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선 넘은 '노조 때리기' 어디까지?
전임자 근로시간 면제·사용자의 운영비 원조 '트집'
한달간 1000명 이상 사업장 521곳 전수조사
극단 사례 들어 노사자율 사항을 "특혜, 불법" 몰아
회계장부 공개 강제 이은 부적절한 노조 적대
윤석열 정부의 ‘노조 때리기’가 도를 넘어섰다. 노조 회계장부를 공개하지 않으면 노동조합비를 세액공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도 모자라 노조 전임자 근로시간 면제 제도(타임오프제)와 사용자의 노조 운영비 원조 문제까지 시비를 걸고 있다.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동시장 선진화를 위해서는 노조와 적극적으로 대화해야 해야 할 상황에서 노조를 적대시하는 정책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28일 서울고용노동청에서 개최한 ‘노동 개혁 추진 점검 회의’에서 “불법적인 노조 전임자와 운영비 원조 운영실태를 파악하고 부당노동행위 감독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사용자의 위법한 근로시간 면제 적용과 운영비 원조가 노조의 독립성과 자주성을 침해하고 건전한 노사관계 형성을 방해하기 때문에 정부가 적극 개입하겠다는 뜻이다.
고용부는 지난 5월 31일부터 약 한 달간 근로자 1000명 이상 사업장 521곳의 근로시간 면제와 노조 운영비 원조 현황을 전수 조사했다. 그 결과 사용자로부터 노조 전용 자동차 10여 대와 현금 수억 원을 받은 노조, 사용자로부터 노조 사무실 직원의 급여까지 받은 노조, 근로 시간 면제 한도를 283명이나 초과한 사업장 등이 확인됐다고 연합뉴스가 28일 보도했다.
이 장관은 이런 조사 결과에 대해 “많은 사업장에서 노조와 사용자가 담합해 제도를 위법·부당하게 운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조만간 근로시간 면제와 운영비 원조 실태 조사 결과 분석을 마무리해 발표하고 위법행위는 감독을 통해 시정할 계획”이라고 했다.
하지만 고용부의 실태 조사는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근로시간 면제는 노조 전임자에 대한 사용자의 임금 지급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노사교섭과 산업안전 등 일부 업무를 근무 시간으로 인정하고 임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말한다. 노사정 합의로 2010년 도입된 이후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근로시간 면제 관련 부당노동행위 신고 건수는 매년 들쭉날쭉했다. 지난 2019년 24건에서 2020년 28건, 2021년 51건으로 늘었다가 지난해에는 다시 15건으로 줄었다. 이처럼 의미 있는 변화가 없는데도 고용부는 극단적 사례를 들어 근로시간 면제 제도를 노조 전임자의 특혜 문제로 몰아가고 있다.
사용자의 노조 운영비 원조는 2020년 개정된 노동조합법(노조법)에 근거한다. 노조법의 관련 조항은 2018년 5월 헌법재판소가 일부 내용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리면서 개정됐다. 개정된 노조법의 핵심은 노조 운영비 원조 금지에 대한 예외 규정을 명시한 것이다. 노조의 자주적 운영 또는 활동을 침해할 위험이 없는 범위에서는 사용자가 운영비를 원조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노조 활동을 침해할 위험 여부 판단기준은 원조의 목적과 경위, 운영비 횟수, 기간, 금액과 지급 방식, 노조 총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율 등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운영비 원조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는 것인지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다. ‘이현령비현령’식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이 때문에 노동계는 고용부의 실태 조사가 “노조 망신 주기”라며 반발하고 있다. 노조 전임자의 근로시간 면제를 과도한 특혜인 것처럼 설명하고 노조 운영비 원조 실태 조사를 통해 노조의 도덕적 해이를 부각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고용부가 일상적인 노조 활동까지 시시콜콜 간섭하며 노동계를 적대시하는 정책이 노조의 자율성과 노동자 권리를 침해할 뿐 아니라 노동시장을 선진화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노총은 28일 “우리 정부가 비준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원칙에 따르면 근로시간 면제 제도나 노조 전임 활동은 노사 자율에 맡겨야지 입법적 개입 대상이 아닌데도 정부는 위법을 운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사측을 처벌할 생각도 의지도 없으면서 그저 노조를 망신 주기 위한 발표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