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집결지 폐쇄, 왜 당사자 여성들과 논의 안 하나
['여성친화도시'에서 쫓겨나는 여성들 이야기 ③]
파주시장, 용주골 성노동자 대표단과 한 번 면담
언론 인터뷰서 '인권' 강조…면담 땐 "강제 폐쇄"
대표단 "조례지원 기사로 알아" 일방 소통 비판
"용주골 가구 수 점점 줄어" 자진 폐쇄 방안 제시
시장 "이미 폐쇄 시작해…유예기간 못 준다" 거절
지난해 8월 28일, 용주골 성노동자 모임 '자작나무회' 대표단과 김경일 파주시장, 파주시 관계자들이 비공식 면담을 가졌다. 파주시에서 이날 면담에 참석한 공무원의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청하여 '관계자'로 통칭한다.
면담에서 대표단은 시장에게 문서를 전달했다. 용주골 성노동자들의 상황과 요구를 정리한 4페이지 분량의 문서다. 이어서 대표단은 시장에게 집결지를 스스로 폐쇄할 '자진 폐쇄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시장은 "2004년부터 유예기간을 준 것"이라며 강제 폐쇄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2004년은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연도다. 성매매특별법은 성거래, 성거래를 주선하는 행위, 성거래를 위해 타인의 몸을 착취하는 행위를 막고, 성매매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 저희는 '자작나무회'라는, 회사로 치면 노조입니다
"저희는 자작나무회라는, 회사로 얘기하면 노조예요. 종사자들이 일하면서 만난 블랙리스트(위험한) 고객을 서로 공유하고, 주기적으로 모여 회의하면서 아가씨가 아가씨 편에 서서 싸워주는 거예요."
그날 면담에서 대표는 "종사자들이 감금, 강탈과 같은 피해를 입고 있다고 얘기하시는데, 그것은 오해"라며 "성노동자들이 생계를 위해 선택한 직업"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설명을 한 이유에 대해 대표단은 "파주시가 언론에 '인권유린을 당하는 용주골 성매매피해여성들을 위해 집결지를 폐쇄하는 것'이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해 왔기 때문"이라 답했다. 용주골 성노동자 당사자들은 파주시가 말하는 성매매피해자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김경일 시장은 지난 8월 11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 '왜 성매매집결지를 폐쇄하려고 하는가'에서, "인권을 침해당하는 피해자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온갖 불법행위가 자행되는데 법을 집행하는 공직자로서 어떻게 모르는 척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앞서 6월 9일 여성신문은 '알선업자들은 여성들의 위기감과 불안감을 고조시키고 악용해 자신들의 방패로 삼는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했다. 이에 대표단은 파주시와 언론에서 보도하는 내용이 자신들의 실제 상황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8월 28일 면담에서 성노동자 대표단은 자신들의 상황을 시장에게 밝혔다. 그러나 시장은 대표단의 설명에 이야기를 잇지 않았다.
# 기사에서 처음 보고, 이장에게 처음 받은 '조례지원'
대표단이 제공한 녹취록에 따르면, 대표단은 "조례지원을 이장님에게 처음 받았고, 지원 내용도 기사로 접했다"며 파주시의 일방적인 소통 방식을 지적했다. 또 조례지원을 만들 때 당사자들과 이야기 한번 나누지 않은 것을 비판했다. 이에 파주시 관계자 A는 "전국의 가장 큰 아홉 군데 지원 사례를 일일이 파악해 조례지원을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조례지원을 "인터넷에서 충분히 홍보했다"고 답했다.
이어서 관계자 B는 "TF팀이라고 해 봤자 두어 명밖에 안 된다"며 성매매피해여성들을 전문적으로 상담하는 여성단체 '쉬고'와 소통할 것을 주문했다. 그러나 대표단의 입장은 다르다. 용주골 성노동자들은 폐쇄 과정 전반에 참여해 파주시와 논의하기를 원하는 것이지, 상담과 지원을 받으려는 게 아니라는 입장이다.
# 자작나무회, 문서로 요구 사항 전달…파주시장 전부 거절
"대책 없는 강제 철거에 반대합니다. 행정대집행 이후에 집과 가게를 잃으면 저희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용주골 성노동자들과 함께 충분한 소통을 거치고 대책이 마련된 뒤 철거가 집행되어야 합니다. 저희가 스스로 하던 일을 정리하고 다음 일을 준비하면서 떠날 시간을 주십시오."
대표단이 시장에게 전달한 문서 중 일부다. 면담에서 대표단은 시장에게 4페이지짜리 문서를 전달했다. 내용은 크게 세 가지다. '스스로 하던 일을 정리하고 다음 일을 준비하면서 떠날 시간'이 필요하다는 요구, 지원을 받는 당사자 입장에서 바라본 조례지원의 한계, '여성인권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양적 연구가 어렵다면 질적 연구라도 실행해야 한다'는 제안.
그러나 김경일 시장은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 없다"며 거절했다. 그는 "파주시에서 2008년에 이미 행정대집행을 예고해 폐쇄를 시작했기 때문에 더는 유예기간을 줄 수 없다"며 집결지가 폐쇄되지 않으면 "균형 발전이나 지역 발전이라는 큰 틀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간다"고 말했다.
# 자작나무회, '자진 폐쇄 방안'도 제시
김 시장은 면담에서 "타 지자체보다 많이 (지원)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대표단은 금액은 중요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각자 다른 사정으로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성노동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당장 집결지를 나가는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
대신 대표단은 시장에게 '자진 폐쇄 방안'을 제시했다. 성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가구 수를 줄여나가며 집결지를 스스로 폐쇄하는 방식이다. 면담에서 용주골 성노동자 K씨는 이렇게 발언했다.
"시장님, 예전에는 한 집에 아가씨들 10명이 있었다면 지금은 2명, 많아 봐야 3명입니다. 종사자들 나이가 차면서 점점 줄어드는 중이에요. TF팀에서 원하시면 종사자들 인원, 가구 수 등 정보를 정확하게 알려드리고, 문 앞에 자작나무회 스티커를 붙이겠습니다. 종사자가 그만두고 나가면 그 스티커를 떼 버리는 겁니다. 그럼 그 가게, 그 가구는 없어지는 겁니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 유입되는 종사자들은 저희 쪽에서 막겠습니다. 이렇게 올해 몇 가구 줄이고, 내년에 몇 가구 줄이고, 이런 식으로 점점 축소해 나가시는 건 어떨까요?"
그러나 김 시장은 성매매집결지 폐쇄가 "몇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51만 파주 시민들의 역량"이라며 유예기간 없이 폐쇄를 진행할 것이라 답했다. 그렇게 면담은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끝이 났다.
# 폐쇄 과정에 성노동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파주의 경우 탈성매매를 원하는 성노동자는 여성단체 '쉬고'에서 상담과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용주골 성노동자들이 집결지 폐쇄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경로는 없다.
파주시가 내놓은 11월 9일자 보도자료에 따르면, 김 시장은 "성매매 피해 여성의 온전한 사회 복귀를 최우선에 두고 이 지역이 여성인권 회복의 터전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해 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김 시장이 용주골 성노동자와 이야기를 나눈 건 한 차례 면담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대표단은 "조례지원부터 기본적인 폐쇄 정보까지 파주시가 아닌 기사로 접했다"며 "이번 면담에서 논의가 이루어질 것이라 기대했지만 강제 폐쇄를 하겠다는 파주시의 의지만 확인한 채 면담이 끝났다"고 말했다. 이들은 강제 폐쇄를 멈추고, 폐쇄 과정에 용주골 성노동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입장을 밝혔다.
['여성친화도시'에서 쫓겨나는 여성들 이야기 ➃]로 이어집니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주관 '2023 지역신문 컨퍼런스' 청년기획 프로젝트 공모 대상 수상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