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너머 마을 17] 마을을 예술 놀이터, 문화 쉼터로

마을의 예술 : 음악, 미술, 공연, 문학의 텃밭

높은 소득, 많은 일자리보다 삶의 질 높여야

2025-05-01     정기석 시민기자

 

‘호수같은 바다’ 창포만 너머, 일출과 일몰을 한 곳에서 조망할 수 있는 ‘달멍해멍마을’, 정물화처럼 자리잡은 율티마을.

경남 하동군 악양면 입석리에는 작은 마을미술관이 있다. 수년 전, 한 화가가 미약하게 시작했다. 하동으로 귀농한 하의수 화가가 사재 3000만 원을 들여 벌인 일이다. 빈 마을창고를 미술관으로 개조했다.

지금처럼 번듯한 모습을 갖춘 건 문화부의 마을프로젝트 지원사업 덕분이다. 2022년과 2023년에 걸쳐 공모사업에 선정돼, 미술관을 리모델링하고 마을 곳곳 길목마다 11점의 그림, 조형물 등 작품을 설치했다.

이 마을 주민이자 미술관장인 놀루와 조문환 대표를 비롯 마을사람들도 힘을 보탰다. 마을미술관에 어울리는 이른바 ‘마을미술’을 함께 배우고 익혔다. 하의수 화가의 뜻을 공감하는 마을 사람들은 도슨트를 자처했다.

 

하동 입석리 ‘마을미술관 선돌’에 예술을 배우러 간 율티마을 사람들

마을미술관은 ‘마을의 삶’을 전시하는 곳

이제 ‘마을미술관 선돌’은 전국적인 명소가 되었다. 바로 옆자리의 '형제봉 주막'과 더불어 입석마을, 악양면, 하동군을 넘어 적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마을사업 판의 창대한 사건이 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마을미술관이 마을을 먹여살리지는 못한다. 마을미술관을 세우고 꾸리는 목적도 경제적인 지향과는 거리가 멀다. 다만, 이 작은 미술관이 주민들이 마을에서 살아갈 기운을 북돋우고 불어넣은 건 확실하다. 주민들의 삶의 질이 높아진 건 분명해보인다.

이제 입석마을 사람들은 지리산 자락의 풍광과 더불어 마을미술관을 마을의 큰 자랑거리로 삼고 있다. 게다가 이 마을미술관이 있어서 원주민과 이주민인 귀농인들이 보다 긴밀하게 어우러질 수 있다고 믿는다.

제주시 선흘리에도 소박한 마을미술관이 있다. 특이하게도 12명의 ‘마을할매’들이 사는 각자의 집과 창고가 미술관으로 돌변했다. 선흘볍씨마을협동조합이 2021년부터 ‘할머니의 예술창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생이미술관’, ‘마당미술관’, ‘초록미술관’, ‘그림창고’, ‘분농미술관’, ‘올레미술관’ 등. 각자의 미술관에서는 각자 직접 겪은 제주의 삶을 우려내, 직접 그린 그림을 전시하는 작품전도 연다.

 

제주도의 로컬크리에이터 ‘재주도좋아’가 매년 금능해변에서 벌이는 ‘바라던바다’ 비치코밍페스티벌

율티마을에 꼭 와야 하는 이유, ‘문화자산 우해이어보’

지금 율티마을도 문화와 예술이 중요하다. 어촌마을공동체사업의 중요한 화두이자 테마로 붙잡고, 어떻게 문화와 예술로 승화시킬지 고민하고 궁리하고 있다. 국내 최초의 물고기도감인 마을의 문화적, 인문학적 자산 ‘우해이어보’를 이 사업의 핵심테마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율티마을 50여 호 모든 가가호호 ‘우해이어보 마을 그림문패’도 만들어 달았다. 탄소중립체험갯벌의 어촌체험프로그램과 시너지효과를 일으킬 농촌체험 프로그램공간으로서 1000여 평의 ‘우해이어보 체험텃밭’ 간판도 예술적으로 만들어 마을 입구에 걸어놓았다.

구체적으로, 정부 지원을 받은 입석마을만큼은 안 되더라도, 일종의 ‘율티마을 미술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 가령 율티 앞바다 갯벌 위, 또는 갯벌가 남파랑길 11코스 산책로에 ‘우해이어보’를 상징하는 조형물을 설치하는 등 포토존 명소부터 구상하고 있다.

율티마을은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달멍해멍’ 콘셉트의 지형적 특징을 띠고 있다. 그 특성에 더해 ‘율티마을에 굳이 사람들이 찾아와야 하는 이유로 ’우해이어보‘를 실제 오감으로 체감할 수 있는 혁신적 형상이자 공간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즉, ‘우해이어보’ 테마 마을미술프로젝트 조형물에 율티마을 사람들의 바람과 자긍심을 함축적으로, 상징적으로 담아내고자 한다. 율티마을을 찾는 모든 체험객, 방문객들과 교감하고 공감하고 싶은 것이다.

이를 위해 지역대학의 마을미술디자이너, 마을 내부의 주민공예가, 그리고 앵커조직의 컨설턴트들이 한 팀을 이뤄 협업할 생각이다. 마을 안팎의 팀플레이로 창의력과 상상력을 모아내면 얼마든지 ‘율티마을에서 가서 보고 싶어 할 만한’ 인상적인 작품이 창작, 창조되리라는 기대가 크다.

 

영암군 지역축제에서 공연하는 버스킹그룹 ‘어디든프로젝트’

‘경제적 생산량’ 보다 ‘생활의 품질’을 높이는 ‘문화예술’

율티마을도 소득사업이 마을주민들의 가장 큰 관심사이자 숙원인 것은 틀림없다. 더욱이 기후위기 등으로 물고기도, 조개도 사라져 어업경제는 이미 소멸 지경이다. 어업이나 농업 말고 ‘앞으로 달리 먹고사는 일’도 현재로서는 마땅치 않다.

이런 절박한 사정은 오늘날 마을공동체사업에 뛰어드는 여느 농어촌마을마다 크게 다르지 않다. 소득과 일자리 등 단기적으로 경제적, 물질적인 성과를 거두려는 게 최대의 관심사이자 목표다.

하지만 아쉽게도 마을공동체사업이란 본디 그런 게 아니다. 사익보다는 마을 전체의 공익을 추구해야 하는 마을공동체사업의 본질이자 속성은 ‘돈을 벌자’는 게 아니다.

어차피 마을공동체사업으로 각자 원하는 만큼, 필요한 대로 돈을 벌고, 수지타산을 맞추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이 사업 본연의 취지나 이치에도 맞지 않는 일이다. 설사 요행히 돈이 벌린다 해도, 바로 그 돈이 공동체를 위협하는 갈등과 분쟁의 빌미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마을공동체사업에 임하는 마을사람들은 애초부터, 스스로 ‘경제’보다는 ‘생활’에 더 큰 가치를 두어야 한다. 그게 이장, 계장 등 마을을 대표하는 책임자들은 물론, 마을공동체를 구성하는 개별 주민으로서도 올바른 자세이자 합리적인 태도이다.

그래야 마을사업에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않고, 스스로 실망하지 않고, 서로 원망도 하지 않을 수 있다. 마을공동체사업의 경제적, 물질적 성과에 매달리지 않으면서, 마을공동체의 안녕과 평화를 온전히 지킬 수 있다. 경제적인 목적보다는, 사회적인 목적을 추구해야 마을공동체사업의 지고의 목표이자 가치에 닿을 수 있다. 결국 삶의 질이 높아지는 것을 체감할 수 있어야 한다.

‘마을에서 더불어,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삶의 질’을 높이기에 가장 적절한 사업거리야말로 바로 ‘문화예술’이라 할 수 있다.

 

‘우해이어보 테마마을’ 율티마을 앞바다 갯벌에 밀려온 파래. 마을의 자연은 예술이다.

원주민과 이주민을 이어주는 마을 음악회와 영화제

마을미술관뿐 아니다. 마을회관 또는 마을 앞마당에서 마을음악회를 여는 상상과 시도도 마을사람 누구나,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음악회를 하는 목적, 테마와 콘셉트, 운영진 구성, 운영책임체계 등을 고려해 마을음악회 기획안을 정리하는 것부터 일단 시작하면 된다. 시작 반이다.

일단 기획을 시작하면, 공연자는 누구를 섭외할지, 참가할 관객들은 어디서 불러 모을지, 소요되는 사업비는 어떻게 조달할지, 홍보와 마케팅은 어떤 방법으로 할지 등의 고민은 차근차근 하면 된다.

제주시 와산리는 ‘와산리 작은 음악회’를 연다. 이 마을은 이주민들이 많아 ‘마을 밖 마을’이라는 특이한 구조다. 원주민과 이주민의 소통과 화합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래서 마을음악회를 연다.

서귀포시 가쿠다 효돈마을 작은 음악회도 효돈동정착주민협의회 주최로 이주 정착주민과 기존주민과의 화합을 도모하려는 목적이다. 이 두 마을의 마을음악회야말로 마을공동체의 삶의 질을 높이는 ‘문화예술’의 순기능이 작동되는 생생한 현장사례다.

일단 시작이 중요하다. 프로그램 구성을 어찌할 지는 그다음 문제다. 국악이든 클래식이든 성악이든, K-POP이든, 마을 외부에서 전문예술인을 초빙하든, 그냥 마을 내부에서 주민들끼리 판을 벌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무주군에서는 매년 산골영화제가 펼쳐진다. 6월 6일부터 8일까지 열리는 영화제는 올해로 벌써 13회째다. 처음에는 작은 영화관조차 없던 무주에서 공설운동장, 국립공원, 문화관, 지역 학교, 주민센터 등 마을과 지역 기반시설을 활용해 상영회를 연다.

‘마을영화’라는 개념을 만들고 농촌마을을 돌며 영화를 제작하고 마을영화제도 여는 신지승 감독도 특별한 사례로 주목할 만하다. 마을영화란 마을주민들이 영화제작의 모든 과정에 참여해 함께 만들어가는 영화를 말한다. 농어촌마을공동체를 중심으로 영화운동을 통해 예술의 사회적 생태적 역할을 꾸준히 모색하고 있다.

 

'우해이어보체험텃밭' 그림간판 

마을연극단, 마을시인학교, 그리고 로컬 문화예술 상품까지

서귀포시 서광동리에는 마을연극단이 있다. 2016년 서광동리 주민 25명이 감귤창고를 고쳐 지은 마을의 문화공연장에서 연극 <광해악의 노래>를 공연했다. 연극공연이 처음인 마을주민들은 대본작업부터 발성·안무·연기 등에 이르는 전문가의 지도로 2년이 넘게 준비했다고 한다. 아직도 마을연극은 하고 있을까?

서귀포시 금능리에는 ‘마을시인’이 많이 산다. 금능리 금능꿈차롱작은도서관에서 ‘성인 시 창작 아카데미’, ‘어린이 시 창작 아카데미’ 등 ‘마을시인학교’를 연다. 정식으로 등단한 시인도 배출했다.

제주시 종달리의 독특한 문화관광 프로그램 ‘해녀의 부엌’에서는 위판장을 개조한 극장식 식당 공연장 한편에서 문화예술 상품도 함께 판매하고 있다. 영농회의 농산물과 해녀회의 수산물 등 로컬 푸드, 그림, 수공예품, 목공, 패브릭, 장신구 등 디자인소품, 아모마비누 등 향장제류, 도서류 등 다종다양하다.

제주도로 이주한 청년 로컬크리에이터단체 ‘재주도좋아’는 매년 금능해변에서 ‘바라던바다’ 비치코밍 페스티벌을 벌인다. ‘엿바꿔먹장’이라는 문화예술 굿즈 플리마켓, 버스킹 공연도 함께 펼쳐진다.

율티마을은 어촌마을공동체사업으로 체험실, 전시관, 마을가게, 마을광장 등의 시설과 공간을 조성할 계획이다. 그 시설과 공간에, 채워넣을 ‘문화예술 콘텐츠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개발하고 있다.

마을미술관, 마을음악회, 마을영화제, 마을연극단, 마을시인학교, 그리고 다채로운 문화예술 상품도 함께 궁리하고 있다.

2027년부터, 율티마을 주민들은 일상생활 속에서도 얼마든지 ‘문화예술’을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비록 마을공동체사업으로 먹고사는 문제는 어쩌지 못한다 해도 말이다.

그렇게 ‘경제적, 물질적 성과’ 보다도 ‘삶의 질’이 한껏 높아졌으면 한다. 적어도 마을에서는, 높은 소득이나 많은 일자리 보다 그 같은 ‘문화예술’의 성과가 더 값질 수 있다는 사실을 실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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