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너머 마을 15] ‘지붕 없는 문화박물관’ 꿈꾼다

어업경제 쇠락한 율티마을에 신활력 창조할 열쇠

외부인 구경거리 만드는 관광사업과는 차원 달라

100년간 지속발전 가능한 어촌생활 공동체 지향

2025-04-12     정기석 시민기자

 

국내 최초의 물고기도감 ‘우해이어보’의 고향, 율티마을 가가호호 대문마다 마을과 주민들의 역사를 함축하는 ‘우해이어보마을 그림문패’를 걸어두었다.

율티리에는 다른 마을에 없는 게 하나 있다. 국내 최초의 물고기도감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가 그것이다. 1802년 천주교 박해로 이 마을로 유배된 담정 김려 선생이 이 마을에서 집필했다. 당연히 이 마을의 가장 큰 자랑거리다.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어쩌다 ‘우해이어보’ 이야기를 꺼내면 십중팔구는 정약전의 '자산어보’를 말한다. ‘자산어보’가 최초 아니냐고. 심지어 최근에는 어떤 공중파방송에서도 ‘자산어보’를 국내 최초의 물고기도감으로 소개했을 정도다.

‘우해이어보’가 국내 최초의 어보라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확인됐다. 자산어보보다 11년 먼저 출간됐다. 자산어보가 최초라는 오해는 아마도 저자가 더 유명해서, 무엇보다 영화로까지 만들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마을사업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에게 ‘우해이어보’를 설명하면 으레 넘겨짚어 묻는다. 율티리가 추진하고 있는 어촌마을 공동체사업은 결국 ‘우해이어보 테마마을’을 만들려는 건 아니냐고.

필시 자산어보가 탄생한 전라도 흑산도가 ‘자산어보 테마마을’로 조성되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듣고 하는 얘기로 들린다. 이처럼 ‘물고기도감’을 테마로 삼은 마을사업의 사례가 있으니, 율티리도 그 선례를 벤치마킹해 경쟁하려는 의도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율티마을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줄 ‘문화자본’ 우해이어보를 기념하는 ‘우해정’ 너머로, 율티마을을 먹여살리던 ‘어업자본’ 율티갯벌과 ‘산업자본’ 율티공단이 묘하게 대비되어 조망된다.

‘우해이어보’는 ‘자산어보’를 따라 하지 않는다

물론 아니다. 율티리 어촌마을공동체사업에서 ‘우해이어보’는 ‘어촌체험 휴양마을사업’ 및 ‘마을공유가게 직판사업’의 주요 테마이자 소재일 뿐이다. 효과적 홍보 마케팅기법의 도구이며 장치일 뿐이다.

‘우해이어보’는 한마디로 기존의 어업경제가 쇠락하고 있는 율티마을 경제의 신활력을 생산하고 창조할 수 있는 열쇠다. 율티마을의 새로운 경제를 일으킬 사회혁신적 자본으로 삼고 있는 ‘문화’의 총아인 셈이다.

다만 율티리 마을사업의 주요한 테마이자 자산의 차원 수준에 그친다. ‘자산어보 테마마을’처럼 오직 전적인 주제나 궁극의 목적이 아닌 일부 소재이자 콘텐츠 정도의 비중으로 절제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흑산도의 ‘자산어보 테마마을’은 율티리 마을사업의 참고사례는 될 수 있을지 모르나, 유사사례로서 비교나 경쟁 또는 벤치마킹의 대상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율티리 어촌마을 공동체사업으로 구상하고 추구하는 중장기적인 모델과 궁극적인 비전은 그런 단기적이고 외형적인 성과물이 아니다. ‘자산어보 테마마을’ 같은 외부인의 구경거리를 만드는 관광사업과는 차원이 다르다.

율티마을이 굳이 이 어려운 어촌마을 공동체사업을 벌이는 이유는 기껏 외부인의 구경거리나 놀이터를 만들어 마을을 관광상품화하려는 게 아니다.  율티마을 내부인인 주민들의 삶과 일과 놀이와 쉼이 하나될 수 있는 생활공동체의 실현이 먼저고 가장 중요하다.  

중장기적인 목적과 비전은 앞으로 100년 동안 지속발전가능한 어촌생활 공동체로서 ‘율티마을 에코뮤지엄(Ecomuseum)’이다.

 

율티갯벌과 진전천, 근곡천이 만나는 기수지역에 멸종위기 야생생물2급인 ‘기수갈고둥’이 자생한다.

‘지붕 없는 마을박물관’ 에코뮤지엄(Ecomuseum)

'에코뮤지엄(Ecomuseum)'은 본래 생태 및 주거환경을 뜻하는 '에코(Eco)'에 박물관을 뜻하는 '뮤지엄(Museum)'을 결합한 개념이다. 단일 공간을 넘어 인간을 둘러싼 모든 환경에서 생활유산을 보전·활용하는 대안적, 실천적 박물관 활동을 의미한다.

에코뮤지엄의 가장 큰 특징은 시공간을 포괄한다는 점이다. 지역사회, 생활문화, 산업, 자연환경 등 지켜나가야 할 유·무형의 자원을 보호하고 다양한 관점을 수용,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삶 속에서 우리를 새롭게 인식하게 한다는 것이다.

기능에 따라 지역박물관, 지역 공동체 박물관, 생태박물관, 환경박물관, 민속박물관, 에코뮈제(Ecomusée)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국내에서 대표적인 에코뮤지엄은 경기만에 있다. 경기만은 인천과 경기도 서쪽 한강의 강구를 중심으로 황해도의 옹진반도 남단 등산곶과 충청남도의 태안반도 사이에 있는 반원형의 만이다.

그 경기만에 ‘경기에코뮤지엄’이 들어서 있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실체를 갖추고 공식적으로 선포된 에코뮤지엄이다.

‘경기에코뮤지엄’은 경기만에 접하고 있는 경기도 내 지자체 화성시, 안산시, 시흥시 일원에 산재한 100개의 장소 컬렉션을 통해 장소와 지역문화 관련 콘텐츠와 거점 공간으로 연결된 네트워크로 구성되어 있다.

규모와 범위는 차이가 크지만 경기만을 테마이자 토대로 삼은 입지만으로도, 창포만에 둘러싸인 어촌마을인 율티마을이 구상하고 지향하는 에코뮤지엄의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적어도 지난 수십년 동안, 율티마을 주민들의 일상과 일생을 낱낱이 공유하고 기억하고 있을법한, 팔순의 약업사가 여전히 운영하고 있는 ‘암하대성약방’

율티마을공동체 100년 비전, ‘율티 Ecomuseum’

‘율티 Ecomuseum’은 율티마을 지속가능발전 100년 계획 또는 비전에 다름 아니다. 율티마을의 자연, 역사, 문화, 지리, 인문, 사회, 생활, 산업 등 유·무형의 생태적 명소와 역사문화적 자산의 야외 아카이브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율티마을 사람들의 ‘어제, 오늘, 내일의 삶’을 공유하고 공감하는 ‘지붕 없는 마을박물관’을 꿈꾼다.

우선 ‘율티자연박물관’에서는 습지보전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창포만 습지, 탄소중립갯벌체험장으로 활용하고 있는 율티 앞바다 갯벌, 1억년 전의 공룡화석을 품고 있는 점판암 지형과 지질의 진동층을 볼 수 있다.

‘율티역사박물관’에서는, ‘신유박해와 우해이어보’의 이야기를 좇아 순례하는 역사스토리텔링, 청동기 고분군의 흔적이 남아있는 끝섬과, 삼진지역 48개 문중이 모여 훼절된 향교의 명륜당을 대신한 ‘대관정(大觀亭)’ 등 율티마을 역사탐방이 가능하다.

‘율티문화박물관’에서는 ‘우해이어보’ 인문학 테마 체험·휴양프로그램 및 문화답사여행이 이색적이다. 곧 조성될 마을체험공방과 마을공유가게에서는 ‘우해이어보’를 테마로 한 각종 문화상품을 만들어 판매할 예정이다.

‘율티지리박물관’에서는, 남파랑길 11코스의 거점마을로서, 습지, 갯벌, 조류 등을 관찰하고 감상할 수 있는 경관명소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율티마을 8경

특히 1경 남파랑길에서 시작해, 2경 율티체험텃밭 클라인가르텐, 3경 율티갯벌체험장, 4경 경사재(전주 李씨 재실), 5경 끝섬 대관정, 6경 율티항, 7경 밤티고갯길, 8경 우해이어보의 산실, 고저암으로 이어지는 ‘율티마을 8경’을 둘러볼 수 있다.

‘율티인문박물관’에서는, ‘우해이어보 인문학’을 바탕으로, 김려 선생의 후손들인 연안 金씨 ‘우해이어보’ 유적답사, 천주교 마산교구청과 연계한 ‘우해이어보’ 성지순례가 우소헌, 고저암 등 발현지에서 이루어진다,

‘율티사회박물관’에서는, 전통적인 율티마을의 공동체사회조직인 마을회, 노인회, 부녀회 등을 중심으로 이른바 ‘율티마을학’, ‘율티마을 평민자서전’ 등의 마을아카이빙 작업을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다.

‘율티공동체박물관’에서는, 공유주방, 공동세탁소, 건강관리실 등 율티마을주민들의 생활복지공간을 공유하는 복지회관을 공간적 거점으로, 율티마을공동체사업의 주민책임조직인 율티마을협동조합을 사업적 중심으로 삼는 율티마을 공동체사업과 공동체생활을 함께 할 수 있다.

‘율티산업박물관’에서는 마을어장 등 어업경제의 사업주체인 율티어촌계의 활동, 반농반어촌인 율티마을의 소규모 자가수급형 농업기반, 율티마을 염전 자리에 들어선 율티공단의 기업과 노동자의 일상을 목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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