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정신' 전두환 계엄군이 지켰다?…얼빠진 보훈처
홍보물에 계엄군쪽 사진 내고 '지켜낸 오월정신' 문구
'5·18의 현재' 홍보물엔 기념식 참석한 윤석열 사진
윤대통령, 작년 기념사 재활용…무의미한 "자유" 반복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국가보훈처가 5·18 민주화운동 43주년인 18일 전두환 신군부의 비상계엄군이 자유민주주의와 인권 가치를 지켜낸 것처럼 해석되는 홍보물을 올려 파문을 일으켰다. 시민들의 항의로 홍보물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삭제됐다.
보훈처는 이날 오전 트위터,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나경택 전 전남매일신문 기자가 찍은 사진을 활용한 홍보물을 올렸다. 해당 사진은 1980년 5월 전남대 학생들과 시민들이 비상계엄 해제를 요구하는 모습을 계엄군 뒤편에서 촬영한 것으로, 보훈처가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컬러로 복원했다.
문제는 보훈처가 계엄군이 광주 시민을 바라보는 구도의 사진을 올리면서 사진 아래에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지켜낸 오월 정신'이라고 적은 것이다. 이 때문에 마치 계엄군이 시민들의 민주화 운동을 막아서 오월 정신을 지켜낸 것처럼 해석됐다. 이에 SNS에서는 시민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누리꾼들은 "자유민주주의와 인권 가치를 군인이 지켰냐" "보훈처는 계엄군 편에 서서 5·18을 바라보는가" "약 올릴려고 이런 사진 올린 거냐" "최근 본 사진 중에 제일 어이없는 사진이다" "누가보면 계엄군이 민주화운동한 줄 알겠다" "계엄군은 무고한 국민을 학살한 실행부대인데 어떻게 이런 사진을 올리냐" 등 댓글을 올렸다.
특수지상작전연구회(LANDSOC-K) 문형철 연구원(육군 예비역 소령)은 "역사의 전달과 상징의 활용이란 차원에서 보훈처는 진실의 오해를 불러일으킨 과오를 범했다"면서 "민주화 희생자뿐만 아니라 가해자였던 계엄군에게도 아픔인 사진을 홍보용으로 쓴 것은 공감력이 없는 잔혹한 처사"라고 말했다.
보훈처 관계자는 <시민언론 민들레>와 통화에서 "과거, 현재, 미래라는 SNS 시리즈 캠페인으로, 오늘 하루 15~16건의 사진을 올릴 예정이었다. 오전에 과거 사진 2장을 올렸는데 그 중 첫 번째 사진"이라면서 "논란이 되고 있어 삭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보훈처는 이날 오후 문제가 되는 홍보물을 삭제했다.
보훈처가 '5·18의 현재'라고 오후에 올린 홍보물도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와 올해 5·18 기념식에 참석한 사진이다. 5·18 민주화운동보다는 대통령 개인 홍보물에 가깝다.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국민들에게 알려야 할 보훈처가 왜 대통령실이 할 일까지 하고 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한편 윤 대통령은 5·18 민주화운동 기념사에서 "오월의 정신을 잊지 않고 계승한다면 우리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모든 세력과 도전에 당당히 맞서 싸워야 하고 그런 실천적 용기를 가져야 한다"며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하는 안팎의 도전에 맞서 투쟁하지 않는다면 오월의 정신을 말하기 부끄러울 것"이라고 밝혔다.
본인의 공약 사항인 5·18 정신 헌법 수록은 언급조차 없이 또다시 '자유'를 무의미하게 반복했다. 기념사 분량도 905자(띄어쓰기 제외)로 전직 대통령의 기념사와 비교해 성의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 대통령은 마지막으로 참석한 40주년 기념식에서 3179자(띄어쓰기 제외)의 기념사를 읽었다.
윤 대통령의 기념사는 분량뿐만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지난해 기념사를 재활용한 것처럼 보이는 부분들이 많았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기념사에서 "오월 정신은 보편적 가치의 회복이고, 자유민주주의 헌법 정신 그 자체"라며 "그 정신은 우리 모두의 것이고, 대한민국의 귀중한 자산"이라고 했다. 올해에는 문구만 변형시켜 "오월의 정신은 우리 자유민주주의 헌법 정신 그 자체이고, 우리가 반드시 계승해야 할 소중한 자산"이라고 했다.
또 그는 지난해 "AI와 첨단 기술기반의 산업 고도화를 이루고 힘차게 도약해야 한다"고 말했었다. 올해도 "광주와 호남이 자유와 성취를 바탕으로 AI와 첨단 과학 기술의 고도화를 이루어 내고, 이러한 성취를 미래 세대에게 계승시킬 수 있도록 대통령으로서 제대로 뒷받침하겠다"고 되풀이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의 기념사에 대해 "오월 정신의 계승, 자유민주주의를 말하지만, 약속했던 원포인트 개헌이나 국가 폭력에 의한 국민들의 삶, 생명을 해치는 일에 반성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하지 않는 한 그건 모두 공염불"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