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위패‧영정 갖춘 분향소…"아이들 이름 불러주세요"

참사 46일 만에 '시민분향소'…유족들 눈물 속 헌화

"저희 아이들 이름과 영정 공개되는 게 패륜이 아냐"

"이름 하나하나 부르면서 국민들 꼭 와서 추모해주길"

"윤석열 대통령, 금요일까지 오지 않으면 행동할 것"

보수단체 집회 신고 내고 트럭까지 동원해 실랑이도

2022-12-14     김호경 에디터
14일 오후 5시쯤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인근 이태원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시민분향소에서 유족들이 먼저 조문하고 있다. 오마이TV 화면 캡처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마침내 희생자들의 위패와 영정을 제대로 갖춘 분향소를 설치했다. 참사 발생 46일 만이다.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14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인근 이태원광장에 시민분향소를 설치했다. 오후 5시쯤부터 유족 16가족이 현장에서 직접 헌화하고 이어 일반 시민 조문을 받기 시작했다.

유족들은 하염없는 눈물과 통곡 속에 영정을 어루만지거나 희생자들의 이름을 목놓아 불렀다. 각자 국화꽃을 들고 차례로 헌화할 때도 통한의 절규가 분향소에 끊이지 않았다.

헌화를 마친 뒤 유가족협의회 대표인 고 이지한 씨 아버지 이종철 씨는 "10월 29일 이후 50일이 다 돼서 이제야 우리 아이들이 여러분을 만나게 됐다"며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희 아이들 이름과 영정이 국민들에게 공개되는 게 패륜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국민 여러분이 저희 아이들 얼굴 하나하나 (보고), 이름 하나하나를 부르시면서 잘 가라, 수고했다, 우리가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 꼭 오셔서 추모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부대표를 맡고 있는 고 이지영씨 아버지 이정민 씨는 "이제서야 저희 아이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추모다운 추모를 받을 수 있게 됐다"면서 "원통하고 억울한 마음은 금할 길이 없지만 이 아이들이 그래도 편안하게 갈 수 있게끔 국민 여러분이 도와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유족 중 한 어머니는 "50 넘게 살면서 이태원이라는 데를 처음 와봤는데 해밀턴이라는 골목을 보고 도저히 내 머리로는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며 "어른 발걸음으로 몇 걸음도 되지 않는 그 골목에서 어떻게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죽었는지 도대체 제 머리로는 상상이 되지 않았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러면서 "용산구청, 경찰서, 행안부, 대통령실 당신들. 저 158명 아이들 눈동자 똑바로 보라. 당신들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진실되게 잘못을 인정하고 그에 합당한 죄를 받아라"며 "우리 아이들 잊지 말아주세요. 이렇게 보낼 수 없습니다.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우리 아들 살려내 이놈들아"라고 울부짖었다.

마지막으로 발언에 나선 고 이지한 씨의 어머니 조미은 씨는 "윤석열, 한덕수, 이상민. 왜 아직도 그 자리에 있는 것이냐. 모두들 이 분향소에 와서 진정으로 머리를 숙여 이제라도 잘못했다고 해도 늦지 않게 사과를 받아들이겠다"며 윤석열 대통령에게 이렇게 경고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더 늦기 전에 우리 아이들 앞에 와서 내가 잘못했다, 책임은 나에게 있다, 지켜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 분향소에 오셔서 진심으로 사과하십시오. 기다리겠습니다. 16일 금요일까지 오지 않으면 당신은 그 자리를 못 지킬 겁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참지 않을 것입니다. 두고 보십쇼. 행동할 겁니다. 국민 여러분 참지 마십시오. 다음 차례는 여러분의 자식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윤석열을 용서하지 마십시오."

날이 저물었는데도 많은 시민이 분향소를 찾으면서 추모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당초 3시부터 조문을 받을 예정이었지만 강추위로 작업이 늦어지고, 특히 보수단체가 분향소 자리에 집회 신고를 내고 트럭과 음향 시설까지 동원한 탓에 시간이 지체됐다고 한다. 한때 주최 측과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으나 경찰이 개입해 정리됐다.

시민분향소에는 참사 희생자 158명 중 유족 동의를 얻은 국내 희생자 76명의 위패와 영정이 안치됐다. 유족들이 아직 동의하지 않았거나 협의회에 참여하지 않은 나머지 희생자의 경우 우선 꽃 사진을 넣은 액자를 비치했다. 유족들 동의가 추가로 이뤄지면 그때마다 위패와 영정을 계속 늘려나가게 된다.

참사 직후 정부는 서둘러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한 뒤 유족 의사도 확인하지 않은 채 영정과 위패가 없는 초유의 합동분향소를 일방적으로 설치했으며, 윤석열 대통령은 이곳에 6일 연속 조문해 "국화꽃에 조문하느냐"는 여론의 거센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분향소 바로 옆에 위치한 보수단체 천막과 차량. 시민언론 민들레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정부의 지침으로 차려진 합동분향소는 영정도 위패도 없이 설치돼 추모하는 시민들을 맞았다"며 "그 대신 정부는 사태 축소와 책임 회피의 의도가 뻔히 보이는 '사고 사망자' 현수막을 걸어 유가족의 찢긴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유가족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정부에 '희생자들에 대한 온전한 기억과 추모를 위한 적극적 조치'를 요구했지만 정부는 '유가족의 의견을 물어봐달라'는 단순한 요구조차 무시해왔고 추모 공간을 적극적으로 마련하기는커녕 유가족들이 한 공간에 모이는 것 자체를 막아왔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작금의 현실 앞에서 이제부터라도 영정과 위패를 모시고, 희생자를 향한 추모와 애도를 시작하려고 한다"면서 "많은 시민분들이 희생자를 향한 추모·애도의 마음, 유가족을 향한 위로의 마음으로 시민분향소를 찾아주시길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앞서 유가족협의회는 지난 10일 서울 중구 콘퍼런스홀 달개비에서 창립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활동을 시작했다. 협의회엔 희생자 97명의 유가족 170명이 참여하고 있다.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오는 16일 오후 6시부터 이태원역 앞 도로에서 '10·29 이태원 참사 49일 시민추모제'를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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