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근, 수중수색 지시' 증인 대질신문도 안했다
경북경찰청장 "그건 필요성 있을 때 하는 것"
"타군 파견 대대장, 사단장 지휘 거부 못한다"면서
"채 해병 사건에는 아니다"…황당한 모순답변
청장이 수심위 직권상정해 '임성근 무혐의' 결론
수심위 명단·회의록 공개 거부하며 "이견 없었다"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수중수색을 지시했다'는 군 관계자들의 진술이 있었음에도 경북경찰청이 대질 신문(증인과 다른 증인을 대면시켜서 하는 신문)도 하지 않고 불송치 결정을 내린 것으로 드러났다. 김철문 경북청장은 임 전 사단장에 대해 대질신문의 필요성이 없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은 수중수색을 지시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11일 오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해병대 포병여단(7여단) 윤모 소령과 여단 작전과장이 임 전 사단장의 수중수색 지시에 대해 증언한 국방조사본부 자료가 있다면서, "임성근과 이 두 분의 진술이 상반된다. 한쪽에서는 지시했다고 하고, 임성근은 아니라 한다. 대질 신문을 했느냐"고 김 청장에게 물었다. 이에 김 청장은 "대질 안 했다"고 답했다.
윤 의원이 "경북청은 11개월 동안 68명 조사했고, 박정훈 대령이 10일간 73명을 조사했다. 단순 숫자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핵심 진술에 대한 참고인들 조사도 안하고 대질 조사도 안했다면 경북청 수사결과가 무너지는 것"이라고 지적했지만, 김 청장은 "대질조사는 필요성이 있을 때 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윤 의원이 "대질 필요성이 없다는 취지로 말한 것이냐"고 다시 물었고, 김 청장은 "네"라고 답했다.
윤 의원은 "임 전 사단장 수중수색을 안 했다는 거고, 두 사람은 수중수색을 유추할 만한 대상이 있었다는 건데, 대질신문 대상이 아닌가. 왜 한쪽 이야기만 듣나"라며 "임성근 이야기만 들으니까 '받아쓰기' 비난이 나오는 거 아닌가"라고 재차 지적했지만, 김 청장은 "그렇지 않다"고 맞섰다. 윤 의원이 재차 "왜 일방 이야기만 듣나. (대질은) 수사의 기본 ABC 아닌가"라고 하자, 김 청장은 "임성근 사단장은 수중수색을 지시한 사실이 없다"고 했다.
김 청장의 발언은 경북청의 수사 결과 발표를 그대로 반복하는 수준이었다. 앞서 경북청은 지난 8일 임 전 사단장에 대해 "실제 작전 현장에서 실질적 영향력 행사가 가능하다"면서도, 부하인 포11대대장의 지시 오인이 채 해병의 사망 원인이지, 임 전 사단장에겐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했다. 또 경찰은 '수변으로 내려가서 바둑판식으로 수색하라'는 사단장 지시는 군사교범 상 지시이고, '가슴장화 착용 지시'도 수중수색 지시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상식과 먼 판단이었다.
지난해 8월 작성된 국방조사본부 중간보고서에 따르면 임 전 사단장은 채 해병이 순직하기 전날인 지난해 7월 18일 작전 지역 현장지도에서 작전 병력이 물에 들어가지 않고 도로 위주 수색활동을 하던 모습을 본 뒤, "(수변에) 내려가서 수풀을 헤치고 찔러 보아야 한다. (물가에 들어가는) 그런 방법으로 71대대가 실종자를 찾은 것 아니냐? 내려가는 사람은 가슴 장화를 신어라"라고 구체적인 수색 방법을 거론했다. 내용 면에서 사실상 수중수색 지시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경북청은 사단장에게 구체적인 지적를 받으면 현장 지휘관은 명령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지만, 이러한 군의 특수성은 무시한 채 사단장의 지시에 항명하지 않은 현장 지휘관에게 책임을 물었다. 상명하복인 군대에서 사단장의 지시에 항명하지 않은 게 죄라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렇다보니 김 청장의 발언 자체도 회의 내내 앞뒤가 맞지 않았다.
김 청장은 임 전 사단장에 혐의가 없다면서도 "대대장이 사단장 지시를 어길 수 있느냐?"는 윤 의원의 질문엔 "(어길 수) 없다"고 답변했다. 김 청장은 합동참모본부(합참), 육군제2작전사령부(2작사) 등 상급부대 단편명령에 따라 당시 육군 50사단장에게 현장 작전통제지휘권이 있었다며, 임 전 사단장이 수중수색을 지시하지 않았다는 주장만 반복했다. 사건의 실질은 외면한 채 임 전 사단장이 주장하는 서류상 형식 논리로만 사건을 따진 셈이다.
김 전 청장은 오전 회의에서도 민주당 이상식 의원과의 질의응답 과정에서 "(해병대) 병력이 파견돼 육군의 지휘를 받고 있었지만 임 전 사단장의 지시와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느냐?"는 질의에 "사단장의 직접적인 지휘는 거부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사단장의 지휘를 무시하기 어렵다고 인정한 셈이다. 그러나 김 청장은 "임 전 사단장이 부대를 파견했다고 자기 밑에 부하들한테는 영향이 없느냐?"고 이 의원이 다시 묻자 "영향이 있지만, 이번에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사단장의 영향력이 있는데, 채 해병 사건에서만은 아니라는 황당한 답변이다.
이렇다 보니 행안위 전체회의에선 대통령실의 수사외압에 대한 추궁도 이뤄졌다. 실제 국방부의 채해병 사건 기록 탈취가 이뤄졌던 지난해 8월 2일, 윤 대통령의 전화를 받은 임기훈 국가안보실 국방비서관이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에게 전화하고, 유 법무관리관이 노규호 경북청 수사부장에게 전화하는 등 일련의 과정이 이미 통화 기록에서 확인 된 바 있다. 그러나 김 청장은 "수사와 관련해 외부로부터 일체의 전화나 청탁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윤희근 경찰청장도 수사외압과 관련해 "전혀 없었다"며 "이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는 법에 정해져 있는 업무상과실치사 책임이 누구에게 어디까지 있는지 법리적으로 접근했다. 그런 부분은 저희 수사에 일체 고려사항이 아니"라고 했다. 윤 청장은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경북청의 수사 결과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하자, "경북청 수사팀의 판단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들이 기대하는 것과 다르다고 해서 수사를 그 이유로 비판할 수 없다"고 했다.
아울러 이날 회의에선 임 전 사단장에 대해 '혐의 없음' 처분을 내린 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의 명단 공개도 문제가 됐다. 김 청장은 "수사팀 의견과 수심위 결과는 임 전 사단장 불송치로 동일했다"며 "회의는 비공개 원칙이기 때문에 회의록은 공개하지 않는다"고 했다. 윤 청장은 "수심위는 공정성과 객관성이 최고의 가치다. 명단이 공개되면 위원들이 수심위에 나오지 않을 것"이라며 비공개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 소속인 신정훈 행안위원장은 "수심위 규칙에 '심의는 비공개로 한다'고 돼 있는 것을 경찰청이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명단을 비공개로 하란 조항은 없다"며 "2021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수심위 명단이 공개된 적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위성곤 의원도 "어떤 규정에도 공개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위원회 의결로 심의위 명단 공개를 요청한다"고 말했다. 같은 당 박정현 의원은 "수심위를 운영하는 이유는 수사 과정에서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건데, 공정성 확보의 기반은 투명성과 공개성"이라며 명단을 공개하라고 했다.
한편 김 청장은 수심위 심의 과정에서 임 전 사단장의 불송치에 이견이 없었다고 밝혔다. 민간심의기구인 수심위에서 이견이 전혀 없었다는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수심위는 통상 피의자가 방어권 차원에서 신청한다. 그러나 이번 수심위는 매우 이례적으로 청장이 직권상정했다. 미리 결론을 정해 놓고 민간이 참여하는 수심위라는 형식을 이용해 수사 책임을 회피하려는 꼼수가 아닌지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명단을 비공개하고 이견이 전혀 없었다는 점은 이같은 의심을 뒷받침한다.
특히 경찰 수사사건 심의 등에 관한 규칙 제17조 3항에 따르면 수심위 심의결과와 다른 의견을 가진 위원은 본인의 의견과 그 이유를 기재한 서면을 심의결과서 뒤에 첨부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적 의혹이 1년 가까이 제기된 사건임에도 이번 수심위에서는 단 한 장의 이견도 첨부되지 않았다. 김 청장은 민주당 모경종 의원의 "심의결과서 뒤에 이견이 첨부됐냐"는 질문에 "이견은 붙어있지 않았다"고 했다. 모 의원이 "이견이 없었냐"고 하자 김 청장은 "그렇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