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이 장난인가…서울-양평 고속도로 단번에 '백지화'

'종점 변경' 김건희 일가 특혜 의혹에 적반하장

처가 카르텔 '게이트' 비화하자 정치공학적 술수

원희룡 "필요하면 다음 정부서 하라" 무책임 극치

민주 "의혹 덮으려 꼼수…기존 노선대로 추진해야"

예타 조사 마친 뒤 노선 변경, 20년 동안 없던 일

2023-07-06     김호경 에디터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서울~양평 고속도로에 대한 가짜뉴스 관련 국민의힘 국토교통위원회 실무 당정협의회에서 관계자와 대화하고 있다. 2023.7.6. 연합뉴스

갑작스러운 종점 변경으로 김건희 씨 일가 특혜 의혹이 제기된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이 전면 중단됐다.

양평 지역의 숙원 사업으로 2008년부터 추진됐고 2021년 4월 예비타당성 조사까지 통과한 1조 7000억 원대 대형 국책 사업이 윤석열 정권에 의해 하루아침에 백지화한 것이다. 고속도로 종점부가 기존 양서면 국수리에서 김건희 씨 일가의 토지 7000평 이상이 자리 잡고 있는 강상면 병산리로 느닷없이 변경된 과정에 대해 성실하고 투명하게 해명하기는커녕 막무가내로 판을 뒤엎겠다는 형국이다.

명백한 잘못이 있어도 이를 지적하면 교묘하게 본질을 비껴가거나 도리어 화를 내며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현 정권의 국정 행태 중에서도 최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편으로는 이번 의혹이 '처가 카르텔'에 의한 '고속도로 게이트'로 비화할 움직임을 보이자 전전긍긍하던 정부‧여당이 극약처방을 동원함으로써 양평 주민을 포함한 국민들 원성을 야당으로 쏠리게 하려는 정치공학적 술수도 깔려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의도가 무엇이든 국정 농단에 가까운 무도한 행패가 상상을 초월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6일 국회에서 국민의힘과 긴급 당정협의회를 가진 뒤 브리핑에서 "그동안 특이사항이 없었기 때문에 진행됐던 사업인데 아무리 경제적, 기술적으로 타당하더라도 의심을 살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보고 국토부에 원점 재검토를 지시한 것"이라고 운을 뗐다. 이어 "민주당은 가짜뉴스를 통한 괴담 선동으로 정치적으로 재미 보려는 데에만 목적이 있다"면서 "우리가 아무리 팩트를 이야기하고 노선에 대한 설명을 하더라도 이 정부 내내 김건희 여사를 악마로 만들기 위한 민주당의 가짜뉴스 프레임을 말릴 방법이 없다"고 주장했다.

원 장관은 "그래서 국토부 장관으로서, 정부의 의사결정권자로서 말씀드린다"며 "서울-양평 고속도로에 대해 노선 검토뿐만 아니라 도로 개설 사업 추진 자체를 이 시점에서 전면 중단한다. 이 정부에서 추진됐던 모든 사항을 백지화하겠다"고 선언했다. 또 "이 노선이 정말 필요하고 최종 노선이 있다면 다음 정부에서 하라"며 "공무원들 골탕 먹이지 말고 민주당이 처음부터 노선 결정 과정에 관여하기 바란다"고 다음 정부 및 민주당에 책임을 떠넘겼다.

그러면서 "김 여사가 선산을 옮기지 않는 한, 처분하지 않는 한 민주당의 날파리 선동이 끊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 원인을 제거하겠다. 민주당의 선동 프레임이 작동하는 동안 국력을 낭비할 수 없다"며 거듭 야당의 의혹 제기를 사업 중단의 이유로 내세웠다. 그는 "민주당은 자신 있으면 정식으로 나를 고발하라. 수사에 응하겠다"며 "수사 결과 민주당이 제기한 의혹들이 근거가 없다면 민주당 간판 내리라"고 요구했다.

검찰이 윤석열 정권을 제대로 수사할 리가 없고 오히려 야당 탄압에만 혈안이라는 점을 잘 알기 때문에 큰소리를 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과 논의가 된 거냐는 기자 질문에 원 장관은 "제가 전적으로 책임진다. 정치 생명과 장관직을 걸었다"며 "민주당은 간판을 걸라. 이재명 대표, 민주당 간판 걸고 붙자"고 선동적 발언을 이어갔다.

 

더불어민주당 서울-양평 고속도로 특혜 의혹 진상규명 TF 강득구 단장이 6일 오전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고속도로 종점 인근 현장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7.6. 연합뉴스

이번 사건을 윤석열 대통령의 '처가 카르텔'이자 '고속도로 게이트'라고 규정했던 민주당은 경악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박성준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국책 사업이 장난인가? 주무장관이라는 사람이 의혹 제기에 기분 나빠서 못하겠다는 식으로 사업을 없었던 일로 만들겠다니 정말 황당무계하다"며 "사업에 의혹이 있다고 사업 자체를 취소하는 경우는 처음 본다. 이렇게 무책임한 정부는 없었다"고 비판했다.

박 대변인은 "다음 정부 가서 하라는 말은 더 무책임하다. 국민에게 협박하는 것이냐"며 "윤석열 정부가 국민을 대하는 태도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고 했다. 아울러 "원희룡 장관이 사업을 전면 백지화한 것이야말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라며 "이 사업을 백지화하려는 것은 의혹을 덮으려는 꼼수"라고 분석했다. 그는 "더불어민주당은 고속도로 종점의 변경 과정에 대해 단 한 점의 의혹도 남지 않도록 철저하게 파헤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개별 의원들도 SNS에 속속 글을 올리며 원 장관을 성토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최인호 의원은 "15년간 추진되고 예타까지 통과한 국책 사업을 장관이 함부로 전면 백지화를 선언한 것은 명백한 직권남용이고 이 사업을 갈망해온 양평군민, 경기도민, 서울시민 등 국민들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했다. 최 의원은 "국토부의 잘못된 추진과 특혜 의혹을 덮고 민주당 탓으로 돌리려는 정치적인 술수"라면서 "원희룡 장관은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전면 백지화를 취소하고,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을 즉각 정상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5일 오후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병산리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의 창고용지(병산리 1000-11)에 지어진 패널 건축물 앞에 흑염소와 칠면조가 있다. 2023.7.6. 김성진 기자

역시 국토위 소속인 김두관 의원은 "아니, 노선을 변경해 김건희 일가를 떼부자로 만들겠다고 작당한 도둑들만 잡아내면 되지, 왜 그 도둑들 때문에 죄 없는 양평군민만 피해를 본단 말인가?"라며 "서울-양평 고속도로가 놓이기를 20년이나 학수고대한 양평군민에 대한 무책임하고 파렴치한 행동이다. 백지화를 하면 지금 제기된 논란이 가라앉을 거라 보는 거냐?"고 어처구니없어했다.

김 의원은 "서울-양평 고속도로는 백지화가 아니라 기존 노선대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그리고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도 철저히 해야 한다"면서 "기존 노선은 타당성 통과까지 잘 마쳤다.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국민 혈세를 1000억 원이나 추가로 투입하면서까지 총 연장을 2km 늘리고, 종점을 무리하게 변경해서라도 김건희 일가의 땅값을 올려주려고 하면서 이 사달이 난 것 아니냐?"고 따졌다. 이어 "권력으로 돈을 벌겠다는 이 정권의 민낯을 드러낸 권력형 이권 개입 사건이고 '모든 것은 처가로 통한다'는 세간의 의혹이 입증된 사건"이라며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을 덮으려고 양평 주민들에게 커다란 피해를 줄 수 있는 성급한 결단을 내린 원희룡 장관의 결정은 당장 철회돼야 한다"고 했다.

같은 당 박용진 의원도 "수년간 사업을 추진하면서 예산도 적잖게 들었을 텐데, 야당이 몇 마디 했다고 장관이 바로 백지화하는 게 더 이상하다"며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하는 희한한 일"이라고 개탄했다. 그는 "예비타당성 조사를 마친 뒤 노선이 변경된 고속도로는 지난 20년 동안 없었다. 1999년과 2003년에 단 2차례 있었을 뿐"이라며 "20년도 더 전에 딱 2번만 있던 일을 '드물지 않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엄호하는 집권여당, 강서면 일대 바뀐 종점 부근 반경 1킬로 안에 김건희 여사 가족이 운영하는 ESI&D가 단독 보유한 축구장 만한 필지, 여기에 지난해 8월까지 두물머리 일대 양서면이 종점이던 고속도로가 갑자기 다른 노선으로 검토된다면 국민 누구나 충분히 의혹 제기할 수 있는 일 아니냐"고 했다.

박 의원은 또 "제주도지사 시절 후쿠시마 방류에 반대했던 대선 예비후보 원희룡이 일본의 무단 방류 앞에서는 말 한마디 못하면서 대통령 처가를 둘러싼 의혹에는 온몸을 던져 육탄방어를 펼치는 모습이라니 정말 가관"이라며 "야당을 공격하려고 국가 정책사업을 백지화해버리는 몽니야말로 가당찮은 정치적 오버 행위다. 이 사업에 지금까지 들어간 예산과 행정력 낭비는 장관 호주머니에서 복구하실 건가?"라고 신랄하게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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