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출산율·생산성 회복 못하면 2040년대엔 역성장"

R&D 지출 세계 2위 불구 생산성 증가는 0%대

한은 보고서 지적…초저출산 극복할 혁신 필요

'똑똑한 이단아' 미국에선 창업, 한국에선 취업

혁신, 대기업의 '양' 아닌 중기 중심 '질' 늘려야

2024-06-10     유상규 에디터

한국 경제가 초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생산성 저하를 이겨낼 혁신을 이루지 못하면 앞으로 불과 10여년 뒤 마이너스 성장 국면에 들어갈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은 10일 발표한 '연구개발(R&D) 세계 2위 우리나라, 생산성은 제자리' 보고서에서 "출산율의 극적 반등, 생산성의 큰 폭 개선 등 획기적 변화가 없다면 우리 경제는 2040년대 마이너스(-) 성장 국면에 진입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은은 이 같은 암울한 전망의 원인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초저출산과 고령화, 그리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혁신의 결핍이라고 강조했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초저출산 속 난임부부도 크게 늘어나는 가운데 29일 서울 송파구에 문을 연 한 난임센터 모습. 2024.5.29. 연합뉴스

한은은 우리나라 총인구(통계청 추계 기준)가 2020년 5184만 명을 정점으로 2040년 5006만 명, 2070년 3718만 명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이런 초저출산·고령화가 초래할 성장잠재력 훼손을 만회할만한 경제 전반의 혁신은 충분히 발견되지 않는다는 게 한은의 평가다.

보고서는 현재 한국의 혁신과 생산성 수준은 세계적이지만 추락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 기업의 R&D 지출 규모(2022년 기준 GDP의 4.1%)와 미국 내 특허출원 건수(2020년 기준 국가별 비중 7.6%)의 세계 순위는 각 2위, 4위에 이른다. 선진국 중에서도 최상위권이다. 하지만 한국 기업의 연평균 생산성 증가율은 2001∼2010년 6.1%에서 2011∼2020년 0.5%로 낮아졌다. 기업의 생산성 증가율이 최근 10년 사이에 10분의 1 이하로 추락했다는 얘기다. 특히 미국에 특허를 출원할 정도로 혁신 실적이 우수한 '혁신기업'도 생산성 증가율이 같은 기간 연평균 8.2%에서 1.3%로 급락했다.

연구개발 (R&D) 예산 추이

이처럼 생산성 증가세의 불이 꺼진 것은 무엇보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혁신 실적의 '양'만 늘고 '질'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대기업(종업원 수 상위 5% 기업)은 전체 R&D 지출 증가를 주도하고 특허출원 건수도 크게 늘렸지만, 생산성과 직결된 특허 피인용 건수 등은 2000년대 중반 이후 눈에 띄게 감소한 뒤 이전 추세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중소기업은 더구나 혁신자금 조달이 어려운 데다 혁신 잠재력을 갖춘 신생기업의 진입까지 줄어들면서 2010년대 이전 가팔랐던 생산성 증가세가 꺾인 상태다.

한국기업혁신조사 결과에 따르면 제조업에 속한 저(低)업력(업력 하위 20%) 중소기업 가운데 외부자금·내부자금 부족을 혁신 저해 요인으로 지목한 업체의 비중은 2007년 각 9.9%, 12.8%에서 2021년 45.4%, 77.6%로 뛰었다. 서비스업 저업력 중소기업에서도 이 비중은 2011년 각 9.8%, 19.7%에서 2020년 44.9%, 66.8%로 급증했다. 저업력 중소기업 중 설립 후 8년 안에 미국 특허를 출원한 신생기업의 비중도 2010년대 들어 계속 줄어 현재는 10%를 밑돌고 있다.

한국 기업 혁신의 질이 떨어진 더 근본적 원인은 기초연구 지출 비중 축소라고 한은은 진단했다. 응용연구가 혁신 실적의 양을 늘리는데 효과적이라면, 기초연구는 선도적 기술개발의 기반인 혁신의 질과 밀접하다. 우리나라 기업의 기초연구 지출 비중은 오히려 2010년 14%에서 2021년 11%로 줄었다. 한은 경제연구원은 보고서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 기업은 글로벌 기술 경쟁 격화, 대외여건 악화에 따른 단기 성과 추구 성향, 혁신 비용 증가 등으로 제품 상용화를 위한 응용연구에 집중하고 기초연구 비중은 줄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중소기업의 혁신자금 조달난은 2010년대 들어 벤처캐피탈에 대한 기업의 접근성 악화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국가·기업 패널 분석 등에 따르면 벤처캐피탈의 접근성이 좋을수록, M&A나 기업공개(IPO) 등의 투자회수 시장이 발달할수록 혁신 실적이 좋아지는데 한국의 경우 두 가지 요소가 모두 저조한 상태다.

 

인지능력-이단아 기질에 따른 창업 성향 분석. 자료 :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신생기업 진입 감소의 원인으로는 '창조적 파괴'를 주도할 혁신 창업가의 부족 현상이 꼽혔다. 보고서는 "미국 선행연구 결과 대규모 사업체를 운영하는 창업가는 주로 학창 시절 인지능력이 우수한 동시에 틀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똑똑한 이단아"라며 "하지만 한국의 경우 똑똑한 이단아는 창업보다 취업을 선호하고, 그 결과 시가총액 상위를 여전히 대부분 1990년대 이전 설립된 제조업 대기업이 차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은은 이런 분석을 바탕으로 한국 기업의 혁신과 생산성 개선의 해법으로 ▲ 기초연구 강화 ▲ 벤처캐피탈 혁신자금 공급 기능 개선 ▲ 혁신 창업가 육성을 위한 사회 여건 조성을 강조했다. 보고서는 "구조모형을 이용해 정책 시나리오별 효과를 추산한 결과, 연구비 지원과 산학협력 확대 등으로 기초 연구가 강화되면 경제성장률은 0.18%p 높아질 수 있다"며 "자금공급 여건 개선과 신생기업 진입 확대로 혁신기업 육성이 진전돼도 성장률이 0.07%p 오르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아울러 "실패에 따른 위험을 줄여주고 고수익·위험 혁신 활동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똑똑한 이단아의 창업 도전을 격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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