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지침대로?…'채해병 사망' 임성근 불송치 결정

경북경찰청, 현장 개입 정황 있는데…"사단장 의무 없다"

지휘관 질책했는데도…"수중수색 지시 아니다"

여단장 송치해놓고선 사단장은 인과관계 없다

"이럴려고 1년간 수사 했나…특검 이유 명백해"

날개 단 임성근, 기자들에게 메일 보내 소송 협박

대통령실은 기다렸다는 듯 "특검법 거부" 시사

2024-07-08     김성진 기자
8일 오후 김형률 경북경찰청 수사부장이 해병대 채상병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24.7.8. 연합뉴스

경찰이 '채 해병 순직 사건'과 관련,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에 대해 직권남용 및 업무상과실치사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불송치 결정을 내렸지만, 국민의 상식에서 납득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온다.

경찰은 임 전 사단장이 '실질적 영향력 행사가 가능하다'면서도 채 해병 사망과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지만, 현장 지휘관에 대해선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겠다며 검찰에 송치하는 '모순'을 보였다. 또 '바둑판식 수색'이나 '가슴장화 착용' 등 수중수색 관련 사안에 대해서도 모두 임 전 사단장의 손을 들어줬다.

임 전 사단장은 경찰의 불송치 결정 직후 <시민언론 민들레>를 비롯해 채 해병 사건을 보도했던 기자들에게 기한 내에 기사 등을 수정한 뒤, 공개적으로 발표하라고 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민·형사상 소송을 취할 것이라고 했다.

수사 외압 의혹을 받고 있는 경찰이 앞장서서 임 전 사단장에게 날개를 달아준 꼴이다.

해병대 예비역 단체와 야당은 경찰의 발표에 대해 "경북경찰청도 (수사외압 사건) 수사 대상"이라며 "특검과 국정조사의 필요성이 더 명백해졌다"고 반발했다.

현장 개입 정황 있는데…"사단장 의무없다"

경북경찰청은 8일 오후 채 해병 순직 사건과 관련한 언론 브리핑을 통해 임 전 사단장과 하급 간부 2명 등 3명을 불송치한다고 밝혔다.

해병대 1사단 7여단장, 11포병대대장, 7포병대대장, 7포병대대 본부중대장, 본부중대 소속 수색조장, 포병여단 군수과장 등 6명은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송치하기로 결정했다.

경찰은 송치된 6명에 대해 "업무상과실치사의 공동정범 혐의가 인정된다"고 밝힌 반면, 임 전 사단장 등 3명에 대해선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지난 5월 14일 경북 경산시 경북경찰청 형사기동대에서 '해병대 채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22시간이 넘는 조사를 받고 청사를 나서고 있다. 2024.7.8. 연합뉴스 자료사진

경찰은 임 전 사단장의 업무상과실치사죄 판단과 관련, "비록 작전통제권이 없다 하더라도 실제 작전 현장에서 실질적 영향력 행사가 가능한 위치에 있었으므로, 수색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대원들의 생명·신체에 대한 위험을 방지해야 할 조리상, 사실상 의무가 있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업무상의 과실은 일반적, 추상적인 주의의무의 위반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작전통제권이 없는 임 전 사단장에게 수색작전 관련 '사전 위험성 평가의무'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현장 작전통제지휘권은 육군 50사단장에게 있으므로 임 전 사단장에게 책임이 없다는 설명이다. 경찰이 임 전 사단장의 기존 주장을 그대로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국방조사본부가 지난해 작성한 중간보고서에 따르면 임 전 사단장은 육군 제2작전사령부(2작사) 단편명령에도 불구하고 현장에 있던 9중대 행정관에게 "너네 몇 중대냐. 병력들 왜 아직도 저기 있냐. 투입 안 시키고 뭐하냐. 병력들 빨리 데리고 와"라고 지적하며, 위험성 평가 여건을 보장하지 않고 작전 전개를 재촉했다.

이러한 임 전 사단장의 개입 정황은 제외한 채 단순히 상급 부대의 단편명령에 따라 사단장의 '위험성 평가 의무'가 없다고 판단한 대목은 경찰이 현장 조사나 관계자 조사를 제대로 했는지 의심이 들게 한다.

"사단장 질책했지만…수중수색 지시 아냐"

또한 경찰은 "(임 전 사단장의) '수변으로 내려가서 바둑판식으로 수색하라'는 지시는 수색 지침대로 군사교범 상 수색 방식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임 전 사단장의 작전 수행 관련 지적과 질책에 따른 부담감이 있었음이 일부 확인되나, 이를 이유로 포11대대장의 임의적인 수색 지침 변경을 예상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채 해병 순직의 직접적 원인을 포11대대장의 '사실상 수중수색으로 오인케 하는 지시'로 봤다. 현장 지휘관의 오인 지시가 원인이지 임 전 사단장에게 업무상 과실치사의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아울러 "사고 전날 저녁, 사단장 주관 화상회의에서 '가슴장화' 지원 지시가 있었으나, 이는 앞서 상급부대인 2작사에서 당시 수해복구에 지원된 군부대에 '가슴장화' 지원을 준비했었고, 현장지도시 수행한 7여단장이 '대원들 옷이 오염되니 가슴장화를 착용하면 효과적일 것 같다'며 지원 건의가 있었다"면서 "과거 '힌남노' 태풍 피해 복구에 투입된 해병대원의 가슴장화 착용이 있었던 사실 등을 고려할 때 이를 '수중수색' 지시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대민지원 부대 간 카카오톡 대화방 내용. 4인 1개조로 찔러가면서 확인하라는 임성근 해병 1사단장의 지시사항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2023.8.21. 군인권센터 제공

그러나 임 전 사단장 본인의 주장에 따르더라도 바둑판식 수색은 "육상에서만 가능한 방법"이다. 수변에서 하는 바둑판식 수색은 임 전 사단장의 설명을 빌리면 군사교범 상 합당한 지시로 보기는 어렵다. 채 해병 순직의 결정적인 원인임에도 경찰이 이를 정상적인 지시처럼 표현한 대목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또 경찰은 임 전 사단장의 질책으로 인한 현장 지휘관의 임의적인 수색 지침 변경(수중수색으로 변경)을 예상하기 어렵다면서, 사단장의 '가슴장화 착용 지시'에 대해서도 수중수색 지시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는데, 이 역시 설득력이 떨어진다.

국방조사본부 중간보고서에 따르면 임 전 사단장은 채 해병이 순직하기 전날인 지난해 7월 18일 작전 지역 현장지도에서 작전 병력들이 물에 들어가지 않고 도로 위주 수색활동을 하던 모습을 본 뒤, "(수변에) 내려가서 수풀을 헤치고 찔러 보아야 한다. (물가에 들어가는) 그런 방법으로 71대대가 실종자를 찾은 것 아니냐? 내려가는 사람은 가슴 장화를 신어라"라고 구체적인 수색 방법을 거론했다.

사단장의 이같은 지적이 현장에 있었음에도 수중수색 지시로 받아들일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경찰의 판단을 납득하기는 어렵다.

이외에도 임 전 사단장은 채 해병 순직 당일인 7월 19일 수중수색 언론 보도 사진을 카카오톡으로 보고 받고 "훌륭하게 공보업무가 이뤄졌다"며 '외적 군기'에 관심을 두고, "해병대가 눈에 확 뛸 수 있도록 가급적 적색티 입고 작업" 등의 지시를 내려 안전 확보 업무를 게을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이러한 행위에 대해서도 경찰은 모두 사망과 인과관계가 없다고 했다.

경찰은 사단장 명의의 단편명령을 내려 부대별 작전 임무를 부여했다거나 늦은 작전 투입을 질책했다는 등 언론을 통해 제기된 직권 남용 의혹에 대해서도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이 채수근 상병이 급류에 휩쓸리기 약 2시간 전인 지난달 19일 오전 7시쯤 조간 스크랩 보고를 받고 "훌륭하게 공보활동이 이뤄졌다"고 칭찬하는 내용의 카카오톡. 2023.8.30. 박정훈 대령 변호인 제공

여단장은 송치하는데 사단장은 불송치

이같은 경찰의 판단은 임 전 사단장의 직속 부하인 7여단장에 대한 검찰 송치와 대비된다.

경찰은 7여단장에 대해 "내부 논의과정에서 비록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사망의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하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당시 여러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그 책임유무에 관한 법원의 판단을 받아 볼 필요가 있다고 최종결정했다"며 송치 결정을 내렸다.

현장 지휘관에 대해서는 법원의 판단을 받겠다며 검찰에 송치한 반면, '윗선'인 사단장에 대해선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법원의 판단을 받을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한 것이다.

경찰이 사단장과 여단장에 대해 판단을 달리한 근거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경북경찰청 최문태 형사기동대장은 비공개 백브리핑에서 "7여단장은 임 전 사단장과는 달리 1600여 명의 총책임자다. 7여단장은 수중수색 지시를 오판한 포병 11대대장과 직접 소통했다"며 "임 전 사단장의 경우 지휘계통에 있지 않았다. 지시로 사고가 났으면 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그렇지도 않다"고 했다.

그러나 경찰 브리핑에 따르면 임 전 사단장은 "실질적 영향력 행사가 가능한 위치"에 있었고, 7여단은 모두 사단장 지휘계통에 있는 예하 부대다. 임 전 사단장이 현장에서 적극 지도하며 개입한 정황이 있음에도 '지휘계통에 있지 않았다'는 경찰의 설명은 앞뒤가 맞지 않다.

해병대 전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의 변호인단은 보도자료를 내고 "경북청이 7여단장을 송치하면서 제시한 근거는 사단장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며 "바둑판식 수색정찰은 수중수색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거나 가슴장화는 실종자 수색 작업이 아니라 수해복구 작업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사단장의 변명은 도저히 믿기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 5월 2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해병대 예비역연대 회원들이 재의결 안건으로 상정된 '해병대 채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이 부결되자 국민의힘 의원들을 향해 소리치고 있다. 연합뉴스

"특검, 국정조사 필요성 더욱 명백해졌다"

경찰의 임 전 사단장 불송치 결정에 해병대 예비역 단체는 즉각 반발했다.

해병대 예비역 연대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채 해병이 순직한 지 1년이 되는 시점에 내어놓은 수사결과는 참담하다"며 "수사외압은 현재진행형이며, 경북경찰청 또한 그 수사대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내가 80평생을 살아보니 힘있는 놈들 다 빠져나가고 힘없는 놈들만 처벌받더라'는 채해병의 할아버지 말씀이 경북경찰청이 발표한  수사결과에도 이어지고 있다"며 "(불송치 결정은) 사단장 대신 뜬금없이 7여단장, 7여단장 참모를 희생양으로 삼아 임성근으로부터 눈을 돌리려는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결국 특검과 국정조사의 필요성이 더 명백해졌다"면서 "대통령은 수사중일 때는 '수사 중이니까 특검을 유보하자'고 했다. 이제 '수사가 잘 끝났으니 특검은 필요 없다'고 말 바꾸지 않기 바란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해병대원 사망사건 진상규명 태스크포스(TF)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역시나 심의 결과 임성근 사단장은 '불송치 결정'됐고, 경찰 최종 수사 결과에서까지 임성근 사단장은 면죄부를 받았다"며 "경찰은 이러려고 수사를 1년이나 끌어온 것이냐"고 비판했다.

TF는 "(경찰 발표에서) 임성근 사단장이 주장했던 내용 등을 그대로 베낀 것처럼 보이는 대목들도 숱하게 등장한다"면서 "경찰이 수사기관인지 임성근 사단장의 변호인인지 모를 지경"이라고 했다. 또 "경찰의 수사 결과를 납득할 수 없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며 경찰 브리핑 결과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이들은 "수많은 국민이 오늘 경찰의 결정에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면서 "윤 대통령은 '수사 결과를 보고 국민께서 봐주기 의혹이 있다, 납득이 안 된다고 하시면 그때는 먼저 특검을 하자고 주장하겠다'라고 분명하게 국민 앞에 말했다. 그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경찰 수사 결과까지 이렇게 나온 이상, 더이상의 핑계는 소용없다"며 "지금 당장 특검법을 수용하라"고 했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21일 오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순직 해병 진상규명 방해 및 사건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법'(채상병특검법)에 대한 입법청문회에서 증인선서를 거부한 이유를 밝히고 있다. 2024.6.21. 연합뉴스

임성근에게 날개 달아준 경찰

임 전 사단장은 경찰의 불송치 결정 직후, 기자들에게 아래와 같은 내용의 메일을 보내며 민·형사상 소송을 예고했다.

임 전 사단장은 경찰 결과가 발표되기 전부터 이미 언론에 수백 쪽 분량의 서류를 보내고 소송을 예고하면서 사실상 언론을 압박해왔다.

오늘(2024. 7 .8.) 채상병 순직과 관련한 업무상과실치사 피의사건을 수사한 경상북도경찰청에서 조사결과를 발표하였습니다.

그 내용은 제가 그간 증거과 법리를 토대로 말씀드린 바와 사실상 거의 동일합니다.

저는 이번 발표를 계기로 그간 채상병 순직사건과 관련하여 공개적으로 글을 쓰거나 발언 중 이번에 확인된 사실과 다른 허위 사실을 발표한 분들은 조속히 기존에 쓰신 글과 주장을 정정(책을 발간한 분들은 그 책의 내용을 정정하거나 여의치 않으면 회수 및 재발간)한 다음 그 정정 사실을 공개적으로 발표(즉, 경북경찰청이 확인한 사실을 토대로 기존의 글을 정정하고, 기존의 글의 취지와 내용이 제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는 2024. 7. 20.까지 저에게 사과의 뜻을 개인적, 공개적으로 표시를 요청)함으로써 극히 불완전, 불충분하나마 저와 군의 명예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조치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조치 여부를 저에게 문자메시지, 이메일을 통해 통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러한 통지 결과를 토대로 허위 사실을 공개적으로 주장한 분들을 상대로 형사 및 민사 소송 등 권리구제 조치를 빠짐없이 취해나갈 것입니다.

이에 더하여 앞으로는 더 이상 허위 주장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임 전 사단장의 글에는 채 해병의 순직에 대한 유감 표명이나 유가족에 대한 사과 등은 단 한 줄 언급도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9월 7일 경북 포항 남구 오천읍 오천시장에서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으로부터 군의 대민지원 현황에 대해 브리핑을 받고 있다. 2023.8.30. KBS 뉴스 유튜브 채널 영상 갈무리

대통령실 기다렸다는 듯 "곧 특검법 거부"

대통령실은 임 전 사단장에 대한 경찰의 불송치 결정이 나온 직후, 마치 기다렸다는 듯 채해병 특검법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와 관련해 입장을 밝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특검법 거부권 행사와 관련"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임 전 사단장의 불송치 결정에 대해서도 "경찰이 밝힌 실체적 진실이 그동안 제기됐던 의혹과는 많이 다르다는 게 드러났다고 본다"면서 임 전 사단장을 두둔했다. 그러면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도 조속히 수사를 마무리해서 사실관계를 빨리 밝혀주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