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시의 용주골 폐쇄, 우리 인생 결정할 시간 달라"
['여성친화도시'에서 쫓겨나는 여성들 이야기 ②]
당사자들과 대화 한번 없이 '탈성매매 방안' 내놔
정작 용주골 떠나 다른 일 하려던 성노동자 좌절
"압박 없이 우리 인생 우리가 결정할 시간을 줘야"
파주시, 성노동자 일하는 유리방 앞에 CCTV 설치
설치 막자 공무집행방해죄로 경찰에 고발까지 해
# 파주시와 시의회의 의미 없는 예산게임
예산 올려. 아니, 예산 내려. '탈성매매 실현 방안'을 두고 파주시와 파주시의회가 예산 핑퐁게임을 벌였다. 파주시는 용주골 성노동자들을 탈성매매 시키겠다며 예산을 올리고, 파주시의회는 그건 탈성매매 방안이 아니라며 예산을 깎는 중이다.
김경일 시장은 지난 3월, 제238회 시의회 본회의에서 "성매매피해자의 탈성매매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강한 추진력이 필요하다"며 시의회에게 예산을 통과시켜달라고 말했다. 그 날 파주시 여성가족과는 성매매집결지 경비로 2억 3500만 원의 예산을 올렸다. 예산 내용은 성매매 집결지 단속 2억 원, '여행길'(여성과 시민이 행복한 길) 걷기 행사 3000만 원, 순찰초소 운영 500만 원이다. 이에 시의회는 성노동자들이 스스로 집결지를 폐쇄할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하라며 예산 전액을 깎았다.
한 달 후, 제239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에서 파주시는 2160만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여행길' 행사를 진행하는데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이유다. '여행길'은 공무원과 시민단체가 매주 화요일마다 집결지 내부를 걷는 행사다. 시의회는 예산을 인정하지 않았다.
10월 13일, 제242회 파주시의회 본회의에서 김경일 시장은 "탈성매매 지원자가 나왔다"며 예산 반영을 부탁했다. 그 날 파주시는 성매매집결지 주변 시설을 변화시키기 위한 사업비 5억 원, 집결지 내 단속초소 운영비 6000만 원을 예산으로 올렸다. 이 날 시의회는 초소 운영비 3000만 원만 받아들였다.
당연하게도 탈성매매 방안은 성노동자 당사자가 가장 잘 안다. 그러나 폐쇄 추진 이후, 파주시가 탈성매매 방안을 두고 용주골 성노동자와 논의한 적은 없었다.
# A씨 이야기 : 폐쇄가 내 발목을 붙잡네
파주시와 시의회가 성노동자를 탈성매매 시키겠다며 예산게임을 벌이는 동안, 성노동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려던 30대 A 씨의 계획이 틀어졌다.
"2년만 하면 저희 아들이 성인이 되니까, 이제 2년만 하고 이 일을 정리하고 나가서 '내 친구들처럼 일하면서 쟤네랑 같이 살아갈 수 있겠다' 싶었죠. 그런데 폐쇄라는 변수가 크게 오니까, 아 나는 계획대로 되지 않는 사람이구나. 이렇게 또 되지 않는구나.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힘들어요."
이혼 후 아이 둘을 혼자 키웠다. 빚까지 생겨 돈이 절실히 필요했다. 당장 돈을 벌기 위해 용주골에 왔다. 용주골에서 일하며 아이 둘을 키워냈다. 첫째는 성인이 되었고, 둘째는 2년 후 성인이 된다. 그는 용주골에서 보낸 시간을 "아이들은 나와 다른 삶을 살게 하기 위해 정신력으로 버텨온 시간”이라 말했다. 둘째가 성인이 되는 날을 기점으로, 다른 일을 하려고 계획했다. 한 단계씩 계획을 실천했다. 그러던 중 파주시가 폐쇄를 추진하기 시작했고, A의 수입이 급격히 끊겼다. 계획이 틀어졌다.
"내가 뭘 만들어야 그만할 수 있는데 그게 아니니까. 용주골이 폐쇄되면 비슷한 업종 찾아갈 것 같아요."
# A : 압박 없는 유예기간이 필요합니다
파주시가 폐쇄를 발표한 후, 1년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집결지에 단속초소가 생기고, 용역이 들어오고, 폐쇄를 막기 위해 집회에 나갔다. A는 "파주시와 우리가 서로 마음 불편하게 대치하는 시간이 아니라, 내가 내 인생을 결정해서 내 발로 나갈 수 있는 시간을 원한다"고 말했다.
"그 말을 하고 싶어요. 우리 인생을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시간을 줘라. 내가 바라던 대로 좀 됐으면 좋겠어요. 저 이곳에 올 때 울면서 왔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가 이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거든요. 우리 아이들도 잘 키웠고. 한 2년이든 3년이든 파주시에서 압박 없이 기간을 주면 여기 아가씨들끼리 으쌰으쌰 해서, 나의 무언가를 만들어 나가는 그림이 됐으면 좋겠어요. 부모님도 안 계시고 집도 없어서 서로 의지하며 사는 아가씨들 많거든요? 그럼 그 아가씨들은 또 버려지는 거잖아요. 우리가 흩어지면 또 어딘가에서 전전긍긍 다닐 거잖아요. 우리 동생들끼리 서로 함께 준비하는 시간이 유예기간인 거죠."
그는 "내 직장 내가 지킨다는 마음으로 용주골에 있는 것"이라 말했다. A를 비롯한 성노동자들은 용주골 폐쇄와 관련한 정보들을 업주에게 전해듣곤 했다. 그 과정에서 한계를 느꼈다. 마침, 업주들이 성노동자 대표를 뽑자고 제안했다. 한 성노동자가 대표를 하겠다고 지원했다. 대표를 중심으로 용주골 성노동자들이 모여 회의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업주한테 듣는 게 아니라 우리 모임(자작나무회)에서 들으니까, 현실적으로 와 닿아요. 아가씨들은 이제 모임 있으면 당연히 나가서 들어야지. '우리 직장 우리가 지키는데, 우리가 해야지' 하는 단계예요. 옆집, 앞집 아가씨들끼리 서로 뭉치는 단계."
# C씨 이야기 : 용주골 성노동자 모임 자작나무회 대표
30대 C씨는 현재 용주골 성노동자 모임 자작나무회 대표다.
"다들 생각하고 있었어요. 아 여기도 다른 곳처럼 없어질 수 있겠구나. 당장 심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언론에서 계속 보도하고, 상황이 심각해지는 거예요. 나는 더 일해야 하는데. 처음에는 (대표를) 안 하려고 했는데, 진짜 없어질 것 같아서 나선 거죠. 이런 싸움도 보면 솔직히 업주들은 나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잖아요. 성매매 알선이라는 게 있는 거니까."
자작나무회가 만들어지고 얼마 후, 동네 편의점 사장에게 전화가 왔다. '차차'라는 단체가 용주골에 왔는데, 한 번 만나보라는 내용이었다. 단번에 거절했다. 이미 몇몇 시민단체가 도와주겠다며 용주골에 왔었지만 도움이 안됐다. 그럼에도 만나보라는 편의점 사장의 부탁에 '차차'를 만났다. 대화를 해보니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누가 저한테 물어보더라고요. 차차가 어떤 진영의 단체인지 알고 있냐, 종사자들이 차차와의 연대를 다 동의한 거냐. 그래서 대답했어요. 저기요, 여기 아가씨들은 차차가 어떤 진영인지 안 궁금해요. 아가씨들이 못 하는 것들을 해 주는 것에 고마운 거죠. 집회 나갈 때 앞에 서 주고, 필요한 법적 지식 알려주고, 보도 잘못 나온 거 정정보도 요청해 주고. 우리는 내가 먹고사는 게 중요하지. 진영이 어떻고,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지난 5월 25일, 여성신문은 '탈성매매 파격 지원 파주시, 용주골 집결지 폐쇄 강력 추진'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해당 기사에는 ‘불법 성매매 영업으로 여성들을 착취하고 부당이득을 취한 업주·건물주들은 조직적으로 맞서고 있다’고 쓰여 있었다. 이에 차차는 "용주골 성노동자 모임 자작나무회와 차차를 업주·건물주·알선업자로 통칭했다"며 정정보도를 요청했다.
# C : 우리집 거실에 CCTV가 달린다면
"홀박스(유리방)는 저한테 거실 같은 곳이에요. 그런데 그 앞에 CCTV를 설치하겠다는 거예요. 그 사람들한테는 거기가 거리겠지만 나한테는 집 거실 같은 곳이고, 내가 가장 많이 생활하는 공간이에요. 카메라가 거실에 달려 있다고 생각해 봐요."
3월이었다. 공무원과 용역이 CCTV를 설치하겠다며 집결지에 들어왔다. C는 CCTV 설치를 막았다. 설치를 멈추지 않자 결국 크레인 위로 올라갔다. 지난 9월 23일, 파주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파주시가 C를 공무집행방해죄로 고발한 것이다. 현재 그는 차차의 도움을 받아 변호사를 선임한 상태다.
"아가씨들이 울면서 막았어요. 시청 직원들 우리가 말할 때 핸드폰 보면서 완전 무시했거든요. 신경 한번 안 쓰다가, 제가 크레인 위를 올라가니까 그곳에 있던 공무원, 경찰들 싹 다 내 앞에 모였어요. 제가 ‘작업 중지하면 내려가겠다’ 하니까, 공무원이 작업 중지하라고 하더라고요. 이제 CCTV 건으로 고발됐으니까 아무래도 저는 많이 나설 수 없고, 종사자들도 제가 고발을 당했으니 겁먹을 것 같고. 상황이 좀…. 감사하게도 차차랑 시민분들이 집회에 서 준다고 하셨고, 우리한테는 필요해요."
# C : 동네에 상인분들, 이모님들도 계십니다
C는 다른 상인들의 이야기도 들어야 한다고 했다. 동네가 움직이는 데에는 보이지 않는 노동이 있기 마련이다. 용주골 성매매집결지에는 가게를 운영하는 상인들과 업소를 청소하고 식사, 빨래를 제공하는 노동자(이모님)들이 있다.
"근데 진짜 답답한 게 파주시는 매번 업주들 공격하고, 맨날 종사자 인권 생각한다고 말만 해요. 근데 이모님, 상인분들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안 해요. 여기서는 이모님들, 상인분들 다 한 동네 주민인 거잖아요. 그분들 비 오는 날에도 집회 다 함께 가시는데. 이모님들을 업주로 포장하고, 상인분들도 업주로 포장해요. 그 노인분들이 비 오는 날 다 서 계셨는데."
[‘여성친화도시’에서 쫓겨나는 여성들 이야기 ➂]로 이어집니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주관 '2023 지역신문 컨퍼런스' 청년기획 프로젝트 공모 대상 수상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