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기사 이야기를 연재한 이득신 작가입니다
대리 알바로 시작, 문제의식 느끼게 된 계기
격려와 지적 모두 힘찬 원동력과 소중한 자산
대리운전회사 운영자, 예의 갖춘 항의 필요
2025년에 '활동가'인터뷰로 새롭게 인사 예정
대리기사를 시작하고 약 2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처음 시작할 땐 그저 부족한 소득을 보충하고자 2~3개월 정도만 알바 개념으로 생각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찌어찌하여 2년이라는 시간을 길거리 운전기사로 일을 하게 되었네요. 부족한 수입을 메울 또 다른 방편이 필요하기도 했고 약속이 되어 있었던 일자리가 어긋난 이유도 있었습니다. 더 큰 것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놓고 싶지 않았던, 작지만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작은 숟가락을 결코 내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기도 합니다. 2019년 문학상 수상으로 등단 작가의 길에 들어선 이후, <서울의 소리>에 입사하여 인연을 맺고, 절반은 기자로 나머지 절반은 활동가로 지내는 삶이 마치 일상처럼 되어버렸습니다. 박근혜 탄핵 당시 변화와 개혁을 부르짖으며 광장에서 외쳤던 그 많은 목소리에 감동했던 일들이 결국 저의 삶이 되어버린 셈이죠. 대기업 간부 출신이 시민단체 겸 인터넷 언론사의 기자로 살아가는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결국 가족들의 생계였습니다. 아이들의 교육은 포기할 수 없는 노릇이고 저 또한 활동가의 삶을 유지하고 싶은 바람의 충돌이 가끔은 스스로를 갈등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대리기사 일을 지속한다고 해도 체력의 한계와 컨디션 조절의 절박함 그리고 N잡러의 상황 때문에 매일 쉼없이 대리운전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한달에 15~20일 정도의 일을 하면서 느꼈던 많은 생각들, 불편하고 부당한 환경, 플랫폼의 횡포와 노예화되어가는 대리기사들의 안타까운 처지를 보면서 작가와 기자라는 신분을 활용해 이런 부분들을 알려야겠다는 의지가 불끈거렸습니다. 게다가 30만 대리기사와 5천 개의 대리운전회사를 지키고 보호하고 통제할 수단인 ‘대리운전업기본법’ 조차 존재하지 않는다는 황당함에 분노를 넘어선 슬픔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시민언론 민들레> 관계자 분들을 만나게 되었고 이후 17회 동안 연재를 하게 되었네요. 작가의 꿈은 있었으되 노동을 전문적으로 글쓰기하는 작가를 희망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전태일 문학상을 수상한 이후에도 분야를 넓히기 위해 정치와 시사 관련 기사를 통해 독자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리기사라는 직업을 갖게 되면서 대리운전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반응을 일으킨 이후 오히려 노동자의 삶에 대한 더 깊은 성찰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시민언론 민들레와 독자들께서 저를 더욱 성장하게 만드는 동력을 제시한 셈입니다.
처음 연재를 시작할 땐 도대체 이런 이야기에 누가 관심을 가질까라는 의구심도 있었고 밑바닥의 삶을 까발리는(?) 문제가 동료 대리기사에게 혹시 누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노조 측과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나의 노파심은 오히려 격려와 응원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힘이 되어준 상황들, 나의 글을 읽고 메일로 몇가지를 제보해주신 동료 대리기사님, 그리고 제 글을 여기 저기에 열심히 퍼날라 주셨던 또 다른 대리기사님들께 한없는 감사를 드립니다. 그 시간 동안 수많은 동료 대리기사를 만났고 2천여 명의 고객을 또 다른 술자리로 아니면 안전한 귀가길로 인도하기도 했지요.
지난 주 대리기사 이야기 최종회가 나간 이후 “갑자기 이렇게 예고 없이 연재를 그만두면 어떻게 하냐”는 동료 대리기사의 귀여운 항의성 전화를 받았습니다. 뭔가 아쉽다는 이야기에 많은 고마움을 느낍니다. 생각보다 저의 기사를 좋아해주고 응원해주는 분들이 많았다는 사실에 가끔은 놀라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합니다. 물론 탈고한 이후에 뭔가 부족한 생각이 들 때도 많았습니다. 따끔한 질책을 하신 기사님도 있었습니다. 충분히 공감하며 이해가 가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다른 기회에 지면에서 충분히 소명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들도 아마 일 년에 몇 번 정도는 대리운전을 이용하실 거라 생각됩니다. 대리기사에게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큰 힘이 됩니다. 짧은 가을 이후, 단풍이 지면 머지않아 북풍한설 한파가 몰아칠 것입니다. 그럴 때 대리운전을 이용하신다면 따뜻한 캔커피 하나에도 대리기사에게는 큰 위로가 됩니다. 대한민국의 말단에서 일하는 모두에게 격려와 지지가 필요한 세상입니다.
저의 글에 응원과 격려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1개월여 전에는 뜻밖의 욕설 전화가 저를 당황스럽게 하기도 했습니다. 대리운전 회사의 횡포를 지적한 글에 반감을 가진 분의 욕설인 것으로 보아 대리운전회사를 운영하는 분으로 추정됩니다. 일반전화로 온 번호는 되도록 받지 않기도 하는데, 그날 따라 지속적으로 걸려오는 전화에 누가 무슨 이유로 전화하는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해당 번호로 다시 연락을 했을 땐 착신이 금지된 번호라는 메시지가 들려오더군요. 아마도 공중전화로 저에게 협박을 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김건희 여사 7시간 녹취록 당시 서울의소리에서 엄청난 협박 전화를 받았던 터라 그 정도의 협박 전화에는 재고의 여지조차 없습니다. 다만, 그런 식으로 협박과 욕설을 하고 전화를 종료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님을 말씀드리고 싶군요. 그리고 반론이 필요하다면 이메일이나 다른 방식으로 항의하면 될 것입니다. 가장 나약하고 비루한 형태로 항의하는 것이 바로 협박과 욕설일 것입니다. 당당하게 나서서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지적하고 수정을 요청하는 것이 바른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혹여나 대리기사 이야기 연재를 종료하는 것이 그분의 협박 전화 때문은 아님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대리기사 이야기 연재를 시작한 초반, ‘내일을 여는 책’이라는 출판사에서 책을 펴내자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9월까지 원고 마감이 한없이 늦어지는 부분에 대한 부담감과 죄송함 그리고 출판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쯤에서 연재를 종료하는 게 도리일 것 같다는 저 스스로의 판단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리기사 관련 문제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가 많다는 댓글도 있었습니다. 당연히 제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대한 분노로 시작한 탐사 보도가 지금까지 글의 방향이었다면, 더 많은 고객들 그리고 대리기사들과 만나서 소통했던 이야기, 그리고 이동노동에 대한 성찰이 단행본 대리기사 이야기의 주제가 될 것 같습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지면을 통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요즘 시민운동이 어려운 길을 걷고 있습니다.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현 정부 들어 탄압을 받고 있으며 그 와중에 문을 닫고 활동을 중단하는 단체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더욱이 불경기의 여파로 후원금마저 끊어지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대한민국에는 수많은 시민단체가 존재합니다. 환경, 노동, 통일, 인권 등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응원해야 할 단체가 사라지는 것은 결국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이에 2025년 1월부터 시민운동에 전력을 다하시는 활동가분들의 삶과 투쟁을 이야기하는 새로운 주제로 시민언론 민들레 독자분들을 만나뵙고자 합니다. 진심을 다해 진정성 있는 글로 독자 여러분과 다시 만날 것을 약속드립니다.
어지러운 시절입니다. 나라가 어지럽고 민생도 어지럽습니다. 10월 들어서 두 여성이 연일 언론을 장식합니다. 도탄에 빠진 민중의 삶을 돌아보아야 하는 지도자는 백성 대신 마누라 꽁무니만 쫓으며 눈치보기에 급급합니다. 한 여성은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과 용기를 주지만 또 한 여성은 백성들을 절망과 좌절의 나락으로 몰아넣는 중입니다. 한 여성은 자신을 축하해주는 분위기에도 그저 조용히 세상을 성찰하고 관조합니다. 또 한 여자는 대한민국의 검은 실력자가 되어 매일 나대기를 반복하며 국민들을 조롱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힘을 내야 합니다. 나라는 권력자의 몫이 아니라 백성이 주인이라는 당연한 진리를 알려야 합니다. 부당한 권력을 향해 부당하다고 외쳐야 합니다. 범죄자는 권력자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법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말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진정 백성들을 위한 세상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다시는 이런 세상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저 역시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끝없는 투쟁을 약속드립니다. 민들레 관계자 여러분, 그리고 독자 여러분 모두 건승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