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권은 노동자 앞에서 “부끄러운 줄 아시오!”

건폭몰이 정부가 미조직 노동자 권익증진을?

노조법 보완이면 될 것을 "공제회 지원" 봉창

노동시장 이중구조 바라보는 인식도 아메바 수준

2024-09-11     손정순 시화노동정책연구소 연구위원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손정순 시화노동정책연구소 연구위원

필자는 지난 20여 년 넘게 비정규 노동문제를 직·간접적으로 지켜봐 왔다. IMF 경제위기 광풍이 쓸고 간 2000년대 초 대부분의 비정규 노동자는 당연히 미조직 노동자였으며, 극히 일부의 비정규 노동자가 노조를 결성했거나 결성하려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이용석 열사, 박일수 열사처럼 분신으로 비정규 노동문제를 폭로한 비정규 노동자도 있었다. 여의도 광고탑에서 고공 농성을 한 비정규 노동자도 있었으며, 반대로 마포 한강 다리에 밧줄 하나로 매달리며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을 요구하는 레미콘 노동자도 있었다. 거의 20여 년 전 얘기로 모두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 즉 노동3권을 보장하고 비정규 노동자의 정규직화와 차별 철폐를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그 이래 강산이 두 번 바뀔 동안 한국 사회 비정규 노동자이자 미조직 노동자에게 뭐라도 변한 게 있을까? 2022년 거제통영고성 사내하청 지회 유최안 부지회장이 “미안합니다. 하지만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며 대우조선 도크에서 쇠창살을 용접해 자신을 가두는 끝장 투쟁을 벌인 것을 보면 아직은 거의 바뀐 것이 없는 것 같다.

비정규·미조직 노동자가 처한 상황만 그대로일까? 비정규·미조직 노동자를 바라보는 정부 정책 또한 바뀐 게 없다. 지난 4월 4일, 윤석열 대통령은 「민생토론회 후속 조치 점검 회의(경제분야)」를 개최하면서 갑작스레 고용노동부에 ‘미조직 근로자 지원과’를 설치하도록 지시했다. 2022년 취임 이후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은 주로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그리고 노사관계에서 엄정한 법치주의 확립만을 강조해 왔다. 그리고 널리 알려진 것처럼 건설노조를 상대로 한 ‘건폭’몰이, 화물연대의 안전운임제 폐지 등 노조로 조직된 부문에 대한 반노동 정책만이 두드러졌다. 그런데 갑자기 미조직 노동자를 지원하는 부서를 만들겠다니! 역대 어느 정부도 하지 않았던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열린 25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모두 발언하고 있다. 2024.5.14.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건폭’몰이 하던 정부의 미조직 노동자 권익 증진 정책, 믿을 수 있나?

이후 5월 14일에는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를 개최하면서 특수형태근로 종사자, 플랫폼 종사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을 위한 가칭 「노동약자 지원과 보호를 위한 법률」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두 번에 걸친 대통령의 지시와 정책 발표에 따라 이를 전담할 부서가 6월 10일, 고용노동부 노동정책실 내에 신설됐다. ‘미조직 근로자 지원과’이다. 고용노동부 홈페이지에 게시된 미조직 근로자 지원과의 업무 내용을 보면 ‘노동약자 지원 관련 법제업무, 플랫폼 종사자 일터개선 지원 사업, 공제회 사업, 근로자 이음센터 구축, 운영’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고 밝히고 있다.

미조직 노동자의 “권익 증진은 국가가 관심을 가지고 직접 챙겨야 한다”는 윤석열 정부 정책에 반대할 생각은 없다. 다만 노동정책에서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상황을 방치한 채 갑자기 미조직 노동자를 지원하겠다는 정책 제시에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미조직 노동자가 누구이고, 얼마나 되는지도 파악하지 않은 채 플랫폼 노동자를 지원하는 내용으로만 가득 찬 미조직 노동자 지원 방안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헛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플랫폼 노동자는 현행 노동법상 ‘근로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라는 것이 현재까지 고용노동부의 기본 정책 기조다(필자는 ‘근로자’라는 단어가 아닌, ‘노동자’라는 단어가 옳다고 보지만 노동법에서 노동자를 ‘근로자’로 쓰고 있기에 불가피하게 근로자라는 표현을 쓴다). 그런데 플랫폼 노동자를 미조직 ‘근로자’ 지원의 핵심 대상으로 삼는다? 어느 순간부터 플랫폼 노동자가 ‘근로자’로 되었는가? 고용노동부는 플랫폼 노동자를 노동법상의 ‘근로자’로 간주하기로 정책을 변경한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은 채 미조직 노동자인 플랫폼 노동자를 지원하겠다는 정책은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것도 아니고 앞뒤가 안 맞아도 한참 어긋나고 있는 셈이다.

한계 분명한 ‘공제회’는 노동조합 대안 아니다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 안 되는 지점은 또 있다. ‘미조직(unorganized)’ 노동자라는 개념은 집단적 이해대변체에 소속되지 않은, 그래서 집단적 이해대변체를 통해 자신의 이해와 요구를 제기할 수 없는 노동자를 의미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의 대표적인 이해대변체는 무엇일까? 노동조합이다. 미조직 노동자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지 못한 노동자를 의미한다. 당연히 미조직 노동자를 지원한다면 첫 번째는 노동조합으로 조직되는 것을 지원하는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미조직 노동자 지원 정책에 노동조합이라는 단어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대신 ‘공제회’라는 단어가 수차례 언급되고 있다. 공제회도 집단적 이해대변체임에는 틀림없다.

사실 노동조합이라는 조직도 공제회에서 비롯된 것이다. 작업장 내 자본의 일방적인 노무관리에 대응하기 위해 작업장 밖 상호부조 조직인 공제회가 작업장 문제에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노동조합의 원형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가 지난 글에서도 썼던 것처럼 공제회, 노사협의회와 같은 집단적 이해대변체와 노동조합의 차이는 바로 노동자의 집단적 이해를 강제할 수 있는지 여부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의 집단적 이해를 자본에게 강제할 수 있는 조직은 노동조합밖에 없다. 공제회는 기본적으로 작업장 밖 지역·시민사회 영역에서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미조직 노동자 지원을 위해 공제회 설립 지원 사업을 강조하고 있지만 자본주의에서 대표적인 노동자 조직인 노동조합은 어디에도 언급하지 않는다. 노동조합을 뼛속까지 혐오하는 윤석열 대통령이기에 노동조합이라는 말은 쏙 빼놓은 것일까?

 

화물연대가 파업을 종료하고 현장 복귀를 결정한 9일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서 조합원이 눈물을 닦고 있다. 2022.12.9. 연합뉴스

공제회 두고 조삼모사 말고 노조법 제36조의 요건 완화가 절실

공제회 설립을 지원한다는 것까지는 그나마 인정할 수 있다. 미조직 노동자 상담, 권리 구제, 다양한 모임 지원 등 윤석열 정부가 제시한 이음센터 사업은 이미 전국의 지자체별로 설립된 다양한 명칭의 노동센터들이 10년 넘게 진행해 온 사업들이다. 2022년 6월 지방선거 이후 지방정부 권력을 장악한 ‘국민의힘’ 지자체장들은 하루아침에 노동센터를 없애거나 예산을 반토막 냈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는 똑같은 일을 하는 센터를 윤석열 정부의 고용노동부가 주도해 설립·운영하겠다니 윤석열 대통령이 속한 ‘국민의힘’과 오세훈 서울시장이 속한 ‘국민의힘’은 다른 당인가? 지역의 노동센터를 이용하고 있는 노동자를 바보로 보지 않는 이상, 조삼모사도 아니고 참으로 어이가 없을 뿐이다.

이처럼 윤석열 정부의 미조직 노동자 지원 정책은 기만과 위선으로 가득 차 있다. 더 큰 위선과 기만은 또 있다. 윤석열 정부는 미조직 노동자 보호와 지원을 통해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미조직 노동자 지원을 통해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이 어느 정도 이루어질 수야 있겠지만 지속될 수는 없다.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공제회는 작업장 내 노동조건, 특히 핵심인 임금과 관련해서는 노동조합의 임금협약처럼 강제력을 지닐 수 없다.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의 저임금을 노동공제회를 통해 일부 보완할 수는 있지만 이를 구조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최근 4~5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지역 노동공제회는 사업장이 아닌 지역 차원의 노동조합 결성이 현 노동법상 매우 어렵기에 일종의 우회로로 선택한 것일 뿐이며 궁극적으로는 지역 차원의 노동조합 결성을 최종 목표로 하고 있다. 노동공제회를 지원, 활성화하겠다? 노동약자 지원법 만들고, 이음센터 만드는 보여주기식 호들갑을 떨 것이 아니라 지역 노동조합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노동법을 개정하면 된다. 지역 차원에서 단체협약 효력 확장제를 규정하고 있는 노조법 제36조의 요건을 조금만 완화하는 개정만으로도 공제회 활동, 나아가 지역 노동조합 활동은 활성화될 수 있으며, 미조직 노동자의 처우는 확연히 개선될 것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대기업 노조 아닌 대-중소자본 간 격차가 원인

두 번째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바라보는 윤석열 정부의 단순한 인식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바라보는 인식은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와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지 못한 노동자라는, 정말이지 아메바 수준의 단순·무식함에 기반하고 있다. 그래서 노조로 조직된 부문은 방망이로 두들겨서 내리고, 노조로 조직되지 못한 부문은 노동조합을 우회하는 지원을 통해 부추기는 식으로 이중구조를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dual labor market)의 근본 원인을 노조로 조직된, 특히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조직된 노동이 야기하는 효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번지수를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은 인식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자본주의 경제의 이중구조와 동전의 앞뒷면처럼 맞닿아 있는 문제이다. 원인은 자본주의 경제·산업구조의 이중화, 즉 대-중소자본 간 격차가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이며, 노동조합이 주된 원인은 아니다. 시화·반월공단의 2, 3차 하청 사업주는 ‘원청이 단가를 안 올려줘서’ 임금인상이 어렵다는 얘기를 임단협 교섭 테이블에서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엄살이라고 쳐도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겠는가? 호황을 누린다는 반도체 업종에서 최대의 이익을 올리는 사업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종합반도체 사업체뿐이다. 그 밑에 있는 시화·반월공단의 2, 3차 전자업종 하청사업체 노동자의 임금은 여전히 전국 제조업 노동자의 평균 임금 수준을 밑돌고 있을 뿐이다.

최소 80만 명을 넘는 플랫폼 노동자도 미조직된 상태이지만 더 큰 미조직 노동자가 있다. 바로 중소영세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이다. 2023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자료를 보면 전체 한국의 임금노동자 2195만여 명 중 73.2%에 이르는 1606만여 명이 일하는 곳에 노동조합이 없다고 밝혔다. 사업체 규모 10인 미만의 경우에는 무려 90%를 넘는다. 뿌리 깊은 기업별 노조주의 효과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사업체가 영세해 ‘노조를 만들어도 별 효과가 없을 것 같아서’가 노조가 없는 주된 이유이다. 바로 앞서 언급한 경제·산업의 이중구조화에 따른 부수적인 결과이자 인식이다.

노조 가입하면 바로 짤리는 현실 방관하면서 미조직 노동 지원한다고?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비록 시기적으로 오래됐지만 2016년 필자가 있는 연구소가 진행한 시화공단 미조직 노동자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22.3%, 응답자 5명 중 1명은 해고 우려, 취업 방해 등 노조 가입에 따른 불이익 우려로 인해 노조에 미가입하는 것으로 밝혔다. 작년 봄에 시화공단에서 노조 가입 선전전을 할 때 들었던 “여기서는 노조 하면 짤려요”라는 노동자 말이 보여주듯이 상황은 그다지 변한 것이 없다. 또 다른 적나라한 사례가 있다. 지난 8월 말, 시화공단에 있는 중(中)규모의 자동차 부품사에서 물류 업무를 담당하는 사내하청 업체 소속 노동자 30여 명이 노조에 가입했다. 노조에 가입하자마자 원청 자동차 부품사의 대응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다음 날 사내하도급 업체와의 도급 계약 해지였다.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30여 명의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가 졸지에 일자리를 잃었다.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노동3권이 간단히 무시되는 현실을 방치·조장하고 있으면서 현 정부가 미조직 노동자를 지원하겠다는 것은 모순도 이만저만한 모순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가 정말이지 진정으로 미조직 노동자를 지원하겠다면 두 번이나 거부권을 행사한 노조법 개정안을 지금이라도 수용해 미조직된 비정규 노동자 스스로가 노동조합을 만들어 노동3권을 행사하도록 하면 된다. 용역, 사내하청, 일용파견, 특수고용 등 근로계약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노조를 부인하는 등 사용자 책임을 손가락 튕기듯이 간단히 거부해 왔던 자본에게 사용자 책임을 부과하면 되는 것이다.

지난 8월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이후 22대 국회는 또 다시 노조법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 큰 기대를 하지는 않지만 윤석열 정부가 미조직·비정규 노동자 문제에 얼마만큼 진심인지는 곧 판가름 날 것이다. 20여 년 넘는 기간 동안 미조직·비정규 노동자가 자결하고, 분신하고, 농성하고, 심지어는 쇠창살을 용접해 자신을 가두고서야 노동문제가 겨우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으로 해결되는 상황을 이제는 넘어서야 되지 않겠는가?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 단골손님인 대한민국 정부가 또다시 위원회에 호출되는 부끄러운 상황을 이제는 끝내야 되지 않겠는가? 언제까지 ‘부끄러운 줄 아시오’라는 호통 소리를 미조직·비정규 노동자에게서 들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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