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통공사 쪽 "장애인 풀어준 판사 정신 나갔다"

장애인 지하철 탑승 시위 진압 책임자가

전장연 활동가와 말 주고받는 과정서 망언

전날 중증 장애인 구속 영장 기각 조롱해

관계자 "엘리베이터 통로 막아서 그랬다"

취재기자 명함 던지고 강제로 끌어내기도

"20년 경력 활동가도 이런 것 처음본다 해"

2024-01-25     김성진 기자

지하철 탑승 시위 도중 연행된 횔체어 중증 장애인에게 경찰이 '도주 우려'를 이유로 무리하게 구속영장을 신청해 기각된 가운데, 지하철 탑승 시위 진압을 총괄하는 서울교통공사 관계자가 서울중앙지법 유창훈 영장전담 판사에 대해 "정신이 나갔다"고 조롱성 발언을 한 것으로 25일 확인됐다.

아울러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이 최근 지하철 역사 안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을 취재하는 현장 기자들의 명함을 바닥에 집어던지고, 물리력을 동원해 강제로 끌어내는 일이 벌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교통공사 측의 장애인 권리보장 단체와 활동가 및 취재 기자에 대한 현장 대응이 도를 지나쳤다는 비판이 나온다.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혜화역 승강장에서 열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에서 참석자들이 관련 손 피켓을 들고 있다. 2024.1.2. 연합뉴스

"판사 정신나갔다" 발언 항의하자

"판사에게 전해달라"며 재차 조롱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25일 오전 8시 서울 지하철 혜화역 4호선 승강장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의 최중증 장애인 노동자 400명 해고 철회를 촉구하는 선전전을 열었다.

선전전은 승객을 위한 통로를 열고 승강장 벽 쪽에 붙은 채 '침묵 시위' 형식으로 진행됐으나, 서울 혜화경찰서와 서울교통공사 측은 즉시 퇴거를 명령했고 활동가들은 역사 밖으로 나갔다.

이날 퇴거 조치 뒤 혜화역 밖에선 서울교통공사 직원과 활동가들이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판사에 대한 조롱성 발언이 이어졌다.

서울교통공사 측은 혜화역 엘리베이터 앞에 직원들을 배치해 장애인 활동가들이 탑승을 못하도록 막았고,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서울 장차연) 이형숙 대표는 "지하철 타는 게 뭐가 문제냐"는 취지로 따졌다.

이 대표는 이어 전날(24일) 지하철 탑승 시위를 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의해 구속영장이 청구됐다가 풀려난 유진우 씨 사례를 언급하며 "판사도 너무 어이가 없으니까 그렇게 (기각했다)"라고 말했다.

전날 서울중앙지법 유창훈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하철 탑승 시위로 연행된 전장연 활동가 유진우 씨에 대해 "증거인멸 내지 도망의 우려가 없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한 바 있다(☞24일자 기사 참고).

유 부장판사는 지난해 9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구속 영장, 지난해 2월 <뉴탐사> 강진구 기자 구속 영장 등을 기각했던 판사로, 법조계에서는 원칙주의자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24일 장애인 권리보장을 위한 지하철 탑승 시위 도중 경찰에 연행된 중증 장애인 활동가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데 대해, 서울교통공사 최영도 고객안전지원센터장이 "판사가 정신이 나갔다"라고 발언했다. 최 센터장은 지하철 탑승 시위 진압 총괄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4.1.25.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제공

그러나 서울교통공사 최영도 고객안전지원센터장은 이 대표 발언에 대해 "(유창훈) 판사가 정신이 나갔구만"이라고 조롱하듯 외쳤다. 출근길 다수의 시민들이 통행하는 혜화역 앞에서 현직 판사를 공공연하게 조롱한 셈이다.

전장연 활동가들이 이에 "판사에게 정신나갔다고 말씀하신 거냐" 따지자, 최 센터장은 오히려 "유창훈 판사님에게 전달해주셔"라며 조롱성 발언을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한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활동가들을 향해 비웃기도 했다.

전장연 관계자에 따르면 최 센터장은 거의 모든 전장연 시위에서 강제퇴거 조치 등을 총괄 지휘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의 지시에 따라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이 강제 퇴거 조치를 한다고 전해진다.

전장연 관계자는 "침묵 시위를 하고 있지만, 장애인과 비장애인에 대해 거의 매일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의) 조롱이나 폭언이 이어지고 있다"며 "이런 사례가 한두 번이 아니"라고 말했다.

최 센터장은 <시민언론 민들레>와 통화에서 "비슷한 발언을 한 것 같다" "그런 뉘앙스로 발언을 한 것 같다"고 관련 사실을 시인했다.

다만 최 센터장은 "서울 장차연 이형숙 대표가 역사 재진입을 (시도)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라며 "휠체어가 올라가고 노약자가 통행하는 (엘리베이터) 통로 앞에서 선점을 하고 막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해명했다.

최 센터장은 "거기에 (전장연) 활동가분들이 여러분이 있었다. 제가 한마디 하면 열분이 동시에 저에게 포화를 퍼붓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아마 그런 발언을, 영장 기각된 부분에 대해 조금 표현을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자 명함 던지고 강제로 끌어내기도

"전장연 기관지 따위" 폭언성 발언도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의 발언뿐만 아니라 물리력 행사도 과도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최근에는 전장연 활동가를 강제 퇴거하는 과정에서 현장 취재 기자들의 명함을 던지고 강제로 끌어내는 일이 벌어졌다.

전장연 관계자에 따르면 전날(24일) 서울지하철 시청역에서 열린 전장연 기자회견을 취재를 하던 진보 성향의 인터넷 매체 <레디앙> 기자를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이 강제로 끌어낸 일이 발생했다.

 

레디앙 여미애 기자 페이스북 사진, 영상 갈무리. 2024.1.25. 페이스북 갈무리

당시 취재 기자가 쓴 기사(☞레디앙 24일자 "이게 무슨 기자, 끌어내" 기자회견 강제퇴거로 무산) 에 따르면 최 센터장의 지시에 경찰 5명이 기자를 둘러쌌고, 취재 기자라고 명함을 건넸지만 "이게 무슨 기자냐"고 명함을 바닥에 던지고 끌어냈다.

취재 기자가 자신의 신분을 재차 밝혔지만, 최 센터장은 "(서울교통공사) 홍보실과 협의 됐느냐" "전장연 기관지 따위가…" 등의 발언을 하며 강제 퇴거 조치를 했다.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 참사' 23주기 행사가 열린 지난 22일에는 장애인 전문언론 <비마이너> 기자도 강제 퇴거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도 기자의 명함이 땅에 뿌려지는 등 몸싸움이 있었다.

최 센터장은 이에 대해 "레디앙 기자 명함을 가지고 있다. 내팽개쳤다면 명함이 저한테 지금 없을 것"이라며 관련 보도를 부인했다. 또 "비마이너 기자가 10장 정도 되는 명함을 땅바닥에 내팽개쳤다"며 "저희가 그 명함을 그런 적이 없다"고 했다.

다만 최 센터장은 <레디앙> <비마이너> 기자들을 강제 퇴거 조치한 데 대해 "예를 들어서 '정상적인' 오마이뉴스, 한겨레신문, 경향신문이 취재하는 것은 설사 진보 쪽이라더라도 관여할 수 없고 관여하지 않는다"며 특정 언론에 대한 편향적 시각을 드러냈다.

최 센터장은 이어 "레디앙 기자는 시위대의 일원으로 똑같이 거기(집회) 안에서 (시위를) 했던 분"이라면서 "그래서 다 퇴거하는 과정에서 그분도 퇴거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최 센터장은 "(철도안전법상) 시설관리자에게 반드시 허가를 득해야지 (취재)할 수 있다"며 "철도 종사자가 어떤 업무를 수행하면서 그 업무에 대해 직무상 지시를 하면 반드시 따라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서울교통공사가 최상위법인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의 자유'를 무시하고, 하위법 중 하나인 철도안전법을 근거로 매체를 자의적으로 판단해 취재 행위를 막을 권한이 있는지 의문이다. 철도안전법이 헌법보다 우선하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2022년 전장연의 지하철 탑승 시위가 언론에서 크게 다뤄진 뒤, 매체 성향과 관계 없이 수많은 기자들이 수시로 지하철역에 출입하며 자유롭게 취재하지만, 사전에 서울교통공사 홍보실과 협의를 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서울교통공사 측이 진보 성향 혹은 친장애인 인권 성향을 가진 특정 매체에 대해 고의적으로 강제 퇴거 조치를 한 것으로 보인다.

 

3일 오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활동가들이 서울 4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서 지하철 탑승을 시도하다가 서울교통공사 측과 거칠게 대치하고 있다. 전날 전장연은 탑승을 막는 서울교통공사·경찰과 대치하며 13시간 가량 시위를 벌이다가 이날 오전 10시 30분에 시위를 재개할 것을 예고하며 해산했다. 2023.1.3. 연합뉴스

서울시와 교통공사가 폭언, 폭행 길 열어

"20년 활동가도 이런거 처음본다 한다"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의 과도한 조롱성 발언이나 물리력 행사 등은 서울시와 공사 측이 사실상 길을 열어주면서 더욱 심해진 것으로 보인다. 전장연 활동가들은 지난해 공사가 '3단계 강경 대응책' 시행을 발표한 뒤 더욱 심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사는 지난해 11월 23일 전장연 지하철 탑승 시위에 대해 "역사 진입을 봉쇄하겠다"면서 △(1단계)시위대 역사 진입 차단 △(2단계)경찰 협업으로 전장연 승차 시도 제지 및 무정차 통과 △(3단계)철도안전법 위반행위 법적 조치 및 손해배상 청구 등을 담은 강경책을 내놨다.

전장연 관계자는 "최근엔 (공사 직원들이) 기자들, 영상활동가들과도 마찰을 빚고 있다. 20년 활동한 영상 활동가도 어떤 집회에서도 이렇게 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며 "3단계 대응책 발표 뒤부터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침묵도 안 되고 무조건 불법이라고 하고 끌어낸다. 침묵 시위를 하면 3분 만에 경고방송을 한다"면서 공사 측의 강경 대응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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