도 법이 규정한 학폭위를 열지 않은 것은 결국 이동관 후보자의 청탁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해 학생들의 고통에 눈 감고 학폭 아들의 내신만 신경 쓴 이동관 후보자는 공직자로서의 자격 상실"이라며 "아들 학폭 무마에도 불구하고 언론장악 기술자를 방통위원장에 앉혀 공영방송을 장악하려는 윤석열 정권의 파렴치한 욕망에 분노한다"고 밝혔다.
이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는 8월 중순쯤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번 주에 이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면 방통위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여야 간사가 청문회 일정과 증인 채택 등을 협의하게 된다. 인사청문회법에 따라 임명동의안 제출 후 20일 안에 인사청문을 마쳐야 하는 만큼 8월 16·17일 개최될 가능성이 높다. 야권은 학폭 사건 당시 하나고 이사장이었던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도 청문회 증인에 포함시키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에서는 민주당이 청문회 자체를 보이콧 할 것이라며 근거 없는 가정을 토대로 비난 공세에 나섰다. 김민수 대변인은 논평에서 "민주당이 국회의 의무이자 권리인 인사청문회조차 하지 않겠다고 한다"면서 "내정도 되기 전에 온갖 억측과 의혹 제기를 일삼더니 이제는 대놓고 청문회를 못 하겠다고 떼를 쓴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뚱딴지같은 소리라는 입장이다.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1년 내내 청문회를 해도 부족하다. (보이콧은) 전혀 논의된 바 없다"며 "오히려 청문회를 더 잘 준비해서 문제점을 끌어내야 한다"고 일축했다. 과방위 민주당 간사인 조승래 의원도 "이 후보자에 대해 제기된 의혹을 청문회를 통해 확인할 필요가 있다"면서 "철저한 검증을 위해 여당과 이 후보자는 자료 제출과 증인 채택 요구를 전폭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을 둘러싼 이 모든 의혹과 성토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이동관 후보자는 지명 뒤 다시 잠행에 들어간 채 모습을 감췄다. 그는 이날 오전 과천정부청사 방통위 인근에 마련된 후보자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고 기자들을 피했다. 방통위는 전날 저녁 방통위 출입 기자들에게 문자로 "위원장 후보자는 내일 인사청문 서류 준비로 외부 일정을 실시할 예정임을 알려드린다. 추후 일정은 확정되면 공지하도록 하겠다"고만 전했다.
이 후보자는 지난 28일 대통령실 출입 기자들에게 "야당과 비판 언론의 질책이나 비판에 겸허하게 귀를 기울이겠다"고 말한 바 있다. 정작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은 없었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은 '질의응답은 안 하느냐'는 질문에 "방통위 기자들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면피성 답변을 했다. 이 후보자는 결국 방통위 인근에 위치한 임시사무실에 나타나지 않았고 기자들은 의례적인 출근길 발언도 못 들은 채 헛걸음만 한 셈이 됐다.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이는 과거 방통위원장 후보자들과 비교해 이례적인 행보다. 2014년 박근혜 정부 때 방통위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최성준 방통위원장은 3월 14일 지명됐고, 다음 날인 3월 15일 출근길에서 기자들과 만나 질문에 답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2017년 7월 3일 방통위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이효성 당시 성균관대 교수 역시 지명 다음 날인 7월 4일 과천정부청사 방통위 인근에 마련한 임시사무실 앞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질문에 답했다. 2019년 8월 9일 금요일에 방통위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한상혁 당시 법무법인 정세 대표변호사도 주말이 지나고 곧바로 8월 12일 월요일 과천정부청사 부근 임시사무실로 출근하면서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진행했다.
하고 싶은 말만 일방적으로 쏟아낼 뿐 정작 국민들이 듣고 싶어하는 주요 현안에 대해선 입장을 밝히지 않거나 기자회견을 악착같이 회피하는 건 윤석열 대통령의 고질적 습성이다. 이동관 방통위원장 후보자 역시 '장악'에만 몰두할 뿐 '소통'에는 뜻이 없다는 징후가 벌써부터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