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해임'에 더 난폭해진 친윤계…윤석열식 '공포정치'

정권에서 추방 '주홍글씨'…'당 대표 불가' 메시지

권위주의 시절로 사당화, 정당민주주의 퇴행시켜

장제원 앞장서 "반윤의 우두머리" 연일 거친 공격

나경원 수사 가능성까지…출마시 더 큰 보복 관측

여기서 포기할 경우 정치생명 장담 못해 진퇴양난

2023-01-14     김호경 에디터
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이 13일 대한불교 천태종 총본산인 충북 단양 구인사를 찾아 대웅전에서 분향하고 있다. 2023.1.13 [독자제공]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과 기후환경대사에서 동시에 '해임'하면서 당내 윤핵관과 친윤계 의원들의 '나경원 때리기'가 더욱 난폭해졌다. 나 전 의원이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위협을 느끼고 3·8 전당대회 당 대표 출마를 포기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본질적으로 수구보수 정권의 볼썽사나운 집안싸움이긴 하지만 '공포의 동원'까지 서슴지 않는 윤 대통령의 적나라한 당권 개입과 사당화(私黨化) 행태가 한국 정치를 전근대적 권위주의 시절로 끊임없이 퇴행시킨다는 비판이 거세다. 대통령이 당 총재를 겸하던 시대의 당·청(대통령실) 관계로 회귀하고 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13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에 대해 이미 사직서를 공식 제출한 나 전 의원을 굳이 해임 처리했다. 나 전 의원이 사의를 밝히지 않은 기후환경대사 직까지 함께 박탈했다. 윤 대통령이 장관급 공직자를 해임한 첫 사례다.

'사의 수용'이나 '사표 수리', 또는 '해촉'이 아니라 징계의 뜻이 강한 해임 조치를 내린 것은 나 전 의원에 대한 '추방'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한 목적이다. 윤석열 정권이 파문한 인사라는 '주홍글씨'를 새김으로써 국민의힘 의원들과 당원들에게 '나경원 당 대표 불가' 메시지를 확실하게 공표한 셈이다.

앞서 나 전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함부로 제 판단과 고민을 추측하고 곡해하는 이들에게 한 말씀 드린다"며 "나는 결코 당신들이 '진정으로'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나름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이어 "잠깐의 혼란과 소음이, 역사의 자명한 순리를 가리거나 막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 전 의원이 지목한 '당신들'이나 '소음'은 자신의 전당대회 불출마를 압박해 온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을 비롯한 일부 당권 주자와 친윤계 인사들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여기에 부위원장직 사직서까지 제출하자 사실상 전당대회 출마 예고로 받아들여졌고, 이에 격분한 윤 대통령이 대놓고 응징을 한 모양새다. 장관급인 저출산고령사회위 부위원장 후임에 '원조 윤핵관' 장제원 의원의 일가가 운영하는 동서대학교 교수로 불과 46세인 김영미 사회복지학과 교수를 내정한 것도 나 전 의원 망신주기로 읽힌다.

 

나경원 국민의힘 전 의원(왼쪽)이 5일 오후 서울 송파구민회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송파을 신년인사회에서 장제원 의원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23.1.5. 연합뉴스

당장 장제원 의원이 직접 나서 나 전 의원을 향해 "마치 박해를 받아 직에서 쫓겨나는 것처럼 전형적인 약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면서 "대통령을 위하는 척하며 반윤(반윤석열)의 우두머리가 되겠다는 것"이라고 직격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국익을 위해 세일즈 외교를 나가시는 대통령 등 뒤에다 대고 사직서를 던지는 행동이 나 전 의원이 말하는 윤 대통령과 윤석열 정부를 위하는 길인가"라며 "오로지 자기 정치만 하는 사람이 자신이 가장 대통령을 위하는 것처럼 고고한 척하는 행태는 친윤을 위장한 비겁한 반윤"이라고 공개적으로 맹비난했다. 그러면서 "허구한 날 '윤핵관, 윤핵관' 하는 유승민 이준석과 뭐가 다른가. 이런 행태는 대통령을 저격하는 것 아닌가"라며 "우리 당에 분탕질을 하는 사람은 이준석, 유승민으로 족하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장 의원은 14일에도 '패륜' '간보기 정치' '헛발질' '통속적인 정치신파극' 등의 원색적 표현을 대거 동원하며 "대통령을 기만하고 공직을 두고 대통령과 거래를 하려 했던 나 전 의원의 민낯이 드러난 상황에서 과연 국민의힘 정통 보수 당원들이 계속 지지를 보낼까"라고 당원들에게 '나경원 비토'를 부추겼다.

친윤계인 박수영 의원도 페이스북에 "대통령의 성공이 대한민국의 성공"이라며 "그래서 제2의 유승민은 당원들이 거부할 것"이라고 나 전 의원을 '제2의 유승민'으로 규정했다. 이밖에도 친윤계 의원들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너무 건방진 태도" "일개 원외위원장 주제에 대통령을 능멸한 것"이라고 성토했다.

나 전 의원이 했다는 '분탕질'은 저출산고령사회위 부위원장으로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헝가리식 출산 지원정책 아이디어를 언급한 게 전부다. 이를 두고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들이 "윤석열 정부 정책과는 무관하다" "부적절한 처사" "해촉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며 들고 일어나자 스스로 부위원장직 사표를 냈을 뿐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실과 윤핵관들은 사안을 황당할 정도로 침소봉대하며 '오버액션'을 거듭하고 있다. 나 전 의원이 전당대회에 나가지 못하도록 억지로 찍어 누르려는 의도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는 우스꽝스러운 촌극이다.

이에 대해 "당 대표 한 번 나오겠다는 것이 무슨 대역죄냐"(김웅 의원) "오만함과 마녀사냥식 낙인찍기"(허은아 의원) "윤핵관의 말을 안 듣는다고 곧바로 선배 정치인에다가 악담을 퍼붓는 장 의원님은 스스로 안 부끄러우시냐"(김용태 전 최고위원) 등 친윤계를 비판하는 비윤계 정치인들도 있긴 하지만 극소수에 머물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오전 아랍에미리트(UAE) 국빈 방문과 스위스 다보스포럼 참석 등을 위해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 공군 1호기 탑승에 앞서 환송 나온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인사하고 있다. 2023.1.14. 연합뉴스

이처럼 졸지에 '반윤의 우두머리'로 찍힌 나 전 의원이 엄청난 압력과 위기감을 무릅쓰고 당 대표 출마를 강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나 전 의원은 대통령실 해임 발표 이후 약 3시간 만에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대통령님의 뜻을 존중한다"며 "어느 자리에 있든 윤석열 정부의 성공과 대한민국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기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무기력한 반응이다. 일각에서는 해임 정도에 그치는 게 아니라 출마 선언을 할 경우 검찰 수사 등 더 큰 정권 차원의 보복 조치가 진행될 거라는 관측도 나온다.

나 전 의원은 선거법·공수처법 패스트트랙 저지 때의 채이배 의원 감금 사건, 자녀의 입시비리와 관련한 각종 의혹 등 정권이 작심하고 걸면 걸릴 수 있는 사안이 몇 가지 있다. 검찰이 추미애 전 법무장관 아들의 군복무 특혜 휴가 의혹을 2년 2개월 만에 재수사하는 것처럼 말이다. 추 전 장관 아들 의혹은 서울동부지검에서 무혐의, 서울고검의 원점 재수사에서 다시 무혐의, 군검찰의 추가 수사에서도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현 정권이 들어서자 검찰은 아무렇지도 않게 또 보복성 수사에 착수했다. 나 전 의원이 공포심을 느낄만한 대목이다.

'당심 1위'를 달리던 지지율에도 이상기류가 감지되기 시작됐다. 국민의힘 지지층을 대상으로 차기 당 대표 지지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친윤계가 전폭 지원하는 김기현 의원이 나 전 의원을 처음으로 제치고 선두에 오른 결과가 발표됐다. 그러나 나 전 의원이 여기서 출마 포기 선언을 하면 이미 실컷 난타를 당한 만신창이 상태에서 민심 대신 권력에 굴복한 나약한 정치인으로 이미지가 굳어져 향후에도 재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취약한 당내 기반 속에 자칫 이대로 몰락해 정치 생명이 끝날 수도 있다.

이런 가운데 윤 대통령은 부인 김건희 씨와 함께 14일 아랍에미리트(UAE)와 스위스를 차례로 방문하는 6박 8일 일정의 순방길에 올랐다. 출국 전날까지 '나경원 죽이기'를 위한 일련의 조치를 다 취해놓고 뒷일은 당내 충복들에게 맡긴 채 홀가분하게 떠난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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