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리와 마음’ 안에는 해방되지 못한 ‘말과 글’들이 있다. 이 ‘말과 글’들은 내게 말한다. “인제 그만 우리를 놓아줘. 그동안 우리를 너의 안에 담고 있느라 고생했어. 우리는 이미 자랄 만큼 자라나 너의 ‘머리와 마음’ 안이 아닌, 바깥세상에서도 홀로 잘 살아갈 수 있어. 그러니 인제 그만 우리를 밖으로 내보내 줘. 고생했다. 그동안 우리를 품고 있느라. 때로는 많이 외롭고 버겁고, 때로는 답답했고 괴로웠고, 때로는 힘들었고 서운했고 슬펐을 텐데 말이야.”
내 안에 담겨있던 ‘말과 글’들은 계속 내 안에 쌓여 나의 ‘생각 그릇과 마음 그릇’을 기존보다 더 크게 해주었다. 공기 입자처럼 여기 튕기고 저기 튕기는 ‘말과 글’들은 내 그릇 안에서 여기 튕기고 저기 튕기며 내 그릇을 크게 해주었다. 때론 그들은 내 그릇 안에 가득 차, 그들의 거대한 양으로 내 그릇의 한계를 압도해 내 그릇이 커질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아니면, 내 그릇은 이미 컸을 수 있다. 다만, 그것을 제대로 인지 못한 나에게 ‘말과 글’들이 내 그릇의 크기를 인지할 수 있게 만들어준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작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제 그들을 조금씩 조금씩 조심스럽게, 세상 밖으로 보내주려 한다. 어떨 때는 과감할 때도 있겠지만.
내 안의 담겨있던 ‘말과 글’들은 동물원에 있던 동물들 같기도 하다. 태어난 곳은 동물원이지만, 그리고 자란 곳도 동물원이지만, 적정 나이가 되면 동물원을 벗어나 야생, 즉 자연으로 떠나고 싶어 하는. 그런 동물들 같기도 하다.
어떤 말은 카피바라, 어떤 말은 원숭이, 어떤 말은 호랑이. 어떤 글은 물개, 어떤 글은 돌고래, 어떤 글은 코끼리. 제각기 성격도 다르고, 크기도 다르고, ‘그것들이 갖고 있’는 힘도 다르다. 다양한 동물들 같은 ‘말과 글’들.
자연으로 가게 되면, 그 자연에 잘 어울려 잘 살았으면 좋겠다. 빨리 죽지 말고 그 본인 수명에 맞게 적당히 시간을 영위했으면 좋겠고, 물러나야 할 때라면 조용히 물러나 그 자리를 다른 존재에게 내줄 수 있는 지혜도 있었으면 좋겠다. 주위 환경과 잘 어울려 살았으면 좋겠고, 때로는 어떤 존재들을 이끌어주고, 때로는 어떤 존재들을 받쳐주는 그런 존재가 됐으면 좋겠다.
동물원 원장으로서 나의 동물들에게 이렇게 선포한다.
“너희들은 해방이다 ! 너희들이 가고 싶은 자연으로 돌아가라 ! 잘 살아라 ! 자식 같기도 한 나의 동물들이여 ! 나의 말, 나의 글들이여 ! .... !”
2023년 12월 27일 수요일.
최동준 씀.
작성일:2023-12-28 02:26:31 211.195.213.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