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세훈 서울시장이 광화문광장에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리는 ‘감사의 정원’을 건립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세종대왕 동상 뒤편에 “감사의 빛 22”라 하여 22개의 조형물을 세우겠다는 계획이다. “감사의 빛 22”는 ‘한국전쟁 참전국을 상징하는 ‘받들어 총’ 모양의 7미터 높이 화강암 돌기둥 22개를 세우고 지하에는 참전국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시설 공간을 마련하는 형태로 조성된다. 서울시는 총 22개의 조형물을 설치하는 까닭은 한국전쟁 당시 유엔의 이름으로 참전한 22개국에 대한 감사의 뜻을 담은 것이라고 하였다.
2. 한국전쟁 당시 유엔의 이름으로 참전한 나라가 자국의 병사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참전비, 추모비, 전적비, 기념관 등은 전국에 30곳이 넘는다. 그리고 대한민국 지자체와 국가기관이 세운 곳까지 합하면 수십에서 수백 건 수준으로 추정된다. 더구나 부산에는 한국전쟁 당시 희생된 유엔군 장병들을 추모하기 위한 묘지로 유엔기념공원까지 있다. 현재 ‘유엔기념공원(United Nations Memorial Cemetery)’은 전 세계에서 단 한 곳, 즉 대한민국 부산에만 존재한다. 이로 볼 때 오세훈 시장의 광화문광장 조형물 설치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적 행보라고 볼 수밖에 없다.
3. 유엔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한 최초의 인물은 박정희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은 10월 유신 직후인 1973년, 10월 24일을 ‘유엔의 날(United Nations Day)’로 공식 지정하고 국가기념일로 기렸다. 1970년대 초반은 미·중 화해, 미·소 데탕트, 베트남전 종전 등의 흐름 속에서 냉전 질서가 재편되던 시기였다. 닉슨독트린으로 대표되는 냉전체제 해체에 위기의식을 느낀 박 대통령은 1972년 10월 유신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유엔군의 참전이 ‘공산 침략에 대한 국제적 응징’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유엔의 날 기념을 통해 한국 사회의 반공 정체성을 재확인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1991년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하면서 ‘유엔=반공’을 통한 대한민국 정체성 확보는 더 이상 설득력을 얻지 못하게 되었다.
4. 한동안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던 유엔을 다시 소환한 세력은 뉴라이트다. 뉴라이트는 대한민국이 일본제국주의의 식민 지배로부터 해방된 1945년이 아닌 유엔이 합법 정부로 승인한 1948년이 대한민국 건국 원년이라며 이날을 ‘건국절’로 기려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역사 교과서에서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과 관련하여, 대한민국이 유엔의 지원과 국제적 승인 하에 성립 출범하였음도 분명하게 배울 수 있도록 강조”할 것을 이명박 정부에 요청하였다. 그 결과 역사 교과서 서술이 바뀌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유엔총회에서는 선거가 가능했던 한반도 내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유일한 합법 정부임을 승인하였다”라고 기술한 내용에서 “선거가 가능했던”이란 표현은 삭제되었다. 또한 “38도선 이남 지역에서 정통성을 가진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하였다”라는 부분도 “38도선 이남”이란 표현이 삭제토록 했다.
5. 그러나 이와 같은 교과서 서술은 역사적 사실과 배치된다. 1948년 12월 12일 유엔총회 결의는 한반도 전체에 대한 대한민국의 합법성을 승인한 것이 아니라, ‘선거가 실시된 지역’에서의 유일한 합법 정부였다. 따라서 유일한 합법 정부란 38선 이남에서 유일하다는 의미인 것이다. 실제로 2010년 당시 검정 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선거가 가능했던 지역에서”라는 표현을 넣으라고 출판사에 권고했었다. 만약 대한민국이 한반도 전체에 유일한 합법 정부라면 유엔이 남·북한 동시 가입을 승인할 리도 없었을 것이다.
6. 오세훈 시장의 유엔에 대한 ‘과잉 충성’은 뉴라이트적 역사인식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그의 이승만 기념관 건립 시도에서도 확인된다. 2024년 이승만 기념관 건립모금에 윤석열 대통령이 동참한 가운데, 오세훈 서울시장은 종로구 송현동 공원에 이승만 기념관을 건립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오 시장은 시정질문에서 “이승만 기념관을 건립해야 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의에 “네”라며, “가능성이 제일 높게 논의되는 데가 송현동 공원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답했다.
7. 광화문광장은 4·19혁명 당시 시민과 학생들이 민주주의를 실현을 위해 피 흘린 곳이다. 1960년 4월 19일 중앙청(광화문) 앞 시위에서 민주 공화국의 기본이념인 주권재민을 외치다 경찰의 발포로 사망자 21명 부상 172명이 발생하였다. 4월 혁명은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하여 독재정권을 타도하고 민주주의를 쟁취한 첫 민주 혁명이다. 또한 식민지 체제를 경험한 제3세계에서 가장 빠른 시기에 터져 나온 시민혁명이자 아시아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증명한 기념비적 사건이기도 하다. 이러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4·19혁명기록물」이 202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8. 광화문광장은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인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 시위가 일어난 장소이기도 하다. 그 결과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이 이루어졌고, 수입 조건이 일부 강화되었다. 촛불 시위는 이후 2016∼2017년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로 이어졌다.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는 당시 대통령이던 박근혜의 국정농단 사태가 드러나면서 2016년부터 2017년 초까지 대한민국 전역에서 진행된 대규모 시민운동이다.
12.3 내란 이후 광화문광장은 K-민주주의의 상징이 되었다. 2024년 12월 1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자 광화문광장은 내란 세력을 심판하는 평화적인 시민운동 장소가 되었다. 그리고 국민주권과 민주주의를 되살리는 빛의 혁명을 실현한 공간이 되었다.
9. 헌법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3·1운동으로 대표되는 독립운동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에서 찾고 있다. 반면 오세훈 서울시장은 독립운동보다는 유엔을, 4월혁명보다는 이승만을 더 기리고 있다. 경찰이 민주시민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한 장소에 ‘받을어 총’ 조형물을 조성하겠다는 발상이나 송현광장에 이승만 기념관을 건립하겠다는 발언이 이를 잘 말해준다.
2025년 10월 29일
덕성여대 명예교수 한상권
작성일:2025-10-29 15:18:37 59.5.4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