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 천년왕국' 꿈꾼 정착촌 아이들이 인류에 던진 화두
[가자전쟁 ⓷] 이스라엘 테러리즘 역사와 카하네
유대 극단주의 각료들 "KKK보다 훨씬 더 악질"
"테러의 목적은 점령지에서 팔 주민들 쫓아내기"
네타냐후 정권 내 극단주의자들, 대부분 정착민
유대 법에 따른 신권 체재 '유대 왕국' 주장도
갈란트 '전후 가자 구상'은 팔 국가·주권 부정
"누군가가 KKK들을 정부에 참여시켰다. 그런데 그들은 KKK보다도 훨씬 더 악질이다." 2011년부터 5년간 이스라엘 정보기구 모사드 국장을 지낸 타마르 파르도가 작년 7월 27일 칸 라디오 인터뷰에서 전년 12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연정을 구성하면서 이타마르 벤-그비르(47)와 베잘렐 스모트리히(43)를 각각 국가안보부 장관과 재무부 장관에 임명한 것을 두고 이렇게 비판했다. KKK(쿠클럭스클랜)은 흑인 테러도 서슴지 않는 미국의 백인우월주의 단체다. 벤-그비르와 스모트리히는 각각 '오츠마 예후디트'(유대의 힘)와 '종교적 시오니즘당'의 리더로서 극우 유대 광신자다. 이들 정당에 대해 파르도 전 국장은 "끔찍한 인종주의 정당들"이라며 "(네타냐후가) 눈가리개와 귀마개를 하고 골을 향해 질주하는 말과 같다"고 지적했다. 네타냐후가 이들 극우 유대교 광신자 세력에 휘둘리고 있다는 얘기다.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연정에서 탈퇴하겠다고 위협해 네타냐후를 일종의 '볼모'로 잡은 형국이다.
모사드 전 국장 "KKK보다도 훨씬 더 악질"
벤-그비르·스모트리히 '가자 주민 이주해야"
벤-그비르와 스모트리히는 팔레스타인 국가를 부정하고 가자와 서안 지구에서 불법적 유대인 정착촌 확대 등을 통해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내쫓고 요르단강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더 위대한 유대 국가' 건설 구상의 광신적 옹호자다. 이 목표를 위해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들은 새해 벽두부터 전후의 가자에 대한 점령과 통치라는 '흑심'을 숨기지 않았다. 이스라엘 언론들에 따르면, 스모트리히는 1일 '종교적 시오니즘당 모임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올바른 해법은 가자지구 주민을 난민으로 받아주는 나라로 이주하도록 장려하고 이스라엘은 정착촌 건설 등을 통해 가자지구를 영구적으로 통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입을 맞춘 듯 벤-그비르도 '오츠마 예후디트' 모임에서 가자의 팔레스타인 주민 이주 계획을 세워야 한다면서 "이스라엘은 지금 제2의 독립 전쟁을 펴고 있다"고 주장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인 75만 명을 내쫓은 '나크바'(대재앙)를 지금 가자에서 재현하겠다는 뜻을 공공연히 밝힌 셈이다. 벤-그비르는 "그렇게 하면 가자지구 인근 공동체 주민들이 돌아올 수 있고 '구시 카티프'(2005년 이전 가자에 있던 유대인 정착촌)가 재건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랍 반발, 미국·유럽도 "가자는 팔레스타인 땅"
갈란트 '전후 가자 구상'은 팔 국가·주권 부정
이들의 도발적 발언은 즉각 아랍권 국가들의 반발을 불렀다. 아랍뉴스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 외교부는 4일 "두 장관의 발언들을 강력히 규탄하고 거부한다"면서 국제 사회는 이스라엘 정부의 "지속적인 국제법 위반 행위"에 맞서 행동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카타르도 "가장 강한 표현으로 규탄한다"면서 "가자 주민들에 대한 점령 당국의 집단적 처벌과 강제 이주 정책은 가자는 팔레스타인 땅이고 팔레스타인인이 그곳에 남을 것이란 사실을 바꾸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쿠웨이트는 "특히 가자 주민들, 전반적으론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이주 정책"에 반대했고, 아랍에미리트(UAE)도 "그 지역에서 추가적 긴장과 불안정을 위협하는 그런 공격적 발언과 모든 조치에 강력하게 반대한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전후 가자'에 대한 이스라엘의 재점령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2일 성명을 통해 "그런 발언들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면서 "우리는 가자가 팔레스타인 땅이며, 앞으로도 팔레스타인의 땅으로 남아있을 것이며, 하마스가 더 이상 가자지구의 미래를 통제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어떤 테러 집단도 이스라엘을 위협할 수 없음을 분명하고, 일관적이고, 명확하게 밝혀왔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과의 협의를 위해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을 현지에 파견했다. 프랑스와 유럽연합(EU)도 그들의 발언을 비판했고, 폴커 투르크 유엔 인권 최고 대표도 4일 'X'를 통해 "국제법은 점령 지역 내에서 보호받는 사람들을 강제 이송하거나 추방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파문이 확산하자 이스라엘의 요아브 갈란트 국방부 장관이 '전후 가자 구상'을 내놓으며 진화에 나섰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갈란트의 구상은 4가지 기둥으로 돼 있다. 그것은 △ 이스라엘이 가자의 민간 행정 감독을 조율하고 기획하며 반입 물품 검사를 책임진다 △ 유럽과 온건 아랍국과 함께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이 가자의 민간 행정 운영과 경제 재건을 책임진다 △ 이 계획의 주요 행위자로서 이집트는 이스라엘과 조율하에 민간인의 가자 국경 통과를 책임진다 △ 하마스와 연계돼 있지 않다는 조건하에 현 팔레스타인 행정기구는 유지된다 등으로 돼있다. 그러나 이 구상도 근본적으로 국제 사회 절대다수가 공감하는 '두 국가 해법'을 포함해 팔레스타인 국가의 존재와 팔레스타인인의 주권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그 실현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이스라엘 테러리즘의 이념적 지도자 랍비 카하네
"테러의 목적은 점령지에서 팔 주민들 쫓아내기"
이스라엘에서 극우 정치와 폭력적이고 광신적인 유대 정착민들, 그리고 국수주의자 등 극단주의의 역사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이념적 지도자가 랍비인 메이르 카하네(1932~1990)라고 국제경제컨설팅 업체 디퍼런스그룹의 단 슈타인보크 설립자는 '무엇이 가자-이스라엘 재앙을 초래했나'란 월드파이낸셜리뷰 기고문(2023년 12월 19일 자)에서 지목했다. 극렬한 반공주의자로 1950년대 매카시 시대에 미국 연방수사국(FBI) 정보원 노릇도 했고 1990년 맨해튼에서 피살된 카하네는 극우 유사 파시스트 조직인 '카흐'(Kach)를 만들었다. 미 국무부는 1994년 카흐를 테러 조직으로 지정했다. 1970년대 들어서면서 카하네는 "이스라엘에서 아랍인이 다수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 이스라엘은 국가적 자살을 해서는 안 된다"며 팔레스타인에 대한 '종족 청소'(ethnic cleansing)를 장려했다. 슈타인보크는 카하네와 만났던 일을 회상하며 "나는 여태껏 그렇게 증오로 가득 찬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며 "카하네는 '아랍'이란 단어를 쓸 때는 꼭 역겹다는 티를 냈다. 나는 그가 폭력 속에서 죽을 것으로 확신했다"고 말했다. 한편, 199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에 맺은 오슬로협약의 주역이었던 이츠하크 라빈 총리는 1995년 카하니즘의 열렬한 신봉자였던 이갈 아미르의 손에 암살됐다. 1980년대에는 서안 정착 운동을 최초로 주장했던 국수주의적 종교단체였던 '구시 에무님'이 이집트-이스라엘 간의 평화협정을 낳은 1979년의 캠프데이비드 협약 체결을 계기로 더욱 과격해지면서 '유대 지하'란 급진 테러 조직으로 진화했다. '유대 지하'는 팔레스타인 시장들의 차량 폭파와, 이슬람교 성지 중 하나인 알-아크사 모스크 의 중심에 있는 '바위 위에 돔' 폭파 시도를 포함해 여러 잔인한 테러 공격들을 시도했다. 슈타인보크는 "테러의 목적은 점령지들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협박하고 공갈해서 쫓아내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네타냐후 정권 내 극단주의자들, 대부분 정착민
유대 법에 따른 신권 체재 '유대 왕국' 주장도
바로 카하네가 조직한 카흐의 이념적 계승자가 오츠마 예후디트이고 그 지도자가 지금의 벤-그비르 국가안보 장관이다. 서안 정착촌 출신인 그는 반팔레스타인과 테러리즘 지지로 형사 기소되어 있고 헤이트 스피치(증오 발언) 혐의를 받고 있다. 스모트리히도 이력이 만만치 않다. 점령지 골란고원 태생으로 서안지구 유대인 정착촌 베이트 엘에서 자랐다. 스모트리히는 팔레스타인 국가에 대한 극렬한 반대자이고, 스스로 파시스트이고 인종주의자이며, 동성애 혐오자라고 공언할 정도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즈>의 기사(2023년 10월 3일자)에 따르면 크네세트(이스라엘 의회) 의원이던 2017년 그는 '이스라엘의 단호한 구상'이란 장문의 기고를 통해 신속한 정착 확대와 팔레스타인 영토 합병을 통한 서안지구 전체에 대한 장악 방안을 제시했다. 이 글에서 그는 "강에서 바다까지 아우르는 하나의 유대 국가 건설이란 우리 민족의 야망이 기정사실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며 "아랍 국가는 절대 이 땅에서 나올 수 없다는 점을 아랍인과 전 세계인의 의식에 각인시키려는 게 목적"이라고 썼다. 슈타인보크는 이런 스모트리히를 입각시킨 것에 대해 "여우에게 닭장을 맡긴 것이다. 그것은 팔레스타인 아랍인에게 '떠나라!'는 신호"라고 풀이했다.
슈타인보크는 "그들과 그들의 패거리는 팔레스타인인의 주권과 인권을 인정하는 정책을 절대 지지하지 않는다"며 "그들의 궁극적 목표는 팔레스타인인들을 지우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즈비 수코트도 요주의 인물이다. 카하네의 영향을 받은 정착인 출신의 수코트는 현재 이스라엘 의회의 유대·사마리아(서안) 소위 위원장이며 유대 테러 조직인 '반란 수코트'의 멤버로 이스라엘 국가를 해체하고 유대 법에 따른 신권 정치 체재인 '유대 왕국' 건설을 옹호하고 있다. 수코트는 모스크 방화와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폭력, 팔레스타인 주택 철거 등에 개입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슈타인보크는 하마스의 '10·7 테러'와 관련해 "가장 근본적 원인은 극단주의적 정착민 테러, 실종된 평화의 기회들, 오래 지속된 종족 청소, 그리고 거대한 연안 석유·가스 매장지를 통제하려는 (이스라엘의) 시도"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