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상인들의 현금 인출기로 전락한 대한민국
반통일, 반평화, 전쟁 선호, 분단 고착 세력 넘어서자
한반도의 생명평화적 재구성을 위한 전략 짜야
성찰 없는 오판; 통일론 폐지와 두 개의 국가론
변통 아닌 원칙, 반평화‧반통일 세력과의 투쟁
적대를 거두고, 다시 만나야-절실한 상호 환대
야심한 평양 상공에 무인기가 뜨고, 체제 비판 전단을 살포했다. 무인기 출몰에 대한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의 담화는 ‘끔찍한 참변’을 예고한다. 뒤이어 개성과 금강산으로 가는 길이 폭파되었고, 이를 두고 ‘한국을 적대 국가로 규정한 헌법의 요구에 따른 것’이라는 평양발 보도가 나왔다. 이제 남과 북은 오물 풍선 주고 받기를 넘어 포성을 울릴 채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그러나 주변을 돌아보면 우리의 평범한 일상은 계속되고 있다. 일말의 불안감은 있지만, 70년 이상 이어진 상시적 전쟁 위협은 우리의 감각도 무디게 만들었다. 그러나 정녕 별일이 없을 것인가? 모를 일이다. 가자와 베이루트, 우크라이나 전쟁의 참상은 인류에게 이성이 있는 것인지, 소위 ‘집단 지성’이 존재하는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제기한다.
인류 사회는 일상의 폭력을 제어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공동체 최상위의 폭력을 국가에 부여했지만, 그 국가는 전쟁을 일삼고 있다. 전쟁은 인간성의 극단적 파괴다. 그렇다면 이 폭력의 위임을 전제로 구축된 현재의 문명 세계는 실패한 것이 아닐까?
이제 세계는 상시적 ‘세계전쟁 체계’에 놓여 있다. 그리고 그 전쟁은 국가가 수행하는 외양을 보이지만, 실제는 거대 다국적 기업 즉 자본이 수행한다. 러시아 용병기업 프리고진의 바그너그룹, 미국을 움직이는 거대 군산복합체가 그들이다. 현시기 특수를 누리는 한국의 무기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트럼프가 자신이 당선될 경우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식을 주장하지만, 민주당이나 공화당 누구도 전쟁으로 살아가는 미국이라는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전쟁 상인들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피 묻은 달러를 수집한다. 세계 도처에서 갈등과 분쟁을 부추기고 개입해 전쟁을 일삼는다.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세력에게 무기를 지원하며, 민중의 지지를 받는 권력을 무너뜨린다. 전쟁으로 황폐해진 나라에는 원조와 재건을 핑계로 자원을 약탈하고, 정치‧경제적 식민지로 만든다.
오늘 남과 북의 현실은 어떠한가? 표면적으로 보이는 남북의 갈등 너머 그 근원적 뿌리, 그리고 체제 대결을 고수하고, 분단을 유지하고자 하는 정치세력의 후견인인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전쟁 상인의 주문으로부터 정녕 자유로운가? 답은 부정적이다.
평화롭게 농사짓던 800만 평이 넘는 땅에 세계 최대‧최첨단 미국의 군사기지를 100억 달러가 넘는 자기 돈을 들여 만들어 주는 나라. 자국 내 주둔하는 미군의 ‘주둔비’(‘방위비’라는 개념은 애초에 잘못 명명됐다.)를 세계 어느 나라보다 더 많이 부담하는 나라. 미국 대통령 후보 트럼프가 그 돈도 더 받아내야 한다며 현금인출기(Money Machine)라고 조롱하는 나라. 전쟁 상인의 봉이 되어 2022년 5월~2023년 4월까지 1년 동안 세계 어느 나라보다 많은 미국산 무기 18조 6725억 원어치를 구입한 나라(시사저널, “윤석열 정부, 1년 만에 ‘미국 무기’만 18조 원 구매...문재인 정부 5년의 7배”). 전쟁 상인의 노예국가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성찰 없는 잘못된 결론: 통일론의 폐지와 두 개의 국가론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에 대한 우려와 함께 향후 남북관계를 어떻게 지향하고, 현시기 어디에 집중할 것인지를 두고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조선과 미국의 정상회담 결렬의 충격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컸고, 그 여진에서 여전히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다. 어찌 되었든 우리는 지금 자신이 받아 든 성적표에 근거해서 새로운 전략을 모색하고, 실천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의 낙관과 2024년 오물 풍선과 무인기가 넘나드는 현실의 교차는 심각한 인식의 혼란을 가져온다.
숙고 끝에 준비한 정상회담의 실패는 미국보다는 조선 쪽에 충격 자체였을 것이다. 내부적으로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지도력의 심각한 훼손도 있었을 것이고, 책임 주체에 대한 추궁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정상회담을 주선한 한국 쪽의 조미 정상회담 결렬에 대한 엄정한 평가와 후속 대안 마련 등에 대한 이야기는 제대로 공유되지 않고 있다. 650쪽이 넘는 전임 대통령 문재인의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 외교안보편 – 평양에서 워싱턴까지 결단의 순간들> 어디에도 그러한 논의는 찾아볼 수가 없다. 하노이 노딜에 대한 트럼프의 후회와 볼턴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 폼페이오에게 트럼프가 책임을 전가하는 발언을 소개한 것이 전부다.
오히려 미국이라는 제국의 본질과 의도에 대한 불철저한 사고, 조선(북)에 대한 지속적인 제재와 압박을 비판하는 진보 진영에 대해 ‘과거의 관성적 비판, 결과론적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 한다’고 비난한다. 나아가 집권을 했으니 책임 있게 사고하는 ‘모드 전환’이 필요했다고 강변한다(앞의 책, 48쪽). 회고록의 첫 장이 “미국의 손을 잡고”로 시작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2023년 말 남과 북이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로 규정한 1991년의 ‘남북 기본합의서’(정식 명칭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부정하고, 남북관계가 “더 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완전한 두 교전국 관계”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이에 따라 기존의 대남, 통일정책을 전환하는 조치를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지난 10월 7일 개최된 최고인민회의에서 개정된 사회주의 헌법에 “대한민국을 철저한 적대 국가로 규제”했다는 조선중앙통신의 설명이 있었다.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에서 확인되는 일련의 조치들은 해방 이후 70년 이상을 관통해 온 자신들의 통일운동에 대한 나름의 평가를 반영한다. 한국전쟁, 공작 사업, 남북 대화, 정상회담, 경제협력 등의 단계를 거쳐왔지만, 한국의 대 조선 인식 즉 ‘체제 붕괴론’에 입각한 ‘흡수통일론’에는 근본적 변화가 없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그리고 이와 대척점에 있는 한국사회 시민운동 역시 유효한 정치적 세력으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크게 기대할 것이 없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여기에 얼마 전 광주에서 열린 ‘9.19 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전임 정부 초대 대통령비서실장 임종석이 행한 “통일하지 맙시다”가 이어졌다. 우선 임종석의 발언을 액면 그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임종석은 변화된 현실을 받아들여 비현실적인 통일 논의보다는 평화를 최우선에 두고, 긴장을 고조시키는 적대 행위 중단, 두 개의 국가 수용,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헌법’의 영토관련 조항 등도 개정하자고 주문했다.
너무나 당연한 주장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에는 큰 허점이 존재한다. 무엇보다도 지난 정부 자신들의 실패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없다. 오히려 임종석은 자신들은 담대한 승부사였고, 섬세한 중재자였음을 자랑한다. 그런데 그들이 민족 앞에 받아 든 결과물은 무엇이었나? 근거 없는 낙관과 미국에 대한 안일한 판단이 결국 정상회담 결렬이라는 대참사를 낳았고, 새로운 대안 마련과 후속 사업으로 이어지지도 못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어떤 반성도, 의미 있는 언급도 없다.
임종석만큼 주목받지도 못했지만, 19일과 20일 계속된 전임 대통령 문재인의 광주와 목포에서의 기조 연설 역시 맹탕이었다. 우리가 맞닥뜨린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현실을 타개할 그 어떤 성찰이나 실천적 제안, 시민사회에 대한 주문도 없는 자화자찬 일색이었다. 하지만 극단적으로 진영화한 정치권, 팬덤화한 정치문화 속에서 이에 대한 건강한 비판과 문제의식은 잘 보이지 않는다.
변통이 아닌 원칙의 재확인, 반평화‧반통일 세력과의 투쟁 불가피
여기서 임종석과 문재인, 김정은의 판단을 재소환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과거에 대한 제대로 된 성찰 없이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남북 정상회담에 환호하고, 조미 정상회담의 결렬을 안타까워했다. 이후 상황은 수습되지 않았으며, 2019년 2월 28일 ‘하노이 노딜’ 이후 2년 이상의 시간, 소위 골든 타임을 그냥 흘려보냈다. 문재인은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해서도 조선 측이 소극적이었다는 미국 측 입장의 전언으로 재개 무산의 책임을 회피한다. 금강산 관광은 물론 개성공단의 철수도 한국 측이 취한 조치였으니, 해제 역시 대한민국 정부가 하면 되는 일이다. 전임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벌어진 일이라 할지라도 문재인 정부가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임종석이 들고 나온 “통일하지 맙시다, 두 국가론”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남북 사이의 특수성에서 평화와 통일이 분리될 수 없고, 평화 없는 통일, 통일을 전제하지 않는 평화는 애초부터 성립 불가능하다. 그것은 전쟁 위기 고조와 분단 고착화를 통해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외세와 지배세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평화와 통일의 여정이 그래서 그토록 어려운 일인 것이다. 시대가 변했어도, 당사자인 조선의 김정은이 아무리 ‘적대적 두 국가’임을 강조해도 남과 북이 하나의 민족임을 부정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통일과 평화 역시 전쟁의 참화를 겪은 우리가 비평화적 통일을, 통일을 전제하지 않은 평화를 상상할 수 없다. 분단을 유지하고자 하는 세력은 끊임없이 화해와 협력에 반대하며 긴장을 고조시키고, 갈등을 조장하며, 평화적 공존을 위협하는 방법으로 생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통일을 전제하지 않는 평화, 평화가 없는 통일은 학자나 호사가의 관념 속에나 존재하는 허상이다.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70년을 넘긴 분단 구조는 강고하다. 장애물을 만나 타개할 수도 있고, 우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운동에서 변통은 금물이다. 그것은 오히려 해법을 복잡하게 만들고 결국에는 길을 잃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임종석의 “통일하지 맙시다, 두 국가론”은 자신들의 오류와 실패에 대한 성찰이나 새로운 출발을 위한 출사표가 아니다. 미국과 반통일‧반평화 세력에 대한 항복 선언이자 굴종, 자기 변명일 뿐이다. 미국이 지극히 불합리한 주장으로 정상회담을 결렬시켰을 때 왜 그들은 회담 파탄의 원인 제공자가 미국이라고 말하지 못했는가? 그리고 지금도 말하지 않는가? 올바른 정보를 시민에게 제공하고, 정책에 대한 지지를 조직하는 정치세력의 기본 책무를 문재인 정부는 방기했다.
임종석은 국가보안법 폐지와 헌법 개정을 주문한다. 그 주장을 환영하지만 진정성과 실천 의지에는 의문을 제기한다. 그들은 21대 국회에서 과반의석은 물론,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행정부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은 그들의 집권 시기에 일점 일획도 바뀌지 않았다. 야당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22대 국회 역시, 아직 국가보안법의 개정 내지 폐지를 염두에 둔 어떤 의미 있는 활동도 보이지 않는다. 평생을 통일운동에 매진할 결심을 했다고 한다면 본인이 생각하는 국가보안법 폐지와 헌법 개정을 준비하는 여정에 나서야 한다. 주체적으로 준비하지 않으면 시국과 상황의 변화는 오지 않는다. 언제까지 ‘아직 때가 아니다’라는 유체 이탈 화법을 계속할 것인가.
김정은은 건강에 이상이 없는 한 상당 기간 조선의 최고 권력자로 기능할 것이다. 한국 사회가 5년 또는 4년을 단위로 정치세력의 극심한 부침에 요동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따라서 김정은이 갖고 있는 조선사회에 대한 전망, 남북관계에 대한 판단은 보다 안정되고 일관성 있게, 그리고 강력한 추동력으로 작동할 것이다. 김정은을 비롯한 조선의 집권 세력이 조미정상회담 결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동아시아에서의 진영 대결의 강화라는 국제 정세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생존전략을 수립했고, 이것이 오늘날 남북관계를 한 축에서 규정한다. 적대적 두 국가론과 남북관계 단절 선언은 김일성‧김정일로 이어지는 선대에 대한 부정이지만, 자신의 지지기반이 그만큼 공고하다는 반증이다.
국가전략으로서 조선의 제1 목표는 ‘체제 유지’다. 그 다음은 ‘경제 성장’이다. 체제 유지를 위해 경제 성장을 포기할 수는 있지만, 체제가 위협 받지 않는다면 경제 문제 해결에 집중할 것이다. 자력갱생을 외치지만 그 한계는 분명하다. 외부의 지원과 협력 없이 조선 경제의 정상화는 불가능하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여기다. 남북이 주고 받아야 할 것은 오물 풍선이나 무인기가 아니라 대화와 협력를 위한 손짓이다.
현실이 어렵다고 문제의 원인을 회피할 때 해법은 찾기 어렵다. 모순을 직시하고, 현실에 근거하되, 좌표를 잃지 않는 선택이 요구된다.
적대를 거두고, 다시 만나기
우리 앞에 주어진 시대적 과제를 살펴보는 것은 현실의 무기력을 타개하기 위한 첫 걸음이다. 우리에게는 어떤 과제가 놓여 있는가? 지구공동체에는 생명의 위기가, 인류공동체에는 불평등의 위기가, 한반도 공동체에는 전쟁의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문제는 복합적이고 중층적으로 얽혀 있다. 해법은 하나로 존재하지 않지만, 지난 시기 우리의 실천 속에 그 답이 있다. 남과 북에서 한반도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 한반도를 생명평화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이 그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 과제를 수행해왔고, 그리고 앞으로도 그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지난 시기 서로에 대한 적대를 거두는 데 실패했다. 당연, 적대를 거두는 작업이 우선이고, 다시 만나야 한다. 이남의 성원은 이남에서, 이북의 성원은 이북에서 각자의 사회에 강고하게 엄존하는 상대에 대한 적대를 거두는 작업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상호 비방 중단, 국방비 동결 및 감축, 헌법의 불합리한 영토 조항 개정, 국가보안법의 폐지 등이 그것이다.
또 하나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작업을 기초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시민을 바보로 간주하고, 대명천지 세계에도 유례가 없는 부끄러운 제약인 신문과 방송 접근 금지를 해제해야 한다. 당연 서신 왕래와 방문, 그리고 송금도 허용해야 한다. 지금도 국가보안법 등으로 엄금하고 있지만, 많은 이북 출신 이주민(‘이탈주민’이 아니다!!)들이 친인척과 소식을 주고 받거나, 이남에서 힘겹게 모은 돈을 비싼 브로커 비용을 치르면서도 보내고 있다. 분단된 국가의 국립대학에 남북의 협력을 다루는 학과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현실 역시 타개해야 한다.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박한식 선생의 주장처럼 개성 안에는 아닐지라도 현재 당면한 생명과 평화의 위기를 극복하고, 남북이 새로운 대안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총체적 전망을 연구하는 기관과 대학을 설립해야 한다(<통일뉴스>, “통일국가 설계도 만들 ‘개성 통일평화대학’ 제안: 박한식 회고록 평화에 미치다 출판기념회 열려,” 2021년 8월 27일).
이북과 이남 누가 먼저랄 것도 없다. 한국이 먼저 할 수 있는 것은 한국이 먼저하고, 조선이 먼저 할 수 있는 것은 조선이 하고,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함께 하면 된다. 2024년 6월 현재 누적 통계로 3만 4천 명에 달하는 한국 거주 조선 출신 이주민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지원도 중요하다. 한국사회에서 조선 출신 이주민이 겪는 차별과 고통, 어려움은 상상 이상이다. 먼저 온 통일로 각별한 환대의 정신이 필요하다. 분단과 대립 과정에서 구조적 희생양이 된 남북의 공작원 수가 최소 2만 명 이상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소식이 차단된 상태에서 한국과 조선에 살고 있고, 일부는 자신의 부모 형제 곁으로 돌아갈 것을 바라고 있다. 이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실태 조사, 국가의 사과, 명예 회복과 보상, 유해 송환, 자유의사에 따른 귀환이 필요하다.
한반도 전체의 생명평화적 재구성을 위하여
한반도 공동체의 성원에게 부여된 3중고 즉 생명 위기 극복, 불평등 해소, 전쟁 위협 제거라는 시대적 소명의 실천은 자신의 삶의 터전에서 시작된다. 마을과 직장, 그리고 지역사회를 생명과 평화에 충실한 질서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남과 북이 서로의 공통점과 장점을 공유하고, 서로 ‘배워주기’(남쪽의 ‘가르치다’를 북쪽에서는 ‘배워주다’라고 한다. 정서윤, 어떤 불시착: 22년 차 북한 이주민 청년 대표, 우리가 선 경계 이야기(서울: 도서출판 다른, 2024), 230쪽)에 나설 때 우리는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혁명은 수출될 수 없다. 한국사회는 한국 사람이, 조선사회는 조선 사람이 바꿔나가는 것이다. 지금 시기 우리 운동의 실패와 좌절에 대해 철저한 반성과 성찰을 토대로, 임시 변통이나 우회가 아닌 근본모순과의 정면 대결이 필요하다. 변명과 자화자찬으로 이 위기를 돌파할 수는 없다. 드물게 마주한 눈밝은 이들의 비판을 문재인 정부의 주체들은 귀담아 들어야 한다(신준영 “현장에서 본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평가와 향후 개선 방안” 국회 토론회 자료집: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선언과 차기 민주정부의 과제, 2024년 9월 25일; 문장렬 “문장렬의 안보 다초점: 공허한 ‘두 국가’ 논쟁...자주 없이 평화도 통일도 없다” 한겨레신문, 2024년 10월 5일) 그리고 그 주체들이 시민의 삶의 현장에서 자신들의 경험을 녹여내며, 생명과 평화의 한반도 공동체를 구축하기 위한 시민 교육과 실천에 함께 나서는 모습을 기대한다.
며칠 전 평생을 생명평화운동에 헌신해 오신 우리 사회의 원로 108인이 「미국-조선의 국교 수립을 위한 미국의 대화 제의를 촉구한다: 해리스‧트럼프 대선 후보들은 한국 국민의 요청에 답변해야」 제하의 기자회견을 진행했다(2024년 10월 14일). 원로 분들의 절절한 호소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우리는 깊은 자괴와 무기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역사적 경험에 비춰볼 때 미국은 아직 압도적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한 세계전략에 입각하여 한반도에서 조미 수교는 물론, 남북의 평화적 공존과 화해를 바라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국제사회를 향한 우리의 평화 호소는 결코 멈출 수 없지만, 한계 역시 분명하다. 미국사회가 미국 시민 스스로의 힘에 의해 전쟁 국가를 넘어 생명평화적으로 재구성되지 않으면 세계 평화는 물론 우리의 평화도 실현되기 어렵다. 소비에트연방과 동유럽권 붕괴 이후 남북의 유엔 동시 가입과 교차 수교가 이뤄지는 시점에서 미국과 일본이 조선과의 수교를 거부한 힘과 논리는 여전히 작동 중이다. 이 반동적 거부를 저지하지 못한 책임에서 한국의 시민사회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는 원로들의 자성과 성찰은 깊은 울림을 준다.
세계전쟁의 시대, 한반도마저 전장으로 만들 꿈을 꾸는 반통일, 반평화, 외세와 분단 고착 세력, 전쟁 상인의 놀음에 우리가 더 이상 희생양이 될 수는 없다. 남과 북, 한반도를 넘어 동아시아의 시민들과 함께, 인류공동체와 지구공동체를 생명평화적으로 재구성해야 하는 엄중한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