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방조에 유서대필, 물대포까지…점입가경 공안정국
분신 노동자 양회동 죽음 지우고 노조 불법화에 올인
근거 없는 유서대필 보도까지…노조, 법적대응 예고
경찰청장은 집회 금지, 집권여당은 물대포 사용 독려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공안정국 「001」 『사회 일반』 집권 세력이 반대 세력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하여 그들에 대한 탄압과 수사를 강화하고 확대하여 자신들의 권력에 대한 입지를 공고히 하려는 행동을 보이는 극히 보수화된 정국 상황.(국립국어원 우리말샘)
최근 민주노총 건설노조에 대한 윤석열 정권의 대대적인 탄압과 극우 매체의 보도 행태를 보면 가히 '공안정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권 반대 세력인 노조를 약화시키기 위해 탄압과 수사를 강화하고, 자신들에게 불리한 형국이 조성되면 <조선일보>와 같은 극우 매체들이 나서서 왜곡 보도까지 하며 의혹을 제기하고, 경찰과 집권 여당은 서로 나서서 '불법' 운운하면서 탄압을 예고한다.
특히 윤석열 정권의 노조 탄압으로 고 양회동 열사가 분신한 뒤, 정권과 극우매체가 보여주는 행태는 그야말로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인지 의심하게 된다. <조선일보>는 지난 16일 자살방조 의혹을 제기한 데 이어 자매지인 <월간조선>을 통해 양 열사의 유서 위조 및 대필 의혹을 제기했다. <월간조선>은 18일자 기사에서 "양회동 씨 유서 3장 중 1장은 글씨체가 다른 것으로 파악됐다"며 "굳이 필적 감정을 하지 않고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확연히 차이가 났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월간조선>은 필적 감정 등 객관적 근거는 전혀 제시하지 않았다. 이 매체는 지난 5월 4일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공개한 유서의 글씨체는 "꼿꼿하고 반듯"했고, 자신들이 입수한 5월 10일 건설노조 회의자료에 있는 유서의 글씨체도 같았으나, 건설노조가 5월 12일 공개한 '카드뉴스'에 나온 유서 글씨체는 앞선 2개와 확연히 다르다며, 단순히 '육안'으로 비교해 위조·대필 의혹을 제기했다. 교차검증이라는 취재의 기본원칙과 취재윤리도 지키지 않은 기사였다.
건설노조는 <월간조선> 보도에 즉각 반발했다. 이들은 보도가 나온 18일 밤 성명을 내고 "열사의 생전 활동 수첩을 가지고 있다. 조선이 반박할 수 없는 상세한 자료가 이미 준비돼있다"며 "의혹이라는 이름의 악의적 왜곡 선동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고 밝혔다. 건설노조에 따르면 변호인단은 유서와 수첩 등에 대한 필적 감정을 의뢰한 상태다. 노조 관계자는 통화에서 "양 열사가 직접 쓴 것은 자명한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어 "필적 감정을 하는 이유는 월간조선에 대한 고소 등 법적 대응을 위한 차원"이라며 "감정 결과가 나오는대로 발표하겠다"고 했다.
<월간조선> 보도에 앞서 <조선일보>는 자살방조 의혹을 제기해 파문을 일으켰다. <조선일보>는 지난 16일 건설노조 강원지부 홍모 부지부장이 분신 당시 "가만히 선 채로 양 씨를 지켜봤다"며 자살을 방조한 것처럼 보도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취재를 종합하면 홍 부지부장은 양 열사의 분신을 적극 만류했을 뿐 아니라 설득할 수 있는 다른 동료와 통화를 권하는 등 구명 노력을 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YTN 강릉지국 소속 기자들도 경찰에서 홍 부지부장이 분신을 말렸다고 진술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음성도 녹음되지 않는 폐쇄회로(CC)TV 장면을 취사 선택하고 자의적으로 해석해 홍 부지부장이 "분신이 시작된 뒤로도 약 10초동안 휴대전화만 들여다보며 양 씨로부터 멀어지는 쪽으로 걸어간 뒤에야 비로소 몸을 돌려 양 씨 쪽을 바라보고는, 두 무릎을 굽히는 등 안타까워하는 것처럼 보이는 몸동작을 보였다"며 극단적 선택을 고의로 내버려둔 것처럼 묘사했다. 또 목격자 증언을 인용해 홍 부지부장이 "떨어져서 멀리 갔다가 조금 뒤부터 갑자기 오열하기 시작했다"고 썼다. 악의적인 왜곡으로밖에 볼 수 없다.
아울러 <조선일보> 보도에는 수사기관의 조력 없이 쓰기 힘든 내용들이 있어 정권 차원에서 조작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해당 기사에는 '독자 제공'으로 출처를 밝힌 여러 장의 CCTV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의 출처는 춘천지방검찰청 강릉지청 종합민원실 건물 외부를 촬영하는 CCTV로 추정된다. 경찰이나 검찰 내부자가 영상을 유출했을 가능성이 강하게 의심된다. 또 해당 기사는 흐릿한 CCTV 사진에서 인물들과 인화물질 등을 정확히 구분하고 있다. 참고인 조사와 블랙박스 조사 등을 한 경찰이 아니면 알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무부처 책임자인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동료의 죽음을 투쟁의 동력으로 이용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며 아니면 말고식의 '분신 배후설'을 제기했다. 신전대협이라는 극우단체는 이에 맞춰 목격자인 홍 부지부장을 '자살방조죄' 혐의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발했다. ①<조선일보> 등 극우매체가 의혹을 제기하면 ②정부가 동조하고 ③극우단체가 고소해서 ④수사기관이 수사를 하는 '정권 맞춤형' 공안몰이의 전형이다.
나아가 <조선일보>는 건설노조의 1박 2일 집회가 합법적으로 이뤄졌음에도 현행법을 피한 '꼼수'라고 비판했다. 또 "인도에서 '노숙'하며 술판도 벌였다" "일부는 덕수궁 돌담길 등에 방뇨하기도 했다" 등 원색적인 비난을 하며 노조를 불법적이고 부도덕한 존재로만 몰았다. 보도가 나오자 경찰청과 서울시, 국민의힘 등은 <조선일보>의 돌격대처럼 노조의 합법 활동을 불법이라며 대대적인 탄압을 예고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18일 언론 브리핑에서 민주노총 건설노조 집회에 대해 "위원장 등 집행부 5명에 대해 25일까지 출석하도록 요구했다"며 "출석 불응 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서겠다"고 했다. "야간문화제 등을 빙자한 불법 집회에 대해서는 현장에서 해산 조치하겠다"며 "건설노조처럼 불법집회 전력이 있는 단체의 유사 집회에 대해서는 금지 또는 제한하겠다"고 했다. 집시법에는 과거 전력을 이유로 집회를 금지하는 규정은 없지만, 경찰청장이 자의로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심대한 침해가 우려된다.
서울시는 건설노조에 대해 서울광장 무단사용 변상금 9300만원, 청계광장 무단사용에 대한 변상금 260만원 부과와 함께 형사고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는 변상금 산출 근거를 설명하지 않았다. 하룻밤 노숙 투쟁에 대해 1억 원에 가까운 변상금이 과연 타당한지 의문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를 마치 광고하듯 자신의 페이스북에 "민주노총 건설노조로 인해 어제오늘 서울시청 일대는 무법지대이자 교통지옥이 됐다"고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으며 "불법에 대해선 철저히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집권 여당에서는 경찰의 강경 대응을 압박하며 '물대포' 언급까지 나왔다.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19일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추모제를 벗어난 불법집회 양상으로 변질됐을 때 강제해산 시켰어야 온당할 것"이라며 "물대포 없애고 수수방관하는 물대응으로는 난장 집회 못 막는다"고 했다. 물대포를 다시 동원해서라도 정권에 반대하는 집회는 강제해산하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경찰의 물대포는 2015년 고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뒤 사라졌다. 인권 수준조차 과거로 회귀하는 모습이다.
박 정책위의장은 이어 "법치는 윤석열 정부에게 내린 국민 명령"이라며 "문재인표 시위대응, 이제는 버릴 때이다. 불법 집회하는 사람들을 제 식구 보듯 하던 이전 정부와는 달라졌음을 분명히 알게 해야 한다"고 시민들을 향해 엄포를 놨다. 그러면서 "관계부처 수장들은 법치를 바로 세우는데 명운을 걸어야 할 것"이라며 "법이 살아있음을 보여주기 바란다"고 했다.
이 같은 일련의 조치들은 한국 사회가 마치 30여 년 전으로 회귀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시민 사회에서는 1991년 노태우 정권 시절 벌어진 '강기훈 씨 유서대필' 사건과 매우 유사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시 <조선일보>와 검찰 등은 강 씨가 동료 김기설 씨의 극단적 선택을 방조하고 유서를 대필했다고 마녀사냥을 했고, 민주화 운동 세력은 대대적인 여론몰이에 부도덕한 존재로 내몰렸다. 1991년 항쟁은 무위로 돌아갔고 강 씨는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2015년에 와서야 재심을 통해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한편 언론노조는 이날 성명을 내고 <조선일보>가 양 열사와 관련, 자살방조와 유서대필 의혹을 제기한 것에 대해 "지난 1991년에도 조선일보는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왜곡 보도를 주도하며 한 사람의 인권을 잔인하게 유린한 바 있다. 수십년이 지나 무죄로 결론난 뒤에도 제대로 된 사과 한 마디 하지 않고 있다"면서 "아무런 객관적 근거나 물증도 없이 혐오를 조장하는 조선일보 집단의 행위를 저널리즘 원칙에서 일탈한 반언론행위로 규정하며, 기사 삭제와 공식적인 대국민사과를 엄중히 요구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