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 포기한 윤석열 정부…"존재 이유 없다"
한덕수 총리, 후쿠시마 대국민 담화…일본 대변 일색
"핵 폐수 과학적", 야당·비판언론에 "가짜뉴스"
"안심할 때까지"…조건부 일본 수산물 수입 금지
책임자 윤석열은 침묵…야당·시민사회 "탄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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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24일 오후 1시를 기점으로 후쿠시마 핵 폐수 무단 방류를 시작한 가운데, 한국 정부가 핵 폐수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또다시 일본의 결정을 두둔했다. 핵 폐수가 아닌 '가짜뉴스'가 국민의 생명권을 위협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 정부의 핵 폐수 방류 용인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 안전을 포기한 최악의 사례로 역사에 기록될 전망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후쿠시마 핵 폐수 방류 개시 30분 뒤인 이날 오후 1시 30분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담화 발표에는 방기선 국무조정실장, 오영주 외교부 2차관, 박성훈 해양수산부 차관, 박구연 국무조정실 국무1차장, 유국희 원자력안전위원장,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 등이 동석했다.
한 총리는 담화문 첫 마디부터 "일본 측이 과학적으로 처리된 방류를 시작했다"며 핵 폐수 방류가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입증됐다는 듯 발언했다. 일본 총리나 할 법한 발언을 한국 총리가 한 것이다.
이어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에 놓고 오로지 과학과 국제법을 바탕으로 국제사회 및 일본 정부와 협의해 우리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최선의 안전대책을 이끌어내는 것이 우리 정부와 과거의 정부의 일관된 목표이자 원칙이었다"고 말했다.
국민이 납득할 만한 대책을 마련했다는 '자의적' 평가에도 동의하기 어렵지만, 윤석열 정부가 과거 정부와 일관된 목표·원칙을 공유했다는 점은 더욱 이해할 수 없다. 과거 정부에서 핵 폐수를 안전하다고 한 사례가 없다.
한 총리는 그러면서 "정부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및 일본 정부와 장기간 치열한 협상을 통해 다음 사항을 합의했다"며 2주일에 한 번씩 한국 전문가를 현지에 파견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상시도 아닌 격주 파견을 마치 성과처럼 홍보하며 "국제사회가 우리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우리 국민이 다른 어떤 국가의 국민보다 두터운 보호를 받게 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국제 사회가 한국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말의 의미도 불분명하지만, 방류 중단도 아닌 일본 측 자료를 바탕으로 하는 모니터링이 '보호'라고 평가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또한 한 총리는 모니터링 등의 조치가 '두터운 보호'라고 홍보하면서도 일본 정부를 향해 "30여 년간 계속될 방류 과정에서도 투명하고 책임감 있게 정보를 공개하기를 기대하고, 또 촉구한다"고 했다.
핵 폐수 방출이 100년 이상 지속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일본 정부에 정보 공개를 촉구하는 것은 정부가 장담한 핵 폐수 모니터링도 항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한 총리는 그럼에도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해 IAEA와 국제원자력 학계, 그리고 우리 전문가들은 일본 정부가 앞서 발표한 조치에 따라 방류한다면 한국은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 총리는 오히려 "지금 우리 국민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것은 과학에 근거하지 않은 가짜 뉴스와 정치적 이득을 위한 허위 선동"이라고 엄포를 놨다. 야당과 시민사회, 환경단체, 비판 언론 등을 겨냥한 발언으로 이해된다.
그러면서 "후쿠시마 오염수 때문에 우리 바다가 오염될 거라는 근거 없는 선동으로 우리 수산업이 위협받고 있다"며 "이런 선동과 가짜 뉴스는 어업인들의 생계를 위협할 뿐만 아니라 국가의 신뢰와 올바른 국민 건강권을 해치는 행위"라고 했다.
그는 일본의 수산물 수입규제와 관련해서는 "우리 국민들께서 안심하실 때까지 현재의 수입규제조치를 유지할 계획"이라며 "더 이상의 염려는 불필요하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역시 '우리 국민들께서 안심하실 때까지'라는 조건을 전제로 한 발언인 만큼 언제든 국민이 안심하고 있다는 판단이 선다면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재개가 가능하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한 총리는 전날 기자간담회에서도 "스위스와 유럽연합(EU) 등이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금지를 해제한 것을 보면 한국이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을 막는 게 맞지 않다는 논리도 있다"고 말해 수산물 수입 재개를 시사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
총리 꼭두각시 내세우고 대통령 침묵
하지만 후쿠시마 핵 폐수 방류 개시로 국민의 생명과 건강, 안전에 중차대한 문제가 발생했음에도 윤석열 대통령은 장막 속에 들어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무책임의 극치이자 반인류 범죄에 대한 방관이다.
그는 후쿠시마 방류를 앞두고 국민들의 불안이 극심한 상황에서도 한 총리와 박구연 국무1차장 등 정부 고위관계자들을 앞세워 정부의 '핵 폐수 용인' 방침을 홍보하면서, 본인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
그동안 후쿠시마 핵 폐수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던 윤 대통령이 직접 국민 앞에서 설명해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후쿠시마 핵 폐수 방류는 윤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5월 서울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가진 뒤 급속도가 붙었다.
정상회담 후속 조치로 한국 시찰단이 현지에 파견됐지만, 일본 측이 일방적으로 제공한 자료를 바탕으로 일본 측이 기획한 시설만 견학했고, 이로 인해 방류 명분을 주고 '들러리'만 설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실제 정부 입장도 시찰단 귀국 뒤, 핵 폐수 방류 용인 쪽으로 굳어졌다. 이때부터 정부 고위관계자들이 '일본 대변인' '조선 총독부'라는 비판을 받아가며 매일 후쿠시마 핵 폐수 '안전성'을 일방적으로 홍보했다.
핵 폐수 방류의 중대성을 고려하면 공론화 과정이 어느 정도 필요했지만 대통령의 단독 결정으로 국민 생명과 건강을 침해할 상황이 초래된 만큼, 대통령이 국민들 앞에서 의사 결정 과정을 상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정부·여당이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에 미칠 악영향을 의식해 후쿠시마 원전 핵 폐수 조기 방류를 일본 측에 요구했다는 일본 <아사히신문> 보도에 대해서도 대통령이 사실관계를 밝힐 필요가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도 기시다 총리와 만나 "원자력 안전 분야의 대표적 유엔 산하 국제기구인 IAEA의 발표 내용을 존중한다"며 사실상 핵 폐수 방류를 용인한 바 있다.
그러나 핵 폐수 방류가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국내에 한 일이라곤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붕장어회 고추장 비빔밥을 만들어 먹고, 거제 전통시장에서 어르신을 만나 "회를 많이 드셔서인지 정정해 보이신다"고 말한 정도다.
"대통령 존재 이유 무엇인가"…탄핵 거론
일본에 방류 반대 목소리 한 번 제대로 내지 못하고, 사실상 용인한 윤 대통령에 대한 야당과 시민사회의 비판은 격앙돼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이날 긴급 의원총회에서 "일본이 2차 세계대전 때 총과 칼로 태평양을 유린했다면 이제는 방사능으로 인류 전체를 위협하는 꼴"이라며 "역사는 2023년 8월 24일 오늘을 일본이 인류에게 또다시 씻지 못할 범죄를 저지른 날로 기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윤석열 정권도 환경재앙의 또 다른 주범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가 없다"며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핵 오염수 투기 범죄에 정부여당은 누구보다 앞장서서 면죄부를 줬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집권세력으로서 책무는 완전히 망각한 채 그저 일본의 심기만 살폈다"고 했다.
"심지어 방류에 문제가 없다면서 대통령실 예산으로 오염수의 안전성을 홍보까지 했다. 이쯤 되면 이 정권은 일본과 핵 오염수 투기에 공범이라는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면서 "국민의 생명과 우리 영토의 안전을 수호해야 하는 신성한 책임을 저버린 용서 못할 정권"고 했다.
이 대표는 "대한민국 바다를 핵 오염수 폐기장으로 만들려는 일본의 무도한 환경파괴 범죄에 힘을 다해 끝까지 싸워야 한다. 주권자들이 우리에게 위임한 모든 권한을 총동원하겠다"며, 윤석열 정부를 향해 "일본의 환경파괴 범죄에 더 이상 부역하지 마라. 국민과 역사, 미래세대의 심판을 자초하지 말기를 경고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박광온 원내대표는 정책조정회의에서 "일본의 무대책과 우리 정부의 무대응이 환경 생태계와 국민의 생명과 건강, 그리고 수산업을 위협하고 있다"며 "대통령과 정부는 지금이라도 이 사안을 한일 양국 간 중대 의제로 지정하고 일본과 협의에 나설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침묵을 멈추라"고 했다.
김민석 정책위의장은 "오염수 방류를 못 막고 배상조차 못 받으면 대통령의 존재 이유가 뭐냐"면서 "일본 편들고 우리 민생을 죽이면서, 보상도 안 하거나, 일제 배상 포기에 이어 오염수 보상도 우리 돈으로 막아주는 대통령과 정부라면 존재의 이유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본소득당 신지혜 대변인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에 제동을 걸지 않는 것은 제대로 검증조차 되지 않은 핵 오염수 투기를 묵인하며 국민 안전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며 "국민을 위하지 않는 국가 수장은 반드시 국민에게 엄중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진보당은 논평을 통해 "아직도 정부는 오염수에 대해 찬성도 반대도 아니라는 말로 얼버무리고 있으며, 대통령은 입을 닫아버린지 오래다. 국민의 생명안전을 지킬 헌법상 의무를 위배한 윤 대통령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오염수도 안 막고, 국민의 삶도 안 지키면 도대체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라고 했다.
야당과 시민사회에서는 대통령 탄핵도 거론된다.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방류 하루 전인 지난 23일 페이스북을 통해 "민주당 168석으로 탄핵 발의하자. 민주당 단독으로 가능하다"면서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발의를 제안했다.
시민사회도 힘을 실었다. 촛불승리전환행동(촛불행동)은 23일 성명에서 "윤석열 정권은 주권자 국민 전체의 공적(公敵)"이라며 "국가주권과 국민의 생명, 안전을 지켜야 하는 최우선의 책임을 저버린 대통령 윤석열은 즉각 탄핵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촛불행동은 △주한 일본대사 초치 및 주일 한국대사 소환 △외교 단절을 포함한 초강경 대처 △국회의 즉각적인 윤석열 탄핵 발의 △국회 일본 기시다 정부 규탄 결의안 발의 등을 촉구하며 "범국민적 항쟁을 가열차게 벌여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치권의 장외 투쟁과 시민사회의 행동도 거세게 전개되고 있다. 이날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 반대 대학생 원정단(원정단)과 진보대학생넷 소속 대학생 16명이 방류 시작과 동시에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 대사관에 진입하려다가 경찰에 연행됐다.
학생들은 일본대사관이 있는 트윈트리타워 건물 8층에서 오염수 방류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며 일본대사관에 진입을 시도했다. 이 건물 9∼11층 대사관은 8층 출입구를 통해서만 드나들 수 있다.
민주당은 오는 25일 거리로 나가 광화문에서 용산 대통령실까지 규탄 행진을 할 예정이다. 주말인 26일에는 광화문에서 시민사회 단체와 총집결대회를 연다. 촛불행동도 26일 시청역 앞에서 집회를 열고 핵 폐수 방류를 강력 규탄하고 대통령 탄핵을 촉구할 계획이다.