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교체’ 인사라며…속도 내는 재벌 세습경영

연말 인사서 총수 일가 3·4세 대거 승진

능력 검증되지 않았는데 경영 전면 배치

29세 입사해 33세 임원 승진, 40대 사장

평균 50대 임원 되는 일반 직원과 대조

2023-12-03     장박원 에디터

대기업 연말 인사의 특징을 두고 ‘세대교체’라는 해석이 많다. 40대를 최고경영자(CEO)로 발탁하고 능력이 있으면 30대도 임원으로 승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 인사에서 세대교체는 단순히 젊은 직원으로 물갈이하는 게 목적이 아니다. 능력이 뛰어나고 성과가 좋으면 나이와 상관없이 중용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세계 경제가 침체 국면이고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는 시기에 ‘세대교체’는 기업이 난관을 돌파하는 전략이 될 수 있다.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주요 기업체 건물.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러나 이런 의미의 ‘세대교체’에 예외가 있다. 재벌 총수 일가의 3, 4세들이다. 이들 중에는 능력보다는 ‘금수저’라는 이유로 고속 승진을 거듭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능력이 검증되지 않았는데도 ‘세대교체’라는 미명 아래 기회가 있을 때마다 승진 대상에 3, 4세를 끼워 넣고 있다. 올해도 똑같은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대기업 연말 인사에서 30~40대인 총수 3, 4세들이 약진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3남인 김동선(34) 한화갤러리아 전략본부장은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김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부회장은 지난해 8월 승진했다. 고속 승진을 통해 자연스럽게 3세 경영체제를 굳히고 있는 셈이다.

GS그룹은 총수 일가 4세들이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다. 허창수 GS그룹 명예회장의 아들인 허윤홍(44) 사장은 GS건설 대표이사에 올랐고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날 회장의 장남 허서홍(46) 부사장은 GS리테일의 경영전략서비스 유닛장을 맡았다. 허철홍(44) GS엠비즈 전무는 부사장으로 승진했고 허주홍(40) GS칼텍스 상무와 허치홍(40) GS리테일 상무도 전무로 승진했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으로 현대가 3세인 정기선(41) HD현대 부회장은 지난 2021년 사장에 오른 지 2년여 만에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구자열 LS그룹 이사회 의장의 장남인 구동휘(41) 부사장은 LS MnM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았다. 박삼구 금호그룹 전 회장의 장남 박세창(48) 금호건설 사장도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이웅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의 장남인 이규호(39) 코오롱모빌리티그룹 대표이사 사장은 지주사인 ㈜코오롱의 전략 부문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내정됐다. OCI 창업주 고 이회림 회장의 손자인 이우일(42) 유니드 대표이사 부사장은 사장으로 승진했다. 다른 재벌기업도 총수 일가의 젊은 3, 4세를 성과나 능력 검증 없이 승진시키는 모습은 대동소이하다.

대기업집단 총수 일가는 입사부터 임원 승진까지 5년도 걸리지 않는다는 조사도 있다. 기업분석사이트인 CEO스코어가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59개 대기업집단 중 총수 일가 부모와 자녀 세대가 함께 경영에 참여 중인 40개 그룹을 조사한 결과 총수 일가는 평균 29세에 입사해 평균 34세 전후로 임원으로 승진했다.

총수 일가가 아닌 일반 임원 중에 이사를 포함한 상무 직급 임원의 평균 연령은 53세다. 총수 일가가 일반 직원이 비해 약 19년 이상 빠른 ‘초고속 승진’을 하는 셈이다. 임원 승진 기간도 부모 세대인 1~2세대에 비해 3~4세대로 갈수록 짧아졌다. 부모 세대는 평균 29세에 입사해 34세 무렵 임원으로 승진했는데 자녀 세대는 29세에 회사에 들어와 33세에 임원으로 승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임원 승진이 빠른 만큼 사장과 회장 등 최고경영자에 오르는 시점도 부모 세대보다 2년가량 빨랐다.

 

 자료: 경제개혁연대. 재벌개혁에 대한 여론

한국에서 세습경영은 재벌기업 문제만은 아니다. CEO스코어가 최근 국내 상장 중견기업 715곳의 현직 대표이사 현황을 분석한 결과 공동 또는 각자대표를 포함한 총 981명 중 470명(47.9%)이 총수 일가인 것으로 조사됐다. 많은 중견기업이 세습경영을 하고 있다는 증거다.

재벌기업이든 중견기업이든 총수 일가의 세습경영은 성과와 능력에 바탕을 둬야 하는 인사 원칙을 훼손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능력이 없는 3, 4세 경영인이 요직에 앉아 중요한 의사결정을 방해하고 궁극적으로 사업 실패의 원인을 제공한 사례는 많다. 무엇보다 철저한 검증 없이 총수 일가라는 이유로 승진시키는 관행은 기업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지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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