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결정 구조 고장난 삼성…답답한 사람은 그만둬”

[인터뷰] 의결권 자문사 서스틴베스트 류영재 대표

단기 수익률에만 집착하는 재무통이 좌지우지

이재용 회장은 4차 산업혁명 기술 이해력 부족

자기 밥그릇만 생각하는 전문경영인에 포섭돼

신사업 진출과 신기술 투자 타이밍 번번이 놓쳐

기업 거버넌스 바뀌지 않으면 위기 탈출 힘들어

“핀란드의 노키아 실패 사례 반면교사 삼아야”

2024-11-05     장박원 에디터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은 (중요한 사안에 대해) 결정을 잘못 내리고 안 내린다. 감사실 출신의 재무통인 정현호 사업지원TF장(부회장)이 주로 결정한다는 건 너무 잘 알려진 이야기다. 그러다 보니 기술적 이해도가 아무래도 떨어진다. 엔지니어나 과학자가 뭘 하려고 하면 무조건 쉽게 설명하고 보고서를 써오라고 한다. 투자수익률(ROI) 같은 재무적 관점에서 판단한다. 어떤 신사업 계획이나 신기술 투자 건을 보고하면 외국에 전례가 있었느냐 물어보고 그렇지 않으면 진행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온다. 그 결과 혁신의 엔진은 꺼지고 그냥 무난한 기술이나 제품만을 내놓는다. 대표적 사례가 HBM(고대역폭 메모리)인데 HBM 개발을 주장했던 사람들은 이런 의사결정이 답답해서 SK하이닉스로 갔다. 나머지 사람들도 입 다물고 있다 보니 정말 중요한 투자 시기를 놓치게 된 것이다.”

 

 류영재 대표가 지난달 30일 퇴계로 서스틴베스트 본사에서 시민언론 민들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삼성전자 위기 의사결정 메커니즘 망가진 탓

토종 의결권 자문사인 서스틴베스트의 류영재 대표는 지난달 30일 ‘시민언론 민들레’와 인터뷰하며 삼성을 비롯한 한국 재벌기업의 거버넌스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삼성전자가 위기에 직면한 것도 ‘거버넌스의 위기’에서 비롯됐다고 짚었다. 거버넌스는 통상 지배구조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 의미는 ‘의사결정 메커니즘’이다. 거버넌스에 문제가 생기면 의사결정이 지연되거나 잘못될 확률이 높고 결국 수익 감소 등 기업 가치 하락으로 이어진다.

의결권 자문사는 주주총회 의안을 분석해 기관투자자들에게 의결권 행사 방향을 조언하는 역할을 한다. 기업 거버넌스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류 대표는 한국에서 ‘의결권 자문’이라는 개념이 생소했던 2006년 서스틴베스트를 출범시켰다. 서스틴베스트는 외부 자금을 받지 않고 독립 자본으로 운영하는 국내 유일한 의결권 자문사다. 외부 입김이나 간섭 없이 객관적이고 독립적으로 의안을 분석한다는 점에서 독립 언론인 ‘시민언론 민들레’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최근에는 국내외 대다수 의결권 자문사가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에 찬성하는 의견을 냈는데도 이 안건에 반대를 권고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시민언론 민들레는 20년 간 기업 거버넌스 이슈에 천착해온 류 대표에게 삼성의 위기 등 현안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지난 10월 11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에 동행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서울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귀국하고 있다. 2024.10.11. 연합뉴스

삼성의 위기 이재용 꼼수 승계가 원죄

검증 없이 최고경영자 맡아 문제 생겨

- 삼성전자는 국민적 관심이 높은 기업이다. 주식 보유자도 400만 명이 넘는다. 그런데 최근 위기를 맞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주요 사안에 대한 의사결정에 이상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무엇이 문제인가.

“기업 경영이 3~4세로 넘어가면 이론상으로는 지분이 희석되는 게 당연하다. 그렇지만 삼성은 편법 또는 불법적인 방법으로 경영권을 승계했다. 이재용 회장은 1996년 종잣돈으로 아버지 이건희 선대 회장에게서 60억 원 정도를 증여받았다. 당시 16억 원 증여세를 낸 걸로 알고 있다. 그 돈을 가지고 삼성SDS와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을 낮은 가격에 인수했다. 화룡점정을 찍은 사건이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다. 이 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을 강화하는 게 목적이었다. 문제는 삼성전자 지분 4%를 보유한 삼성물산이 역사적으로 가장 저평가됐을 때 제일모직과 합병했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이재용 회장은 현재 자산이 8조 원에서 9조 원 정도로 불렸다. 이건희 선대 회장이 세상을 떠나면서 상속세를 내게 됐으나 그 전에 낸 세금은 16억 원에 불과하다. 이런 편법, 불법적 방법을 쓰지 않았다면 이 회장의 삼성전자 상속 지분이 희석되며 지배력은 약해졌을 것이다. 3, 4세로 내려오면 이게 맞는 것인데 삼성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재용 회장의 또 다른 문제는 신기술에 대한 이해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엔지니어나 전문경영인에게 집요하게 질문하지 않는다. 로보틱스와 반도체, 이차전지, 바이오, 양자 기술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고도의 전문성을 가져야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물론 최고 의사결정자가 반드시 물리학 박사이고 로봇 공학이나 바이오 박사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신기술과 시장 변화를 이해할 수 있는 정도는 돼야 한다. 이건희 선대 회장은 임원들을 부르고 엔지니어도 부르고 과학자들도 불러 집요하게 물어봤다고 한다. 이 회장 지식의 깊이를 모르는 데다 하도 집요하게 질문해 지적으로 벌거벗어지는 기분을 느낀 이들이 많다. 최고 의사결정자는 이 정도가 돼야 한다.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시장의 절대 강자인 대만의 TSMC 모리스 창 설립자나 엔비디아 창업자 젠슨 황도 물리학이나 전자공학 박사다. 반면 이재용 회장은 이공계 박사도 아니고 이건희 선대 회장처럼 집요함도 없다. 그래서 전문경영인들은 그의 속을 다 들여다보고 그 정도까지만 얘기하는 것이다. 골치 아픈 말은 안 하고 그냥 듣기 쉬운 이야기만 해버린다. 창업자 가족의 장자라는 이유로 검증 없이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되면 이런 일이 생긴다. 세계적인 기업인 삼성의 조타수 역할을 하는 사람에 대해 경영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객관적 검증이 없었다는 게 문제다. 가족경영이 꼭 나쁜 건 아니지만 최고 결정권자가 되려면 검증을 거쳐야 한다. 그렇게만 되면 가족경영도 장점이 많다.”

 

지난 7일 연합인포맥스에서 관계자가 삼성전자 주가를 살피고 있다. 2024.10.7, 연합뉴스

노키아 몰락도 거버넌스가 고장 났기 때문

전문경영인 보신주의로 신기술 대응 실패

- 삼성전자는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삼성이 무너진다면 우리나라 경제도 타격을 받을 것이다. 삼성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삼성전자 거버넌스의 변화를 가져오는 일은 쉽지 않다고 본다. 현재 전문경영인들은 대부분 이재용 회장 체제에서 임명됐다. 새로운 거버넌스가 됐을 때 그걸 반길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어떤 큰 문제가 발생해 위기를 느끼면 새로운 변화를 조금 모색할 수는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회장이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한때 핀란드 경제를 지탱했던 노키아의 실패 사례는 삼성이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 노키아는 핀란드의 수출 물량의 20%를 담당했다. 글로벌 휴대폰 시장에서 40% 가까이 점유한 적도 있다. 노키아가 망하고 프랑스의 인시아드 대학의 연구자들이 최고경영자와 중간 관리자, 엔지니어, 외부 전문가 74명을 심층 인터뷰를 했다. 분석 결과 노키아가 망한 원인은 결국 의사결정 메커니즘 문제인 것으로 밝혀졌다.

애플의 아이폰 등장 이후 노키아 현장 직원들은 스마트폰의 출현에 위기를 느꼈고 최고경영진도 변화의 필요성을 인지했다. 그러나 중간 관리자들이 보신주의로 흘렀다. 위기 대응에 대한 관점이 달랐던 것이다. 현장 엔지니어 말을 들었다가 잘못된 결과가 나오면 집에 가야 한다는 두려움이 중간관리자들에게 있었다. 그러다 보니 최고경영진에 제대로 된 보고를 하지 않았다. 현장 직원과 중간 관리자의 소통과 협업의 부재가 일어났다. 현재 삼성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노키아의 중간관리자에 해당하는 재무통 전문경영인이 의사결정 메커니즘을 장악해 자꾸 전례를 이야기하다 보니 인공지능(AI)용 메모리인 HBM 개발을 뒷전으로 미루는 어이없는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삼성의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거버넌스 변화가 시급하다. 3년 전 ‘엔진넘버원’이라는 헤지펀드가 엑손모빌 지분 0.02%를 매수했다. 엔진넘버원은 ESG(친환경, 사회적 책임, 올바른 거번넌스)를 추구하는 펀드다. 엑손모빌이 재생에너지에 투자하지 않자 기관투자자의 의결권을 동원해 거버넌스를 바꾸려고 했다. 엔진넘버원은 공적 연기금들을 찾아 다니며 설득했다. 그리고 재생에너지에 투자하는 주주 제안을 하며 추천한 이사 후보 2명을 엑손모빌 주주총회에서 통과시켰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엔진넘버원의 추구했던 가치나 주장이 합당했기 때문이다. 설득력이 있는 데다 펀드가 추천한 이사 후보들이 충분히 자격이 되니까 공적 연기금들이 합세한 것이다. 삼성전자도 엔진넘버원 같은 펀드가 주도한다면 적은 지분으로도 반도체 전문가로 세계적으로 검증된 사외이사 후보들을 추천할 수 있다. 이게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지난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열린 SK이노베이션-SK E&S 합병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박상규 SK이노베이션 사장이 합병 관련 발표를 하고 있다. 2024.7.18. 연합뉴스

SK이노 저평가 시기에 맞춰 E&S와 합병

대주주 지배력 커지고 일반 주주는 손해

- ISS와 글래스루이스 등 글로벌 자문사들은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 안건에 찬성했다. 국내 의결권 자문사들도 비슷한 의견을 냈다. 하지만 서스틴베스트만 해당 안건에 반대를 권고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나라 기업 거버넌스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지배주주와 일반 주주 간의 이해 상충이 발생하는데도 이를 깊이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사회가 지배주주 편에서 의사결정을 하다 보니 일반 주주들의 이익이 훼손되기 십상이다. 특히 지배주주 이익이 극대화하는 합병 거래를 통해 지배권이 더 높아지는 방향으로 타이밍을 정해 의사결정을 하는 게 문제다. 그래서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뿐만 아니라 모든 주주에 대해서 갖도록 상법을 개정하자는 것이다.

SK가 합병 계획을 발표했던 7월 SK이노베이션의 PBR(주가순자산비율)이 0.36으로 역사적 저점에 있었다. 상대가치 측면에서도 동종업체 PBR 평균을 크게 밑도는 수준이었다. 에쓰오일과 LG엔솔, 삼성SDI의 평균 PBR은 당시 1.8이었다. 상장사 간의 합병은 시가로 하게 돼 있다. 이사회 결의일 직전 단기 주가를 가중산술 평균으로 선정한다. 이렇게 산정한 SK이노베이션 시가는 11만 원 정도이다. 이에 비해 SK이노베이션의 자산 가치는 24만 원이 넘는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시장 가치가 자산 가치에 미달하면 자산 가치로도 합병가액을 산정할 수 있다.

시가와 자산 가치 중 어느 기준으로 합병가액을 산정하는지에 따라 지배주주인 SK와 일반 주주의 합병회사에 대한 지분율 차이가 8%포인트 이상 발생했다. 그런 만큼 이해 상충에 대한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합병 비율 측면에서 SK이노베이션 쪽에서 보면 자산 가치 적용이 유리하며 최선임에도 불구하고 시가 적용을 하는 건 전체 주주 관점에서 판단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래서 합병 반대를 권고했다.”

한국 재벌기업 거버넌스 변화 시급해

최고 의사결정권자 견제와 균형이 핵심

- 한국 대기업들은 창업 1, 2세 시대가 지나고 이제 3, 4세로 넘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경영 안정과 혁신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어떤 거버넌스가 바람직한가.

“한국에 맞는 새로운 거버넌스 모델이 나올 때가 됐다. 하지만 어떤 한 모델이 이상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회사에서 쫓겨났다가 돌아왔는데 독재하다시피 의사결정을 했다. 그렇다고 나쁜 거버넌스라고 할 수 없다. 결국 거버넌스는 그 기업의 내재적 특성과 문화, 발전 단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중요한 건 최종 의사결정자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다. 그렇다고 민주적 의사결정이 최상이라고 할 수도 없다. 민주적 토론 과정을 너무 중시하다 보면 신사업 기회를 놓치기도 한다. 뛰어난 한 사람이 결정하는 게 더 나을 때도 있다.

거버넌스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기업의 가치와 주주의 이익을 높일 수 있는 거버넌스가 좋은 거버넌스다. 한국 대기업들도 최고 의사결정자에 대한 견제와 균형, 의사결정 메커니즘의 효과성을 높이는 거버넌스 모델을 찾아야 한다.

기업 거버넌스 개선은 기업 소유구조와 자본시장 발전단계, 투자자 수준, 기업과 자본시장을 둘러싼 제도, 문화, 인프라 등과 종합적 입체적으로 함께 다뤄져야 한다. 한국 상장기업의 소유 구조와 문화는 미국의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반의 ‘창업자 자본주의’ 형태에 머물러 있는 데 비해 각종 거버넌스와 자본시장 제도들은 미국 등에서 1970년대 이후 발전해온 ‘주주 자본주의’의 주체-대리인 관점에서 도입된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예컨대 대리인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된 사외이사 제도만을 보더라도 한국의 대다수 사외이사는 그 선임이나 이사회 참여 과정에서 지배주주나 최고경영자에게서 독립적이기 어렵다. 사실상 지배주주가 소유와 경영을 겸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배주주 승인 아래 선임된 사외이사들이 현실적으로 독립적인 의견을 제시하기 힘들다. 사외이사들의 연임 욕심, 임기 후 타 회사 사외이사로 이직하기 위한 평판 관리, 유교적 의사결정과 행동양식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향이 강하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창업자 일가의 소유와 경영 미분리 상황에서 거버넌스 개선을 위한 주주 자본주의가 도입됐다. 그러나 기업을 둘러싼 의사결정 방식과 소유권 구조, 자본시장의 투기적 문화, 기관투자자의 영향력과 비중 등 거버넌스 발전에 필수적인 요소 간의 심각한 불일치가 나타났다. 광고주인 재벌에 포획된 언론을 비롯해 재벌에 의존하는 대형 로펌과 밀착된 사법부의 존재, 재벌의 직·간접 로비 대상인 관료, 정치인, 주요 학자들이 한국 기업들의 소유권 변천(경영권 승계에 따른 지분율 희석)이나 거버넌스 발전, 자본시장 제도 선진화의 발목을 잡아 왔다.

한국 자본시장의 디스카운트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첫째, 쥐꼬리 지분, 검증되지 않은 경영 능력으로 오너 행세하는 현재의 대다수 지배주주를 축출하고 미국의 1930~1940년대와 같은 경영자 자본주의(managerial capitalism)의 서막을 열어야 한다. 둘째, 이사회가 전문 경영자들이 제시하는 방향성과 전문적 의견들을 합리적 잣대에 따라 공정하고 객관적이고 판단해 의사결정 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내부정보 유출이야말로 자본시장의 근간을 흔드는 범죄이므로 기업 내부와 행동주의 투자자, 기관투자자 등 자본시장 참여자들은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해야 한다. 넷째, 사법부가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아니라 공평무사하게 기업 범죄, 회장님 범죄, 자본시장 범죄에 대해 일벌백계함으로써 사법적 정의를 확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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